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다독다상량(多聞多讀多商量)
많이 듣고, 많이 읽으며, 많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중국(中國)의 구양수(歐陽脩)가 옛부터 사람들께 글 잘쓰고 공부를 잘 하는 비결(秘訣)로서 이른 말
구양수는 쓰촨 성 몐양의 지방관이었던 아버지 구양관(歐陽觀)을 3세에 여의고, 어머니를 따라 후베이[湖北]에 살고 있던 숙부 구양엽(歐陽曄)의 집으로 옮겨가 그곳에서 자랐다.
집안이 너무나 가난해서 모래 위에 갈대로 글씨쓰는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는 과장된 것인지 모르지만 집안이 궁색한 형편에 놓여 있었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1030년 진사(進士)시험에 장원급제하여 서쪽의 수도였던 뤄양[洛陽]의 유수추관(留守推官)을 제수받았다.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문인으로 일찍부터 명성이 높았던 구양수는 뤄양에서 유명한 시인 매요신(梅堯臣) 등과 사귀었다.
이들과의 친분으로 인해 구양수의 문학적 명성은 더욱 높아졌고 이를 계기로 고문의 간결성·명료성에 더욱 열중하게 되었다.
물론 그는 시, 사, 부, 산문 등 문학 장르의 다방면에 걸쳐 볼만한 업적을 이루었지만, 특히 산문 부분에서 더욱 큰 성취가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당송 양대(唐宋兩代)는 중국산문사에서 질적, 양적으로 가장 풍성한 수확을 하였던 시대이다.
특히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들을 중심으로 한 산문창작은 역대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고, 당송팔대가들 중에서도 당대의 한유(韓愈) · 유종원(柳宗元)과 송대(宋代)의 구양수(歐陽修) · 소식(蘇軾)이 특히 주목을 받아왔다.
구양수 문학에 대한 다양한 연구경향 가운데, 이름난 개별 작품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것이 가장 많다.
이 가운데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면 <취옹정기(醉翁亭記)>에 관한 논문이 가장 많고, <영관전속(領館傳續)>에 관한 논문, <매유옹(賣油翁)>에 과한 논문이 그 다음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