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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과 직결되는 위험한 급성심장마비.
피를 온몸으로 전달하는 심장의 펌프질이 갑자기 멈추는 급성심장마비는 3분 이상 지속되면 뇌가 손상되고 5분이 넘어가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
급성심장마비란?
생명과 직결되는 위험한 급성심장마비.
피를 온몸으로 전달하는 심장의 펌프질이 갑자기 멈추는 급성심장마비는 3분 이상 지속되면 뇌가 손상되고 5분이 넘어가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
▲ 심장정지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환자를 목격한 사람이 얼마나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응급처치를 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생사가 갈린다.
촌각을 다투는 심장마비 환자에게 119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너무 늦을 수 있다.
신속한 응급처치.
심장정지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환자를 목격한 사람이 얼마나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응급처치를 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생사가 갈린다.
촌각을 다투는 심장마비 환자에게 119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너무 늦을 수 있다.
2010년 2월7일 생을 달리한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 임수혁 선수의 죽음도 사고 현장에서 응급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진 것이 문제였다.
심장과 호흡은 살려냈으나 뇌에 산소 공급이 끊겨 뇌사 상태에 빠져 의식을 찾지 못하고 10년 가까이 병상에 누워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에 급성심장마비는 신속한 심폐소생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급성심장마비로 인한 사망의 경우 약 90% 가량이 병원 이외의 지역에서 발생하며 가정에서 발생하는 경우는 약 75%로 평소 환자 가족은 물론 일반인도 응급처치법과 함께 심폐소생술을 익혀둔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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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 살리라' 가수 홍세민 별세, 향년 71세.
심정지 사망.
2021. 12. 8. 17
"흙에 살리라''를 부른 가수 홍세민씨가 지난달 2021. 12월.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71세.
사진은 가수 홍세민 씨가 발표했던 음반.
1970년대 인기를 끈 대중가요 ‘흙에 살리라’를 부른 가수 홍세민씨가 지난달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71세.
8일 유족과 가요계 등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달 30일 오전 쓰러진 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다.
이달 초 발인식도 엄수됐다.
고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 속에 왕성하게 활동하지는 못했지만, 최근까지도 가수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고 유족은 전했다.
1950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난 고인은 동양공업전문대학을 졸업하고, 1971년 가수로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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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형곤 갑자기 사망
(종합2보)
2006. 3. 12. 08
개그맨 김형곤이 11일 오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향년 46세.
김형곤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H헬스사우나에서 목욕을 마치고 러닝머신에서 운동을 한 뒤 화장실에 갔다가 쓰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H헬스사우나의 헬스트레이너 이모씨(29)가 화장실 문틈으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문을 열어보니 쓰러져 있었다는 것.
이씨를 비롯한 직원은 오전 11시30분께 신고를 한 뒤 심폐소생술을 시도했고, 성동소방서 119구급대가 출동해 옮겼으나 11시50분께 인근 혜민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져 있었다.
병원에서는 정확한 사인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
고인의 시신은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져 빈소가 마련됐다.
1980년 TBC 개그콘테스트 은상을 수상하며 방송계에 데뷔한 김형곤은 '공포의 삼겹살'로 불리며 심형래, 최양락, 임하룡 등과 함께 80~90년대 큰 인기를 누렸다.
KBS '웃는날 좋은날' '유머1번지',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 등을 무대로 시사 개그를 선보였던 그는 '잘돼야 될텐데' 등의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극단 곤이랑을 만들어 연극 '등신과 머저리' 등을 공연했고, 모노드라마 '여부가 있겠습니까' '병사와 수녀', 뮤지컬 '왕과 나', 영화 '회장님 우리 회장님' 등에 출연했다.
1999년에는 자민련 명예총재특별보좌역으로 정치에 입문해
작년에는 자신의 웃음 철학을 담은 에세이집 '김형곤의 엔돌핀코드'를 출간했으며, 이달 30일에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교민을 대상으로 코미디쇼를 펼치기로 예정돼 있었다.
87년 'KBS코미디대상'을 비롯해 백상예술대상 코미디언 연기상, 예총예술문화상 연예부문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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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심장마비 사망.
2009-08-04
조오련.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57)씨가 4일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이날 오전 11시32분께 전남 해남군 계곡면 법곡리 조씨의 집 현관에서 조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부인 이모(44)씨가 발견, 119에 신고했다.
이씨는,
"인근에 사는 오빠의 집에 갔다가 점심을 챙기려고 집에 돌아왔더니 남편이 현관 앞에 쓰러져 있었다"
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구급대원 도착 당시 심장마비 증세를 보여 해남종합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낮 12시45분께 심폐정지로 숨을 거뒀다.
조씨는 대한해협 횡단 30주년인 내년 8월15일께 다시 횡단에 도전하기로 하고 제주도에 캠프를 차려놓고 준비하다가 1주일 전부터 자택에 머물며 부인과 함께 지내왔다.
조씨는 내년 횡단 도전을 앞두고 훈련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데도 후원자가 나서지 않아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특히 지난 2001년 전 부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앓았던 우울증이 재발해 약을 복용하는 상태였으며 `잠이 오지 않는다'면서 소주에 몇 포의 약을 한꺼번에 먹거나 혼자 과음하는 일도 있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했다.
조씨의 친구 김용철씨는,
"후원비 문제로 고민하면서도 호적(1952년생)과 달리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60세가 되는 해여서 `환갑의 힘'을 과시해 국민에게 용기와 힘을 주겠다고 의욕을 불태웠었다"
며,
"최근 함께 식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안타깝다"
고 말했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시신을 부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부인과 아들 성웅.성모 씨 등 유족은 장례절차를 논의하고 있다.
해남에서 태어나 양정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고인은 1970년 방콕,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수영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연속 금메달을 땄으며 선수 시절 한국신기록 50번을 세우는 등 `아시아의 물개'로 명성을 떨쳤다.
1980년과 1982년 대한해협과 도버해협을 각각 횡단하고, 2005년에는 두 아들과 함께 울릉도~독도를 헤엄쳐 건너기도 했으며 대한수영연맹 상임이사,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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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2011-12-19.
19일 낮 북한 조선 중앙방송이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17일 08시 30분에 사망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
“지난 17일 오전 8시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
김정은 공식 후계자 확정.
사망 발표문에,
“김정은 동지의 통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9일 낮 12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7일 오전 8시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향년 70살. 조선중앙방송은,
“김 위원장이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다가 겹쌓인 정신육체적 과로로 하여 열차에서 서거하셨다”
고 전했다.
병명은 급성 심근경색과 심장쇼크다.
현지지도에 나선 것을 보면 당시 건강이 나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고,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이 갑자기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시신은 김일성이 묻힌 금수산 기념궁전에 안치돼 28일 영결식을 치룰 예정이며, 중앙추도대회가 열리는 29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정한다고 조선중앙통신은 밝혔다.
김정일 위원장은 1941년 2월 김일성과 김정숙 사이서 출생했으며, 1993년 국방위원장 자리에 올라 1994년 사망한 김일성의 뒤를 이어 북한을 통치해 왔다.
2008년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진 뒤 건강이상설이 계속됐으나 올해 8월 러시아와 중국을 방문하며 건재를 과시한 만큼 갑작스런 사망소식은 한반도 정세를 안갯속으로 몰아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일의 뒤는 세번째 아들 김정은이 잇게 된다.
지난해 후계자로 급부상한 그는 이날 조선중앙방송이 김정일 사망 발표문에서,
“존경하는 김정은 지도자의 영도를 충직하게 받들자”
라고 표현함으로서 공식적인 후계자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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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터틀맨, 오늘(2일) 15주기
여전히 그리운 거북이 리더.
그룹 거북이의 리더 故터틀맨(본명 임성훈)이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흘렀다.
터틀맨은 지난 2008년 4월 2일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38세.
지난 2001년 혼성그룹 거북이의 리더로 데뷔한 터틀맨은 '고! 부기!(Go! Boogie!) 거북이'로 데뷔, '사계', '왜 이래', '컴온(Come On)', '빙고', '비행기' 등 히트곡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터틀맨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 거북이는 유작 '어깨 쫙'을 수록한 스페셜 앨범 '못다한 이야기'를 발매했다.
남은 멤버 금비, 지이는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해체를 선언했다.
이후 2020년, 케이블채널 엠넷 '다시 한번'에서 터틀맨의 목소리와 생김새를 AI 음성 복원 기술과 페이스 에디팅 기술을 통해 복원했다.
복원된 터틀맨은 금비, 지이와 함께 12년 만의 거북이 완전체 무대를 선보여 감동을 자아냈다.
한편 터틀맨은 현재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에 안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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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이클 잭슨은 사망했다고 병원 측이 밝혔다.
경찰은 미국 시간으로 부검을 실시해 그의 사인을 밝히겠다고 발표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팬들이 그의 집으로 몰려들고 미국 뉴스전문 케이블 방송 CNN은,
그의 죽음에 대한 속보를 계속 내보내고 있는 가운데 그의 심장병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설만 난무하는 상황이다.
“사망 전날 밤 리허설에서 힘들어해”
미국 언론들은 사인에 대한 보도를 일절 삼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연예인 가십 사이트의 지인들의 말이라며 여러 발언들을 보도하고 있다.
이 사이트는 우선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잭슨 가속의 일원이,
“마이클 잭슨은 최근 건강이 아주
안 좋았다”
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사이트는 또한,
“마이클 잭슨이 사망 전날 밤 로스앤젤레스 시내 소재 스테이플스센터
체육관에서 7월13일 시작할 런던 공연의 리허설을 가졌으며, 당초 오후 7시로 예정됐던 리허설에 오후 10시나 돼서 나타났으며,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주 지치고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고 리허설 참가자들이 전했다”
고 전했다.
이 사이트는 또한 런던 공연에 앞서 마이클 잭슨의 체력 강화 훈련을 맡고 있는 액션 배우 루 페리뇨(TV 드라마 ‘헐크’의 주인공)의 아내를 인터뷰했으며 그녀는,
“내일 남편이 마이클 잭슨을 훈련시키러 로스앤젤레스로 가기로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너무 충격적이다”
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마이클 잭슨의 직접적 사망원인인 급성 심정지는 심장 펌프 기능이 순간적으로 중지되는 증세다.
급성 심정지는 심근경색, 협심증, 부정맥 같은 심장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많이 발생한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은 평소 심장질환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에 대해서는 그동안 성형 후유증 때문에 슈퍼 박테리아 감염됐다든지 피부암에 걸렸다는 보도가 나왔으며, 2005년에는 그의 집에서 코케인 마약이 나왔다는 보도도
있었다.
마이클 잭슨은 10년 만에 무대에 복귀하는 7월13일 런던 공연을 목전에 두고 있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러한 스트레스가 그의 죽음을 앞당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응급의학과 박규남 교수는,
“스트레스 호르몬은 관상 동맥을 더 좁게 만들고 심장으로 공급되는 피의 양 자체를 적어지게 함으로써 급성 심정지의 주요 원인인 심실성 부정맥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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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 왕’ 김일씨, 별세.
2006-10-26.
세계 레슬링 대회장 찾은 김일 지난 1960~70년대 프로레슬링계를 풍미했던 '박치기왕' 김일씨가 2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1960∼70년대 국내 프로레슬링계를 풍미했던 `박치기 왕' 김일 씨가 26일 노원구 하계동 을지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주치의인 을지병원 순내과 최재웅 교수는,
"평소 당뇨합병증과 고혈압, 심부전 등의 지병과 싸워 온 김씨가 이날 낮 12시17분 사망했다"
고 밝혔다.
최종 사망원인은 만성신부전증과 신장혈관 이상으로 인한 심장마비.
하루 전날 급격히 혈압이 낮아지면서 의식을 잃은 김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진 뒤 심폐소생술과 혈압을 높이는 치료 등을 받았으나 끝내 숨을 거뒀으며 아들 수안(56)씨와 첫째 딸 애자(61)씨, 둘째 딸 순희(59)씨 등 친인척,
제자 이왕표 한국프로레슬링연맹 회장 등 지인 30여명이 임종을 지켜봤다.
이왕표 프로레슬링연맹 회장은,
"선생님은 얼마 전만 해도 출판기념회를 열 것이라며 좋아하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시게 돼 너무 안타깝다"
면서 눈물을 흘렸다.
지난 1957년 역도산체육관에 입문하며 레슬링을 시작한 김씨는 1963년 세계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당시 프로레슬링계를 주름잡았던 국민적 영웅.
특히 특유의 박치기 기술로 상대를 제압할 때면 전 국민이 열광적인 응원을 보내면서 당시 시름을 덜어내기도 했다.
고(故) 장영철, 천규덕 등 한국 프로레슬링 1세대와 함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 1970년대 중반 현역에서 물러난 김씨는 이후 일본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였지만 번번이 실패를 맛봐야 했고, 이후 경기 후유증으로 지병까지 생기면서 외로운 투병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다 김씨의 팬이었던 박준영 을지병원 이사장의 권유로 1994년 1월 귀국해 10여년간 을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서 지속적인 치료를 받으며 한 때 건강이 호전돼 후배 양성과 프로레슬링 재건사업 등에 의욕을 보이기도 했지만 지난해 결장 제거수술 이후 인공항문에 의지해야 했다.
최근에는 만성신부전증까지 겹쳐 신장투석을 받는 등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했고 결국 이날 세상을 떠났다.
한편 김씨의 빈소는 을지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 특실에 마련됐고 28일 오후 경기도 벽제에서 화장을 한 뒤 유골은 고향 전남에 안치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