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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흑요석 거울
최초의 금속 거울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나왔는데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 인들은 구리를 갈아서 거울로 사용했습니다. 또한, 중국에서는 기원전 2000년경에 청동을 갈아서 청동 거울을 사용했습니다. 이때 당시의 거울들은 돌이나 금속의 표면을 매끄럽게 갈아 빛을 비춘 것이어서 선명하지 않고,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청동 거울(그리스)
청동 거울(중국)
동거울(이집트)
청동 거울(그리스)
청동 거울(중국)
고대 금속 거울
그 후, 12세기에서 14세기에는 과학이 발달하면서 유리의 제조 기술이 발달하여 전보다 투명하고 면이 고른 유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리 제조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는 16세기 초에 무색 투명한 유리판에 얇은 주석과 수은의 합금을 붙이는 방법이 개발되었고, 이 거울이 유럽에 점차 보급되면서 금속 거울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리를 코팅하는 공정은 매우 어렵고 위험해서 주로 사치품이나, 보석의 용도로만 사용되었고,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19세기에 이르자 은도금의 새로운 기법이 거울에 사용되게 되면서, 거울의 대량 생산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거울은 호화 사치품에서 일상생활 용품으로 차츰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은 대신 알루미늄으로 도금한 거울로 바뀌고 있는데, 알루미늄은 은보다 반사율이 떨어지긴 하지만 잘 변하지 않고 대기 오염으로 유리면이 흐려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거울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거울은 기원전 6세기경에 제작된 청동으로 만든 청동 거울입니다. 청동 거울은 고조선이 있었던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계속 쓰였는데, 과거에 거울은 사람의 얼굴을 비추어 보는 것뿐만 아니라 무당들이나 통치자들의 신기나 권력을 상징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청동 거울은 뒷면에 섬세한 기하학 무늬를 정교하게 만들고 끈을 꿰는 꼭지를 2개를 달아 꼭지가 많다는 뜻의 ‘다뉴경’이 주로 나타났는데, 거울의 비치는 면이 아닌 다른 면에 여러 가지 무늬나 글씨를 새겨 넣은 것으로 보아 당시, 단지 용모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것보다는 신기나 통치자의 권력을 보여 주는 도구였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다뉴세문경(국보 제141호)
이러한 다뉴경의 거친무늬거울은 부여소록도대전 등에서 출토되고 잔무늬거울은 양양 원주 영암 화순에서 출토되었습니다. 후에 만들어진 고려 시대의 거울은 고려의 청동 거울이라는 뜻에서 ‘고려경’이라고 하였으며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조선 시대에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청동 거울이 크기가 커지고 얇아졌고, 관에서 거울 제조 기술자인 경장을 두어 본격적으로 거울을 생산하였습니다. 또, 조선 시대에는 시전에서 거울을 판매한 기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