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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31일 토요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12
1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2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3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4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5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11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충고와 맹세만큼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잘 살라고 충정어린 말로써 충고해주는 경우는 그 충고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충고해주는 사람이 서로 진심으로 충고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충고는 참으로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말은 아주 간단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지만 충고하는 사람의 본심을 알지 못하고 앙심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충고는 충고를 하지 않은 편지 더 나을 수도 있답니다. 그래서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 ‘충판해탐’(忠告, 判斷, 解釋, 探索)을 성공적인 인간관계에서 조심해야 하는 네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말을 온몸으로 경청한 다음에 아주 조심스럽게 활용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금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자 요한은 헤로데에게 여러 차례 그의 부당한 행동을 꾸짖습니다. 그의 이 꾸짖음은 하느님 중심의 뜻으로 충고라기보다는 하느님을 대신한 참된 예언자로서 꾸짖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언자의 말씀을 충간(忠諫)하는 것입니다. 그가 정말 이스라엘의 영주답게 하느님의 올바른 자녀답게 살기를 바라는 호소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호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예언자의 입을 봉하려고 감옥에 가두어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구실을 만들어 자신의 행동이 올바르다고 변명하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매일 많은 맹세를 하고 살아갑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주님께 약속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그리고 매 시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마음 아파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결혼할 때도 맹세하였고, 세례 때도 미사에 참석할 때도 수없이 약속하고 지키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헤로데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또한 주님의 앞에서 함부로 맹세하였습니다. 생일 날 춤을 춘 독부의 딸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맹세(盟誓)는 성경에서도 함부로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주 너의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이름으로만 맹세하여라.”(신명기 6, 13)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되 그 이름에 경외심을 가지고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헤로데는 주님의 이름으로 함부로 맹세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지도자나 랍비들이 맹세에 대하여 함부로 맹세하기 때문에 주님은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마라, 땅은 하느님의 발판이다. 예루살렘을 두고 맹세하지 마라. 예루살렘은 그 크신 임금님의 도성이다. 너희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마라.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다.” (마태오 5, 34~35)라고 강력하게 맹세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서로 상충되는 것 같은 구절이지만, 이것은 인본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그릇된 맹세관을 갖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주신 교훈입니다. 또한 맹세를 가볍게 여기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꾸짖으심입니다.
맹세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묵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서 맹세하게 되거나 증언하게 되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신중하여야 하겠습니다. 위증, 거짓 맹세, 맹세와 서약의 위반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형제들과의 친교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형제들의 신앙생활이나 가정생활을 서로 얘기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이 이 모든 것입니다. 금전적으로도 함부로 맹세할 수 없는 것이지요. 돈이 거짓말하지 사람이 거짓말 한다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둘째는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헤로데의 경솔하고 감정에 사로잡힌 맹세는 정말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맹세한다면 그 것은 하느님께 올바른 예배가 될 것입니다. 신앙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불필요한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어려서 친구들과 말할 때 ‘천주께 맹세코 진실이다.’라는 말을 많이 하였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맹세가 주님을 크게 상심케 하였음을 요즘 깨닫고 있답니다. 특히 감정에 사로잡혀 말을 함부로 하거나 하느님을 증인으로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하는 것을 하느님께 전가해서야 되겠습니까?
셋째는 우리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경솔하고 불경스럽게 맹세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장난스런 호소를 하는 것은 아주 큰 잘못입니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의 어린양으로 치부할 수 없으며, 변명하거나 덮어 줄 여지가 없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한 맹세는 버릇없는 마음의 소치에서 오늘 것입니다.
넷째는 진정으로 한 맹세나 서약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것이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피조물을 들어 맹세하는 것도 하느님 자신을 들어 맹세하는 것만큼이나 위험스러운 일입니다. 피조물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입니다. 소나무를 두고 맹세한다든지, 하늘의 별을 보고 맹세한다든지, 금반지를 보고 맹세한다든지 아무리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피조물은 변한답니다. 그러므로 증거물은 증거의 수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맹세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맹세가 되고 우리가 한 맹세가 주님께 불경스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언제나 우리는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 동안 헤로데와 같이 함부로 맹세하고 주님을 아프게 하였음을 고백하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희년에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아야 한다.>
▥ 레위기의 말씀입니다. 25,1.8-17
1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8 “너희는 안식년을 일곱 번, 곧 일곱 해를 일곱 번 헤아려라. 그러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마흔아홉 해가 된다.
9 그 일곱째 달 초열흘날 곧 속죄일에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너희가 사는 온 땅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10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저마다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11 이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씨를 뿌려서도 안 되고, 저절로 자란 곡식을 거두어서도 안 되며,
저절로 열린 포도를 따서도 안 된다.
12 이 해는 희년이다. 그것은 너희에게 거룩한 해다. 너희는 밭에서 그냥 나는 것만을 먹어야 한다.
13 이 희년에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아야 한다.
14 너희가 동족에게 무엇을 팔거나 동족의 손에서 무엇을 살 때, 서로 속여서는 안 된다.
15 너희는 희년에서 몇 해가 지났는지 헤아린 다음 너희 동족에게서 사고,
그는 소출을 거둘 햇수를 헤아린 다음 너희에게 팔아야 한다.
16 그 햇수가 많으면 값을 올리고, 햇수가 적으면 값을 내려야 한다. 그는 소출을 거둘 횟수를 너희에게 파는 것이다.
17 너희는 동족끼리 속여서는 안 된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축일7월 31일 성 이냐시오 (Ignatius)
신분 : 신부, 설립자
활동 지역 :로욜라(Loyola)
활동 연도 :1491-1556년
같은 이름 ;이그나티오, 이그나티우스, 이냐시우스, 이니고
성 이냐시오는 1491년에 에스파냐 기푸스코아(Guipuzcoa) 지방의 아스페이티아(Azpeitia) 읍 위쪽의 로욜라 성에서 아버지 벨트랑 아녜스 데 오네스 이 로욜라와 어머니 마리아 사엔스 데 리코나 이 발다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세례명은 이니고이다. 그는 1506년에 당시 귀족 집안의 관습대로 에스파냐의 왕실 재무상인 후안 벨라스케스 데 쿠에야르의 집에서 위탁 교육을 받았다. 그는 후에 이때부터 자신이 방탕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했다고 고백하였다. 그는 명예를 얻으려는 열망에 사로잡혀, 머리와 옷 등 외모에 관심을 기울이며 허영과 사치를 일삼았다. 벨라스케스가 사망한 후인 1517년에 성 이냐시오는 군에 입대하였다.
1521년 나바라(Navarra)의 팜플로나(Pamplona)에서 프랑스군과의 교전 중에 다리 부상을 입고 그의 생애에 있어서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성채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그를 치료해 주었고, 로욜라의 가족들에게 후송해 주었다. 부상으로 인한 치료를 마치고 회복기에 접어들자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그는 평소 즐기던 낭만적인 기사 이야기를 실은 책을 읽고 싶어 하였다. 하지만 성 안에 그러한 책은 없었고, 대신 가족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삶에 관한 책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책을 읽어 가면서 기사로서의 공상들이 자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아무런 만족도 주지 못하는 반면, 성인들의 모범을 따르는 삶 속에 참된 기쁨과 평화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내면적인 체험을 할 즈음에 그는 아기 예수를 안고 계신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 이 환시에서 그는 크나큰 위안을 받았고 지난날의 생활 전체, 특히 육을 따르던 행실에 대해 심한 혐오감을 느꼈다. 이후 그는 회심의 길로 들어섰다. 회심 후 로욜라를 떠난 성 이냐시오는 1522년 3월 25일 몬세라트(Monserrat) 산에서 약 15km 떨어진 만레사(Manresa) 마을 근처의 동굴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 기도와 극기와 명상에 몰입하였으며, 구걸로 생계를 꾸려갔다. 평화를 얻으려던 그는 오히려 자신의 지난 죄들에 대한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면서 고행을 하였다. 그의 저서로 유명한 “영성수련”(Exercitia Spiritualis)은 바로 이 시기에 기본 골격이 형성되었다. 이 당시 성 이냐시오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기도와 보속을 생활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1523년 2월에 시작된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은 그가 각오했던 것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예루살렘 순례 후 1524년 3월에 바르셀로나(Barcelona)로 되돌아왔다. 회심 이후 약 11년 간 그는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라틴어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1526년에는 알칼라 대학, 1527년 살라망카(Salamanca)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가 1528년 여름에 파리(Paris)로 학교를 옮겼다. 그곳에서 1535년 3월 14일 석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건강의 악화로 1535년 봄 에스파냐로 돌아가 요양하였다.
성 이냐시오의 연학 시기는 수많은 시련도 있었지만 동시에 동료들을 규합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뜻을 따르는 동료들을 파리에서 만났다. 즉 사부아 출신인 성 베드로 파브르(Petrus Faber, 8월 2일), 나바라(Navarra) 출신인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Franciscus Xaverius, 12월 3일), 에스파냐 사람인 라이네스(J. Laynez)와 살메론(A. Salmeron)과 보바디야(N. Bobadilla), 포르투갈인 로드리게스(S. Rodriguez) 등이다. 이들은 성 이냐시오처럼 외적 고행, 구걸, 단식, 맨발로 다니기 등으로 단련하였다. 1534년 8월 15일 그들은 몽마르트르(Montmartre) 수도원의 순교자 성당에서 가난과 정결 그리고 공부가 끝나는 대로 예루살렘으로 가겠다는 세 가지 서약을 하였다. 하지만 건강의 악화로 고향으로 돌아온 성 이냐시오는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1537년 1월 베네치아(Venezia)에서 9명의 동료들과 모였으나, 당시 터키와의 전쟁으로 가지 못하고 1537년 6월 24일 동료들과 함께 그곳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1537년 겨울 성 이냐시오는 동료 성 베드로 파브르와 라이네스와 함께 교황을 만나기 위해 로마(Roma)로 갔다. 로마 근교의 라스토르타(La Storta)라는 마을의 경당에서 성 이냐시오는 환시를 체험하였다고 한다. 그는 성부께서 그를 예수 그리스도와 한 자리에 있게 해주시는 환시를 보았는데, “내가 로마에서 너희에게 호의를 보여주리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한다. 성 이냐시오와 동료들은 자신들을 ‘예수회’(예수의 동반자라는 뜻)라 불렀으며, 교황 바오로 3세(Paulus III)는 이들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사실 그때까지 장상, 규칙, 전통 없이 열심히 생활하던 성 이냐시오와 그의 동료들은 1540년 9월 27일 예수회 창립을 확인하는 교황의 교서를 통해 정식 인가를 받았다. 이듬해 4월 성 이냐시오는 초대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4월 22일에 그와 동료들은 로마의 바오로 대성전에서 장엄서원을 하였다.
예수회는 즉시 선교 지역으로 나갔고, 수도원과 학교, 대학교, 신학교 등을 전 유럽에 세웠으며, 교육과 지적인 분야에서 그들의 탁월한 능력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에 성 이냐시오와 동료들이 세운 세 가지 목표는 교육과 자주 성사를 받음으로써 교회를 개혁하고, 선교지에서 폭넓은 활동을 전개하며 이단과 싸운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예수회 활동의 뿌리가 되었다. 성 이냐시오는 1555년 여름 로마에서 열병에 걸려 7월 31일 세상을 떠났다. 이냐시오는 1609년 12월 3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하여 시복되었고, 1622년 3월 12일에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와 함께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그의 시신은 로마에 있는 예수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는 피정과 영성수련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이냐시오 형제들과 예수회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이배근 가브리엘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