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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의 메인테마인 헨리 맨시니의 <집시의 바이올린>을 배경으로 주요 동영상이 펼쳐집니다
[ 영화 <밀애,Darling Lily> ]
국내 첫 개봉시 국제극장(서울)에서 24만명을 동원하며 그해 외국영화 흥행 2위를 기록하는 등 특히 한국인들에게 많은 사랑받았던 <밀애>는 수년간 앵콜 리바이벌 개봉되기도 하였으며, 영화 속에서 록 허드슨이 줄리 앤드류스에게 청혼할 때 흐르던 음악 "집시 바이올린"은 명곡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히로인 줄리 앤드류스와 50-60년대 최고의 미남스타로 이름을 날린 록 허드슨이 공연한 <밀애>는 1차 대전기간 동안 벌어지는 독일 스파이와 연합군 장교와의 아슬아슬한 사랑을 다룬 전쟁 로맨스 음악 영화입니다. 심각한 주제이지만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줄리 앤드류스의 남편이기도 했습니디) 특유의 유머감각 넘치는 유쾌한 화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인기의 정상에 있던 두 남녀 배우의 출연도 볼거리이며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중간에도 수시로 삽입되는 줄리 앤드류스의 공연장면 만으로도 본전을 뽑는 영화입니다. 1971년 국내 개봉시 대박 히트를 친 영화이지만 낭만적인 집시 바이올린 음악을 비롯하여 줄리 앤드류스가 부르는 여러 곡의 노래, 그리고 꼬마 아이들이 행진하면서 부르는 노래 등 음악이 풍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사랑, 낭만, 음악, 전쟁 등 흥행을 위한 각종 재료들이 담긴 영화이니 당연히 관객들의 선호도가 높았을 것입니다. 스타 배우의 출연,헨리 맨시니의 감미로운 여러 음악들,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의 재기넘치는 연출, <밀애>는 고품격의 완성도보다는 볼거리와 낭만이 가득찼던 영화입니다.
독일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릴리(줄리 앤드류스)는 독일 스파이로서 뛰어난 임무수행력을 보이지만 잘 생긴 장교 래러비 소령(록 허드슨)과 실제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프랑스 정부에서는 군사기밀이 자꾸 새어나가게 되자 래러비 소령을 의심하게 되고 릴리는 계속 소령을 만나자니 정체가 탄로날 수 있고, 그만 만나자니 정보누출이 멈추게 되면 역시 자신이 의심을 받게 될 난감한 상황에 빠집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수제트라는 댄서가 릴리대신 스파이로 의심받게 되고 릴리는 위기를 모면했지만 래러비 소령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 질투를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래러비 소령이 정보누출 혐의로 곤경을 겪게 되자 릴리는 자신이 스파이라는 사실을 프랑스 경찰에 자백하게 되고, 막바지에 이른 전쟁의 와중에 릴리에게 위험이 닥쳐오게 됩니다.
겉으로는 병사들을 위문하며 공연을 펼치는 천사같은 여성이지만 실제로는 거물 스파이였던 릴리,하지만 진정한 사랑 앞에서는 전쟁도 국경도 임무도 무의미하게 되고 장벽없는 사랑이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청순한 이미지의 줄리 앤드류스이지만 록 허드슨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질투심때문에 공연도중 옷을 벗어던지고 다리를 훤히 드러내는 관능적인 춤을 추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냅니다. 줄리 앤드류스도 매끈한 각선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고, 사랑도 다시 찾아온다는 흐믓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밀애>는 산업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었지만 생활은 팍팍했던 70년대에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고 심금을 울렸던 아련한 통속 로맨스영화였죠. 하여튼 무지 재미있었던 영화로 기억됩니다.
[ 줄리 앤드류스 이야기 ]
< 헵번에게 빼앗긴 “마이 페어 레이디”, 그리고 “메리 포핀스” >
영국출신인 줄리 앤드류스는 헐리우드 영화 진출 이전에 브로드웨이 극 <마이 페어 레이디>의 주연배우 엘라이제 역으로 활발한 뮤지컬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유년시절 부터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력을 지니고 있었던 줄리의 재능은 '별들의 전쟁터' 라는 브로드웨이에서도 여전히 유효했던 것이죠.
연일 흥행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던 <마이 페어 레이디>는 결국 영화로 까지 만들어지기에 이릅니다.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여주인공으로는 단연 줄리 앤드류스가 1순위로 꼽힐 줄 알았지만 <마이 페어 레이디> 제작사 쪽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무리 줄리가 뮤지컬로 큰 성공을 거뒀다고 해도 헐리우드가 알아주는 스타파워를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메리 포핀스>에서
결국 제작시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오드리 헵번과 줄리 앤드류스를 놓고 저울질 하기에 이릅니다. 줄리는 자신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모두 물리칠 정도로 <마이 페어 레이디> 에 목숨을 걸었으나 폭발적인 스타성을 지닌 헵번을 이겨낼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줄리는 그토록 사랑했던 작품인 <마이 페어 레이디>를 헵번에게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물론, 헵번은 <마이 페어 레이디> 를 성공으로 이끌었을 뿐 아니라 줄리와는 또 다른 캐릭터를 창조시키는 등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다만 헵번은 가창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뮤지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는 모두 대역을 쓸 수 밖엔 없었다고 하네요.)
*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이 페어 레이디>의 주연 자리를 놓친 줄리는 2순위로 밀어두고 있던 <메리 포핀스>로 헐리우드 행을 결정합니다. 줄리는 <마이 페어 레이디>의 실패를 또 다시 재현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줄리는 <메리 포핀스> 를 성공시키기 위해 악착 같이 연기했죠. 이미 줄리의 꿈은 브로드웨이를 넘어 세계 영화의 중심지 헐리우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줄리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메리 포핀스>는 헵번의 <마이 페어 레이디> 못지 않은 엄청난 흥행성적을 거뒀고 작품성까지도 커다란 호평을 받게 됩니다. 물론 여주인공을 맡았던 줄리 앤드류스의 이름이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것도 이 때부터입니다. 언론은 연일 이 대단한 여배우를 집중 조명했고 줄리는 이렇게 헐리우드 데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냅니다.
*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메리 포핀스> 는 오스카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음악상을 비롯해 5개의 상을 수상합니다. 그 중 줄리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상은 아마 '여우주연상'이었을 것입니다. 헐리우드에 갓 데뷔한 배우가 단박에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죠. 줄리는 이 외에도 골든 글러브, 영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까지 휩쓰는 기염을 토합니다.
줄리의 이런 수상실적에 비해 <마이 페어 레이디>의 헵번은 대히트에도 불구하고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되지도 못했는데 이유는 뮤지컬 영화에서 목소리 더빙을 했기 때문이었다고... 이 사실을 안 줄리 앤드류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오드리 헵번은 정말 엄청난 배우다. 그녀는 비록 더빙을 했지만 나보다 더 잘했고 나보다 더 위대했다. 그녀가 오스카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대단한 유감이다." 천성이 이렇게 착했던 줄리였죠.
< 운명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
<메리 포핀스>를 성공으로 이끈 1년 뒤, 줄리 앤드류스의 배우 인생에 가장 큰 영광을 가져다 줄 영화가 탄생합니다. 바로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입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명절 때만 되면 재방에 재방을 거듭할 정도로 유명한 이 영화는 줄리 앤드류스가 지니고 있는 최상의 가치를 마음껏 뽑아내 준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65년 당시 극 중 마리아의 나이가 20살이었던 것에 반해 줄리의 나이는 30세였습니다. 젊고 생기발랄한 마리아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는 줄리의 피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상황이던 것입니다. "너무 나이 든 것 아니냐" 는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줄리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영화 전반을 휘어잡았고 영화의 이미지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그야말로 줄리 앤드류스의 영화였던 <사운드 오브 뮤직>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며 전 세계적인 흥행 역사를 다시 썼고 뮤지컬 영화 중 가히 최고봉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위세를 떨쳤습니다. 영화 개봉과 함께 브로드웨이 극 <사운드 오브 뮤직>은 헐리우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으로 이미지가 바뀌었을 정도였으니 말이죠.
90년대 초반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수익을 많이 올리는 영화' 50위권 안에 꾸준히 그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대 히트를 친 <사운드 오브 뮤직>은 아카데미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고 5개상을 수상하는 위엄을 떨쳤으나 정작 주인공인 줄리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지 못합니다. 이유는 1년 전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재밌는 사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 실제 주인공 마리아 본 트랩이 카메오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극 중 줄리 앤드류스가 수녀원에서 나와 본 트랩 대령의 집으로 향할 때 탔던 버스를 기억하시는지. 버스 안에서 줄리의 뒤편, 2명의 여성이 앉아 있는데 왼쪽의 여성이 바로 마리아 본 트랩 여사라고 합니다.
< 침체, 그리고 화려한 재기 >
<사운드 오브 뮤직> 의 엄청난 대 성공 이후, 줄리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뤄야 했습니다. 마리아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강했던 탓일까요. 줄리는 마리아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기 위해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역할에도 도전해 봤지만 크게 실패했고 배우로서 길고 긴 슬럼프를 맞게 됩니다.
2천 500만 달러를 투자했던 <모던 밀리>가 고작 8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대실패를 하는 등 줄리 앤드류스의 연기 인생에 있어 가장 암울한 슬럼프가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줄리는 포기하지 않았죠. 남다른 재능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이든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오히려 마리아 의 밝고 상큼한 이미지를 역 이용하며 착한 캐릭터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성공작이 바로 82년 <빅터/빅토리아>였습니다. 남장 여자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빅터/빅토리아>는 줄리에게 화려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줬고 다시 한번 오스카의 레드 카펫을 밟는 영광까지 돌려줍니다.
이 후,<사랑도박>,<듀 엣 포 원> 등의 영화에 모습을 드러내며 활발한 활동을 지속한 줄리 앤드류스는 95년, 60세의 나이로 본 고장인 브로드웨이로 돌아옵니다. 뮤지컬 <빅터/빅토리아>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엄청난 가창력과 무대 매너를 뽐내는 줄리에게 관객들은 열화와 같은 찬사를 보냈고 평단의 극찬도 연일 높아져만 갑니다.
슬럼프 뒤에 찾아온, 그야말로 화려한 재기가 아닌가요. 이제는 마리아의 상큼함이 사라진 60세에 그녀는 실력 하나만으로 전 세계를 감동시키기에 이른 것입니다. 고통 뒤에 연륜이 뒤따른다는 옛말이 절로 실감이 납니다.
< 잃어버린 노래, 또 다른 인생 >
이렇듯 뮤지컬 배우로서 활발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던 줄리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바로 '성대 종양' 이었죠. 뮤지컬 <빅터/빅토리아>의 강행군 속에서 결국 목이 견뎌내지 못하고 일이 터진 것입니다. 줄리는 급하게 병원을 찾아 수술을 받았지만 성대 수술 후 그녀는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 <프린세스 다이어리>에서
한 평생을 노래와 함께 했던 줄리에게는 대단한 절망이었을 겁니다. 노래의 잃어버림은 곧 줄리의 종말과도 같은 뜻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줄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노래를 할 수 있는 선물을 잃어버린 것은 대단한 절망이지만,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수 많은 사람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라며 자신을 위로했고 곧 또 다른 인생을 설계합니다.
잠시 여기에서 한 가지 감동스러운 일화를 소개합니다. 노래를 잃어버렸지만 항상 뮤지컬을 즐겨 보던 줄리 앤드류스가 후배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한 공연장을 찾았다고 합니다. 수 천명의 관객들이 밀집한 극장에 줄리가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관객들이 하나 둘씩 웅성대며 그녀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 줄리를 알아 본 관객들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잃어버린 줄리를 위해 큰 목소리로 합창을 했습니다. 바로 그 노래가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에델 바이스'였습니다. 줄리 앤드류스는 그러한 관객들의 성원에 감동받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줄리가 우는 모습을 보자 관객들 역시 크게 흐느꼈다고 합니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줄리는 아동 출판 쪽에 손을 대 큰 성공을 했고 봉사활동과 에이즈 퇴치 운동을 통해서 영국 작위를 수여받는 영광을 안게 됩니다. 그 뿐인가요. 2004년 그녀는 <슈렉 2>에서 왕비 목소리를 맡았고 <프린세스 다이어리2>에서도 역시 왕비 역을 맡아 <Your crowning glory>라는 노래까지 직접 부릅니다.
* <메리 포핀스>에서
비록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보여줬던 그 폭발적인 가창력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낼 수 있는 1옥타브의 영역 아래서 줄리는 마음껏 노래 불렀고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탄스러운 일인가요.
< 배우로 살아가는 길 >
이렇듯이 줄리 앤드류스는 대단한 배우죠. 그녀는 브로드웨이와 헐리우드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진 배우였고 영국과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배우 중 한명이기도 합니다. 7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발한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일입니다.
* 현재의 줄리(79세의 나이인데도 정정합니다다)
젊은 시절 그녀는 착하고 귀여웠으며 지금의 그녀는 우아하고 품위있게 보입니다. 항상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변함없는 열정과 노력으로 끊임없는 도전을 하고 있는 줄리 앤드류스, 그녀에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존경과 갈채를 보내고 있습니다.
* 현재의 줄리
두 번 결혼한 그녀는 슬하에 3자녀를 두고 있는데 두 번째 결혼한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밀애,티파니에서 아침을 등 연출)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 영화 음악인, 헨리 맨시니 이야기 ]
지휘자로서,작곡가로서,편곡자로 헨리 맨시니(1924-1994)는 수많은 영화 음악가들 중 가장 성공한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영화와 TV 음악의 작곡가로서 그가 지내온 40여 년간 그는 4번의 오스카와 12번의 그래미를 수상하였고, 대표작중 하나인 1961년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들을 수 있었던 "Moon River"는 최근 50여년간 가장 아름다운 영화음악으로 기억되고 있으며,<Dear Heart>에서 들을 수 있었던 "Days of wine and roses"는 1000번 이상 레코딩되기도 하였습니다.
1924년 오하이오 주의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난 헨리 맨시니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악기를 배웠으며, 10대가 되었을 때 당시 가장 유명한 재즈 빅 밴드의 리더였던 베니 굿맨의 밑에서 편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1942년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하여 음악 공부를 하던 중 세계 제 2차대전의 발발과 함께 군 복무를 해야 했고,이래서 잠시 그는 음악을 중지해야만 했습니다.
이후 글랜 밀러 오케스트라에서 해고되어 쉬던 중, 1940년대 후반 Mel-Tones에 레코딩 세션으로 참여함으로서 헨리 맨시니는 처음으로 영화 음악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는 그가 처음 음악 활동을 시작한 것이 빅 밴드인 탓인지, 언제나 빅 밴드 재즈 스타일에 뿌리를 둔 영화 음악들을 작곡하였습니다.
1960년대 들어와 헨리 맨시니는 1961년 "Moon river", 1962년 "Days of wine and roses"로 두 해 연속 오스카를 수상하며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작곡가로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대중적인 인기와 실력을 동시에 인정받은 몇 안 되는 영화 음악 작곡가로 인정받은 것이죠. 그리고 그 이후, 그가 영화와 영화음악계에 미친 영향력은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헨리 맨시니만의 독창적이고 드라마틱한 영화 음악은 헐리우드와 유럽의 영화계를 넘나들며 이루어졌고, 그가 사망한 1994년 이후에도 그에 대한 추모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종종 지나치게 대중성을 추구한 작곡가라는 평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의 영화음악들은 여전히 영화 관객들의 애청 목록에 들어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영화 음악의 거장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작품으로는 <티파니에서 아침을>,<피터 건>,<핑크 팬더>,<프렌지>,<톰과 제리>,<투 포 더 로드>,<술과 장미의 나날>,<샤레이드>,<글렌 밀러 스토리>,<밀애>,<하타리>,<해바라기>,<빅터 빅토리아>,<스위치> 등이 있습니다.
* 영화의 주요 동영상 모음
첫댓글 학창시절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오드리 햅번과 쥴리 앤드류스는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죠.
사운드 오브 뮤직은 수없이 보고 또 보았습니다. 쥴리 앤드류스및 폰트랩대령역을 한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재작년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에서 기가 막히게 멋지 연기를 하여 또 한 번 옛날 젊은 폰트랩대령및 영화를 생각나게 하더군요. 얼마전 실제 가족중 마지막 사람인 쥬리야가 타계하였다고 해서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드리 햅번이나 쥬리 앤드류스가 늙어서도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는 것을 보니, 존경받을 만인의 연인입니다.
좋은 음악을 들려 주셔서 감사....
"재미있는 영화라는 건 이런거다"하고 말해주는 영화입니다. 근데 이 영화는 시중에 DVD로도
안나와있고,올레 채널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어 안타깝네요. 그런 영화들이 종종 있어요. 특히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의 <Year of the Gun>,<대열차작전,The Train>과 <가르샤의 목을 가져
와라>,<침략전선> 등등... 혹시 이들을 소장하고 있는 분이 계시면 연락을...반드시 소정의 사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