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허공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다
아내와 TV 앞에 나란히 앉았다. 팔십이 넘은 MC가 진행하는 가요무대를 시청하기 위해서였다. 아내가 무이하게 즐겨 보는 프로그램으로 MC는 절제되고 정감 있는 멘트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번 주는 TV 연속극 주제가를 선별하여 불렀는데 가수들의 맛깔스러운 제스처와 구성진 목소리가 잔잔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MC는 우한 코로나로 힘겹게 사투를 벌리고 있는 ― 누적 확진자가 4,000여 명을 넘어섰고 이중 90% 가까이가 대구 · 경북 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 시도민들과 의료진 및 자원봉사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나 격려의 말은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문득 2003년 대구의 지하철 참사를 떠올렸다. 그날 192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하는 등 아비규환을 이루었으나 ―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하며 속보를 알리거나 대책 등을 강구하는 방송국은 한 군데도 없었다 ― 시시덕거리거나 희희낙락대는 오락 프로그램만 종일토록 방영했다. 당시 잔여 임기가 6일 남은 대통령은 아무런 조치나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대통령 당선자는 3일 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서 죄인 된 심정이라며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상황이 대구 · 경북이 아닌 수도권에서 발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달은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질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 여자 국회의원은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는 언론을 적폐로 몰아붙이면서 감기에 무슨 마스크를 끼냐며 꼴 보기 싫다는 치기를 부렸고, 한 여자 장관은 미국을 걸고넘어지면서 우리나라가 중국인 입국 금지를 하지 않은 것에 중국 대사가 굉장히 고마워했다는 말을 자랑삼아 늘어놓았으며, 신천지 사단법인 설립허가의 당사자인 서울시장은 신천지를 우한 코로나의 진원지로 닦달하면서 중국인 입국 금지는 어불성설이라며 입술을 오물거렸고, 주무장관은 중국인 입국 금지가 아니라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라며 스스로 올가미를 쓰더니 겨울에는 모기가 없다는 수준 낮은 동문서답을 주절거렸으며, 어느 여자 소설가는 TK가 투표를 잘못해서 코로나 재난을 당하는 것이라는 사이코 같은 멍청한 말을 내뱉었다.
정점은 대통령이 찍었다. 뜬금없이 우한 코로나가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는 말을 필두로 이제는 정상적인 일상 활동과 경제 활동으로 복귀해야 될 시점이라는 말을 하자마자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확진자가 100여 명을 넘어선 시점에 짜파구리(기생충) 파티를 하며 목젖까지 들어내며 파안대소를 하자 첫 사망자가 나왔다. 기다렸다는 듯 집권당의 대변인이 목울대를 뻣뻣하게 치켜들고 대구 · 경북 지역을 감염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해 최대한의 봉쇄 조치를 단행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모든 게 역부족이었다. 중국의 어려움이 바로 우리의 어려움이라는 말로 치성을 표하며 중국을 향했던 시선은 한국인 입국 금지라는 중국의 역반하장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렸고, 함께 코로나를 극복하자며 북한에 건넨 보건 분야의 협력 제안은 탄도 미사일 발사로 뒤통수를 얻어맞았으며, 북한의 여자 부부장에게 겁먹은 개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감내해야만 했다. 90여 국가에서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했음에도 여전히 중국은 성역의 나라로 남아 있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다. 몇백 명에서 몇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마스크 몇 장을 사기 위해 ― 대구 · 경북 지방의 일만이 아니었다 ― 판매점을 이중 삼중으로 둘러싸고 서너 시간씩 줄을 서야만 했다. 감염의 위험이 있다면서 집회를 금지한 당국은 다닥다닥 붙어서 뒤엉켜 있는 군중은 못 본 척하는 것 같았다. 그런 중에도 중국으로는 마스크 몇백 만개, 라텍스 장갑 몇십 만개, 방호복 · 보호경 몇십 만개, 손세정제, 발전기, 분무형 소독기 등 60여억 원에 이르는 물품들이 무차별적으로 보내졌다. 중앙정부뿐만이 아니었다. 부산, 인천, 강원도, 제주도 등의 지자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개별적으로 동참을 했다. 마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의 마법에 걸려든 생쥐 떼들의 몰골을 연상시키는 광경이었다.
정부는 결국 무능의 한계를 드러냈다. 당초 사용하지 말라던 면 마스크는 사용해도 괜찮다는 말로, 한 번 쓰고 버리라던 보건용 마스크는 세탁을 해서 써도 괜찮다는 말로 바뀌었다. 거기에다가 악전고투 중인 대구 · 경북 지역의 의료진과 자원봉사들에게는 일반 가운을 입으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곁들였다. 한발 더 나아가 정부는 마스크 구매 5부제를 시행하겠다는 희한하고 씁쓸한 발상까지 내놓았다.
고무적이며 귀감이 되는 소식도 없지는 않다. 주저 없이 넓은 가슴으로 따뜻한 손을 내미는 연예인들이 200여 명을 넘어섰는데, 특히 대구 · 경북 지역에 대한 애정을 가진 연예인들만도 30여 명 가까이 이르렀다. 의리를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운 한 배우가 트럭을 타고 대구 시내를 돌며 마스크를 나누어 주는 모습은 가히 괄목할 정도로 순수하고 인상적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대기업체 10여 곳에서도 온정의 손길을 내밀며 동참을 했다.
우한 코로나가 발발한 지 달포가 지나갔다. 대구 · 경북 지방이 집중 조명된 이후에는 거의 집에서만 생활을 하고 있다. 일상화 된 새벽 산행은 그대로 하고 있으나 철봉과 아령 등 운동기구 등에는 일체 손을 대지 않은지 열흘이 넘어섰다. 오가며 지나치는 사람들과의 대화마저도 꺼려진다. 그 누구와 마주앉아 차를 한잔 나눈 기억도 까마득하기만 하다.
버스가 텅 비었다. 지하철도 텅 비었다. 동대구역 구내가 학교 운동장처럼 텅텅 비었다. 군데군데 식당들이 문을 닫았고 좌판 상인들이 사라진 재래시장 통로에는 찬바람만 휑하니 지나다닌다. 거리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감염되는 게 무서워 이렇게 움츠러드는 게 아니다. 만약 확진자로 판명이 되더라도 입원할 병원이 없어 치료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집에 그냥 격리된 채 방치되는 뼈저린 공포가 두려운 것이다.
2017년 인천 앞바다에서 낚싯배 전복 사고가 일어났다. 낚싯배를 타고 생선회를 먹으러 가던 22명의 사람들 중에서 15명이 사망한 사고였다. 다음날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희생자들의 추모 묵념을 제안하며 ―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국가의 무한 책임론을 강조했다. 그러나 우한 코로나의 사망자가 40여 명에 육박한 지금까지도 대통령은 추모 묵념은 고사하고 국민의 가슴에 와 닿는 진정성 담긴 메시지 하나 내놓지 않았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통령부터 달라져 기본을 바로 세워야 위정자들이 달라진다. 그래야만 중국을 기웃거리지도 않고 조야(粗野)하게 피리 소리를 따라다니거나, 집권당에서 특정 종교와 야당을 엮어 덤터기를 씌우려는 얄팍한 술수를 부리지도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연예인들과 대기업들에게만 기대지 말고 ― 우한 코로나로 나라와 국민들이 더 만신창이가 되기 전에 ― 낚싯배 사고 당시의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끝)
첫댓글 우왕좌왕, 아마츄어의 표본같아 보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