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천계곡으로 들어가
말복과 겹친 팔월 셋째 월요일은 광복절이었지만 자연학교 학생은 공휴일과 무관하게 현장으로 나갔다. 현직이었을 때 광복절은 국경일 휴무지만 방학 중이라 무덤덤 지나갔는데 올해 팔월 달력은 주말에 이어 사흘째 빨간색이 칠해져 있었다. 근교 산행이나 강둑 산책 가운데 한낮은 무더위서 강둑보다는 산이 좋을 듯해 도시락을 챙긴 배낭을 둘러메고 스틱을 짚고 길을 나섰다.
날이 밝아오는 여명에 하현으로 기우는 칠월 열여드레 달은 샛별을 곁에 거느리고 서녘 하늘에 걸려 있었다. 반송 소하천을 따라 원이대로 창원수영장 맞은편에서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첫차 17번 버스를 탔다. 명곡 교차로를 지난 소답동에 이르니 일일 노동자인 듯한 차림의 사내들이 몇 내렸다. 더운 날씨에 건축이나 토목 건설 현장에 날품을 나가는 분들인 듯해 마음이 쓰였다.
버스가 천주암 아래에서 굴현고개를 넘어 외감마을 입구를 지날 때 내려 동네 어귀에서 달천계곡으로 들어섰다. 공원 관리사무소는 문이 닫혀 있고 오토캠핑장은 텐트에서 숙영한 이들이 있었다. 미수 허목 선생 유허 빗돌을 지나면서부터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를 가까이 들을 수 있었다. 북면 달천계곡은 도청 뒤 용추계곡과 진북 의림사 계곡과 함께 수량이 제법 넉넉히 흘렀다.
계곡 들머리 정자에서 다리를 건너 평상에 배낭을 벗어 놓고 물가로 내려갔다. 버스에서 내려 계곡을 드는 짧은 구간에 하루살이들이 얼굴과 팔뚝에 날아와 시야를 가렸는데 물에 손을 담그고 땀을 씻었더니 녀석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시 평상으로 돌아와 등산화를 벗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아침 명상에 잠겨 시간을 보내면서 물에서 나오는 음이온과 바윗돌의 지자기를 받았다.
쉼터에서 일어나 임도를 따라 오르니 천주암 꼭뒤 닿는 만남의 광장과 함안 경계 고개에서 정상으로 가는 이정표가 나왔다. 개울을 따라 깊숙하게 올라가는 천주산 제3 누리길을 택해 가니 개울 바닥에는 한여름 이맘때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는 물봉선이 선홍색 꽃잎을 펼쳐 나왔다. 지난번 용추계곡에서는 물봉선꽃을 한두 송이만 봤는데 이제 가을이 오는 낌새를 알 수 있었다.
목책 교량을 건너 산비탈에 갈지자로 연결된 숲길을 오르면서 초피열매를 몇 줌 땄다. 제피라고도 하는 향신료는 엊그제 인터넷 기사에서 광양 백운산 기슭에서는 대규모로 재배해 농가의 높은 소득원이라고 했다. 초피는 어탕의 향신료는 물론 약재나 화장품 원료로 쓰여 일본으로 수출한다고 했다. 우리 집에서는 추어탕을 끓이지 않아 초피열매는 꽃대감 친구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산비탈에서 함안 경계 고개에 이르니 조경용으로 식재된 벌개미취가 연보라 꽃을 피웠다. 벌개미취가 꽃을 피워 계절이 바뀌면 녀석과 같은 계열인 쑥부쟁이나 구절초가 가을 야생화 대열에 동참하게 된다. 시간이 좀 이르긴 했지만 고개 쉼터에서 앞으로 예상 진로는 정자가 더 나오지 않을 듯해 배낭의 도시락을 비웠다. 쉼터에서 일어나 칠원 산정마을 가는 임도를 따라 걸었다.
임도를 내려가는 비탈길에서 수목 갱신지구인 상봉 산기슭으로 뚫은 작대산 트레킹길로 들었다. 편백나무와 느티나무가 자라는 산등선 숲길에 빨간 고추잠자리가 앉아 있어 눈길을 끌었다. 야생에서 절로 자란 원추리와 뚝갈이 꽃을 피워 있었는데 둘 다 봄날에 여린 잎줄기는 산나물이기도 했다. 하얀 꽃의 뚝갈과 남매간이라 할 수 있는 마타리의 노란 꽃은 아직 보이질 않았다.
숲속 트레킹길에서 임도로 내려간 계곡에는 사방댐 공사 인부들이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땀을 흘렸다. 산중의 산정마을에 닿아 농주를 빚어 파는 한림 할머니를 찾아 인사를 나누고 청주에 해당하는 맑은 술을 한 병 시켰다. 청주는 체로 거르는 막걸리보다 먼저 용수에서 뜬 맑은 곡차였다. 근래 민감한 부위 염증 재발을 우려해 곡차를 자제했는데 맛을 봤더니 예전 그대로였다. 22.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