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유(姜維)의 위장(僞裝) 투항(投降) -
그 무렵에 공명(孔明)은 한중(漢中)을 출발하여 선봉장(先鋒將) 위연(魏延)이 공격(攻擊)하고 있는 진창성(陳倉城)에 이르렀다.
이때 촉군(蜀軍)은 공명(孔明)이 발명(發明)한 신무기(新武器)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운제(雲梯)라고 부르는 구름 사다리인데, 이것은 사다리를 궤짝처럼 만들어서 군사(軍士)들이 궤짝 안으로 들어가 적(敵)의 공격(攻擊)을 방어(防禦)하며 성벽(城壁)을 기어오를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촉병(蜀兵)은 운제(雲梯)를 이용(利用)해 진창성(陳倉城)을 오르고자 하였으나 학소(郝昭)는 운제(雲梯)가 보이기만 하면 불화살을 쏘아 촉군(蜀軍)을 퇴치(退治)하도록 하였다.
성(城) 위로 기어오르는 것에 실패(失敗)하자 촉군(蜀軍)은 땅 아래로 굴을 파서 성(城)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학소(郝昭)가 그 사실(事實)을 알고 끓는 물을 땅굴 속에 붓는 바람에 땅굴을 파고 들어가던 촉군이 몰살(沒殺)했다.
위로도, 아래로도 촉군(蜀軍)이 진창성(陳倉城)을 차지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이미 여러날 전에 진창성(陳倉城)에 이르러 공격(攻擊)을 하고 있던 위연(魏延)은 아무리 계속해 공격(攻擊)하여도 끄떡도 하지 않는 진창성(陳倉城)을 바라보며 공명(孔明)에게 보고한다.
"아군(我軍)이 성(城)을 포위(包圍)하고 칠팔 일을 연달아 맹공(猛攻)하고 있으나 저 자(者)의 방어(防禦)에 막혀 성(城)을 함락(陷落)시키는 데 수십 차례나 실패(失敗)했습니다." 위연(魏延)은 성루(城樓)에서 위군(魏軍)을 지휘(指揮)하며 촉(蜀)의 공격(攻擊)을 막아내고 있는 학소(郝昭)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저 자가 학소(郝昭)요? 과연 (果然) 명장(名將)이로군. 보시오. 위군(魏軍)이 잘 싸울 수있도록 뒤에서 병사들의 사기(士氣)를 북돋워 주고 있고, 상황(狀況)에 침착하게 맞서고 있군. 장군(將軍)이 저리 하니 병사(兵士)들이 지쳐도 포기(暴棄)하지 않고 최선(最善)을 다해 수비(守備)하는 것이 아니겠소? 저런 자가 있으면 진창(陳倉)은 함락(陷落)하기가 매우 어렵겠소."
공명(孔明)은 비록 적군(敵軍)이지만 병사들을 독려(督勵)하며 진창성(陳倉城)을 지키고 있는 학소(郝昭)를 칭찬(稱讚)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학소(郝昭)는 성루(城樓)에서 공격(攻擊)해 오는 촉군(蜀軍)의 동태(動態)를 살피며 병사들에게 계속해 명령(命令)을 하달 (下達)하고 있었다.
그때, 중군 대장(中軍 大將)으로 공명(孔明)을 호위(護衛)해 진창(陳倉)에 함께 도착(到着)한 강유(姜維)가 두 사람의 말을 번갈아 듣고,
"승상(丞相), 십여 일에 이르도록 진창성(陳倉城)조차 함락(陷落)시키지 못했으니, 이런 교착 상태(膠着狀態)가 지속(持續)된다면 우리에게 매우 불리(不利)한 여건(與件)이 조성(造成)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걱정을 담아 말을 하였다.
그때, 탐마(探馬)가 뛰어들며,
"승상(丞相), 50리 밖에 위군(魏)의 지원군(支援軍)이 도착(到着)해 진영(陣營)을 구축(構築)하고 있습니다." 하고, 보고를 하는 것이 아닌가.
"수장(首將)이 누구던가?" 공명(功名)이 즉각(卽刻) 반문(反問)하였다.
"조진(曺眞)입니다."
"사마의(司馬懿)가 올 줄 알았는데 아니군. 조예(曺叡)는 친인척(親姻戚)만 기용(起用)하는군. 어리석은 군주(君主)같으니라고. 그럼 사마의(司馬懿)는 내처진 모양이로군." 공명(孔明)이 혼잣말 처럼 말하자
위연(魏延)이,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까요?" 하고, 공명(孔明)의 다음 명(命)을 재촉하였다.
공명(孔明)이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상황(狀況)으로 보아서 진창성(陳倉城)은 학소(郝昭)가 지키는 한 함릭(陷落)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으나, 조진(曺眞)은 상대하기가 훨씬 쉽지않겠나? 이보게 백약(伯約 : 강유(姜維)의 字)."
"예. 승상."
"오군(吳軍)이 위장(僞裝) 투항(投降)으로 조휴(曺休)을 물리쳤으니 자네도 위장(僞裝) 투항(投降)으로 조진(曺眞)을 상대(相對)해 보는 것이 어떻겠나?"
공명(孔明)은 얼마전 동오(東吳)의 파양 태수(鄱陽 太守) 주방(周魴)이 양주(揚州) 사마(司馬) 대도독(大都督) 조휴(曺休)에게 위장(僞裝) 투항(投降)하여 위군(魏軍)을 무너뜨린 상황(狀況_을 머릿 속에 그려보면서 말하였다.
그러자 강유(姜維)가 염려(念慮)스러운 어조(語調)로 대답(對答)한다.
"승상(丞相), 해 볼 수는 있겠으나 조휴(曺休)가 당한 것을 조진(曺眞)도 잘 알고 있을 것인데 같은 작전(作戰)에 말려들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공명(孔明)이 차분한 어조로 대답한다.
"자네도 잘 알겠지만 병법(兵法)의 묘미(妙味)는 예상(豫想)과 다를 때가 많다는 것이야. 바로 조휴(曺休)의 전례(前例)가 있었기 때문에 조진(曺眞)은 우리가 같은 방법(方法)으로 나올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네. 그래서 오히려 성공(成功)하기가 쉽지. 게다가 지난번 전투(戰鬪)에서 사마의(司馬懿)는 대승(大勝)을 거둔 반면에 조진(曺眞)은 패퇴(敗退)를 면치 못했으니 그의 심정(心情)이 어떻겠나. 그러니 이번 전투(戰鬪)에 나와서는 사마의(司馬懿)를 능가(凌駕)하는 전공(戰功)을 세우기 위해 조바심이 나 있을 것이네, 그러니 우리는 그의 흐려진 판단력(判斷力)을 이용(利用)하는 전략(戰略)을 쓰는 것이 옳을 것이야." 함께 듣던 위연(魏延)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명(孔明)의 말에 동조(同調)한다.
그 모습을 본 강유(姜維)가 곧바로 대답(對答)한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조진(曺眞)에게 투항서(投降書)를 비밀리(祕密裡)에 보내겠습니다."
"음!" 공명(孔明)은 자신(自身)의 의견(意見)을 곧바로 받아들이는 강유(姜維)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한편 대군(大軍)을 이끌고 촉군(蜀軍)의 동향(動向)을 살피며 진군(進軍)하던 조진(曺眞)은 참모(參謀)들을 향하여,
"명(命)한다. 매일 십 리씩 진군(進軍)하되, 강(江)을 만나면 일단 멈춘다. 제갈량(諸葛亮)은 술수(術數)를 잘 쓰니 한걸음씩 신중(愼重)하게 움직여야 한다." 하고, 지난 전투(戰鬪)에서 패(敗)한 상황(狀況)을 되새기며 전군(全軍)에 신중(愼重)한 처신(處身)을 명(命)하였다.
그러자 조진(曺眞)의 아들 조상(曹爽)이 말을 받아,
"촉군(蜀軍)이 지금 진창(陳倉)을 공격(攻擊)하고 있다고 하니, 제가 이만(二萬) 군사(軍士)를 이끌고 촉군의 후방(後方)을 쳐서 학소(郝昭) 장군을 돕겠습니다." 하고, 분연(奮然)히 나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진(曺眞)은 일언지하(一言之下)에 잘라 말한다.
"좋지않은 판단(判斷)이다. 진창(陳倉)은 미끼야. 제갈량(諸葛亮)은 아군(我軍)을 끌어들이려고 복병(伏兵)을 배치(配置)했을 것이다. 그러니 진창(陳倉)을 돕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 말을 듣고 조상(曺爽)이 즉각(卽刻) 반문(反問)한다.
"그러다가 진창(陳倉)을 잃게 되면 어쩝니까?"
그러자 조진(曺眞)이 발걸음을 멈추고 뒤따르는 장수(將帥)들과 아들 조상(曺爽)을 향하여,
"학소(郝昭)는 사마의(司馬懿)가 천거(薦擧)한 자가 아니더냐? 그러니 학소(郝昭)가 패(敗)하게 되면 사마의(司馬懿)도 책임(責任)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나 들려오는 전황(戰況)으로는 진창성(陳倉城)이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다고 하니, 그대로 지켜 보는 것이 좋겠다. 또 학소(郝昭)가 촉군(蜀軍)의 힘을 소진(消盡)시키게 되면 나중에 우리에게 유리(有利)하게 되지 않겠냐?" 하고, 측근(側近)을 향하여 속마음을 털어보였다.
그때, 보고(報告)가 올라온다.
"대도독(大都督), 수상(殊常)한 자를 붙잡았는데 대도독께 올린다는 서찰(書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진(曺眞)이 보고(報告)를 받고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중호군(中護軍) 대장 비요(費耀)가 서찰(書札)을 낚아채 펼쳐본다.
그리고 이내 단상(壇上) 위에 있는 조진(曺眞)을 향해,
"대도독(大都督), 배신자(背信者) 강유(姜維)가 보낸 것입니다." 하고, 입을 여니, 이를 곁에서 듣던 장수(將帥)들의 의문(疑問)의 눈초리가 한순간에 집중(集中)되었다.
비요(費耀)가 조진(曺眞)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강유(姜維)가 대도독(大都督)께 투항(投降)을 하겠답니다." 하고, 서찰(書札)의 내용을 짧게 말하였다.
조진(曺眞)이 그 말을 듣고, 서찰을 빼앗듯이 받아들고 자신(自身)의 군막(軍幕)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물러들 가게!" 비요(費耀)는 단하(段下)의 수행(隨行) 장수(將帥)들을 모두 물리고 바쁜 걸음으로 조진(曺眞)의 뒤를 따랐다.
군막(軍幕) 안으로 들어온 조진(曺眞)은 군막 안을 서성이며 흡족(洽足)한 표정(表情)으로 강유(姜維)가 보낸 서찰(書札)을 읽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강유(姜維)는 아래와 같은 서찰(書札)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죄인(罪人) 강유(姜維)가 대도독(大都督)께 사죄(赦罪)를 올립니다. 신(臣)은 대대로 위(魏)의 신하(臣下)로 제 선조(先祖)는 낙양(洛陽)에 거주(居住)하셨고 그 땅에서 나라의 은혜(恩惠)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갈량(諸葛亮)의 계략(計略)에 속아 목숨이 위태(危殆)로운 상황(狀況)에 놓여 불가피(不可避)하게 거짓 투항(投降)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뒤에 촉(蜀)에 있으면서 매일(每日)같이 고향(故鄕)과 폐하(陛下)를 그리워하면서 눈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오늘 대도독(大都督)께서 오신다는 소식(消息)을 듣고 하늘이 내린 절호(絕好)의 기회(機會)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대도독(大都督)께 투항(投降)하고 공(功)을 세워 죄(罪)를 씻고, 선조(先祖)들의 넋을 기리고자 합니다. 하오니 이 죄인(罪人)이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機會)를 주십시오.
"믿지 마십시오. 간사(奸邪)하기 짝이 없는 제갈량(諸葛亮)의 계략(計略)일 것입니다." 비요(費耀)가 흡족(洽足)한 미소(微笑)를 머금고 있는 조진(曺眞)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이어서,
"얼마 전에 동오(東吳)의 주방(周魴)도 위장(僞裝) 투항(投降)을 하여 아군(我軍)의 패전(敗戰)은 물론이고 조휴(曺休) 장군(將軍)조차 돌아가시지 않으셨습니까?"하고, 강유(姜維)의 투항(投降)을 받아들이는 것이 위험(危險)한 일일 것이라는 의견(意見)을 비쳤다.
그러나 조진(曺眞)은,
"제갈량(諸葛亮)이 어떤 자인 지 모르는가? 이런 허술한 계책(計策)을 술수(術數)랍시고 들이대면 어린아이도 속아 넘어가지 않지." 하고, 조진(曺眞)은 오(吳)의 작전(作戰) 성공(成功) 사례(事例)가 촉(蜀)에서 재현(再現)될 것이 아니란 듯이 대답하였다.
"그럼, 대도독(大都督)께선...?"
"강유(姜維)와 주방(周魴)은 달라. 주방(周魴)은 오(吳)나라 사람이야. 그러나 강유(姜維)는 본시 위(魏)나라 사람으로 선조(先祖)들의 무덤도 모두 위(先祖)나라에 있지. 촉(蜀)에 투항(投降)한 것은 그 당시(當時) 상황(狀況)이 여의치 않은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겠나? 이제 그런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하는데 우리가 마다할 이유가 없지. 잘 됐어. 음! 이번엔 하늘이 나를 돕는구만! 허허허!" 조진(曺眞)은 손뼉을 치며 기뻐하였다.
그러면서 결심(決心)이 선 명을 내린다.
"비요(費耀)! 서찰(書札)을 가지고 온 자(者)에게는 상(賞)을 내리고, 강유(姜維)에게는 날을 정(定)하여 협력(協力)하라고 하게.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갈량(諸葛亮)은 반드시 생포(生捕)하라고 당부(當付)하게!"
"알겠습니다!" 명(命)을 받은 비요(費耀)가 물러간다. 그러자 비로소 자리에 좌정(坐定)한 조진(曺眞)이 회심(會心)의 미소(微笑)를 지으며 아들 조상(曺相)을 향하여 입을 열었다.
"이번에 똑똑히 보여주겠다. 지략(智略)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사마의(司馬懿) 뿐만이 아니란 것을!"
조진(曺眞)은 자리에서 고개를 크게 젖히며 자신감(自信感)을 펼쳐 보였다.
삼국지 - 372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