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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중용(君子中庸)
큰 인물은 양 극단을 피해 중용 곧 중도를 걷는다는 말이다. 즉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은,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말이다.
君 : 임금 군(口/4)
子 : 아들 자(子/0)
中 : 가운데 중(丨/3)
庸 : 떳떳할 용(广/8)
출전 : 중용(中庸)
우리 인간들의 행실을 군자(君子)와 중용(中庸)에 맞추어 행하고 그에 반(反) 하는 짖은 결코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함을 꾸짖고 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울지 않으며 군자의 덕(德)을 갖추고 있으며 행하는 것이다
그에 반하는 것은 소인의 마음을 가지고 아무런 깨우침이 없이 행동함에 군자의 행동에 반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체라고 하면 군자가 될 것이다.
많이 배우고 많은 부(富)를 가졌다고 해서 결코 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여기에 준하는 것은 길을 막고 물어보지 않아도 그의 덕을 골고루 갖춘 자를 일컬어 군자라고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군자는 귀천(貴賤)함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때에 따라 행함에 있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위로는 하늘을 탓하지 아니하고 아래로는 인간들을 탓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성어는 중용(中庸)에서 연유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仲尼曰: 君子中庸, 小人反中庸. 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小人之反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
공자께서 이르기를, '군자는 중심이 떳떳하고, 소인은 중심이 떳떳함에 반한다. 군자가 중심이 떳떳한 것은 군자로서 시기에 알맞게 하고, 소인이 중심이 떳떳함에 반함은 소인으로서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다.'
子曰: 中庸其至矣乎. 民鮮能久矣.
공자께서 이르기를, '중용은 그 지극한 것이니라. 사람들이 오래 지키는 이가 드물다.'
子曰: 舜其大知也與. 舜好問以好察邇言, 隱惡而揚善, 執其兩端, 用其中於民, 其斯以為舜乎.
공자께서 이르기를, '순 임금은 큰 지혜를 지니신 분이시다. 순 임금은 묻기를 좋아하시고, 가까운 말을 살피길 좋아하시고, 악함을 덮으시고 선함을 들어내셔 그 양단을 잡으시어 그 중간을 백성에게 쓰셨으니, 이것이 순 임금의 임금 됨이다.'
子曰: 人皆曰予知, 驅而納諸, 獲陷穽之中, 而莫之知避也. 人皆曰予知, 擇乎中庸而, 不能期月守也.
공자께서 이르기를, 사람들은 다 말하기를 내가 안다고 하나, 그들을 몰아 그물이나 함정 가운데 넣어도 그것을 피할 줄을 모른다. 사람들은 다 말하기를 내가 안다고 하나, 중심을 쓰는 바를 택함에 있어서는, 한달 동안도 지키지 못한다.
子曰: 回之爲人也, 擇乎中庸, 得一善則拳拳服膺, 而不失之矣.
공자께서 이르기를, 회(回)의 사람됨은 중용을 택하여, 한가지 선을 얻으면 가슴에 꼭 받들어 지니고, 그것을 잃지 않았다.
子曰: 天下國家可均也, 爵祿可辭也, 白刃可蹈也, 中庸不可能也.
공자께서 이르기를, 천하 국가도 고르게 할 수 있고, 벼슬과 복록도 사양할 수 있고, 흰 칼날도 밟을 수 있다 하더라도 중용은 잘 해낼 수가 없다.
君子, 和而不流, 中立而不倚. 國有道, 不變塞焉; 國無道, 至死不變, 强哉矯.
군자는 화평하면서도 맘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중심이 서 있어서 기울어지지 아니하나니, 나라에 도가 있으면 옹색해도 뜻이 변치 아니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죽게 되더라도 뜻이 변치 아니 하나니, 강하도다 그 바로 잡음이여.
(제2장 군자와 중용)
不左不右(불좌불우)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無重無輕(무중무경)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게 조절해서
吾守其滿(오수기만) 배에 가득 실려 있는 것들은 지키고
中持其衡(중지기형) 그 가운데서 삿대로 평형을 지켜야
然後不欹不側(연후불기불측) 그런 연후에야 기울어지지 않고
以守吾舟之平(이수오주지평) 내 배의 수평을 유지할 수 있다오.
위 문장은 조선 전기 문사인 양촌(陽村) 권근(權近, 1352~1409)의 '뱃사공 이야기(舟翁說 주옹설)'로, 동문선(東文選) 제98권 '설(說)'에 수록돼 있다. 손님과 배 주인의 대화에서 배 주인이 말한 내용 중 일부이다. 치우침 없는 항상심을 중용(中庸)이라고 한다. 모자람도 지나침도 없어야 하는 상태를 말한다.
군자중용(君子中庸)
사분오열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정책, 계급, 지역, 이념 등으로 갈라져 상대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갈등을 통합해야 할 정치, 언론, 지식인들은 도리어 이를 부채질한다. '내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흑백논리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극단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중도(中道)의 역할은 간절해진다. 관념으로서 중도는 기계적인 중간이나 평균을 떠올리지만, 시대정신으로서의 중도는 공정·중용·형평을 추구해 왔다.
현실사회의 문제를 바르게 짚어주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공정이고 중용이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 곧 중용은 성인현자들이 누차 권면한 진리이다. 공자가 '군자는 중용을 행하고, 소인은 중용을 반대한다(君子中庸 小人反中庸)'고 한 바가 잘 일러주고 있다.
그럼 누구를 위해 중용을 실천하는 것인가. '예기'는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바로 국민이다. '예기'는 '그 양쪽 극단을 잡아, 중용의 도를 택해 백성을 위해 이롭게 쓴다(執其兩端 用其中於民)'고 했던 것이다. 중도에 대한 기대 효과는 크다. 마음과 몸 모두에 편안함을 준다.
'관자(管子)'가 이르기를, '중도를 잘 지켜서 착오가 없다면 오관이 외물에 의해 어질러지지 않을 것이며, 심신이 오관에 의해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니 이를 중도를 얻었다고 하는 것이다(保持中正不生差錯, 五官不被外物所擾亂, 心神不被五官所擾亂, 這就叫做得到中道)'고 한 말은 울림이 크다.
중용장구(中庸章句) 군자중용장(君子中庸章)
군자중용 소인반중용(君子中庸 小人反中庸)
평면이나 선의 '가운데'라는 뜻으로 쓰이는 중(中)은 단지 고정된 지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을 유지하면서 전체를 들어올릴 수 있는 지점이어야 한다. 이것을 만사에 적용하면 상반되는 두 처지를 고려하면서도 어느 한 쪽을 고집하지 않고 조화롭게 포괄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용(庸)은 '바뀌지 않는 평범한 진리'라는 뜻이 되므로 중(中)은 곧 용(庸)과 뜻이 같고, 용(庸)은 중(中)을 설명하는 술어가 된다.
이 말은 중용(中庸)에 나오는 말로서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중용을 몸소 실천하며 소인은 중용을 어긴다"라는 의미이다. 주희(朱熹)는 "중용은 치우치거나 기대지 않고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평상의 이치"라고 정의했다.
예로부터 중용의 의미에 대한 논의는 무수히 있어 왔고 그 말들이 또한 실로 복잡다단해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나 중용의 의미는 사실상 간단하다. 단지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의 시각과 실천방법에 대한 견해의 차로 인해 무수하고 복잡다단한 논의를 낳았던 것이다.
혹자는 庸(용)을 바뀌지 않는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중용은 치우치거나 기대지 않고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바뀌지 않는 이치이다. 사실 중용의 핵심은 中(중)에 있으며 庸(용)은 중의 평상성 또는 항상성을 말한 것이다. 즉 중이 갖는 최고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윤리적 사상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중용의 사상이다.
중국에서 중용사상이 성립된 것은 아주 오래전이며 사실 시대와 학파를 막론하고 그 근저를 흐르는 사상이 중용사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중용의 실천이다. 어떻게 해 덕을 올바르게 실현하는가가 문제이다. 그 첫 마디가 군자는 중용을 몸소 실행하고 소인은 중용을 어긴다고 말했다.
仲尼曰: 君子中庸, 小人反中庸.
중니(공자)가 말하길 "군자는 중용을 실천하고, 소인은 중용을 거꾸로 한다.
中庸者, 不偏不倚·無過不及, 而平常之理, 乃天命所當然, 精微之極致也. 惟君子爲能體之, 小人反是.
중용이란, 치우치지 않고 기울지 않고 지나침과 모자람이 없으면 일상의 도리이고, 이에 하늘이 명한 당연한 것이고, 정밀하고 미세한 것의 극치다. 오직 군자만이 몸소 할 수 있고, 소인은 이것을 반대로 한다.
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小人之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
군자가 중용을 하는 것은, 군자다우면서 때에 맞고; 소인이 중용을 거꾸로 하는 것은, 소인스럽고 거리끼는 것이 없다.
王肅本作 小人之反中庸也, 程子亦以爲然. 今從之.
왕숙본에는 소인지반중용이라고 했는데, 정자도 또한 옳다고 여겼다. 지금 이것을 따르다.
君子之所以爲中庸者, 以其有君子之德, 而又能隨時以處中也.
군자가 중용을 실천하는 까닭은, 그에게 군자의 덕이 있어서 또한 때에 따라 중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小人之所以反中庸者, 以其有小人之心, 而又無所忌憚也.
소인이 중용을 거꾸로 하는 까닭은, 그에게 소인의 마음이 있어서 또 꺼리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蓋中無定體, 隨時而在, 是乃平常之理也.
대체로 중용에는 정해진 모양이 없고, 때에 다라 있으니, 이것이 바로 일상의 도리다.
君子知其在我, 故能戒謹不睹·恐懼不聞, 而無時不中.
군자는 그것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고,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것을 것을 삼가고 들리지 않는 것을 두려워해서 때에 맞지 않음이 없다.
小人不知有此, 則肆欲妄行, 而無所忌憚矣.
소인은 이것이 있는 줄 모르고 욕심대로 함부로 행동해서 꺼리는 것이 없다.
右第二章.
이상은(右) 제2장이다.
此下十章, 皆論中庸以釋首章之義.
이 아래로 10장은, 모두 중용을 논하고 첫장이 뜻을 풀었다.
文雖不屬, 而意實相承也.
글이 비록 이어지지 않지만 뜻은 실제로 서로 이어받는다.
變和言庸者, 游氏曰: 以性情言之, 則曰中和, 以德行言之, 則曰中庸是也.
화를 바꿔서 용을 말한 것은, 류씨가 말하길: "성과 정으로 말하면 중화라 하고, 덕행으로 말하면 중용이라 한다란 것이 이것이다"라고 했다.
然中庸之中, 實兼中和之義.
그러나 중용의 중은, 실제로 중화의 뜻을 모두 가진다.
중용(中庸)
1. 개요
중용(中庸)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저술한 책이다. 논어, 맹자, 대학과 더불어 사서에 속하며, 유교의 기초가 되는 책이다. 원래는 대학과 마찬가지로 예기 제31편 중용편에 속한 글이었으나, 남송 시대 정자와 주자 등의 성리학자들에 의해 독립하여 출간되었다.
예전에는 중용에서 다루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내용이 자사의 시절에 존재하였을 것이라 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중용을 송대에 만들어진 글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에 중국의 한나라와 전국 시대 고대 무덤에서 중용의 글귀가 쓰여져 있는 죽간과 백서가 발굴되면서, 중용의 글귀가 적어도 자사가 활동하던 시절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따라서 중용이 자사의 저서일 가능성도 매우 높은 편이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판본은 대체로 남송 주자의 수정을 거친 중용장구를 따른다. 그는 중용 전체를 33장으로 나누었으며, 각 장의 이름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
중용이라는 말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내가 남에게 베푸는 말과 행동 또는 감정 표현에 부족함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나친 것인지를 살펴서, 상황에 맞는 적절함(中)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庸=用=施이다. 즉, 상대방에게 베푸는 말과 행동에서 적절함을 지키라는 것이 중용이다.
남에게 베푸는 말과 행동이 부족하면 상대는 원망하게 되고, 남에게 베푸는 말과 행동이 지나치면 상대는 부담스러워한다. 그 과(過)와 불급(不及)의 중간이 중용인 셈. 이는 오륜인 부부 관계, 부자 관계, 군신 관계, 형제 관계,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관계에서 내가 받기 싫어하는 감정 표현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중용의 가장 큰 원칙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눈치만 보며 남의 기분을 맞춰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에 인간관계에서 그 상대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면, 그것에 대해 정중하게 지적해 줄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 중용이다. 이럴 때는, 남의 비위만 맞추며 맞장구를 치는 것은 도리어 편향된 것이며, 만약 진지하게 고려해 본 결과 그것이 옳다고 생각된다면 상대의 잘못에 '자신의 주관'을 정중하게 말할 줄도 아는 것이 중용이다.
즉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마음속 원대한 뜻은 흔들리지 않고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은 상황에 맞게 잘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자신의 이익이나 남들의 소문에 따라 계산적으로 살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 세운 올바른 원칙만은 지키겠다는 마음을 가지되,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세련되게 표현할 줄 아는 것이다.
2.1. 중용
중용은 상황에 따라서 말과 행동(감정 표현)을 해야 되는지, 해선 안 되는지를 아는 판단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상황에서 그 말과 행동이 지나친 것인지 모자른 것인지 그 적절함을 판단하는 것이 중용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중용은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성인들이 미리 그 기준을 만든 것이 예(禮)인 것이다. 보통은 예(禮)를 따르면 그 적절함을 얻는다.
하지만 성인이 정해 놓은 예(禮)라 할지라도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중용이다. 이러할 때에는 형식보다 본질과 감정이 우선하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서 윗사람을 존경하고 아랫사람을 아끼는 그 형식에 부족함이 생길지라도, 그 마음이 충분히 전해진다면, 그것 또한 예(禮)라고 하기에 충분하다고 공자는 말한다.
중(中)이란 갑골문에서 깃대를 뜻한다. 깃대에 달린 깃발은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휘날리지만 그 중심에 있는 깃대는 굳건히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중용도 마찬가지다. 옳은 신념은 깃대처럼 중심을 잡고 있어야 되며, 바람이 사방에서 몰아쳐도 기울어지지 않고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중용이다.
여기서 '자신의 중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를 들자면, 감정 표현을 상황에 맞게 잘하여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도, 상대의 큰 잘못에 대해서 충고(忠告)를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 또한 중용이라는 것이다. 즉, 중용은 '상대방에게 맞추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중용이란, 자신이 살아오면서 심사숙고 끝에 '옳다'고 생각한 것들을, 상황에 맞춰서 남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세련되게' 말할 줄 아는 것이다.
공자는 '지나친 것은 모자른 것과 같다(과유불급)'이라 말했는데, 중용의 뜻을 잘 말해주고 있다.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설득하려고만 한다면 제대로 된 말과 행동이 아닐 것이다. 반대로, 상대의 기분이 상할까 봐 남에게 너무 무르게만 얘기한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제대로 표현한 것이 아닐 것이다.
또한 남의 불행 앞에서 상대에게 충고를 해주려고 한다면 그것 역시 제대로 된 말과 행동이 아닐 것이다. 반대로, 남의 분명한 잘못 앞에서 상대에게 충고해 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생각이 전달되지 않을 뿐더러 똑같은 잘못을 또 행할 것이다.
종종 '중간만 가라'는 말이 중용으로 쓰이는데, 이것은 중용이 아니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은 분위기에 휩쓸리는 자의 판단이지 중용이라고 할 수 없다. 서로 다른 가치 판단의 중간에 있으면서 회색분자처럼 아무 생각 없이 중도를 지키는 것 역시 중용이 아니다. 상황이 계속 변한다고 지나치게 신중해져서 시간이 지나도 선택하지 않는 것은, 그 상황을 회피하고 판단을 미루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 다른 판단을 지켜보고 있다가 최후에 유리한 쪽을 '적절하게' 선택하는 것도 기회주의자이지, 중용이 아니다. 즉, 중용은 중립을 지켜라는 말도 아니고 확실해질 때까지 판단을 미뤄라는 말도 아니라, 판단을 하되 그 판단을 상황에 맞게 하라는 것이다.
공자의 사상이 여자를 부정적으로 인식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도, 적어도 중용의 사상 앞에서는 여자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기본 개념 자체가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남자는 여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 받기 싫은 말과 행동들을 여자에게 하면 안 되고, 여자는 남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 받기 싫은 말과 행동들을 남자에게 하면 안 된다. 이렇게 양쪽의 두 관점을 전체적으로 살핀다면 남녀의 문제뿐 아니라 빈부, 인종, 이념, 종교 등에서 대립되는 현대적 문제들에 있어서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현대의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중용의 필요성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2.2. 신독(愼獨)
'신독'이란, 혼자 있을 때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것을 말한다. 남이 볼까 두려워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남이 안 볼 때도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전자와 후자는 외부적으로 보이는 평가가 비슷해 보일지는 몰라도,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른 실제 '삶'에서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중용의 제일 처음에서 '군자는 그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삼가며, 그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하고 염려한다. 감추는 것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은 없으며, 작은 것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은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삶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남이 안 볼 때 마음대로 해버린다면 결국 남이 볼 때에도 무의식적으로 그 행동이 드러날 것이다. 언제까지 숨기고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또한,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위해서이다.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과 사물에 함부로 대한다는 것의 결론은, 결국 자신 스스로의 삶과 행동에 대해서도 그렇게 함부로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2.3. 지인용(知仁勇)
중용 20장에서 "그러한 사람이 있어야 그러한 정치가 일어나고 그러한 사람이 없으면 그러한 정치는 그치게 된다"라고 말하면서 정치에 있어서 방법과 시스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공자는 강조한다. 그렇다면 사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길지만 요약하자면, 자신을 닦아야 그러한 사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닦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것이 바로 '지인용'이다. "배움을 좋아하는 것은 지(知)에 가깝고, 힘써 행하는 것은 인(仁)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勇)에 가깝다. 이 세 가지를 알면 곧 자신을 닦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요, 자신을 닦는 방법을 알게 되면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게 되고,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면 곧 천하의 국가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지인용이란, 배워서 지식을 쌓고, 쌓은 지식을 통해 실제로 도덕(仁)을 행하며, 이런 실천의 과정 중에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부끄럽게 여기는 용기를 가져야 된다고 공자는 말한다. 즉, '(도덕적 삶을) 배움', '말과 행동의 일치', '자신의 부족한 점을 부끄럽다고 생각할 수 있는 용기'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은 바로 뒤에 설명할 '성(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2.4. 성(誠)
중용을 이루는 방법. 정성스러움. 성실해야 함을 말한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과 행동(중용)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오로지 훌륭함(善)을 선택하여 그것에 정성스럽게 한마음으로, 될 때까지 하는 것이다. 남들이 한 번에 해내면 자신은 10번을 하고, 남들이 10번 만에 해내면 자신은 100번을 해서, 결국 그것을 해내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정성스러우면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의 이치에 통달하게 되는데, 이러한 이치는 점점 확장되어, 세상 돌아가는 이치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사과나무를 갖은 정성을 들여 키우기를 수십 년을 하게 된다면, 사과가 자라나는 이치에 대해서 능통하게 될 것이며, 그 사과가 자라고 병드는 이치와 비교해서, 다른 사회생활이나 연애 등의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되어, 해보지 않고도 그 적절한 정도를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용은 사서 중에서도 제일 마지막에 배우는 것이다. 이는 유교에서 가장 어렵고 핵심적이라는 얘기다. 수천 년의 유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말이 '성실'이라니... 얼마나 맥이 빠지는 결론인가? 하지만 그렇기에 더 대단한 것이다. 성실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알 수 없다. 자신을 알 수 없으면 사물의 이치도 알 수 없다. 사물의 이치를 알 수 없으면 세상의 이치를 알 수 없다. 자신의 행복, 가족과 재산, 사회생활, 연애와 부부 관계, 권력과 명예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람이든 성실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누리며 살 수 없는 것이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편 군자와 중용(君子와 中庸)
제 1 장(제2장) 중용의 도(中庸의 道)
仲尼曰 君子는 中庸이오 小人은 反中庸이니라.
공자(중니)게서 말씀하시길 군자는 중용이요, 소인은 반중용(중용에 반대)이다.
君子之中庸也는 君子而時中이오 小人之中庸也는 小人而無忌憚也니라.
군자의 중용은 군자로서 때에 알맞게 하고, 소인의 중용은 소인으로서 기탄(거리낌)없는 것이다.
제 2 장(제3장) 중용의 덕(中庸의 德)
子曰 中庸은 其至矣乎인저 民鮮能久矣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중용은 지극한(좋은)것이다, 백성들은 오래할 수 있는 이가 드물다.
제 3 장(제4장) 과와 불급(過와 不及)
知者는 過之하고 愚者는 不及也니라.
지혜로운 자는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한다.
賢者는 過之하고 不肖子는 不及也니라.
현명한 자는 지나치고 못난 자는 미치지 못한다.
人莫不飮食也나 鮮能知味也니라.
사람은 누구나 마시고 먹지 않는 사람이 없으나, 맛을 아는 사람은 드무니라.
제 4 장(제5장) 내성의 심정(內聖의 心情)
子曰 道其不行矣夫인저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도는 행하여지지 않을 것이다.
제 5 장(제6장) 순의 지혜(舜의 智慧)
舜이 問而好察邇言하시고 隱惡而揚善하시니라.
순임금은 묻기를 좋아하시며, 비근(卑近) 한 말을 살피기를 좋아하시고 악함을 감추었고 선함을 드러내시었다.
執其兩端하사 用其中於民하시니 其斯以爲舜乎이신저.
그 양극단을 잡으시어 그 중간을 백성들에게 적용하였으니, 이것이 순 임금이된 까닭일 게다.
제 6 장(제7장) 참다운 지혜(智慧)
子曰 人皆曰予知로되 驅而納諸罟擭陷穽之中而莫之知辟也라
공자님이 말씀하실길 사람들은 모두 자기는 지혜롭다고 말하지만, 그물과 덫이나 함정 가운데로 몰아넣어도 그것을 피할 줄 모른다.
人皆曰予知로되 擇乎中庸而不能期月守也니라.
사람들은 모두 자신은 지혜롭다고 말하지만, 중용을 택하여 한 달 동안도 지켜 내지 못하느니라.
제 7 장(제8장) 안회의 인(顔回의 仁)
子曰 回之爲人也는 擇乎中庸하야 得一善則拳拳服膺而弗失之矣니라.
공자님 말씀이 안회의 사람됨은 중용을 택하여 한가지 선을 얻으면 받들어 가슴속에 지니고 그것을 잃지 않았다.
제 8 장(제9장) 중용의 어려움(中庸의 어려움)
子曰 天下國家도 可均也며 爵祿도 可辭也며 白刃도 可蹈也로되 中庸은 不可能也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천하의 국가도 고르게 다스릴 수 있고, 작록도 사양할 수 있고, 서슬 퍼런 칼날도 밟을 수 있다 하여도 중용은 능히 할 수 없느니라.
제 9 장(제10장) 군자의 강함(君子의 强함)
君子는 和而不流하나니 强哉矯여 中立而不倚하니 强哉矯여
(자로가 강함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는 화하면서도 흐르지 아니하니 강하도다 그 꿋꿋함이여, 중에서 기울어지지 아니하니 강하도다 그 꿋꿋함이여.
제 10 장(제11장) 군자의 도(君子의 道)
子曰 素隱行怪를 後世有述焉이나 吾弗爲之矣니라.
공자님 말씀이 은밀한 이치를 찾아 내려 하고, 괴이한 짓을 하면 후세에 떠받드는 일이 있을 것이지만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君子遵道而行타가 半途而廢하나 吾弗能已矣니라.
군자가 도를 좇아 행하다가 중도에 그만두는데 나는 그만두지 못할 것이다.
君子는 依乎中庸하야 遯世不見知而不悔하나니 唯聖者能之니라.
군자는 중용에 의지하여 세상에서 숨어 있어 알려지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으니 이는 오직 성자라야 그렇게 할 수 있다.
중용의 도에는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이 있을 수 없으며, 선악의 기준은 상대적인 것이며 때와 장소에 따라 어느 누구에게나 알맞은 타당한 것이 중용의 길이다.
군자와 소인배
동양 5천 년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유교의 핵심 경전은 대학, 중용, 논어, 맹자 등 사서(四書)다. 이 중의 하나인 중용(中庸)은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희노애락지미발위지중) 發而皆中節謂之和(발이개중절위지화)”란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희로애락 등의 생각 감정으로 출렁이기 이전의 고요하면서도 맑고 밝게 깨어 있는 무심한 텅 빈 마음이 천하의 근본이 되는 `중(中)`이고, 중(中)의 마음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천지 만물에 두루 통하며 절도에도 딱 들어맞는 화(和)라는 가르침이다.
중용은 이어 “中也者天下之大本也(중야자천하지대본야) 和也者天下之達道也(화야자천하지달도야)”라고 설파하고 있다. 중(中)은 천하의 으뜸가는 근본 바탕이고, 화(和)는 천지 만물과 조화를 이루며 두루두루 통하는 신묘 막측한 도(道)라는 의미의 가르침이다. 중(中)이 바로 불교에서 강조하는 나 없음의 무념무상 및 공, 삼매 등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으며, 주역에서 말하는 음양 이전의 무극 무심과 태극 일심의 상태를 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또 기독교에서 말하는 제 안의 온갖 주견을 비워낸 심령이 가난한 자의 마음 상태라고 이해해도 될 것이다. 화(和)는 불교에서 강조하는 나 없음의 지공무사한 마음에서 발현되는 반야 지혜가 진공묘유한 대기 대용으로 발현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중화(中和)와 일맥상통하는 중용(中庸)과 관련, 공자님은 “君子中庸(군자중용) 小人反中庸(소인반중용)”을 강조하셨다. 군자는 중을 쓰고, 소인배는 중에 반하여 쓴다는 의미의 가르침이다.
공자님은 또 “君子之中庸也(군자지중용야) 君子而時中(군자이시중). 小人之反中庸也(소인지중용야) 小人而無忌憚也(소인이무기탄야)”라는 가르침도 역설하셨다. 군자는 중의 마음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까닭에 언제나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그가 처한 때와 장소에 딱 들어맞지만, 소인배는 중을 쓴다고 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의미의 가르침이다.
군자와 소인배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밝힌 “君子和而不同(군자화이부동) 小人同而不和(소인동이불화)”란 가르침도 있다. 군자는 처한 상황 및 주변 인연들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패거리를 짓지 않지만, 소인배는 3류 정치인들처럼 패거리를 짓고 작당 모의나 할 뿐, 서로 진심으로 소통하며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의미다.
0점 조정이 되어 있지 않은 저울은, 무게를 재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아무리 그럴싸하게 무게를 잰다고 해도 출발부터 어긋나 있는 까닭에, 괜한 문제만 일으키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0점 조정된 나 없음의 지공무사한 중(中)의 마음이 아닌, 팔이 안으로 굽는 소인배의 좁아터진 마음으로는 그 어떤 주의 주장과 분별도 저만의 우물에 갇혀, 제 만족과 이득을 위한 이기적 생각과 말과 행동일 수밖에 없다.
유교는 이와 관련, “군자유어의(君子喩於義) 소인유어리(小人喩於利)” 즉,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는 의미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지금 나는 내 만족과 이득을 위해 습관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가? 아니면 0점 조정된 지공무사한 중(中)의 마음에서 팔이 안으로 굽는 바 없이, 올곧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가?
▶️ 君(임금 군)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尹(윤, 군)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尹(윤, 군)은 손에 무엇인가를 갖는 모양으로 천하를 다스리다는 뜻과, 口(구)는 입으로 말, 기도하다의 뜻의 합(合)으로, 君(군)은 하늘에 기도하여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君자는 '임금'이나 '영주', '군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君자는 尹(다스릴 윤)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尹자는 권력을 상징하던 지휘봉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다스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직책이 높은 사람을 뜻하는 尹자에 口자가 결합한 君자는 군주가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君(군)은 (1)친구나 손아랫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에 그 성이나 이름 아래에 붙여 쓰는 말 (2)조선시대, 고려 때, 서자(庶子) 출신인 왕자나 가까운 종친이나 공로가 있는 산하(傘下)에게 주던 작위(爵位). 고려 때는 종1품(從一品), 조선시대 때는 정1품(正一品)에서 종2품(從二品)까지였으며, 왕위(王位)에 있다가도 쫓겨나게 되면 군으로 강칭(降稱)되었음. 이를테면, 연산군(燕山君), 광해군(光海君) 등이다. 이와같은 뜻으로 ①임금, 영주(領主) ②남편(男便) ③부모(父母) ④아내 ⑤군자(君子) ⑥어진 이, 현자(賢者) ⑦조상(祖上)의 경칭(敬稱) ⑧그대, 자네 ⑨봉작(封爵) ⑩군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백성 민(民), 신하 신(臣)이다. 용례로는 세습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을 군주(君主),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를 군국(君國), 임금의 명령을 군령(君令), 임금의 자리를 군위(君位), 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을 군자(君子), 처방에 가장 주되는 약을 군제(君劑), 임금의 총애를 군총(君寵), 임금의 덕을 군덕(君德), 임금으로써 지켜야 할 도리를 군도(君道), 임금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군림(君臨), 임금과 신하를 군신(君臣), 남에게 대하여 자기의 아버지를 이르는 말을 가군(家君), 엄하게 길러 주는 어버이라는 뜻으로 남에게 자기의 아버지를 일컫는 말을 엄군(嚴君), 남의 남편의 높임말을 부군(夫君), 남의 부인의 높임말을 내군(內君), 거룩한 임금을 성군(聖君), 어진 임금을 인군(仁君), 재상을 달리 일컫는 말을 상군(相君), 임금께 충성을 다함을 충군(忠君), 포악한 군주를 폭군(暴君), 임금의 신임을 얻게 됨을 득군(得君), 덕행을 베푸는 어진 임금을 현군(賢君),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첫째는 부모가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 둘째는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것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군자삼락(君子三樂), 임금과 신하와 물과 물고기란 뜻으로 떨어질 수 없는 친밀한 관계를 일컫는 말을 군신수어(君臣水魚), 임금은 그 신하의 벼리가 되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군위신강(君爲臣綱),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의리가 있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군신유의(君臣有義),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똑같다는 말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임금과 신하 사이에 지켜야 할 큰 의리를 일컫는 말을 군신대의(君臣大義),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는 말을 군자무본(君子務本), 군자는 큰길을 택해서 간다는 뜻으로 군자는 숨어서 일을 도모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고 옳고 바르게 행동한다는 말을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군자는 일정한 용도로 쓰이는 그릇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군자는 한 가지 재능에만 얽매이지 않고 두루 살피고 원만하다는 말을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는 표범처럼 변한다는 뜻으로 가을에 새로 나는 표범의 털이 아름답듯이 군자는 허물을 고쳐 올바로 행함이 아주 빠르고 뚜렷하며 선으로 옮겨가는 행위가 빛난다는 군자표변(君子豹變),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아서 백성은 모두 그 풍화를 입는다는 뜻으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을 군자지덕풍(君子之德風),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신하가 죽는다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는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군욕신사(君辱臣死) 등에 쓰인다.
▶️ 子(아들 자)는 ❶상형문자로 어린 아이가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아들을 뜻한다. 지금의 子(자)라는 글자는 여러 가지 글자가 합쳐져 하나가 된 듯하다. 지지(地支)의 첫째인 子와 지지(地支)의 여섯째인 巳(사)와 자손의 뜻이나 사람의 신분이나 호칭 따위에 쓰인 子가 합침이다. 음(音)을 빌어 십이지(十二支)의 첫째 글자로 쓴다. ❷상형문자로 子자는 '아들'이나 '자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子자는 포대기에 싸여있는 아이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양팔과 머리만이 그려져 있다. 고대에는 子자가 '아이'나 '자식'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중국이 부계사회로 전환된 이후부터는 '남자 아이'를 뜻하게 되었고 후에 '자식'이나 '사람', '당신'과 같은 뜻이 파생되었다. 그래서 子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아이'나 '사람'이라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子(자)는 (1)아주 작은 것을 나타내는 접미어 (2)신문(新聞), 잡지(雜誌) 따위 간행물(刊行物)의 어느 난을 맡은 기자(記者)가 자칭(自稱)할 때 쓰는 말 (3)십이지(十二支)의 첫째 쥐를 상징함 (4)자방(子方) (5)자시(子時) (6)글체에서, 그대의 뜻으로 쓰이는 구투(舊套) (7)글체에서, 아들의 뜻으로 쓰이는 말 (8)민법상에 있어서는 적출자(嫡出子), 서자(庶子), 사생자, 양자(養子)의 통틀어 일컬음 (9)공자(孔子)의 높임말 (10)성도(聖道)를 전하는 사람이나 또는 일가(一家)의 학설을 세운 사람의 높임말, 또는 그 사람들이 자기의 학설을 말한 책 (11)자작(子爵) 등의 뜻으로 ①아들 ②자식(子息) ③첫째 지지(地支) ④남자(男子) ⑤사람 ⑥당신(當身) ⑦경칭(敬稱) ⑧스승 ⑨열매 ⑩이자(利子) ⑪작위(爵位)의 이름 ⑫접미사(接尾辭) ⑬어조사(語助辭) ⑭번식하다 ⑮양자로 삼다 ⑯어리다 ⑰사랑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자 녀/여(女), 어머니 모(母), 아버지 부(父)이다. 용례로는 아들과 딸의 높임말을 자녀(子女), 며느리 또는 아들의 아내를 자부(子婦), 아들과 사위를 자서(子壻), 아들과 손자 또는 후손을 자손(子孫), 아들과 딸의 총칭을 자식(子息), 남의 아들의 높임말을 자제(子弟), 십이시의 첫째 시를 자시(子時), 밤 12시를 자정(子正), 새끼 고양이를 자묘(子猫), 다른 나라의 법률을 이어받거나 본떠서 만든 법률을 자법(子法), 모선에 딸린 배를 자선(子船), 자손의 여러 대나 자손의 끝까지 또는 대대 손손을 일컫는 말을 자자손손(子子孫孫), 자자손손의 썩 많은 세대를 자손만대(子孫萬代), 자식은 아비를 위해 아비의 나쁜 것을 숨긴다는 뜻으로 부자지간의 천륜을 이르는 말을 자위부은(子爲父隱), 융통성이 없고 임기응변할 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자막집중(子莫執中), 자애로운 어머니의 마음을 일컫는 말을 자모지심(子母之心), 듣고 본 것이 아주 좁고 고루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자성제인(子誠齊人), 자식은 아비를 위해 아비의 나쁜 것을 숨긴다는 말을 자위부은(子爲父隱),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뜻으로 어진 사람도 남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을 공자천주(孔子穿珠), 묵자가 실을 보고 울었다는 뜻으로 사람은 습관이나 환경에 따라 그 성품이 착해지기도 악해지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죽은 자식 나이 세기라는 뜻으로 이미 지나간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며 애석하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망자계치(亡子計齒), 부모는 자녀에게 자애로워야 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효성스러워야 함을 이르는 말을 부자자효(父慈子孝) 등에 쓰인다.
▶️ 中(가운데 중)은 ❶지사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물의 한가운데를 상하로 통하는 세로 금으로 중심, 중앙을 뜻함과 형제를 위로부터 차례로 伯(백), 仲(중), 叔(숙), 季(계)라고 일컬을 때의 仲(중)으로서 쓰인 것이다. 또는 깃대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❷상형문자로 中자는 '가운데'나 '속', '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이전에는 中자가 무언가를 꿰뚫는 모습을 그렸던 것으로 해석했었다. 그러나 갑골문이 발견된 이후에는 이것이 군 진영에 깃발을 꽂아놓은 모습을 그려졌던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中자는 진지 중앙에 펄럭이는 깃발을 그린 것으로 '가운데'나 '중앙'을 뜻하고 있다. 中자가 '중앙'이라는 뜻으로 쓰이다 보니 때로는 '속'이나 '안', '마음'과 같은 사물의 중심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中(중)은 (1)일부 한자로 된 명사(名詞) 다음에 붙이어 그 명사의 뜻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과정임을 나타냄 (2)등급 같은 것을 上中下(大中小)로 구분할 경우 그 가운데 등급 중등(中等) (3)중국 (4)장기판에서 끝으로부터 둘째의 가로줄을 이르는 말 (5)마음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가운데 ②안, 속 ③사이 ④진행(進行) ⑤마음, 심중(心中) ⑥몸, 신체(身體) ⑦내장(內臟) ⑧중도(中途) ⑨절반(折半) ⑩장정(壯丁) ⑪관아의 장부, 안건(案件) ⑫가운데 등급 ⑬중매(仲媒), 중개(仲介) ⑭중국(中國) ⑮버금(으뜸의 바로 아래), 둘째, 다음 ⑯가운데에 있다 ⑰부합하다, 일치하다 ⑱맞다, 맞히다, 적중시키다 ⑲급제하다, 합격하다 ⑳해당하다, 응하다 ㉑뚫다 ㉒바르다, 곧다 ㉓가득 차다 ㉔이루다, 이루어지다 ㉕고르다, 고르게 하다 ㉖간격을 두다 ㉗해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바깥 외(外)이다. 용례로는 중도에서 끊어짐을 중단(中斷), 한가운데를 중심(中心), 사방의 중심이 되는 곳을 중앙(中央),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나 자리 중추(中樞), 일이 되어 가는 동안 중도(中途), 치우침이나 과부족이 없이 떳떳하며 알맞은 상태나 정도를 중용(中庸),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나 자리를 중추(中樞), 두 사물의 사이를 중간(中間), 일을 중도에서 그만 둠을 중지(中止), 중간에서 이어줌을 중계(中繼),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함을 중립(中立), 길을 가고 있는 동안 도중(途中), 하늘이나 하늘 가운데를 공중(空中), 마음 속을 심중(心中), 도시의 안을 시중(市中), 정신을 집중시킴을 열중(熱中), 눈의 안이나 마음속을 안중(眼中), 코의 밑과 윗입술 사이의 우묵한 곳을 인중(人中), 돌에 박힌 화살촉」이라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한 큰 힘이 나올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중석몰촉(中石沒鏃), 쏜 화살이 돌에 박힌다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한 큰 힘이 나올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중석몰시(中石沒矢), 터무니없는 말로 헐뜯거나 남을 해치려고 속임수를 써서 일을 꾸밈을 일컫는 말을 중상모략(中傷謀略), 일을 하다가 끝을 맺지 않고 중간에서 그만 둠을 일컫는 말을 중도이폐(中途而廢), 마음속의 욕망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외부의 사악을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함을 이르는 말을 중경외폐(中扃外閉), 중원의 사슴이라는 뜻으로 천자의 자리 또는 천자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중원지록(中原之鹿), 중립을 취하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중립불의(中立不倚), 보통 사람은 감당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중인불승(中人弗勝), 마음속에 일정한 줏대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중무소주(中無所主), 덕성이 발라서 과불급이 없는 화평한 기상을 일컫는 말을 중화지기(中和之氣), 시작한 일을 완전히 끝내지 아니하고 중간에 흐지부지함을 일컫는 말을 중도반단(中途半斷) 등에 쓰인다.
▶️ 庸(떳떳할 용/쓸 용)은 ❶회의문자로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庚(경; 절굿공이를 양손에 든 모양)과 用(용; 올리다)의 합자(合字)이다. 절굿공이를 들어 올리다의 뜻에서 음(音)을 빌어, '올려쓰다' 또 일정(一定)하고 '변치 않다'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庸자는 '(사람을)쓰다'나 '채용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庸자는 庚(천간 경)자와 用(쓸 용)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用자는 나무로 만든 통을 그린 것으로 '쓰다'나 '부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庚자는 곡식의 낱알을 털어내는 '탈곡기'를 그린 것이다. 그러니 庸자는 탈곡기 아래로 나무통을 받쳐놓은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탈곡기 아래에 통을 받쳐 놓았다는 것은 지금 탈곡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庸자의 본래 의미도 '탈곡기를 사용한다' 였다. 그러나 지금의 庸자는 사람을 쓴다는 의미에서 '채용하다'나 '쓰다'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庸(용)은 ①떳떳하다 ②쓰다, (사람을)채용하다(採用--) ③고용하다(雇用--) ④범상하다(凡常--) ⑤어리석다 ⑥크다 ⑦일정(一定)하여 변(變)하지 아니하다 ⑧평소(平素) ⑨범상(凡常), 보통(普通) ⑩범인(凡人), 보통(普通)의 사람 ⑪공적(功績) ⑫공로(功勞)가 있는 사람 ⑬수고, 노고 ⑭담, 작은 성 ⑮큰 종, 쇠북 ⑯수문(水門) ⑰법(法), 법도(法度) ⑱조세의 한 가지 ⑲어찌 ⑳항상 ㉑~써, ~로써,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못생기고 재주가 남만 못하고 어리석음을 용렬(庸劣), 범용한 사람을 용인(庸人), 범용하고 속되어 이렇다 할 특정이 없음을 용속(庸俗), 용렬하고 졸렬함을 용졸(庸拙), 범용한 사내를 용부(庸夫), 품질이 낮은 물건을 용품(庸品), 어리석고 미련함을 용록(庸碌), 어리석고 미욱함을 용매(庸昧), 어리석고 데면데면함을 용소(庸疏), 어리석고 하찮음을 용쇄(庸瑣), 어리석고 변변치 못한 사람을 용수(庸手), 어리석고 변변치 못한 중을 용승(庸僧), 미련하고 우악함을 용악(庸惡), 어리석고 보잘것 없음을 용오(庸汚), 어리석고 미련한 자질을 용자(庸資), 하찮고 잡스러움을 용잡(庸雜), 용렬하고 미천함을 용천(庸賤), 어리석고 보잘것 없음을 용하(庸下), 어리석어서 잘 다스릴 자격이 없는 임금을 용군(庸君), 재주가 없고 의지가 약함을 용약(庸弱), 평범한 말 또는 일상 쓰는 말을 용언(庸言), 평범한 소리 또는 평범한 작품을 용음(庸音), 범용한 의사를 용의(庸醫), 용감한 장수를 용장(庸將), 평범한 재주를 용재(庸才), 어리석고 졸렬한 재주를 용재(庸材), 평소의 소행을 용행(庸行), 남보다 못생기고 어리석음을 용우(庸愚), 평범한 유생 또는 평범한 학자를 용유(庸儒), 재주가 평범하고 기력이 약함을 용나(庸懦), 치우침이나 과부족이 없이 떳떳하며 알맞은 상태나 정도를 중용(中庸), 인재를 골라 뽑아씀을 등용(登庸), 평범하고 변변하지 못한 사람 또는 평범하고 어리석어 변변하지 못함을 범용(凡庸),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딸려서 붙음이나 남의 힘에 기대어 따로 서지 못함을 부용(附庸), 노고와 공훈을 노용(勞庸), 국가에 대한 충성과 공훈을 충용(忠庸), 나라 일과 백성의 일 또는 그 공적을 공용(功庸), 용렬하고 미련함을 투용(偸庸), 쓸 만한 사람을 쓰고 공경할 만한 사람은 공경한다는 말을 용용지지(庸庸祗祗),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하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혼용무도(昏庸無道), 마땅하고 떳떳한 중용의 도리를 일컫는 말을 중용지도(中庸之道), 어떠한 일도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일하면 안 됨을 이르는 말을 서기중용(庶幾中庸)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