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홍보처가 최근 정부 각 부처와 산하기관들을 대상으로 정부 정책과 관련한 광고계획서를 사전에 제출토록 한 후 광고 발주 언론사를 임의 조정해 주면 그에따라 광고를 집행토록 하라는 지침을 시달해 물의를 빚고 있다.
특히 국정홍보처의 이 같은 조정 지침이 특정언론사들에 대한 광고 편중 현상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인 것으로 밝혀져 현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들을 겨냥, 5공화국 당시의 ‘보도지침’과 유사하게 ‘광고지침’을 통한 ‘언론통제’를 시도하고 있다는 의혹을 낳고 있다.
23일 정부 산하기관의 한 홍보팀장은 “지난 6월 각 정부부처별로 정부 산하기관 홍보책임자들을 소집, 광고 발주 이전에 계획서를 국정홍보처에 제출토록 했다”며 “국정홍보처는 계획서가 제출되면 실제 광고를 집행할 언론사를 조정해 통보하겠다는 지침을 시달했다”고 밝혔다.
이 홍보팀장은 “국정홍보처는 이 같은 지침을 시달하면서 특정언론사들에 대해 광고가 집중되는 문제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며 “이에 따라 우리 기관도 올 하반기 광고계획을 국정홍보처에 보고했다”고 말했다.
다른 정부 산하기관의 홍보책임자도 이런 사실을 확인한 뒤 “국정홍보처의 지침은 강제성을 띠고 있어 우리 기관에서도 불가피하게 광고계획서를 보고했다”며 “당시 회의에서 지침은 구두로 시달하고 광고계획 보고는 이메일로 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 책임자는 이어 “국정홍보처는 정부 정책과 관련한 광고에 한해 계획서를 제출토록 했지만 정부 산하기관들의 특성상 구인광고에도 정책 관련 문구가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광고가 보고 대상”이라며 “이로 인해 홍보 관련 담당자들 사이에 5공화국 당시의 보도지침같이 광고지침을 통한 언론통제의 구태가 재연된 것 아니냐는 극단적인 불만까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 개인적으로 생각해도 일종의 광고검열을 의미하는 국정홍보처의 이런 지침은 워낙 심각한 문제여서 금방 언론에 폭로될 것으로 생각했었다”며 “정부 산하기관에 소속돼 있다는 한계 때문에 신분상 불이익을 우려, 모두 쉬쉬해 3개월이 다 되도록 이 문제가 묻혀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홍보 관계자는 “정부 기관이든, 일반 기업이든 홍보담당자 입장에선 자신의 업무 성과가 광고효과와 직결돼 있어 광고효과가 큰 언론에 광고를 게재하려는 것이 당연한 욕심이자 의무감”이라며 “따라서 인위적으로 광고를 조절하겠다는 국정홍보처의 지침은 시스템적으로도 무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국정홍보처는 정부와 산하 기관에 광고계획서를 제출토록 한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이 같은 조치가 언론통제를 위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정순균 국정홍보처장은 이날 데일리안과의 단독면담에서 “이 기사는 정부의 의도가 잘못 해석된 왜곡보도”라고 반박하고 “데일리안과 해당기자에 대해 법적 조치 등 적합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처장은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에 보낸 6월10일자 협조공문을 제시한 뒤 “정부의 매체광고는 상업적 광고와 견줘 사회적 집중력과 격이 떨어진다”며 “효율성을 높이고 집중력을 제고한다는 판단에서 각 부처와 산하기관에 향후 정부 매체광고는 국정홍보처와 반드시 협의하도록 협조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 처장은 이어 “이같은 내용을 각 부처와 산하기관에 협조를 구한 것은 ‘정부의 중요한 광고는 국정홍보처와 반드시 협의해야 한다’는 지난 98년 대통령훈령에 근거한 것”이라며 “참여정부는 정부 광고의 효율적 시스템을 운영하려는 의도이지 광고지침을 통한 매체(언론)통제는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협조공문은 ▲정부광고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카피나 디자인, 매체운영 등을 국정홍보처와 협의 ▲중앙부처 광고는 국정홍보처의 예산으로 시안을 제작 ▲산하기관 등의 기타 광고는 국정홍보처와 자문 및 의견을 교환 ▲외국 공공광고 사례 연구등을 통한 정부광고 기법 향상 제고 등을 명시하고 있다.
정 처장은 공문에 명시된 매체운영과 관련 “정부 광고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신문과 방송, 지하철, 인테넷신문 등을 자문해 주는 것”이라며 “이는 한정된 국가예산으로 모든 매체에 광고를 내보낼 수 없어 자문을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처장은 “지금이 어떠한 시대인 데 정부가 광고를 통해 특정 언론을 통제하겠냐”며 “신문의 경우도 독자수, 시장점유율, 발행부수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한정된 예산이므로 이른바 메이저신문과 마이너신문을 나눠 돌아가면서 광고를 게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이 협조공문이 각 부처와 산하기관에 전달된 뒤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광고계획서가 접수돼 집행된 것은 단 한건도 없다“면서 “협조요청이 잘 지켜지지 않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홍보처의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데일리안이 정부 산하기관 홍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 지난 6월 홍보관계자 회의에서 공문과 별도로, 광고계획서를 보고토록 한 지침의 목적이 "특정언론사들에 대한 광고 편중 현상 해소를 위한 것"이라고 구두로 밝힌 것으로 거듭 확인돼 파장이 예상된다.
한편 5공화국 때인 지난 86년 9월 전두환 정권이 이른바 ‘보도지침’을 통해 언론을 통제한 사실이 폭로돼 독재정권의 실상에 대한 전국민적인 분노를 야기했다.
당시 청와대는 문화공보부(현 문화관광부)내 홍보조정실을 창구로 각 신문사에 매일 전화 또는 구두로 지침(문공부 용어로는 홍보조정지침)을 시달, 특정 사안에 대해 보도할 것인지 여부부터 그 방향과 내용에 이르기까지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와 유사한 사례로 유신체제때인 지난 74년 12월 자유언론운동과 관련, 동아일보 광고주에 대한 정부의 압력으로 무더기 광고해약사태가 빚어져 동아일보가 ´백지광고´를 내기도 했다.
그때 동아일보는 독자들의 ´격려광고´로 일반 광고를 대신해 가까스로 광고지면을 채워 나갔으나 사태가 반년이상 계속되면서 경영에 큰 타격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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