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朴寅煥, 1926∼1956)은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났다.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평양의전을 중퇴하였다.
8·15 광복과 함께 상경한 이후 종로에서 ‘마리서사(茉莉書肆)’라는 서점을 경영하였다.
이때 김광균· 이한직· 김수영· 김경린· 오장환· 김기림 등 시인들과 친교를 맺게 된다.
1956년의 이른 봄.
명동 한 모퉁이에 자리한 막걸리를 주로 파는
‘경상도집’에 박인환을 비롯해 송지영, 김광주, 김규동 등의 문인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마침 그 자리에는 가수 나애심도 함께 있었다.
몇 차례 술잔이 돌고 취기가 오르자 일행은 나애심에게 노래를 청하였다.
그러나 나애심은 마땅한 노래가 없다고 청을 거절했다.
이때 박인환이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더니 즉석에서 시를 써내려갔다.
이어 완성된 시를 이진섭에게 넘겼고,
이진섭은 단숨에 악보를 그려갔다.
나애심이 그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바로 '세월이 가면'이다.
한두 시간 후 나애심과 송지영은 돌아가고
테너 임만섭, 소설가 이봉구 등이 새로 합석을 했다.
임만섭이 이 노래를 정식으로 다듬어서 부르자 지나가던 행인들이
모두 이 술집 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아주 기이한 음악회가 열린 것이다.
술집에서 대폿잔을 기울이면서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작곡을 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며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
그것은 마치 낭만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이후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은 여기저기서 사람들에 의해 흥얼거려졌다.
그리고 마치 명동의 골목마다 스며있는 외로움과 회상을 담고 있는 듯한
이 노래는 "명동 엘리지"라고도 불리었다.
참고로 그 경상도 술집의 옥호는 "은성" 이라 불렸고
"은성"의 사장은 최불암의 모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