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를 보면서 떠오른 물의 교훈
요즈음 우리나라의 으뜸 화두(話頭)는 우환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관심사다.
내가 사는 진주시도 2명의 확진 환자가 발병했고, 그들과 접촉하여 자가(自家) 격리를 받고 있는 사람 숫자가 오늘 현재 228명이다.
외출을 해 보면 거리에는 사람의 발길이 현저하게 줄었고 대중이 모인 실내는 아예 들어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코로나의 원 뜻은 태양의 표면 바깥쪽에 나타나는 플라스마라는 기체가 초고온에서 이온화 되어 빛을 발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빛은 태양계 바깥 방향으로 퍼져 나가는데 전자입자 형태로 퍼져 나간다. 이것을 흔히 태양풍이라 하는데 태양풍은 플라스마 가스의 흐름이다.
플라스마가 발하는 빛을 평소에는 태양의 밝은 빛 때문에 육안으로는 식별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개기일식일 경우 달이 태양을 가리면 태양의 가장자리에 있는 플라스마가 불꽃처럼 빛을 발하기 때문에 쉽게 육안으로도 관찰할 수 있다.
이때 보이는 코로나의 외형 모습이 왕관과 비슷하다. 코로나는 라틴어로 왕관이라는 뜻이다.
전자 현미경으로 우환 코로나 바이러스를 관찰하면 바이러스 형태가 코로나와 비슷하다. 그래서 코로나 바이러스라 명명된 것이다.
1960년대 중반에 우리나라에 코로나라는 이름을 가진 택시가 있었다. 그 택시는 우리나라 기술로 만든 차가 아니고, 일본 토요타 부품을 전량 도입하여 우리나라 신진 자동차에서 조립 생산한 1,500cc급 택시였다.
코로나 택시가 어느 의미에서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영업용 택시라 할 수 있다. 물론 코로나 택시보다 보다 앞서 운행한 시발이라는 택시가 있기는 했었다. 그 차는 미군이 타던 군용 지프차 중에서 폐기하려는 중고차를 불하받아 드럼통을 펼쳐 외관만 꾸며 만든 택시였다. 승차감이나 성능에서 코로나 택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일반 서민들은 코로나 택시를 한번 타보기가 쉽지 않았다. 가끔 새신랑이 장가를 갈 때 이 택시를 대절하여 타고 가곤 했다. 이 택시를 대절할 수 있을 정도면 신랑 집안의 형편이 살만한 집안이다. 간혹 시골에 코로나 택시가 나타나면 동네 아이들이 달려 나와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까지 그 택시를 좇아가곤 했다.
코로나 택시는 시발택시에 비해 성능과 승차감이 탁월하고 거기에 브레이크시스템도 좋아 영업용 자동차로는 으뜸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코로나 택시가 시발택시보다 훨씬 사고율이 높았다. 그것은 코로나 택시의 성능만 믿고 운전자들이 과속으로 달린 횡포 때문이었던 것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환 코로나를 대하는 당국자들의 태도가 권력의 힘만 믿고 과신하는 모습이었다. 마치 코로나 택시의 성능만 믿고 오만하게 운전하는 당시의 운전자 모습과도 같았다. 그것이 질병을 관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방심을 가져오게 한 것은 아닌지?
대통령은 “곧 코로나가 종식될 것입니다.”라고 예단을 했고, 국무총리는 “마스크도 안 써도 된다.”라 했고, 경제 부총리는 “과도한 공포가 문제다.” 라 했고, 법무부 장관은 “중국인 입국 금지를 하지 않은 것이 잘 한 일이다.” 라 했고, 여당 지도부는 바이러스 대처를 잘 했다.“라고 자화자찬까지 했다. 그것이 결국 국민들의 마음을 느슨하게 해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걷잡을 수 없을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의사들이 국가 전염병 관리 단계를 최고 단계인 심각단계로 격상하도록 건의를 해도 정부는 국민들에게 실정으로 비칠 것이 두려워 거부하다가 걷잡을 수가 없게 되자 하는 수 없이 뒤늦게 최고 단계인 심각단계로 격상을 한 것이다.
載舟覆舟(재주복주)라는 고사가 있다. ‘물은 배를 싣기도 하지만 뒤엎기도 한다.’ 는 뜻이다.
戰國時代(전국시대) 때 荀子(순자)의 말이다.
荀子(순자) 王制(왕제)편에 “君舟也(군주야) 人水也(인수야) 水能載舟(수능재주) 亦能覆舟(역능복주)”라는 말이 있다.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임금이 통치를 잘하면 백성은 잘 따르지만, 잘못하면 백성들의 저항을 불러와 정권이 뒤집힐 수 있다는 뜻도 된다.
孔子家語(공자가어)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夫君者舟也(부군자주야), 人者水也(인자수야). 水可載舟(수가재주), 亦可覆舟(역가복주). 君以此思危(군이차사위), 則可知也(즉가지야).
무릇 군주란 배요,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또한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군주가 이것으로써 위험을 생각한다면 ‘다스림의 도리’를 안다고 할 만하다.
공자(孔子)의 이 말을 인용하여 널리 퍼지게 한 사람은 후한(後韓)의 장군 황보규(皇甫規)다. 그는 이 말을 인용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외척 양기(梁冀)에게 간언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후한 멸망의 주된 원인은 권력을 전횡하고 온갖 횡포를 부린 외척과 환관이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외척은 무려 20년 동안이나 권력을 전횡한 양기였다. 양기는 순제(順帝) 때 여동생이 황후가 되자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하여 충제(沖帝), 질제(質帝), 환제(桓帝) 등 4대에 걸쳐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이다. 순제가 27세에 돌연 사망하자 양기는 포대기에 싸인 두 살배기 어린아이 충제를 황제 자리에 올리고 여동생 양황후(순제의 부인)를 태후로 삼아 수렴청정을 하게 하여 전권을 장악했다. 충제는 즉위한 지 5개월 만에 죽었다. 조정 대신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양기는 여덟 살의 어린 유찬(劉纘)을 황제로 올렸는데, 이 아이가 질제다. 양기가 이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자 당시의 명장이던 황보규가 ‘對策(대책)’이란 글을 올렸는데,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夫君者舟也(부군자주야), 人者水也(인자수야). 群臣乘舟者也(군신승주자야), 將軍兄弟操揖者也장군형제조집자야). 若能平志畢力(약능평지필력), 以度元元(이도원원), 所謂福也(소위복야). 如其怠弛(여기태이), 將淪波濤(장륜파도), 可不愼乎(하가신호)
무릇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입니다. 여러 신하는 그 배에 탄 사람들이고, 장군(양기) 형제는 노를 젓는 사람입니다. 성의를 가지고 힘을 다하여 백성들을 건너게 해야 복이 될 것입니다. 만약 태만하고 거드름만 피운다면 장차 거센 물결에 빠지고 말 것이니,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이야기는 후한서(後漢書) 황보규전(皇甫規傳)에 나온다. 양기는 이 간언을 듣지 않고 질제를 독살하고 환제를 세웠는데, 결국 환제에 의해 제거되었다. 환제는 환관들의 힘을 빌려 양기를 없애고 그의 재산을 몰수했으며, 그의 일족과 친척들까지 모두 죽여 버렸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水能載舟亦能覆舟(수능재주역능복주)’라 했다.
이러한 말을 사용한 사람들은 지금부터 2,500년 전이나 2,300년 전의 사람들이다. 그 때의 권력자들의 횡포나 지금 권력자들의 횡포가 포장만 달리했을 뿐 근본적으로는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유한(有限)한 권력인데도 일단 권력을 잡고 보면 무한(無限)하게 권력을 누릴 것으로 착각하고 무리수를 두면서 전횡을 한다. 이것이 覆舟(북주)의 단초가 된다. 전횡이 심하면 심할수록 더 거센 풍랑을 맞아 후일에 더 큰 재앙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법인데 정치인들은 그것을 모른다.
易(역)은 태양과 달의 운행에 의해 만물이 생성되고 성장하고 소멸된다. 고 보는 이론이다. 태양은 양이고 달은 음이다. 만사는 음양의 순환 이치에 의해 결정된다. 양이 최고치에 이르는 그 순간에 음이 발생하여 점점 자라게 되고, 반면에 양은 점점 쇠약해저 음이 최고치에 이르게 된다. 그것이 반복되는 것이다.
권력이나 이념의 흐름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한 법칙을 역행하려고 들면 들수록 더 큰 역기능이 작용하여 더 큰 화를 부르는 것이다.
자고로 순천자(順天者)는 흥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 고 했다.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면 흥하지만 거스르면 망한다는 뜻이다. 시세에서 바름의 편에 서라는 뜻이기도 하다. 또 다른 의미는 일관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기회주의자를 경계하는 말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이 대중들을 한 때는 사술로 속일 수 있을망정 영원히 속이지는 못한다.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것처럼...
역사가들이 훗날 오늘날의 역사를 어떻게 기록할지 그것이 흥미롭다. 과연 충신은 누구며 역적은 누구인지를 어떻게 구분하여 기록할지 그것이 궁금하다.
그 때 안방을 장식할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누구며 그 사람들로 표현될 캐릭터가 어떻게 그려질지 벌써 궁금증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