당진시립 송악도서관(관장 구본휘) 로비에서 '달콤 쌉쌀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주제로 원태연 시인 북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손끝으로 그림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대표 연애 시인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인이 원태연 시인인데요. 평범한 단어도 원태연 시인의 손을 거치면 달달한 언어로 감동을 주던 기억이 나네요.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갔는데 벌써 북콘서트가 시작되어 순간 깜짝 놀랐는데 기존과 다른 매력의 북콘서트가 펼쳐졌답니다.
원태연 시인은 1990년대 솔직한 언어와 섬세한 감수성으로 동시대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원태연 신드롬'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그의 시집들은 도합 '600만 부 판매'라는 진기록을 세우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는데요.
2002년 시집 <안녕>을 끝으로 불현듯 문학계에서 사라졌던 시인이 20년 만에 <너에게 전화가 왔다>로 독자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한동안 원태연 시인의 시를 볼 수 없었지만 요즘 청년 세대에게는 유명 드라마 OST, 인기 대중 가요의 작사가로 유명한데요.
김신작가의 사회로 시인이 다시 시를 쓰게 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원태연 시인은 90년대 선풍적인 인기로 많은 사람의 기억에 각인된 베스트셀러 시인이지만 문학계에서는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고 해요.
'한동안 시에게 많이 당했다. 당해도 싸다'고 말할 정도로 시인은 창작의 고통에 괴로워했지만 끝내 펜을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인은 서울 서초동의 빌라 꼭대기 층 천장이 낮은 집필실에서 머리로 천장에 구멍을 뚫어가며 시를 썼다고 하네요. 시가 너무 안 써져 이틀인가는 잠도 한숨 못 자고 입맛도 없어서 물만 먹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13개월 27일 동안 시에게 당해 제정신이 아니니까 조금씩 시가 나왔다고 하네요.
김신 북토커의 사회로 질의응답이 이어집니다.
Q: 왜 그렇게까지 시 쓰기에 사력을 다해 시를 쓰시나요.
A: 제대로 된 새 시집을 낸 게 20년 만이잖어요. 20년 만에 편지를 쓰더라도 모든 정성을 기울이는데, 하물며 시는 어떻겠어요. 양심 있는 시를 쓰고 싶었어요.
Q: 이번 시집에서 '한 페이지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고 밝힌 것도 그 때문이겠군요. 30년 전부터 알고 지낸 독자에게 약속한 다짐은 무엇인가요.
A: 30년 전 제 첫 시집 출판기념회 때 어느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는데 이름이 그 당시 여자친구와 같아서 기억하고 있었어요. 15년이 지난 후 어느 강연장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너무 반가워서 그날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어요. 원태연이 망가져 있으면 어쩌지 했는데 안 망가져서 너무 다행이라고 하는데 너무 고마웠어요. 그게 사랑이 아닐까요. 누군가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안녕을 바라는 거. 그게 너무 기분 좋아서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한 페이지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시집을 쓰겠다고 약속을 한 겁니다. 다시 시를 쓰기까지, 용기를 많이 줬어요. 그분 언니까지 제 신작을 사서 읽고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Q: 시를 읽다보면 원초적 감정에 기인한 주제어 사랑, 눈물, 그리움, 너, 나 등의 소재가 시 세계를 관통하는데요. 작품성 면에서 '감상주의적'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하는데 문단 일각에서 본인을 '감성시인' '대중문학가'로 규정하는 것에 불만은 없었나요.
A; 시인으로 부르든 감성시인으로 부르든, 그냥 좀 놔뒀으면 좋겠어요. 저는 시인이 되려고 시를 쓰고 시집을 내는 게 아닌데요. 시 쓰기 자체는 고통스럽지만, 독자들의 반응에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계속 쓰는 거예요. 어렸을 때 사격선수로도 활동하고 대학에서는 체육을 전공했지만, 그때도 항상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어요. 지금도 시뿐 아니라 소설, 사전, 가사를 계속 쓰고 있어요. 비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누군가 '이것이 진정한 시다'라고 지목하고 보여줘야죠. 그렇지도 않은 비판의 핵심이 뭔지 정말 궁금해요."
Q: '원태연 스타일'이랄까 자신만의 작법 이야기를 해 주세요.
A: 제 시들이 짧은데 그렇게 짧게 될 줄 몰랐어요. 시를 쓰면서 제가 그만 쓸 때까지, 시가 매력적으로 보일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쳐요. '버퍼링', 그 일곱 글자 시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9개월 동안 70번 넘게 고쳤어요. 뭘 어떻게 적어봐도 도대체 버퍼링 같지가 않아서요. 퇴고한 원고들을 모으면 버퍼링으로만 시집 한 권을 낼 수 있을 정도로 간절히, 열심히 썼어요.
북토크 도중 독자에게 다가가 퇴고한 원고를 보여주기도 하며 재미있게 질의응답이 이어집니다.
Q. '나뭇잎 뜯기'란 시가 짧은 시지만, 제목과 본문이 일치돼 여운이 증폭되는 느낌을 받아서 마음에 와닿았는데 모티브가 따로 있나요.
A: 그 시도 원래는 '외롭다 / 외롭지 않다 / 외롭다 / 외롭지 않다…'로 길게 이어지는 형식이었는데, 다 걷어내고 딱 한마디로 표현했어요. 원고 인쇄하기 직전까지도 고쳤어요.
Q: 시 쓰기를 통해 추구하는 것은 메시지 전달인가요? 아니면 독자와의 소통인가요?
A: '예술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시의 본질은 '경외'(敬畏·공경하면서 두려워함)가 아닌 '공감(共感)'이예요. 시를 쓰면서 가장 중시하는 것도 독자들과의 '공감대'예요. 공감 가는 시는 '글빨'로 되지 않아요. 정말 절실해야 해요. 정말 간절하게 쓴시는 자연스럽게 독자와 소통합니다.
시인은 20대에 일약 '스타 시인'으로 거듭나 펴내는 시집마다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주요 시편들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어 '사랑의 세레나데'로 인용되곤 했는데요. 반면 '인기 작가'라는 휘황한 칭호의 이면에는, '감성시인' '대중문학가'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고 합니다. '돈 많이 번 시인'이라며 비꼬는 듯한 문학계 일각의 시선들도 시인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요. 시인은 '그 시절 세상의 시선이 그랬다'며 '돈 벌려고 그렇게 쓴 거 아니다'라고 강하게 말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합니다.
첫 시집은 출판사에 모든 권리를 넘겨서 인세도 받지 못했지만, 책을 처음 내준 게 고마워서 지금까지도 사장님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너에게 전화가 왔다>에는 짧으면서도 함축적인 시편들을 다수 수록했다고 합니다. 산문시와 세로쓰기, 한 글자씩 띄어쓰기, 시어를 좌우로 엇갈리게 나열한 시 등 형식을 다양하게 변주한 작품들도 실었는데요. 시인은 해당 시편들을 실험적으로 보이기 위해 의도하고 쓴 건 아니었다고 강조합니다.
독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가 무엇인지 물었는데요. '이별역'이라고 말하며 이유를 들려줍니다.
어느 날 경주에서 경주역에 시를 돌판에 새기는데 첫 번째로 원태연 시인의 '이별역'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고 해요. '두 번째 작가는 누구냐?'라는 시인의 질문에 헤르만 헤세라는 말에 돈도 받지 않고 승낙했다고 합니다. 그 대단한 작가가 두 번째고 자신이 첫 번째라는 말에 너무 행복해 하는 시인의 표정이 천진난만하네요.
시를 놓았던 지난 20년간 시인은 작사가,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등으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넓혀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사랑과 이별의 번민을 진솔하게 노래한 작사가'로 음악계에 자리매김했는데요. 시인은 1995년 싱어송라이터 김현철의 곡 '왜 그래'를 시작으로, 신승훈·성시경·백지영·이효리 등 인기 가수들의 노랫말을 써 내려가며 다시금 글로 사람들과 소통했습니다. 현빈·하지원 주연의 드라마 '시크릿 가든' OST(그 여자, 그 남자), 개그맨 박명수의 청혼곡으로 유명한 '바보에게 바보가'부터 허각의 '나를 잊지 말아요', 유미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등이 대표작인데요.
1995년 제대한 그날 부모님에게 인사드리고, 점심에 친구 만나서 밥 먹고, 오후에 스튜디오에서 김현철씨 만나고 작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 쓰기도 작사도 20대에 시작해 보통의 중년이 되었지만, 시와 가사에서는 '열여덟 살 이전의 언어'로 표현하고자 한다고 해요. 시인은 자신의 시가 ‘여든 살’에 읽어도 ‘스무 살’ 때 읽었던 것처럼” 첫 느낌을 간직하길 바란다고 이야기 합니다
북콘서트 도중 갑자기 독자에게 노트북의 글을 보여주거나, 음악을 들려주고, 자리를 이동하는 등 돌발행동에 당혹스러웠는데요. 시인은 현재 한국난독증협회 홍보대사로 마흔 살에 처음 자신이 난독증을 앓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합니다. 난독증이면 창작을 이어가기가 힘들지는 않을까 염려가 됐는데요.
난독증은 책을 읽는 데 필요한 어떤 '소프트웨어' 하나가 부족해서 불편할 뿐 시인은 각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듯이' 머릿속에 기억하고, 나중에 내용을 떠올려 이해한다고 합니다.
시인의 난독증이 누군가에게는 희망과 용기가 되기도 했다고 해요. 어느날 라디오 출연했을때 난독증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부터 희망을 얻었다는 전화를 받고 타인에게 희망과 용기가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고 합니다. 난독증이어도 시도 쓰고 작사도 하고 다 할수 있다며 난독증이 창작과 발상에 도움이 되어 베스트셀러 시집을 출간할 수 있었다고 해요. 지난달에는 시인의 가사로 히트를 친 모가수가 '예전 곡의 인기를 뛰어넘는 노랫말을 써달라'고 해서 하나 써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쉽고 공감가는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것같지만 누구나 쉽게 쓸 수는 없는데요. 원태연 시인의 시는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마법이 있다고 할까 그게 이 시인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태연 시인은 앞으로 시를 또 쓸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 비친 것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사전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서 독자들과 다시 한번 공감대를 형성하고 우리들만의 언어로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고 하네요.
북콘서트가 끝나고 시집에 사인을 받았습니다.
현수막을 기념으로 가져가고 싶다며 싸인을 해달라는 독자의 청도 흔쾌히 들어 주고, 함께 사진도 찍어주시고 ㅎㅎ
오늘 북콘서트는 초겨울을 알리는 살갗을 에이는 찬바람처럼 시인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깊이 울림으로 와 닿았는데요. 시인의 문장들이 내삶의 고정된 틀을 깨고 새로운 틀을 제시해 주는 것 같은 신선함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귀가했습니다. 까만 밤하늘을 밝혀주는 달빛 아래 멋대로 뒹구는 붉은 낙엽이 시인의 웃음소리와 닮아 정갑이 가네요. 다음에 시인의 웃음을 닮은 또다른 시집으로 만나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