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등장(登場)하는 사마의(司馬懿) -
위군(魏軍) 대도독(大都督) 조진(曺眞)의 아들 조상(曹爽)이 상소문(上疏文)을 가지고 낙양(洛陽)의 천자(天子) 조예(曺叡)를 배알(拜謁)하였다.
넓디 넓은 장락궁(長樂宮) 단상(壇上) 위에서 위주(魏主) 조예(曺叡)가 단하(壇下)의 꿇어 앉은 조상(曹爽)을 향(向)하여 엄(嚴)히 꾸짖었다.
"패전(敗戰)만 거듭한 네 아비는 어찌 아니 온 것이냐! 가문(家門)에 먹칠을 하고 다니는구나. 네 아비 때문에 나라가 곤경(困境)에 처(處)했는데, 무슨 낯으로 아직 살아 있는 것이냐! 뻔뻔하기 짝이 없구나!"
위주(魏主) 조예(曺叡)는 팔을 휘저어 가면서 패전을 거듭하는 조진(曺眞)을 향해 노여움을 드러내 보였다.
"폐하(陛下)! 아버님께선 패전(敗戰) 후(後) 여러 차례 자결(自決)을 시도(試圖)했으나 장군(將軍)들의 만류(挽留)로 포기(抛棄)한 겁니다. 장군들은 아버님이 지금 자결한다면 병사들의 사기(士氣)가 저하(低下)되어 큰 혼란(混亂)이 생길 것이니, 먼저 제갈량(諸葛亮)을 물리친 후 상황(狀況)이 정리(整理)되면 그때 다시 생각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며 극구(極口) 만류하였습니다. 하여, 그 말도 일리(一理)가 있어서 아버님께서는 나중에 폐하(陛下)께 사죄(謝罪)를 드리고 자결(自決)하겠다 하셨습니다. 흐흐흑..." 조상(曹爽)은 초라한 몰골로 이렇게 아뢰면서 연신 눈물을 짜는 것이었다.
이것을 인간적(人間的)인 눈빛으로 딱하게 바라보던 조예(曺叡)가 입을 열어 말한다.
"비장(悲壯)하구나. 그런데 왜 직접(直接) 오지를 않고 너를 보낸 것이냐?"
"직접 오려 하였으나 촉군(蜀軍)이 언제 공격(攻擊)해 올 지 모르는데 후임(後任)도 없이 병영(兵營)을 비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아버님께서 폐하(陛下)께 청(請)하길 자신(自身)을 파직(罷職)하고 사마의(司馬懿)를 후임(後任) 대도독(大都督)으로 등용(登用)하시면 전쟁(戰爭)이 끝날 때까지 그의 곁에서 돕겠다 하셨습니다. 하오니 명(命)을 내려 주시옵소서. 으윽!"
조상(曹爽)은 이렇게 아뢰면서 말미에 고개를 꺾고 그대로 푹 고꾸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瞬間) 조예(曺叡)는 흠칫 놀랐고, 곧이어 시종 둘이 달려나와 쓰러진 조상(曹爽)을 일으켜 부축하였다.
"폐하(陛下), 조장군(曹將軍)이 팔이 부러졌습니다." 조상(曹爽)의 상태(狀態)를 살펴 본 시종이 황제(皇帝)에게 현상(現狀)을 고(告)하였다.
조상(曹爽)이 몸을 가누는 동안 황제(皇帝)는 그가 가져온 상소문(上疏文)을 다시 한번 펼쳐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예외(例外)없이 겨우 꿇어 엎드린 조상(曹爽)을 향해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발동(發動)한 명을 내린다.
"조상(曹爽)은 들으라."
"예."
"너는 부상(負傷)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싸웠으니 죄(罪)를 묻진 않겠다. 그러나 네 아비에겐 감옥(監獄)을 비워두었으니 속히 낙양(洛陽)으로 돌아오라고 하여라."
"허나 아버님께선 감옥(監獄)에는 못 가실 겁니다."
"어째서 그렇단 말이냐?"
"제가 떠나올 때 아버님께선 중병(重病)에 걸리셔서 피를 토하셨습니다. 하오니 어쩌면 지금 눈을 감으셨을 지도 모르옵니다. 흑...흑흑...!"
조상(曹爽)의 흐느낌이 고조되자 조정(朝廷)을 주름잡는 조씨(曺氏) 집안의 대소 신료(大小臣僚)들이 하나 둘 진언(進言)을 위해 단하(壇下)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각자(各自) 천자(天子)를 향(向)해,
"폐하(陛下)! 조진(曺眞)을 살려주십시오!"
"그의 아들 조상(曹爽)이 갸륵하오니 부디..."
"통촉(洞燭)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제각기 아뢰니 천자(天子)로서도 집안 가족(家族)들의 진언(進言)을 무시(無視)할 수 만은 없었다. 그리하여,
"이보시오. 화흠(華歆)." 하고, 호명(呼名)하니,
이때까지 아무런 말도 없이 무표정(無表情)한 모습으로 이 모든 상황(狀況)을 지켜만 보던 화흠(華歆)이,
"예, 폐하(陛下)!" 하고, 대답하며 중앙(中央)으로 나아가 읍(揖)하였다.
화흠(華歆)을 향해 조예(曺叡)의 명이 떨어졌다.
"지금 당장(當場) 사마의(司馬懿)를 불러 오도록 하시오."
위주(魏主) 조예(曺叡)에 의해 대도독(大都督)에 임명(任命)된 사마의(司馬懿)는 즉시(卽時)로 아들 사마소(司馬昭)와 함께 낙양(洛陽)을 출발(出發)하여 위군(魏軍) 본영(本營)에 도착(到着)하였다.
전임(前任) 대도독(大都督) 조진(曺眞)을 요양차(療養次) 옹양(壅凉)으로 떠나 보낸 위군(魏軍) 장수(將帥)들이 도열(堵列)하여 신임(新任) 대도독(大都督) 사마의(司馬懿)를 맞이하였다.
사마의(司馬懿)는 대도독(大都督) 군막(軍幕)에 발을 들이자 마자 장군(將軍) 곽회(郭淮)를 호명(呼名)하였다.
"곽회(郭淮)!"
"예."
"자네가 부도독(副都督)이지?"
"예."
"조진(曺眞)이 옹양(壅凉)에서 요양(療養)하고 있으니 본(本) 도독(都督) 전(前)까지 책임자(責任者)는 자네겠군. 맞나?"
"예."
"헌데, 여기 오는 길에 탈영병(脫營兵)을 아홉이나 잡았네. 그래서 그 자들을 심문(審問)해 보니 우리 위군(魏軍)은 군심(軍心)이 어지러워 탈영병이 속출(續出)하고 있다던데 도대체(都大體) 군기(軍紀)를 어찌 잡은 것인가?"
사마의(司馬懿)의 힐난(詰難)에 곽회(郭淮)가 쩔쩔맨다.
"아뢰옵니다. 실은 저도 그러한 상황(狀況)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탈영(脫營)이 너무 많아 소장(小將)도 속수무책(束手無策)인 실정(實情)입니다."
"단속(團束)이 안 되면 처형(處刑)을 해야지. 안 그런가?"
"그때 마다 처형(處刑)을 해버리면 앞으로 전쟁(戰爭)에선 누가 싸우겠습니까?"
곽회(郭淮)의 이 말에 사마의(司馬懿)는 곧바로 대답하지 아니하고 군막(軍幕) 안에 장수(將帥)들을 한바퀴 돌아본다.
그리고 이어서,
"탈영병(脫營兵)이 싸우나? 탈영병 하나가 군영(郡營) 전체(全體)를 망치는데...!" 하고, 말한 뒤에 대도독(大都督)의 자리에 좌정(坐定)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밖에 있는 호위병을 부른다.
"여봐라!"
"예!" 호위병(護衛兵) 둘이 쏜살 같이 달려 들어오며 대답(對答)하였다.
그러자 사마의(司馬懿)의 명(命)이 곧바로 떨어진다.
"곽회(郭淮)를 끌고가 공개 처형(公開處刑)하라."
"네...엣?" 이 소리를 듣고 놀란 사람은 당사자當事者)인 곽회(郭淮) 뿐만이 아니었다.
군막(軍幕) 안에 있던 장수(將帥)들도 일제(一齊)히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대도독(大都督)! 군심(軍心)의 이반(離反)은 전임(前任) 대도독 조진(曺眞) 장군(將軍)의 탓입니다!"
"대도독! 곽 장군(郭將軍)이 소홀(疏忽)한 점은 있으나 조 장군(曺將軍)이 이임(離任)한 뒤에 최선(最善)을 다했습니다. 만일 그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적(敵)의 공격(攻擊)으로 패퇴(敗頹)를 면치 못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군(軍)의 해이(解弛)한 기강(紀綱)을 곽 장군(郭將軍)에게만 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대도돋(大都督)! 저희들이 목숨을 걸겠습니다. 탈영병(脫營兵)이 또 나오면 저희도 함께 처벌하십시오."
이렇듯 곽회(郭淮)를 구(救)하기 위한 장수들의 탄원(歎願)이 연속(連續)해 이어지자 사마의(司馬懿)는 짐짓 근엄(謹嚴)한 표정(表情)을 지어보이며 처벌(處罰)을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새로 부임해 온 군영(軍營)의 군기(軍紀)를 반드시 세울 필요(必要)가 있다는 판단(判斷)을 한 사마의(司馬懿)는 준엄(峻嚴)한 명을 내린다.
"들어라! 군기(軍紀)가 없으면 자멸(自滅)하는 법! 오늘부터 탈영자(脫營者)는 참(斬)한다. 병사(兵士)가 탈영(脫營)히면 오장(伍長)을 참(斬)하고, 오장이 탈영하면 십장(什長)을 참(斬)하며, 십장이 탈영하면 교위(校尉)를 참(斬)하며, 교위가 탈영하면 장군(將軍)을 참(斬)하며, 장군이 탈영(脫營)하면 나 사마의(司馬懿)가 스스로 목을 베 조정(朝廷)에 사죄(死罪)하겠다." 하고, 말하니,
장중의 장수들이 일제히 한소리로 복명한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참수(斬首)를 명했던 곽회(郭淮)를 내려다 보다가 호위(護衛) 군사에게 명한다.
"군기(軍紀)를 세우지 못한 죄로 곤장(棍杖) 삼십 대를 쳐라!" 하고, 명하니,
호위 병사는 즉시,
"예! " 하고, 대답하며 곽회(郭淮)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곽회(郭淮)가 처벌(處罰)을 받기 위해 밖으로 끌려 나가자 사마의(司馬懿)는 장중의 장수들을 향하여,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라. 작전 회의(作戰會議)를 하겠다." 하고, 입을 여니 곽회(郭淮)의 용서(容恕)를 탄원(歎願하기 위해 부복(俯伏)했던 장수(將帥)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열(隊列)이 정돈(整頓)되자,
"장군(將軍)들은 들어라. 본 도독(本都督)의 첫번째 군령(軍令)은 내 앞에 있는 탁자(卓子)의 교환(交換)이다. 당장(當場) 동(銅)으로 된 탁자로 교환하거라."
"알겠습니다!"
사마의(司馬懿)는 자신(自身)의 앞에 있는 나무 탁자(卓子)를 바꾸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리하여 전임(前任) 대도독(大都督) 조진(曺眞)이 사용(使用)하던 나무탁자는 당장 들려 나갔다.
탁자가 들려 나가자 사마의(司馬懿)는 군령(軍令)을 다시 하달(下達)한다.
"본 도독(本都督)의 두번째 군령은 외곽(外郭) 경계(警戒)만을 교대(交代) 시키면서 전군(全軍)의 이틀간 휴식(休息)이다. 영내(營內)의 술과 고기를 모조리 끄집어 내어 병사들이 배불리 먹고 취하게 하라."
"하하하하! 알겠습니다!" 장수(將帥)들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를 듣고 일제히 좋아하며 대답하였다.
그러나 사마의(司馬懿)를 수행(隨行)하여 함께 임지(任地)로 온 아들 사마소(司馬昭)는,
"대도독(大都督), 장수(將帥)조차 모두 취(醉)했다가 일이라도 생긴다면 어쩝니까?" 하고, 걱정을 아뢰었다.
그러나 사마의(司馬懿)는,
"괜찮다, 내 사령기(司令旗)를 외곽(外郭) 경계 초소(警戒哨所) 언덕 위에 꽂아라. 촉군(蜀軍)이 보고서는 겁을 집어먹고 삼십 리는 후퇴(後退)할 것이다." 하고, 자신감(自信感)에 넘치는 소리를 내뱉으니
사마소(司馬昭)를 비롯한 장중(場中)의 장수(將帥) 모두가 신임(新任) 대도독(大都督)의 말 뜻을 단박에 알아 차리고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웃으며 복명(復命)하였다.
"하하하하! 알겠습니다!"
삼국지 - 375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