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삼살인
증삼살인(曾參殺人)은 ‘증삼(曾參)*이 살인(殺人)하다’는 뜻으로 ‘거짓말도 여럿에게 되풀이해 들으면 사실처럼 인식된다’는 의미로 통용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여러 사람에게서 반복해서 들으면 엄청난 거짓말일지라도 속아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다는 말’이다. 삼인성호(三人成虎)와 유사한 의미를 지니는 말로 최근에 이르러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기도 하는 현실이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가상공간에서 가짜뉴스, 왜곡된 여론, 비열한 비방과 모함 따위가 사회적 골칫거리로 등장하면서 심심치 않게 회자되기 때문이다. 이 성어의 생성 배경과 내재된 사연의 살핌을 통한 숨겨진 참뜻과 조우이다.
공자(孔子)의 유명한 제자 중에 하나인 증삼 즉 증자(曾子)에 얽힌 일화에서 ‘증삼살인’이라는 성어가 비롯되었다. 증삼이 젊은 시절 한 때 살았던 곳에서 무거운 해프닝이 발생했던 것 같다. 어느 날 뜬금없이 증삼의 어머니는 아들이 살인 했다는 소문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전해들으면서 심적인 동요를 겪는 과정에서 보였던 언행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유의어로 삼인성호(三人成虎), 투저의(投杼疑), 삼인성지호(三人成市虎) 등이 있다. 이에 대한 출전(出典)은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을 비롯하여 사기열전(史記列傳) 고사(古事 : 46) 증삼살인(曾參殺人) 등이다. 이에 얽힌 사연의 대략적인 적바림이다.
증삼이 예전(昔者)에 비(費)라는 곳에서 살 때의 일화라고 한다. 그 지역에 주인공인 증자와 엇비슷한 연배의 동성동명(同姓同名)의 다른 사람(異人)이 살고 있었는데 그가 살인을 했던 모양이다. 그 풍문을 전해들은 어떤 사람이 증삼 어머니에게 달려가 곧바로 말했다.
/ 증삼이 살인을 했답니다(曾參殺人 : 증삼살인) / (그 말을 듣고) 증자 어머니가 말했다(曾子之母曰 : 증자지모왈) / 내 아들은 살인을 하지 않았습니다(吾子不殺人 : 오자불살인) /
그리고 증삼 어머니는 태연하게 베를 짜고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와 급하게 전하는 말이 조금 전과 똑 같았다.
/ 증삼이 살인을 했답니다(曾參殺人 ; 증삼살인) /
그래도 증삼 어머니는 전혀 동요하는 기색 없이 태연자약하게 베를 짜내려갔다. 그러고 나서 또 다시 어떤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 증삼이 살인을 했답니다(曾參殺人 ; 증삼살인) /
같은 말을 두 번 들어도 꿈쩍도 하지 않고 돌부처처럼 열심히 베를 짜고 있던 증삼의 어머니는 세 차례 같은 말을 거듭 듣는 순간 굳건했던 확신이 와르르 무너졌는지 들고 있는 북*을 내동댕이치고 담을 넘어 어디론가 정신없이 뛰어갔다. 하늘같이 높고 바다처럼 깊은 증삼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믿음도 세 차례나 거듭해서 “증삼이 살인을 했답니다”라는 말에 전후 사정을 꼼꼼이 다질 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거짓이거나 잘못된 일지라도 사실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으면 진실처럼 여겨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대표적인 말이 틀림없다.
한편 이 얘기는 진(秦)나라 좌승상(左丞相)인 감무(甘茂)와 무왕(武王)이 주고받았던 대화에도 등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한나라 의양(宜陽)을 공격하러 떠난 사이에 자신을 비방하거나 모함하는 무고(誣告)가 발생할 것을 염려하여 ‘증삼살인’ 얘기를 예로 들어가며 자신의 입장을 황제께 이렇게 개진했다.
“증삼이 뛰어난 인재임에도 몇 사람을 통하여 거듭 잘못된 정보를 전해 들으면서 하늘같은 어머니의 믿음이 와르르 무너졌던 것입니다. 이 같은 증삼에 비해 소신은 보잘 것 없을 뿐 아니라 황제께서 저에 대한 믿음 또한 증삼의 어머니와 같을 수 없다고 사료되옵니다. 그런데 제가 멀리 떠나 전장에 머물 때 무고하는 사람들이 세 사람보다 훨씬 많을 터이기에 그들의 모함이나 비방과 무고에 성상께서 저를 저버릴까 두렵습니다”라고 진지하게 사뢰었다. 그 후 감무는 의양을 공격했는데 밀고 밀리는 대치 상태가 지속되어 여러 달 동안 뚜렷한 전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저리질(樗里疾)과 공손연(公孫衍)이 올린 감찰정보를 보고 즉각 소환해 문책하려고 했다. 그 때 감무는 지난날 황제와 독대하며 나눴던 ‘증삼살인’ 얘기를 상기시켜 왕의 마음을 돌리고 나서 더 많은 군사를 지원받아 의양을 평정했다고 전해진다.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자신을 낳고 길러준 어머니일 게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믿음은 이해타산을 초월해 무조건 베푸는 원초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 까닭에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믿음은 이 세상에서 최후까지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다. 그런 어머니의 믿음이 무너지면 더 이상 기댈 언덕이나 안식처는 어디에도 없다.
아들 증삼을 하늘같이 믿고 있었던 현명한 그의 어머니도 잘못된 허위 정보를 거듭 접하면서 아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대며 피하려 들었던 것이다. 뚜렷한 거짓이나 허위 사건일지라도 여론이나 중론이 그것이 진실인양 마구 우기면 그렇게 믿을 수밖에 도리가 없다는 말이 ‘증삼살인’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선거철만 되면 무수한 가짜뉴스, 허위와 무고가 횡행하며 진실처럼 사실을 왜곡하는 폐해가 극심한 현실을 목도(目睹)하면서 그 위력을 실감하지만 개인적으로 속수무책인 경우가 태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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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삼(曾參) : 중국 노(魯)나라의 유학자이다. 자는 자여(子輿)이고 공자의 덕행과 사상을 조술(祖述)하여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에게 전하였다. 후세 사람이 높여 증자(曾子)라고 일컬었다. 저서에 증자(曾子), 효경(孝經) 따위가 있다.
* 북 : 베틀에서 날실의 틈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씨실을 푸는 기구이다. 베를 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배(船) 모양으로 생겼다.
춘하추동, 2024년 여름호(제6호), 2024년 6월 3일
(2024년 3월 21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