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이사야서 1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새번역) 이는 제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의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근거한 명령입니다.
이사야는 당시 가장 취약한 세 집단을 꼽았습니다. 억압받는 자들, 부모 없는 고아, 남편을 잃은 과부입니다. 그들의 고통은 외면받지 말고 마주해야 하며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압받는 자는 누구일까요? 불의에 짓눌리고 부정 행위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입니다. 그들을 옹호하고 지켜주는 것은 위로 그 이상입니다. 앞장서서 억압의 근원에 이의를 제기하고 악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것을 뜻합니다.
부모 없는 고아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은 부모를 자녀의 보호자이자 대변자로 설계하셨습니다. 그러나 상한 세상에는 많은 아이들이 지켜줄 보호자 없이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그들의 편에 서는 것은 그들의 필요를 알아주는 것 그 이상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나 자신의 것처럼 살피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주는 것을 뜻합니다.
남편을 잃은 과부는 누구일까요? 이사야 시대에 남편 없는 여인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생계 수단이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배우자를 잃은 많은 이들이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그들의 사정을 변호하는 것은 단순한 동정이 아닙니다. 무시당하거나 차별받거나 외면받지 않도록 그들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정의롭게 살라는 부르심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중심입니다. 정의는 믿음의 표현이기에 믿음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그분께서 돌보시는 것을 돌보고, 그분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고, 자신을 위해 싸우지 못하는 이들을 대신해 행동을 취하는 것입니다. 이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해야하는 것입니다.
정의를 찾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 곁에 항상 계시고, 취약한 이들의 편에서 행하시며, 세상에 정의를 가져오기 위해 자기 백성을 통해 늘 역사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