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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를 넘는 보나파르도. 1800~1801년, 캔버스에 유채, 272*232,
말메종 샤토 국립미술관 소장
나폴레옹은 전쟁터를 배경으로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앞발을 든 말 위에 평온한 모습으로 다비드에게 그려달라고 주문했다. 프랑스 혁명 중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면서 혁명을 극대화 시킨 작품이 <마라의 죽음>이다. 이 작품은 1793년 여름, 프랑스 혁명 중에 일어난 실제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서 다비드는 혁명 지도자 마라를 순교자로 표현해 그의 죽음을 기념하고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급진주의자 장 폴 마라<1743~1793>는 민중의 정치 참여를 고취시켰던 프랑스 정치인이다. 마라의 급진주의 성향은 대중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반대세력인 프랑스 왕권주의자들에게는 제거해야만 하는 정적이었다.
1793년 귀족 출신의 열렬한 공화당원이었던 여인 샬롯트 코르도네가 거짓 편지를 들고 그의 집으로 찾아가 피부병으로 욕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마라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혁명정부는 이 사건을 화가 다비드에게 기록해달라고 의뢰한다.
![]() The Empress Josephine c. 1805, Oil on canvas, 244 x 179 cm Musée du Louvre, Paris 서양 문명은 산수 중심의 동양화와 달리 인물 중심의 회화를 발달시켰습니다. 그래서 여성을 그린 그림이 많고 그렇게 그려진 여성들 가운데는 우리에게 깊은 인상과 환영을 남긴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나폴레옹 황제의 부인이었던 조제핀도 그런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그녀의 모습을 보노라면 도대체 그녀의 무엇이 나폴레옹 같은 영웅을 사로잡았고 또 뭇사람들의 뇌리에 그녀를 그렇게 매력적인 여성으로 남게 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렇게 뭇 남자들을, 영웅 중의 영웅을 사로잡는 여성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그런 삶은 과연 어떤 삶일까요? 한편으로는 진한 동경심을 불러일으키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삶, 그런 삶이 바로 이런 이들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머리 속은 온통 당신 생각뿐이었소. 당신의 모습, 그리고 어젯밤의 멋진 기억은 내 모든 감각을 들뜨게 만들었소.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조제핀이여, 당신은 나의 마음에 실로 이상한 마법을 걸었소.”
![]() 마라의 죽음. 1793년, 캔버스에 유채, 165*128, 벨기에 왕립 미술관 소장 마라의 가슴은 칼에 찔린 상처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욕조 옆에 두었던 수건에는 그가 흘린 피로 붉게 물들어져 있다. 욕조 밖에는 그를 찌를 때 사용한 칼이 피에 물든 채 놓여져 있다. 마라가 왼손에 쥐고 있는 편지는 샬롯트 코르도네가 쓴 자신의 소개장이다. 그녀는 마라에게 자비를 구하려고 했고 마라가 그녀에게 기대했던 것은 지롱드 당에 대한 정보였다. 탁자에는 잉크병과 깃펜, 편지와 돈이 놓여져 있는데 편지와 돈은 미망인을 위한 마라의 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잉크병과 깃펜은 저널리스트였던 마라를 상징하고 있다. 탁자 아래 ‘마라에게, 다비드가’ 이라는 화가의 사인이 있는데 그것은 단순한 화가의 사인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다비드는 마라가 죽은 후 대중들에게 전시되었던 시체를 보았지만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살해당했던 당시 상황을 그대로 표현했다.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는 신고전주의의 선두자다. 다비드는 왕립 미술아카데미에서 제정한 최고상 ‘로마상’을 수상함으로서 이탈리아에서 공부한다. 5년 동안의 로마 유학으로 다비드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고히 정립한다. 귀국 후 다비드는 로마 고대사를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고 그 작품은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다비드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자기희생과 의무, 헌신 금욕 등 시민이 지켜야 할 미덕을 작품에 표현했다. 하지만 다비드는 왕정 시대의 최고의 영예를 버리고 혁명에 전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는 자코뱅 당에 일원이 됨으로서 막강한 정치적 힘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그는 브뤼셀로 망명한다. 망명지에서 조국 프랑스로부터 귀국 제의를 받지만 다비드는 거절하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혁명의 격동기에서도 자신의 예술 세계를 이끌었던 다비드에게 프랑스에 남아 있던 제자들은 절대적인 존경과 신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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