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딸 / 박미숙
퇴근 시간, 전화벨이 울린다. 보나 마나 작은딸이다. “우리, 아무리 바빠도 생존 신고는 하고 삽시다.”라고 말하고 나서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오늘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온다. 학교생활이 버거운 언니와 명퇴를 고민하던 엄마가 걱정되어서다.
“목소리가 왜 그래? 감기가 심하게 걸렸네요. 그렇게 해서 수업은 어떻게 했어요? 빨리 병원에 가야지. 아이고, 가까이 살면 죽이라도 사다 드릴 텐데.” 잔뜩 걱정하더니, 다시 "쌍화차 보낼까요?"라고 카톡이 온다. 맞다. 겨울에 보내준 쌍화차가 있었지. 따끈하게 한 잔 마시니 목이 조금 괜찮아진다. 작은딸은 나를 끔찍이 챙긴다. 머리카락이 자꾸 빠져 걱정이라고 했더니 탈모 방지 샴푸를, 벌레 물려 가렵다고 하면 바로 시원한 페퍼민트(peppermint)가 든 물비누를 보내온다. 자기가 입어보고 예쁜 옷이 있으면, 나와 큰딸 것까지 사서 선물로 준다. 초보일 때는 아이들 생활 지도로 도움을 청하곤 했는데, 이젠 알아서 척척 잘한다. 교직 7년 차인 올해는 연구부장을 맡아 교생 실습 나온 교대생들 연수도 시켰단다. 전화했는데, 내가 친구들 만나 즐겁게 지내고 있으면 자기가 더 좋아한다. “맨날 집에서 일만 하지 말고 엄마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본인을 위해 돈도 써라.”라고 수시로 얘기한다. 온갖 것을 다 의논하는 작은딸은 나에게 친구나 동료 같다.
큰딸에게는 언니 같은 동생이다. 늦게 대학에 간 큰딸이 과제하느라 힘들어 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도와주었다. 임용 고시 공부하는 언니에게 자주 맛있는 것을 보내고 많이 지쳐 있으면 바로 광주로 내려가서 다독였다. 2차 수업 시연과 면접 준비도 사위와 둘이 지도를 다 해주어 난 신경쓰지 않았다. 시험 준비하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힘든데 작은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구나.’ 싶어 대견했다. 언니가 초임으로 아이들과 씨름할 때 몇 시간이든 얘기를 들어주고 선배 교사로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차근차근 알려줬다. 그래도 많이 버거워하니, 휴직하고 자기 집에서 같이 살면서 힘을 좀 더 키워보자고 했다. 이번 3월, 이사하는 날에는 하루 전부터 가서 짐을 옮겨주었다. 큰딸은 이런 동생을 두어 얼마나 든든하게 생각하는지, 자기가 가진 것을 다 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다고 한다.
아빠에겐 아들 같은 존재다. 열심히 일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낙담하고 있으니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때론 술친구도 되어 준다. 남편은 황토로 된 노지에서 장어를 키운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청정 지역에서 항생제를 쓰지 않고 천연 미생물로 면역력을 길러 자연산에 가깝도록 키웠으나, 그 가치를 알아주는 판매업자가 없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크기와 가격만 중요하다. 귀한 장어를 헐값에 넘길 수는 없어서 지난여름 스마트 스토어(smart store)를 시작했다. 물품 판매 상세 내용, 광고용 전단지, 박스에 붙일 스티커 등을 직접 작은딸이 다 만들었다. 양념의 구성품과 포장을 어떻게 할지, 다른 판매업체 것을 주문해서 받아 보고 미비한 점을 보완하여 우리 것을 생각해 냈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노지에서 마음껏 활동하며 자랐기에 쫄깃하다, 비린 맛이 전혀 없어 장어를 싫어하던 사람도 잘 먹을 수 있다’라는 등 반응이 매우 좋았다. 남편은 자신의 노력이 인정받은 것 같다며 뿌듯해 했다. 하지만 챙겨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여름방학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온통 이 일에 매달렸다. “이럴 때 현아가 택배 주소록 정리라도 좀 해주면 좋을 텐데.”라고 하니 “언니는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으로 고맙게 생각합시다.”라는 말에 오히려 내가 부끄러워진다. 어쩜 저렇게 속이 깊은지! 이번 장어 출하를 앞두고 어떻게 더 많이 팔 것인가를 작은딸이 먼저 고민하고 있다. 올 여름방학을 또 친정에 반납할 것 같다. 사위와 알콩달콩 보내야 할 시간을. 딸이 고마우면서도 집일 신경 쓰느라 제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것은 아닌지 미안해진다.
어릴 때, 작은딸은 항상 뒷전이었다. 언니가 아파서 더 많이 챙길 수밖에 없으니까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고집이 세며 남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고 말을 내뱉아서 혼낸 적이 많았다. 그것이 ‘나도 좀 바라봐 달라’는 표현이었던 것을 진작 알아차리지 못한 미련한 엄마였다. 대학생이 되어 타지에서 지내며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탄 것도 어릴 때의 결핍 때문인 것 같아 후회스러웠다. 그런데 결혼하여 다정한 신랑 만나고 시부모님 사랑 듬뿍 받으면서 마음이 안정되니 이렇게 가족의 구심점이 되었다. 큰딸 키우면서 애쓴 것에 비하면 그저 큰 것 같고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만 하다.
든든한 우리 딸, 모두를 챙기느라 참으로 욕본다. 네 어깨가 더 무거워지지 않도록 엄마는 잘 지낼게. 스스로를 돌보면서.
첫댓글 세상엔 이런 딸도 있군요.
제가 다 든든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주 수업 시간에 줌으로 본 선생님 딸도 우리딸 나이 쯤 되면 친구 같은 딸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딸을 키우셨을까요?
대견하고 눈물 납니다.
가족이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항상 따뜻하게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송향라선생님!
밥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겠어요. 딸 말처럼 자신 챙기며 살면 되겠네요.
네, 선생님!
요즘 저 자신 챙기는 것을 1번으로 하고 있답니다.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는 작은딸이 하군요. 엄마를 닮았나 봅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사실 저도 친정 형제들을 두루두루 챙기는 편입니다.
따님이 효녀시네요. 큰힘이 될 것 같아요.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도 든든한 아드님이 있으시지요?
정말 욕보는 작은 따님이네요. 얼마나 든든 하시겠어요. 저도 그런 딸이 있기에 흐뭇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다음엔 선생님 따님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속 깊은 따님이네요. 다 부모님 보고 배운 거겠죠?
고맙습니다. 선생님
대단한 따님이네요. 나이도 많지 않은데 어찌 그리 속이 깊을까요? 잘 키우셨습니다. 자식처럼 부모를 기쁘게 하는 이가 있을까요?
고맙습니다. 딸들이 다 크니 친구처럼 지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어느 새 딸들이 저를 챙기고 있네요.
새삼 딸 엄마 선생님이 부럽습니다. 남의 딸이지만 대견합니다. 따님도 명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고 자랐을 터이니 그 아니 기쁨일까요.
고맙습니다. 교장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