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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하는 정재훈
제목; 새사람이란?
주제문; 새사람이 되고 싶다.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은 영어 이름부터 책의 원어 제목은 ‘Mere Christianity’로 번역하면 단순한 기독교라고 나온다. 책 제목은 순전한 기독교인데, 왜 단순한 기독교라는 뜻으로 해석이 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읽기 시작했다.
(줄 바꿈) 내가 이 책에서 기억나는 장은 ‘새사람’이라는 장인데, 새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들과 새사람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새사람이란 큰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지금 나에겐 이런 큰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왜냐하면, 요즘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구분을 잘하지 못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기 때문이다. 전에는 그나마 해야 할 일들을 조금이나마 했지만, 지금은 전혀 딴판이 되어 있다. 버렸다. 그래서 나에게는 큰 변화, 즉 새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고 느꼈다.
(줄 바꿈)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람이 바뀌기가 쉽지만은 않은 걸 알고 또 노력도 해 보지만 결국에는 그대로였다. 아마 성공했으면 지금 내가 이런 내용의 글을 쓰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새사람이 되는 것이 많은 실패를 통해 점점 부담스럽고 어차피 성공하지도 못할 텐데 굳이? 라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 때 진심으로 포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떨쳐내고 새사람이 되기 위한 여러 방법을 알아보고 싶다.
먼저 오랜만에 연구하는님의 감상문을 받게 되어 감사합니다. 책의 원어 제목을 살피고 번역해보며 책을 읽기 시작한 점을 칭찬합니다. ‘mere’에는 ‘단순한’이라는 뜻 외에 ‘전적인, 순전한’이라는 의미도 있답니다. 수업을 통해 ‘새사람’이 되는 방법을 알았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새사람’은 단순히 현재의 모습에서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완전히 포기하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삶이죠. 내 힘으로 되는 게 아니고 겸손하게 주님을 받아들일 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새사람이 되는 방법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합니다. 책에서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조금 더 성실하게 책을 읽기 바랍니다. 수고했어요.
긍정적인 방수빈
제목 : 교만이 아닌 겸손한 삶
주제문 : 교만함을 버리고 겸손한 새사람이 되자. (주제문을 조금 수정했어요)
C.S. 루이스가 말한 최고의 악은 교만이다. 교만이 무엇일까? 사실 교만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번 기회로 교만이 왜 최고의 악인지 알게 되었다.
교만을 하는 것이 교만이 왜 최고의 악일까? 교만은 내가 이룬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닌 내가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만은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최고의 악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기에 우리 힘으로만 진정으로 이뤄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힘으로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아닌 오직 나에게만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옳지 않은 행실이기 때문이다.
교만의 반대말은 겸손이라고 하셨다. 즉 교만이 최고의 악이기에 겸손을 하며 겸손하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행실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껏 겸손하며 겸손하게 살았는지 돌이켜보았다. 생각해보니 모든 순간 그러했는지 확신할 순 없었다. 그래서 이번 <순전한 기독교>를 바탕으로 앞으로 교만하며 사는 것이 아닌 오직 겸손하며 살기를 교만하게 살지 않고 겸손하게 살도록 기도하였다. 결국 나는 이전의 나의 자아를 버리고 나는 죽지만 내 안에 하나님만 사는 새사람이 되며 살아야겠다고 느꼈다.
끝까지 과제를 작성해서 제출하느라 애썼습니다. <순전한 기독교>를 읽으며 교만과 겸손에 관하여 깊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군요. C.S 루이스가 교만을 최고의 악이라고 한 이유는 교만이 하나님께 맞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것,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며 적대감을 일으키고 결국 하나님께도 대적하는 일이 교만입니다. 단순히 나를 드러내고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반대로 겸손은 하나님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음을 알고 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님이 더 깊은 신앙의 자리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불기둥 이윤규
책 제목과 선생님의 “이번에는 조금 어려울 거에요”라는 말이 귓속에 들어오자 나는 머릿속으로 ‘안 읽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강제(?)로 읽게 되어서 그냥 중간을 폈는데 딱 죄에 대해서 나왔다. 요즘 내가 제일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었는데 운명처럼 나왔다. 그러자 <나의 데스트니 찾기>와 비슷한 느낌의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쭉쭉 읽어 나갔다. 다는 못읽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읽었다.
거의 다 읽어 나가니 내가 가지고 있던 신앙적 질문들이 하나둘씩 풀어져 나갔다. 그리고 예전보다 더 성장한 거 같다. 이런 분류의 책들을 조금 더 읽어보고 싶다.
선생님이 한 말이 오히려 독서를 방해한 거 같아 미안하네요. 그래도 책을 읽고 마음에 감동이 되었다니 감사합니다. 불기둥님이 가졌던 신앙적 질문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풀어졌는지, 어느 부분이 인상적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다음부터는 차근차근 내용을 채워보세요. 나중에 다시 감상문을 읽었을 때 불기둥님이 책을 읽으면서 누린 감동이 다시 생생하게 느껴지도록 말입니다. 분량도 실력이라는 말을 기억하고 조금 더 분발해볼까요?
슬기로운 민시은
이번 주 책 제목은 ‘순전한 기독교’였다. 어렸을 때부터 늘 책장 속에 꽂혀 있었던 책이었고,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 싶은 사람들은 한 번쯤 다 읽어보는 책이라기에 나도 언젠가 읽어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섣불리 책을 펼친 것인지 읽는 속도가 더디고 생각해야 하는 내용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후회는 없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익숙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알면 알수록 더욱 미궁 속으로 빠지는 것도 있다. 나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일이 그렇다. ‘순전한’ 기독교라는 것은 무슨 말일까? 의미상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C.S. 루이스의 말에 의하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믿어온 바를 설명하고 수호한 것이라고 한다. 책을 막 읽기 시작한 나에게는 하나님을 순전한 마음으로 믿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 나의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혼란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오히려 어렸을 때 하나님을 더 순수한 마음으로 잘 믿었다고 느낀다. 신앙의 방황이 길어질수록 하나님보다는 세상을 의지했고,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며 그 사실을 잊으려 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 삶 속에 개입하실 시간조차 드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더욱 기도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의 첫 장을 읽을 때부터 마음속에 확신이 생겼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존재하신다는 확신 말이다. 평소에 교회를 다니고 말씀을 읽으면서도 항상 풀리지 않았던 궁금증이나 부끄러운 의심들이 C.S. 루이스의 논리를 따라가며 하나씩 사라졌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무엇을 어떠한 근거로 믿었는지 잘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스도인이란 절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 몇 번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사람-그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매번 그를 회복시키며 그리스도처럼 일종의 자발적인 죽음을 반복할 수 있게(어느 정도까지는) 해 주므로-이라는 뜻입니다.”
자발적 죽음의 반복이라는 말이 인상 깊게 남았다. 스스로 반복해서 죽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삶으로 경험하기 시작한 지금에야 비로소 그 말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도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이라는 책을 읽으며 왜 책 제목을 저렇게 지었나 싶은 생각에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는데 비슷한 맥락으로 들을 때마다 놀라움을 주는 말인 것 같다. 진정한 회개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자발적 죽음을 반복하는 것이다. 언젠가 나도 그러한 회개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진심으로 들었다.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책의 내용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읽고 싶다. 책을 통해 나의 미약하지만 순전한 믿음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선생님이 수업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내용을 슬기로운님이 고스란히 감상문에 썼네요. 마치 수업을 마치고 감상문을 쓴 것처럼 말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처럼 우리 안에 오직 예수님만 사시길,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꼭 다시 책을 곱씹으며 천천히 음미하여 슬기로운님의 것으로 소화하는 기회를 만들기 바랍니다. 수고했습니다.
배려하는 김예은
제목; 교만과 자아의 내려놓음
주제문;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자
작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순전한 기독교’를 읽게 되어서 기쁘면서도 한 편으로는 걱정이 많이 되었다. C.S. 루이스의 책들이 기본적으로 다 어려웠었기 때문에 내가 과연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밑줄을 치고 포스트잇을 붙이며 놓치는 부분 하나 없이 모두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읽다 보니 책의 내용도 자연스레 이해가 되었으며, 내 삶과 연결 지어 고민해볼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내용들이 정말 많지만, 그중에서도 교만과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때때로, 아니 어쩌면 매 순간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렇기에 내 자신을 뽐내고 싶어 하고, 내가 이뤄낸 것들을 자랑하려고 한다. 아닌 척하면서도 은근슬쩍 내 자랑을 한다. 지금 내 삶 속에서 교만은 없어질래야 없어질 수가 없는 죄악 중 하나로 자리 잡혔다. 교만은 항상 나를 괴롭히는 고민거리였다. 교만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 정말 어려웠을뿐더러 어떻게 해야 교만하지 않을 수 있을지 매번 생각해보곤 했다. 하나님께 기도도 했고, 내가 이뤄낸 것이 아니라고 매번 자기 세뇌를 했음에도 결국은 제자리였다. 나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나 자신을 판단한다. 그래서 내가 타인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서는 더 교만해진다. 내가 나의 주인이라고 자주 착각하기에 더 교만해지는 것 같다. 나는 내 삶을 지배해도 되고,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끌어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주인이 되려고 노력한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던 그 모든 은혜는 잊은 채 내 삶의 초점은 항상 나를 향해 있다. 그래서 내가 이뤄낸 내 성과들은 온전히 나 혼자서 해낸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내가 참 모순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기에 나는 하나님을 더 찾아야 하고, 하나님을 더 의지해야 한다. 죄인인 나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매번 기억하며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드려야 한다. 어쩌면 내가 교만하다는 것은 아직 내 삶이 하나님으로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수단인 증거인 거 같기도 하다. 하나님으로 채워지지 않은 내 삶이 조금씩 가득해지기를 바란다.
책에서는 자기의 자아를 모두 버리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난 그동안 내 자아 정체성을 깨닫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앞장세우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으며, 내 욕심에 지나지 않았다. 책은 내 모든 자아를 버려야만 새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가진 모든 것, 심지어 내 목숨까지도 주님께 맡길 때 나는 새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직 나는 새사람이 되기에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에게는 내가 너무 중요하다. 당장 현실이 급하고, 내 눈에는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이제는 내 자아를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싶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릴 때 내 삶을 선하게 사용하실 하나님을 기대한다.
이번 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했지만, 빠른 시일 내에 이 책을 다 읽고 싶다. 기독교와 내 삶을 직접적으로 연결해주었으며, 내가 그동안 기독교에 가지고 있던 의문들을 많이 해결해준 책이었다.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책이 될 것이며,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준 의미있는 시간들이었다.
책을 읽으며 자신을 성찰하는 배려하는님의 모습이 참 귀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모습을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C.S.루이스가 교만을 최고의 악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교만이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만의 참된 의미를 기억하며 배려하는님이 고백한 대로 내 힘을 빼고 하나님만 의지하길 바랍니다. 그럴 때 놀라운 은혜로 믿음 안에서 든든히 세워가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죠?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