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방도시 심천의 전경-
꿈을 꾸어라! 이루어 질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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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의 저자 나다니엘 호손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great stone face)내용을 보면
마을 뒷산에 인간의 형상을 닮은 바위를 바라보며 주인공 어니스트(Emest)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 부터
큰 바위 얼굴의 전설을 듣고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설이 실현되기를
바라고 희망하며 기다리고 기다리는데 세월이 흘러 먼-훗날
자기 자신이 큰 바위 얼굴로 변했다는 줄거리다
이렇게 오랜 세월----
살다 보니
꿈을 꾸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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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만큼 보이는 여러개의 바위산
뱀과 짐승들 마니 우글거리는 속을
나는 또 걸어야 한다
지나온 길보다 더 험할지도 모른다
아-주 머-길
맨 -마지막 성공봉을 오를 때 까지
죽어도 죽어도 쉬지 말아야 한다-
꼭 한번 저 높은 태양처럼 춤추어 보자고^^
어린 시절 내 마음의 맹세(盟誓)의 글월이다.
@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배움의 길만이---!
1950년 6.25동란 둥이 우리들은 전쟁의 폐허 속에
태생적으로 가난을 숙명처럼 타고 태여 났다
더구나 첩첩 산골 산간벽지 시골 가난한 농부들의 후애들은
무명 배 찢어진 책 보자기(책 가방)에
대를이어 물려 받은 낡고 찢어진 헌 교과서도 감사한 마음으로
10리길이 멀다 않고 걸어서 걸어서 가는 등-하교 배움의 길…
점심은 건너 뛰는 학생이 태반이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미국의 구호물자-식량인 옥수수 가루 누런 죽을
점심때 얻어 먹는 것은 큰 행운 이였다.
그 시절엔
이토록 지독히도 가난을 벗어나는 길은 오직 배움 뿐이라고 ,
배워야 산다고… 배워야 운명을 개척 한다고
…소리 높여 외쳐 보지만--
그 시절은 중학교 진학을 위해서는 반드시 중학입시 시험에 통과 해야하고
학비를 낼 수 있는 가정이여야 하기에 60%이상이 상급학교 진학을 할 수 가 없었다
아무리 부자 집안이라도 실력이 없으면 상급 학교 진학이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이 최고 학벌이 초등 졸업생이 된다는 거다
고등학교 진학 시험이나 대학 진학은 더욱 경쟁이 치열해
극-소수 선택된 운명의 실력자들만이 대학 졸업이 가능했다
단계별로 경쟁에서 탈락한 우리들은 각자 산업전선에 뛰어들지만
일을 하고자 몸부림 처도 일 할 터전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 항공 과학고는 이 당시 최고의 명문 학교인 것이다.
합격만 하면
국가에서 학비를 전액 지원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는 국비 장학생인 것이다.
하여 전국에서 우수한 인제들이 치열한 경쟁으로 입학한 학교였다.
대한민국 미래의 공군 기술 인력을 양성할수 있는 초석이 되였던 거다.
허지만 졸업 후 1970년대의 부사관 인식은 너무나 저 평가된 시절이었다
육군은 학력 제한이 없고 , 해군은 중졸 이상이고
공군만이 고졸 이상이여야 응시가 가능했지만
일반적으로 불리는 것은 우리들 계급을 날지 못한 갈매기 , 깡통이니 말뚝이라고 비하해 부르고
장교와는 하늘과 땅처럼 차별 대접을 받았다
그 것은 당시 일반적으로 실력이 없는 사람들..
사회에서 사고뭉치들의 도피처가 군의 부사관이라고 인식했고
그들 자신이 그런 대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행동을 했던
우리들의 선임자 들 이였으닌까?
우리 학교 졸업생이 각 부대에 배치되면서 신선한 충격!
우수 기술 정애 공군이 되었던 거다,
우린 자신의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분노하며 더 멀리
저 높은 곳을 향해서 무한이 노력하고 원대한 꿈을 꾸었던 거다.
@ 주 특기를 바꾸기 위해 미국 유학 길을.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 미 공군에서 직접 실시한 해외 유학 선발 시험-..
전투 비행단의 정비사 생활들은 정말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뿐 것이였다.
1970년대의 유신통치하에 군은 매일 비상훈련에 비상대기
잊을만하면 무장공비 남파에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실미도 사건 등등^^^
우리들은 10여년 이상 오직 국가를 위해
비상훈련에 눈-코 뜰 사이 없이 생활하며
부사관이라는 무시와 멸시의 시선속에 끝이 보이지 않은
절망적인 생활만이 계속되였지만..
학업을 계속 하여 내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전투 비행장 생활을 벗어나 후방생활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 길은
주 특기를 전환하는 방법 뿐이며
그 길은 미-독립기념 유학시험에 응시해 합격하는 길이였다.
꿈을 꾸며 준비하고 운명을 개척한 유학의 길은 졸업 후 10년만의 결실이였다.
-남산에서 방공교육을 받고 국내 유일의 김포 국제공항에서 미국을 가는데
출국 수속을 끝내고 털털거리는 이동버스를 타고
김포 활주로 끝에 대기한 대한항공에 몸을 싣고 일본을 경유해서
다시 하와이로 가서 재-급유하고 잠시 휴식 후 미 본토 L.A 공항에 도착, ,
미국 국내선을 갈아타고 미-본토 중부 해군성이 위치한 인디애나 주에 도착한다.
미-대륙은 거대해 땅 덩어리로 지역마다 시간 차(差)가 나서 타임죤을 만들어
한 나라가 6-등분 된 시간을 두어
같은 나라를 이동시에도 시간을 조절 해 사용해야 하는
놀라운 신세계로
인간의 삶의 풍요로움과 자유분망(自由奔忙)에 감격하고
사람답게 대접받고 여유롭게 여가를 즐기는데 정말로 부럽고 행복해 보였다.
그 시절의 대한민국 국력은 너무나 초라해
미국 어느 곳에 가도 한국 제품은 찾아 볼 수가 없고
온통 일본 제품들 뿐이고
가는 곳 마다 일본이나 중국사람이냐고 묻는 말에 자존심이 상하고_--
· @졸업 후 11년만에 드디여 꿈의 대학생으로
· 최 첨단 유도무기 교육을 이수 후 드디어 후방으로 근무지가 배치 (配置 )되여
새로운 부서를 창설하고 꿈꾸어 왔던 동아대 영문학과에 당당히 합격
11년 후배들과 같은 학번의 신입생이 되었다.
대학생활의 시작은 마냥 희망에 부풀었고 배움의 목마름에 행복했지만
신설부대의 생활은 정말 힘들고 어려웠다.
야간 대학생 수강 생활이란??
당시는
부대 간부들의 노골적으로 수업 방해로 정상적인 강의를 받을 수가 없었고
시험기간에도 비상대기 근무로 출석을 못하게 하여 몰래 도망가서 시험을 치루고
뒷날 담배 잿떨이로 이마를 맞아 검붉은 피를 흘리며 눈물을 삼키면서 노력했기에
졸업의 영광 과 기쁨은 더욱 값있었다 .
졸업과 동시 서울 무역회사에 특채로 입사
군에서의 봉급 2배를 받았으며
그 당시 사장이나 부대 지휘관만이 운행할 수 있는
자가용 승용차를 회사에서 무상으로 지원해 주어
전역 3개월 만에
당당히 자가용을 타고 부대 귀빈자격으로 방문 할 때의 기쁨이란???
그것이 곧 노력의 댓가요 꿈의 실현이랄까???
--부대 남아있는 동기생들의 일성( -聲)은
세상에 이렇게 빨리 신분 개조가 가능한가?
기적 같은 일이란다.
내게 담배-잿떨이를 날리며 괴롭힌 분은 전역 후
월부 책 장사로 전락하여
부대 후배들에게 월부 책 한 권 사달라고 방문하여 부탁하고 다녔지만…
@이제 세계의 중심 중국으로 진출
IMF로 온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수많은 공장이 부도로 무너질 때
부도난 전자공장의 정밀 측정 중고 장비들을 사모아
한국인 최초로 이곳 중국 광동성 심천에
홍콩을 경유해 수출을 성공 하여 오늘에 이른다.
수출입이 불가능 그 시절 이곳 광활한 중국 대륙에 맨-주먹 맨-발로 시작한 것이다.
중국 대륙만이 나의 노후와 우리 후손들의 미래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꿈의 신천지라 생각 하고 말이다.
중국 대륙에 정착하면서 보다 성공적 사업을 위해 중국 Family를 형성
중국의 며느리, 손주를 얻고
두 아들들이 훌륭히 중국 땅에 뿌리 내려
사업을 성공하는 터전을 만들어 주니
이것이 보람이고
꿈을 꾸어온 값진 삶이지 않을까?
오늘 이렇게 백발이 성성한 초로(初老)의 나이에
중국의 생활 풍습들을 우리 자랑스런 후배 가족들과 나눌 수 있어 더욱 더 행복한 것이다…..
---홍콩의 발전을 보면서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