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 / 김수영
音樂을 들으면 茶밭의 앞뒤 시간이
가시처럼 생각된다
나비날개처럼 된 茶잎은 아침이면
날개를 펴고 저녁이면 體操라도 하듯이
일제히 쉰다 쉬는 데에도 規律이 있고
彈力이 있다 九月中旬 茶나무는 거의
내 키만큼 자라나고 노란 꽃도 이제는
보잘것없이 되었는데도 밭주인은
아직도 나타나 잘라가지 않는다
두 뙈기의 茶밭 옆에는 역시 두 뙈기의
채소밭이 있다 김장무나 배추를 심었을
因習的인 분가루를 칠한 밭 위에
나는 걸핏하면 개똥을 갖다 파묻는다
밭주인이 보면 질색을 할 노릇이지만
이 밭주인은 茶밭 주인의 小作人이다
그러나 우리집 여편네는 이것을 모두
자기 밭이라고 한다 멀쩡한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런 거짓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런 거짓말을 해도 별로
성과는 없었다 성과가 없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여편네의
거짓말에 반대하지 않는다
音樂을 들으면 茶밭의 앞뒤 시간이
가시처럼 생각된다 그리고 그 가시가
점점 더 똑똑해진다 동산에 걸린
새달에 비친 나무가지처럼
世界를 배경으로 한 나의 思想처럼
죄어든 人生의 輪廓과 秘密처럼……
曲은 舞踊曲―모든 音樂은 舞踊曲이다
오오 廢墟의 질서여 수치의 凱歌여
茶나무냄새여 어둠이여 少女여
休息의 休息이여
분명해진 그 가시의 意味여
모든 曲은 눈물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나의 얼굴의 사마귀를 떼주었다
입 밑의 사마귀와 눈 밑의 사마귀……
그런 사마귀가 나의 아들놈의 눈 아래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도 꼭 빼주어야
하겠다고 결심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내 눈 아래에 다시 생긴 사마귀는
구태어 빼지 안을 작정이었다
「눈물은 나의 장사이니까」―오오 눈물의
눈물이여 音樂의 音樂이여
달아난 音樂이여 반달이여
내 눈 아래에 다시 생긴 사마귀는
구태여 빼지 않을 작정이다
<1963.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