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리부인,코페르니쿠스,쇼팽,요한바오로2세 등을 배출한 나라로 더 알려진
폴란드는 타민족들에게 끊임없는 침입과 박해를 받았으면서도 단일민족에
단일언어를 사용할 만큼 민족성이 아주 강해 오늘날까지 꿋꿋하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온 나라다.
국토 크기는 한반도 1.3배로 동유럽 국가 중 최대이며, 인구는 4,000만명을 약간
밑돌고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의 절반 수준이다.
폴란드는 10세기 후반에 성립돼 15~16세기 때 프랑스나 독일에 버금갈 만큼
전성기를 맞기도 했으나, 1795년에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에게 분할된 후
1918년 독립국가로 재기할 때까지 지도상에서 폴란드(Poska)라는 이름이
사라지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
또한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다시 독일과 러시아에게 동서로 분할
점령되는 등 끝없는 타민족의 침입으로 인해 폴란드인들은 저마다 마음 속에
어두운 상처를 갖고 살아왔다.
2차대전 당시 사망자는 600만명으로서 쏘련의 2,000만명에 이어 두번째로
많으며 특히 바르샤바는 80%가 파괴되고 2/3의 인구가 죽었다.
구 소련의 붕괴로 인해 1989년 2월 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여
경제발전과 함께 폴란드 공화국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가 바르샤바에 간 주목적은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타기 위한 것이었고,
또한 바르샤바는 다른 곳에 비하여 볼거리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바르샤바 관광은 간단히 마쳤다.
아우슈비츠 근교 점심식사후 식당 앞 경치
바르샤바로 오는 도중 산은 거의 못본 것 같다.
중간 휴게소 본 대우 마티즈
폴란드인들은 대우사태로 한국에 대하여 많은 실망과 좌절감을 느꼈다 한다.
바르샤바시 한가운데로 비스와강(비스툴라강)이 흐르고 있다.
버스 차창으로 본 바르샤바 시내
문화과학 궁전
바르샤바 중심부에 있는 문화과학 궁전은 바르샤바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1,952년도에 스탈린이 폴란드를 위해서 지어준 건물인데,
정작 바르샤바시민들은 이 건물이 사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이기
때문에 가장 혐오하는 건물이라 한다.
높이 234m에 층수는 37층으로서 과학아카데미를 비롯해 과학박물관·극장·
텔레비전 방송국·외국문화협회·영화관·콘서트홀·극장·전망대, 그리고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회의실 등이 있다.
30층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바르샤바 전 시가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인접 건물들
구시가지 광장(일명 잠코비광장)
2차대전 당시 구시가지도 거의 다 파괴되었는데 온국민의 피땀어린
노력으로1,987년에 이르러 완전 복구되었다. 이 광장은 구시가지 입구에
위치해 있는데 지금은 바르샤바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로 이용된다.
1596년 크라쿠프에서 이 곳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긴 지그문트 3세의 동상
광장내에 위치한 옛 왕궁(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용)
바르샤바의 상징 인어상
옛날 바르(WAR)와 샤바(SAWA)라고 하는 어부 부부가 비스와강에서 인어를
낚았다가 풀어준 덕에 잘 살았다는 데서 WARSAWA라는 이름이 생겼다 한다.
바르비칸 성
폴란드 바르바샤 구시가지의 중세시대 성벽.
구시가지 주택가
바르샤바 봉기의 상징물
1944년 8월에 폴란드의 대독일 무방봉기인 바르샤바봉기로 시민 24만명이
사망하고 63만명이 아우슈비츠등 강제수용소에서 학살 당하였다 한다.
여행 마지막 밤 호텔에서 본 바르샤바 야경
공항으로 출발직전 호텔앞에 주차되어 있는 대우 에스페로 택시
영화 피아니스트
1939년 유명한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은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던 중 폭격을 당한다.
얼마 뒤 유대인 강제 거주지역인 게토에서 생활하던 스필만과 가족들은
죽음의 수용소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게 되는데, 유명한 피아니스트를 알아본
군인들이 스필만을 기차에 타지 않게 함으로써 혼자만 살아남는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치의 눈을 피해 숨어 다니며 은신처에서 숨막히는
생활을 하던 스필만은 어느 날 독일군 장교에게 발각된다.
정체를 묻는 장교에게 스필만은 자신이 피아니스트였다고 대답한다.
장교는 그에게 연주를 명령하고, 스필만은 혼신을 기울여 어쩌면 지상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연주를 시작한다. 몇 년 뒤 나치가 패전하고 상황이 바뀌자,
스필만은 그 장교를 찾아나서지만 다시 만나지 못한다.
《피아니스트》는 기존의 홀로코스트 영화와는 달리 예술과 인간의 진실에 더욱
치중한다. 즉, 유대인과 나치는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항이 아니라는 사실,
인간은 혈통과 이데올로기로 구분짓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존재라는 사실을
영상으로 표현한다. 또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인 스필만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폴란드 출신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자전적 체험이 반영된 영화이기도 하다.
폴란스키는 어린 시절 유대인 어머니가 강제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는
불행을 겪었다.
2002년 제55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고, 2003년 1월에는
전미영화비평가협회(NSFC)가 선정하는 최우수영화상·감독상·남우주연상
(애드리언 브로디)·각본상(로널드 하우디) 등을 수상하였다.
첫댓글 벽우 덕분에 여행을 한 사람들 보다 더 잘 구경하였고, 새로운것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 또 감사합니다.
덕택에 비행기 표도없이 동승해서 많이 보고 많은공부했읍니다. 긑이라니 허전 하네요. 우보님처럼 감사 또 감사합니다.
그 동안 사진에 설명을 곁들여 올려주신 여행기 잘 봤어요.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유럽 여행 가게 되면 많은 도움이 될거라 믿습니다. 모스크바 에도 가신것 같은데 이것으로 끝 이라니 아쉽네요.동안 수고 하셨습니다.고맙습니다.
벽우님 고생 하셨어요. 구경 잘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