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분해자
팔월 둘째 수요일이다. 한밤중 잠을 깨 김성호의 ‘생명을 보는 마음’이라는 책을 읽었다. 서울 출생인 저자는 생물학을 전공해 호남에서 교수를 하다가 퇴직한 이였다. 그는 초중고 시절 여름과 겨울이면 삽교천이 가까운 외가에서 방학 내내 보냈던 유년기 체험이 학문 연구의 소중한 자산이었다. 연구실 바깥 현장에서 동식물을 대하는 생물학자 소양은 어릴 적부터 형성되어 있었다.
나는 날이 밝아오면 으레 자연 생태학교 현장으로 길을 나선다. 생명체는 생산자와 소비자와 분해자로 나눈다. 생산자는 녹색식물과 플랑크톤이고 소비자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다. 분해자는 눈으로 식별이 어려워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세균 외에 진균이 있으며 작지만 소중한 생명체인 원생동물도 있다. 나는 여름이면 진균의 한 종류에 해당하는 숲속의 영지버섯을 만나러 다닌다.
버섯 가운데도 섭취 시 치명적인 독성이 있어 함부로 섭취에서는 안 되는 독버섯이 있다. 성철 스님이 둔 속가의 딸이 사범학교를 나온 이후 이미 스님이 된 아버지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스님의 길로 가려 하자, 조부가 만류하지 못하고 산으로 가면 버섯을 조심하라고 하면서 송이버섯 말고는 절대로 먹지 말라고 당부하더라고 했다. 이 얘기는 불필 스님 회고록에 나온 내용이다.
우리나라에는 1100여 종의 버섯이 자생하고 도감에는 400여 종이 올라 있다. 내가 산으로 들어 채집하는 버섯은 아주 한정되어 있다. 버섯은 주로 여름 장마철 이후 쑥쑥 자라 나온다. 우리 지역은 송이버섯이나 능이버섯은 자생하는 곳이 아니라 아예 제외된다. 식용으로는 느타리버섯이나 목이버섯은 적은 양이긴 해도 채집해 봤다. 드물긴 했으나 자연산 표고버섯도 만나기는 했다.
나는 여름 숲속에서 주로 영지버섯을 채집한다. 영지버섯은 참나무가 삭은 그루터기에 붙는 약용버섯으로 근래는 참나무 토막에 종균을 주입 배양한 재배도 가능해졌다. 여러해살이인 다른 약용버섯과 달리 영지는 여름 한 철에만 자라 가을 이후 절로 사그라지거나 벌레가 파먹어 쪼그라진다. 드물게 이듬해 봄까지 자연 상태 영지버섯을 만날 수도 있으나 약성이 반감된 것이다.
나는 현직이었을 때도 봄날 주말이면 산자락을 누비면서 산나물을 뜯어 우리 집 식탁에 올리고 지기들과 봄내음을 나눈다. 이러다 여름이면 숲으로 들어 영지버섯을 찾아내 베란다에 말려 후일 누군가 필요한 이에게 보낸다. 활엽수림 가운데서도 참나무 숲으로 가야 영지버섯을 만나는데 아무에게나 쉽게 띄지 않는다. 나는 근교 산자락 식생에 훤해 영지버섯을 따기가 어렵지 않다.
올여름 영지버섯을 찾으러 숲속으로 들었다가 몇 차례 깜짝 놀라기도 했다. 불모산에서 새끼를 거느린 멧돼지를 만나 가슴이 철렁했다. 바위 계곡을 건너다 물가에 똬리를 튼 뱀도 만났는데 다행히 내 눈에 먼저 띄어 둘러 갔더니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녀석은 독사 가운데고 치명적인 독을 가진 칠점사였다. 옻 알레르기가 심한 나는 개옻나무만 봐도 멧돼지나 뱀만큼 소스라쳤다.
수요일 이른 아침 근교 산행을 위해 길을 나서 101번 시내버스로 대방성당 근처로 나갔다. 올여름 영지버섯 채집을 위해 몇 차례 오른 용제봉 기슭을 향해 깊숙한 등산로로 들어섰다. 대암산이 용제봉에서 불모산으로 건너가는 숲은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성주동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즐겨 가는 휴식처다. 산자락 품이 넓어 계곡에는 맑은 물이 넉넉하게 흘러 더위를 식히기도 좋다.
남들이 가는 등산로에서 벗어나 개척 산행을 감행 나 혼자 호젓한 숲으로 들었다. 소나무와 활엽수림이 섞여 자라는 혼효림에서 삭은 참나무 그루터기만 집중해 살폈다. 한 시간 남짓 숲을 누빈 성과는 있어 자색 갓을 예쁘게 펼쳐 자란 영지버섯을 몇 개 찾아냈다. 올여름 영지버섯 채집 산행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발품을 판 만큼 영지버섯을 만나게 해준 산신령님이 고마웠다. 22.08.10
첫댓글 산행후 계곡이 몸담그면 더할나위없이 시원하시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