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산(九峰山) 산행기 - (산(山) - 운해(雲海) - 하늘(天)을 만나다)
새벽!
어둠을 젖히고 그가 온다.
그의 이름만으로도 난 한껏 설레인다.
갈구(渴求) !
그의 찬 숨결이 나의 뇌를 애무하고
난 그의 신선한 예지를 호흡한다.
환희(歡喜)!
온 몸이 바르르 떨리며
난 그에게 흡수되어 한 몸이 된다.
기도(祈禱)!
오늘 하루 내가 살아있음으로 인하여
어느 누군가가 행복하게 하소서.
예수님 오신지 이천 일곱해
십일월 스물닷새의 하루가 시작된다.
큰 배낭을 꾸린다.
아홉의 봉우리 일천이미터
생각만으로도 나는 이미 힘에 부친다.
스틱을 점검하고 등산화를 조여 맨다.
전라도 북쪽 무주 옆 진안 땅
구봉산(九峰山)을 만나러 내가 간다.
내가 그를 만나는 것에 설레이듯이
그가 나를 만나는 것 또한 기쁨이기를....
이른 일곱시 만남의 장소로 나간다.
오늘 산동무 단촐한 스무명
언제 보아도 반가운 이들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사람은 사랑을 낳는다.
고속도로를 두시간 반을 달려
인삼의 고장 금산 고을을 지나
한적한 시골 신작로
이십여분을 더 굽이쳐 닿은 곳
구봉산 주차장
이미 십여대 버스가 미리와 있다.
오늘 구봉산 손님이 많을 듯하다.
안개.
열시가 지났건만 아직도 안개 사이로 이슬이 내린다.
주차장에서 산을 올려본다.
여덟 개의 봉우리가 형제처럼 어깨동무하고 있다.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아 만만하다.
몸을 풀고 산에 오른다.
주차장 옆 시골 가게에 진안 더덕막걸리가 눈에 밟힌다.
한 통 살까 하다가 참는다.
배낭 무게를 줄여야 한다.
아무리 만만해 보여도 아홉봉우리 일천미터.
드디어 일봉을 오르는 길
산이 제법 가파르다.
천안에서 오셨다는 아주머니들
더 이상 못올라 간다고 응석을 부리신다.
저 아주머니들은
구봉산에 온 목적이 따로 있는 듯하다.
십여분을 더 올라가니
인솔자 인듯 한 아저씨가
여기까지만 오른다하고 짐을 풀라고 한다.
저 분들 산에 온 목적이 시작되려나 보다.
시끄러웠던 아주머니들을 뒤로 하고
산에 오르는 길
많은 분들이 온 탓이라
이미 일행을 잃어버리고
다른 팀들과 뒤섞였다.
오르며 언뜻 뒤를 돌아보니
안개인지 구름인지 온통 산을 뒤덮었다.
조금 더 오르면 더 멋있겠다.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한다.
일봉우리가 바로 앞에 보이고
옆으로 펼져지는 운해의 절경(絶境)
이 맛에 구봉산에 유명한가 보다.
바위 절벽에 걸터 있는
소나무와 어우러진 흰 구름바다는
티끌 하나 없는 파란 하늘바다와
끝없이 이어지는 짙초록 산바다의
절경에 눈은 황홀하고
숨은 큰 호흡으로 감동을 맞는다.
일봉우리 정상 소나무 아래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
환성과 감탄이 여기까지 들려온다.
야 ~ 호 ~ ~ ~
내가 여기 구봉산 너와 함께 숨을 쉰다.
구경하랴 사진찍다 시간이 지체된다.
일봉 이봉 중간에서
일봉 간 사람들 기다렸다 이봉으로 함께 갈까
아니다. 일봉을 해야 구봉도 의미있다.
일봉으로 발걸음을 돌리니
이미 몇분 내려오고 계신다.
일봉에 다들 계신다는 말을 듣고 재촉하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헤치고 오르긴 불가하고
줄을 서서 바위를 오르고 로프에 몸을 맡긴다.
드디어 아홉 봉우리 중
첫 번째 일봉에 올랐다.
안개에 쌓여있는 아랫마을 풍경이 정겹고
고개로 나 있는 길 너머로
서편제의 한 풍경이 되새겨져 온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저 고개를 넘어
구성진 창 한가락 뽑으며 춤을 추며 내려올 것 같다.
아직도 끝없는 운무를 뒤로 한 채
이봉, 삼봉, 사봉을 오른 내린다.
바윗길이 제법 험하고
사람이 많아 길이 계속 지체된다.
사봉에서 오봉으로 내려가는 길
아이쿠
발이 바위에 미끌어져
반장길이만큼 뚝 떨어졌다.
앞에 있던 아내가 깜짝 놀라 뒤를 보고
뒤에 계시던 산악대장님 괜찮냐며 걱정이다.
천만다행
배낭이 쿠션이 되어 허리를 보호하고
엉덩이만 살짝 바위에 닿았다.
휴~ 큰일 날 뻔했다.
배는고파 다리에 힘이 풀리고
조심조심 바위들이 미끄럽다.
구름만 멋있는 줄 알았는데
육봉에서 산을 보니
산 자체가 절경이라
구름바다에 빠져
구봉산 너 자체로 멋있는 줄 몰랐구나
낙엽은 이미 지고
소나무 푸른 절개에
온 산을 둘러친 바위 병풍
금강산이 부러우랴, 중국 황산이 부러우랴.
칠봉 팔봉은 길이 없어 오르지는 못하고
옆으로 돌아 돈내미재를 넘어
협곡을 지나니
시원한 전망대 앞에 우뚝 선 구봉산
주봉 천황봉(장군봉)이 우뚝 서 있네.
배꼽시계 짜랑짜랑 정오가 한참 지났네
정상가서 점심먹자, 배고파서 못 오른다
의견이 분분할 재
몇몇분 자리잡고 못간다고 배낭푸네
여기서 식사한다 산악대장 한마디에
여기저기 옹기종기 자리깔고 불피우네
조심조심 산불나면 큰일 난다.
바위 아래 안전하게 버너 놓고
라면 끓여 나눠먹고 국 끓여 나눠먹고
산 음식 무엇이든 최고지만
끊여먹는 라면 맛이 일품중에 일품일세.
정상까지 남은 거리 팔백미터
아무리 힘들어도 이 정도는 한발로도 올라간다
그러나 어이하리 이백미터를 내려가고
오르기 시작하는데 그 끝간데가 없다.
길은 얼음과 눈과 진흙이 엉겨 얼어있고
경사는 높아 코가 땅에 닿고
오르고 또 올라도 정상이 어드메냐
아이고 새끼 여덟 개의 봉우리보다
어미 한 봉우리가 훨씬 더 힘이든다.
육백미터 오르는 길 멀고도 힘이 든다.
사람많아 지체되고, 힘이들어 쉬어가고,
정상이듯 싶더니만 올라보니 다시 절벽,
그러나 하늘아래 뫼이더냐
천황봉을 오르기 시작한지 한시간
드디어 정상에 우뚝 섰다.
여덟 개의 봉우리에 안내판 하나 없어 아쉽더니만
구봉산 정상 천황봉 일천이미터에도
별다른 표지 없이 달랑 쬐그만 비석하나
여기가 정상임을 알려준다.
정상이라 모두 모여 사진찍고
사람들 너무 많아 얼른 자리 비켜준다.
정상에서 바라보니
무주 땅 덕유산도 보이고
끝없이 산의 바다가 펼쳐져 보이고
파란 하늘엔 흰 구름이 돛단배 되어 흘러가는데
아랫녘 안개가 다 걷혀 용담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 호수 때문에 운무가 그렇게 장관이었었나 보다.
구봉산에서 바라보니
지나온 여덟 개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기를 다 지나 왔구나 감회가 새롭다.
이제는 내려가는 길 바랑재에서 바랑골로 내려간다.
오르는 길보다 어렵지는 않지만
일천미터를 그대로 아래로 내리 꽂는다.
소나무밖에 푸르름이 없는 십일월말
산풍경인줄 알았더만 어느새 나타나는
나지막한 대나무 숲 푸르름을 자랑한다
저 대나무 뿌리가 당뇨환자에 좋다던
회장님의 말씀이 들려온다.
로프잡고 영화처럼 뛰어내리다가
발목을 삘 뻔했다.
안심은 금물이다. 산에서는 자만금지.
이리돌고 저리돌아 한참을 내려오다
낙엽이 한데 모여 자리를 펴고 있고
푹신한 침대인가?
세 여인이 사진을 찍네
낙엽 여인인가 꽃과 낙엽이 어울리니
낙엽위에 핀 꽃 세송이 그래도 아름답네.
한시간 반 내려오니 그림같은 별장 하나
아담한 시골 풍경 인삼밭 지나
주차장에 다시오니 우리가 꼴찌일세
모두 다 버스에서 기다리고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급수대에 세수 하고
진안 땅 지하수 물을 들이키니 시원하고 달콤하네
버스타고 나가는 길
용담호에 비친 산 모습이 정겨워라
삼십분을 돌아나와
금산의 명물 맛집 찾아가네.
누구의 소개이냐?
‘닭이랑 삼이랑’ 간판이름 정겹구나.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궁중 백숙 이미 끊고 있고
정상에서 못다마신 인삼주를 한잔씩 돌려 건배하고
황기 냄새 그윽한 시골닭 그 닭다리 하나 뜯어보니
그 맛이 진국일세
좋은 산 구경하고,
좋은 음식 먹어보고,
좋은 사람들과 인삼주에 막걸리에 술 취하니
이보다 더한 복이 어디에 있을까?
오늘 처음을 시작했던 그 마음
나는 그들로 인하여 행복했는데
그들도 나로 인하여 행복했을까?
출처: 수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바다(여운종)
첫댓글 어제 산에 다년온 산행기입니다. 우리 대리기사님들 요즘 많이 힘드시죠. 이 글이 조금이라도 위안과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사진 중간에 소나무아래 검은옷에 빨간 수건 두루고 폼잡고 있는게 저입니다^^
너무 부럽습니다 저도 마음의여유를 찾아야되는데 정말로 행복하신 산행이 되셔서 부럽습니다...
첫댓글 어제 산에 다년온 산행기입니다. 우리 대리기사님들 요즘 많이 힘드시죠. 이 글이 조금이라도 위안과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사진 중간에 소나무아래 검은옷에 빨간 수건 두루고 폼잡고 있는게 저입니다^^
너무 부럽습니다 저도 마음의여유를 찾아야되는데 정말로 행복하신 산행이 되셔서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