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고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볕을 덮고 누웠고
달력 속에서 뚝 , 뚝 ,
꽃잎 떨어지는 날이면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목고와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 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 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 ,
나는 너에게로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
오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 왔다가
이내 허공 중에 흩어지는 ,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또 울 것이다
(작가소개)고정희시인.1948-1991. 전남 해남 출생.1980대를 대표하는 문학가.1975년 현대시학에 '연가' '부할 그 이후'를 발표 .등단.1991.6.
9일 취재차 지리산 등반중 피아골에서 불의의 실족사고로 아까운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