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여권 든 여행객에 유럽 공항 활기… ‘델타변이’ 우려도
[EU 백신여권 도입 첫 주말 르포]
“휴가철 맞아 여행객 1달새 2배”… 佛언론 여권 발급-검사 ‘구멍’ 지적
스코틀랜드 축구팬 2000명 감염 등 유로2020, 변이 확산 주범 떠올라
파리 샤를드골 공항, 여행객 ‘북적’ 3일(현지 시간) 오후 프랑스 파리 샤를드골 공항 2터미널에 항공 수속 체크인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유럽연합(EU)은 1일부터 역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백신 여권’ 제도를 전격적으로 시행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3일(현지 시간) 오후 4시. 프랑스 파리 샤를드골 공항 2터미널. 수속 카운터 앞에 60m가량 줄이 늘어섰다. 이곳에서 만난 카르사 씨(27)는 “오랜만에 그리스에 간다”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휴대전화 화면에서 유럽연합(EU)이 발급한 디지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접종 증명서, 이른바 ‘백신여권’을 보여주며 엄지를 세웠다. 이날은 EU가 1일 백신여권을 도입한 후 첫 주말이었다. 백신여권을 가진 EU 시민들은 격리 기간 없이 역내 27개 회원국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이날 샤를드골 공항은 팬데믹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백신여권 도입으로 여행객이 늘면서 활기를 되찾아가는 분위기였다. 공항 직원 멜리나 씨는 “6월 말보다는 공항을 찾은 여행객이 2배로 늘어난 것 같다. 방학이 본격화되는 다음 주부터는 여행객이 몇 배 더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백신여권이 코로나19 감염을 막는 보증수표는 아니어서 인도발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는 와중에 방역의 구멍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백신여권 제도에 빈틈이 있다고 지적했다. EU 회원국 간 이동의 자유를 보장한 ‘솅겐조약’에 따라 기차, 자동차 등으로 얼마든지 국경을 넘을 수 있는데 육상 교통 이용자들에 대한 백신여권 검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백신여권은 백신접종자뿐 아니라 72시간 이내 유전자증폭(PCR)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 코로나19 감염 후 완치자도 받을 수 있다.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이 백신여권을 얻은 후 여행지에서 감염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사무소 책임자인 한스 클루게는 1일 “10주 연속 감소세를 보였던 유럽 내 감염자가 지난주 다시 10% 증가했다”면서 원인 중 하나로 여행 증가를 꼽았다.
유럽축구선수권대회 경기장과 일대 술집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축구팬이 몰리면서 델타 변이 확산이 이어지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축구팬 2000명이 집단 감염됐다고 1일 밝혔다. 영국 런던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신경전을 벌였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축구연맹(UEFA)과 영국 정부가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이번 주 열리는 준결승, 결승전 관중을 각각 6만 명까지 수용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너무 많은 것 아닌지 염려된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존슨 총리는 “과학적 지침에 따라 경기를 치를 것”이라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받았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델타변이 확산… 수도권 밤 10시 이후 야외음주 금지
수도권 방역조치 강화… 백신 접종자도 실외서 마스크 써야
진단속도, 기존 변이보다 2배 늦어 방역대응이 델타 전파력 못 따라가
정부 발표보다 넓게 퍼졌을 가능성… 감염 확산에 백신 인센티브도 철회
일부 지자체 “자체 검사 허용해달라”… 정부, ‘델타 PCR 검사’ 도입 검토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토요일에만 743명의 감염이 새로 확인됐다. 토요일 기준으로 지난해 12월 27일(970명) 이후 처음 700명대다. 수도권 확진자는 전체의 80%를 웃돌고 있다. 결국 방역당국은 백신 접종자도 실외에서 다시 마스크를 쓰도록 했다. 특히 오후 10시 이후 수도권 공원 강변 등에서 야외 음주를 금지하기로 했다. 조만간 각 지방자치단체가 단속 장소와 시작 시기를 정한다.
인도발 ‘델타 변이’에 대한 확산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2%대였던 양성률(검사 대비 확진 비율)이 5.12%로 급등했다. 델타 변이가 확진자 증가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방역당국의 대응은 델타 변이의 전파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검사체계상 델타 변이 감염 확인에 5∼7일이 걸린다. 다른 변이는 2, 3일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1주일 전 델타 변이 데이터로 방역대책을 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델타’ 감염 확인에만 5~7일 걸려… “일주일전 데이터로 방역대책”
서울 선별진료소, 검사 ‘긴 줄’ 4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 앞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우산을 쓴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날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주말인데도 743명이 나왔다. 뉴스1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마포구 주점 및 수도권 영어학원 집단감염이다. 지난달 21일 첫 확진자 발생 후 2주 만에 확진자가 301명까지 늘어났다. 현재까지 9명의 델타 변이 감염만 확인됐다. 특히 확진자 1명이 방문한 부산 감성주점·클럽의 누적 확진자는 10명까지 늘어났지만 델타 변이 감염 여부는 여전히 분석 중이다.
알파(영국) 베타(남아프리카공화국) 감마(브라질) 등 기존 변이 3종은 지방자치단체의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통해 신속한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델타 변이는 PCR 검사가 도입되지 못해 확진자 검체를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 또는 산하 권역대응센터로 보내 진단하고 있다. 검체 이송에 약 2일, 장비를 이용한 실제 검사에만 최소 3일이 필요하다. 검사 물량이 많거나 검체 상태에 따라 1, 2일 더 걸린다.
이에 대구시와 인천시 전남도 등은 신속한 검사를 요청하거나 자체적으로 검사장비 도입 의사까지 밝히고 있다. 한 광역지자체 관계자는 “선제적 대응을 위해서는 선별검사를 빠르게 해야 하는데, 현재는 방역 사각지대 발생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변이 검사는 전수가 아닌 표본조사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전체 확진자의 15∼20%가량 변이 검사를 하는 걸 감안하면, 델타 변이는 정부 발표보다 더 광범위하게 퍼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방역당국은 델타 변이에도 PCR 검사 도입을 추진하는 한편 전체의 15%인 변이 분석 대상을 20%까지 높이고, 수도권은 25%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변이 확인 속도가 방역에서 절대적인 부분은 아니다”면서도 “7월 안에 델타 변이 PCR 검사 도입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국내보다 앞서 델타 변이가 퍼진 해외 상황은 악화일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일(현지 시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델타 변이가 100개국에서 확인됐다며 “세계가 매우 위험한 시기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그만큼 국내 유입 가능성도 커지는 셈이다.
4일 0시 기준 국내에서 확인된 해외 유입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81명이다. 전날보다 35명 늘었다. 지난해 7월 25일(86명) 이후 두 번째로 많다. 유입 추정 국가 중 인도네시아가 39명으로 가장 많다. 인도네시아는 최근 델타 변이가 급속히 확산 중이다.
다급해진 정부가 내놓은 수도권 방역 강화가 기대한 만큼 효과를 낼지 미지수다. 일단 실내외 마스크 착용을 다시 의무화하면서 위반자에게 1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백신 접종 인센티브를 사흘 만에 철회한 셈이다. 야외 음주 금지의 경우 여름철 해수욕장에서의 권고 조치를 확대 적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강제하려면 각 지자체가 조례를 변경해야 한다. 실질적인 현장 단속도 이뤄져야 한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지금 수도권을 안정시키지 못하면 전국의 방역도, 다시 본격화될 일반 국민 백신 접종도 결코 순조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유근형 기자, 김소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