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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다이애나 공작부인)
다이애나는 1961년 영국 샌드링엄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영국 스튜어트 왕가의 후손이며, 아버지 쪽으로는 영국 왕인 찰스2세, 윈스턴 처칠과도 인척관계이다.
스펜서 가문은 왕가와 견줄만큼의 유명한 가문이지만, 지금은 가세가 많이 기울었다고 한다.
(아 물론 그래도 영국에서 스펜서 가문이라고 하면 아직도 완전 good! 할 정도로 좋은 가문이라고하네요
유서깊은 명가라고 할수 있습니다.)
(아.. 스펜서 가문에서 좀 유명한 여자라면 조지아나 스펜서가 있겠네요 그 키아라 나이틀리가 공작부인찍었죠
그 공작부인이 조지아나 스펜서, 즉 다이애나비의 조상이라고 할수있습니다 ^^)
다이애나의 부모님은 어렸을때(7살) 이혼한걸로 나와있는데 처음에는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친권소송으로 인해아버지와 같이 살게됩니다.
이 과정에서 어린시절 활달하게 자랐던 다이애나는 부모의 법적 다툼속에 소극적이고 조용한 성격이 되었다고 하네요
(왠지.. 게이트볼같은 골프채 비슷한거 들고 있는 다이애나입니다.. 몽둥이아님)
그후, 1975년 할아버지 앨버트 스펜서 백작이 사망한 이후, 아버지가 8대 스펜터 백작을 이어받으면서
다이애나 비는 '레이디 다이애나 스펜서(Lady Diana Spencer)' 가 됩니다.
아버지는 곧 재혼하는데, 계모와는 처음에 사이가 안좋았다가 후에 우호적인 관계로 변하게 된다고 하네요
1977년 16세때 미래의 남편이자,
희대의 바람둥이 웨일스의 공작 찰스를(아마 이때는 웨일스의 공작이 아닐꺼에요) 만나게 됩니다.
당시 찰스는 다이애나의 "언니" 레이디 사라와 사귀고 있었답니다..
(헐)
당시 다이애나는 무용에 소질을 보였지만, 너무 큰키가 무용에 크게 방해를 해서 였는지 무용은 때려치고
무용학원에서 평범하게 일을 하다가, 아르바이트로 칵테일 웨이트리스 청소 를 했다고 합니다.
이후 유치원에서 시간제 보육교사로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영국의 귀족 자제들은... 험한일을 했나보네요)
(다이애나 비 의 남편 찰스 왕세자의 젊은시절)
찰스 왕세자가 결혼을 해야 할 나이가 다가오자, 뭐 우리나라 조선 시대와 같이 대대적인 간택은 아니어도
나름 영국은 왕세자비의 법칙이 있는데
1. 성공회 신자
2. 결혼 한적 없는 처녀
3. 왕족이나 귀족가문 출신의 여자
이 3가지의 법칙에서 딱 떨어지는게 바로 다이애나 였습니다.
(이 3가지중 한가지라도 어길시, 심슨부인이 되는거죠 심슨부인... 아 그 심슨 이 아니라 에드워드 8세의 부인꼴 나는거죠..
당시 이혼녀에, 왕족출신이 아닌 타국인이었던 심슨부인을 얻고자 에드워드 8세는 왕의 자리를 포기하고 도망자 처럼
죽을때까지 망명생활 하다가 결국 왕실의 허락을 받는 뭐.. 여튼 비운의 심슨부인 꼴 나는거에요...ㄷㄷ)
그런 아주 적당한 처녀였던 다이애나는 1981년 2월 24일 공식적인 약혼이 발표 되면서,
왕세자비가 되는 첫걸음을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다이애나는 결혼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아직 미성숙한 처녀, 여자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저돌적으로 달려오는 찰스와, 찰스와 가까워지니 부모&왕실에서는 난리가 났고,
범 국민적으로 두 사람이 너무 아름답니 어쩌니 저쩌니 이러다가 약혼하고 결혼을 하게 된거죠
즉, 자신의 결정이 아닌 타인이 난리가 나서 한 결혼이였죠..)
다이애나가 찰스에게 "날 사랑하시나요?" 라고 물어보자 찰스가 대답했죠 "사랑하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혼)
찰스 왕세자와의 결혼은 1981년 7월 29일 전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기의 결혼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성대하게 치루어 졌다.
영국민들은 환호했고, 언제나 그랬듯 새로운 세자빈이 자신들의 기대를 만족시켜 줄것이라는것에대한 희망을 품었다.
다이애나는 그에 화답하듯 찰스 왕세자와의 결혼을 성실하게 이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다이애나비는 결혼한지 1년이 다 되어가던해 1982년 6월 21일 웨일스 공자 윌리엄을 낳았고,
1984년엔 웨일스의 공자 해리를 낳았다.
(윌리엄 왕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
(해리왕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
이런 상태가되자, 영국민은 다이애나에대한 환호가 끊이지 않았고,
어딜가든 다이애나가 나타나는 공식석상에는 다이애나를 열광하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물론.. 그걸 반기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찰스 왕세자가 그러했다.
당시 연애부터 결혼까지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는 뭔가 뜨겁긴한데 찝찝한 관계였다.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와 의 결혼은 그저 왕이 될 자신의 첫번째 통과 의례였을뿐이었고
두번째 자신의 후계자를 낳아줄 여자가 필요했고
세번째 순종적인 여자가 필요했고
네번째 자신이 무슨 망나니 짓을 해도 상관하지 않을 여자가 필요했다.
그런데, 다이애나는 그런 순종적인 여자들과는 달리
거침없고, 자아가 강했고, 왕실의 순수하고 막말로 그저 그런 여자들과는 달랐던 것이었다.
다이애나를 자신의 악세서리로 생각했던 찰스 왕세자는
오히려 자신이 다이애나의 악세서리 화 되자 참을수 없었고,
이에 다이애나와의 관계는 악화될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결정타로 찰스 왕세자의 외도는 다이애나의 인내심을 벅벅 면도칼로 긁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다이애나는 찰스 왕세자의 외도를 영국 왕실의 수장인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말해 찰스 왕세자를 잡아주길 원했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저.. "왕세자는 구제불능이로구나" 라고만 말할뿐, 왕세자를 잡아주지 않았고,
시아버지부터 당시 살아있던 시 할머니까지 그저 다이애나에게 "구제불능 왕세자를 니가 그냥 잘 참으며 살으렴"
이런식으로 다이애나를 대할 뿐이었다.
결국 상황은 두 사람의 관계는 쇼 윈도 부부 가 되었다.
결혼 초기 기자들이 다이애나에게 "결혼 생활이 행복하냐" 라고 물으면 "행복하다" 라고 대답했는데,
점차적으로 결혼생활에 지쳐가던 다이애나는 "사랑에 빠지셨나요?" 라고 물으면 "글쎄요"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다이애나는 그래도 자신이 겪어 힘들었던 부모의 이혼을 두 왕자에게 물려주기 싫었는지,
찰스왕세자에게 모든걸 맞춰서 생활하기도 했다.
활달하게 남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봉사활동을 좋아했던 다이애나는 남편이 폴로 경기를 하면 웃으면서 구경해주고,
응원해줬지만 찰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찰스는 다이애나를 짜증의 대상으로 밖에 볼수가 없었다.
결혼 전에는 자신이 나가면 다 "잘생긴 왕세자님" 으로 부르며 추앙을 했는데,
지금은 그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남편 웨일스공" 이렇게 부를 뿐이니 다이애나와의 외출이 달갑지 않았고,
결국엔 자신에게 순종적이었던 카밀라 를 다시 찾을수 밖에 없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찰스 왕세자)
(카밀라와 카밀라의 남편... 황태자의 친구라네요 ㅋㅋㅋ 남편이)
결국 두 사람의 불화는 1986년 부터 터져나오기 시작합니다.
찰스는 결혼생활중에도 카밀라와 은밀한 관계를 유지해왔고,
다이애나에게는 가짜 다이아를 카밀라에게는 진짜 다이아를 선물했다
라는 카더라 통신까지 나돌정도로 아주 다이애나를 은근히 까내리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다이애나는 친구였던 두로 후작부인의 영지에서 찰스와 카밀라를 밀회시켰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찰스의 서류가방에서 카밀라의 편지를 보고
여러 친분이 있던 사람들에게서 찰스와 카밀라의 밀회장소를 제공한것을 알게됩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건..
결혼 전부터 다이애나와 카밀라는 알던 사이로
카밀라는 다이애나에게 찰스가 뭘 좋아하고 어떤걸 좋아하는지 코치를 할정도로 친했던 사이라고 합니다..
(확실하진 않은데 이런 이야기가 어디서든 많이 나오죠)
(다이애나왕세자비와 카밀라)
결국 다이애나는 1989년 초청받지 않은 파티에 직접 참석해 카밀라와 싸우게 됩니다.
다이애나는 찰스와의 관계를 정리해달라고 카밀라에게 말했지만,
카밀라는 "너는 원하는걸 다 가졌지만 난 아니다. 더이상 원하지말고 우릴 놔둬라" 이런 식으로 말했고,
다이애나는 "내남편을 건들지 말아라" 뭐 이런식으로 말을 했다고 합니다.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가 다 알고있는데도, 다이애나를 더 바보취급했고,
카밀라 역시 다이애나를 뭐 그냥 애완견 취급하듯 아무것도 아닌 그저 찰스 왕세자의 부인으로 취급할뿐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1992년 다이애나의 수기 다이애나 - 그녀의 진실 을 발간했고
영국 왕실에서는 다이애나를 비난했다.
그 책에는 찰스 왕세자의 난잡한 사생활이 적혀있었고, 영국 왕실은 발칵 뒤집혔고,
영국민들은 다이애나를 동정했다.
(아마 이때 왕실 폐지론까지 나올정도로 심각했다고하네요,,)
거기에 다이애나는 찰스에게
"카밀라와 헤어지던지 나와 이혼하던지 양단간의 선택을 해라" 라고 했지만,
찰스는 "그녀와 헤어질수 없다" 라고 대답했고,
결국 두사람은 별거에 돌입했다.
다이애나는 별거에 돌입 해서도, 영국민들을 위해 봉사와 헌신 그리고 왕실에대한 공식적 행사를 완벽하게 수행했고,
그래도 아직은 행복한 부부 생활을 유지해나갔다.
영국 왕실에서는 나름대로 찰스 왕세자를 단속하고 두사람을 다시 합치게끔 유도는 못할망정
두사람의 이혼 몇일전에 법령을 제정해 왕족과 혼인한 사람의 호칭을 정하고
이혼후 (Her Royal Highness, HRH)를 못쓰게끔 법을 바꿔버렸다.
그리고 몇일뒤, 다이애나와 찰스 왕세자는 이혼을 하게 된다.
물론, 영국 왕실은 국민들의 보호를 받는 다이애나를 직접적으로 내칠수는 없었는지
단지 다이애나를 '웨일스의 공작부인' 으로만 부르게끔 배려를 했다고 하며,
다이애나에게 주어진 모든 왕실의 권한, 보석 등등을 다 회수했고, 위자료와 '웨일스의 공작부인'이라는 호칭 그리고
두왕자의 어머니라는 이유의 왕족 보조금 을 어느정도 쥐어주며
"준왕족"의 예우로 다이애나를 보호해 줬다.
(이혼하기로 발표를 하던 날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찰스 왕세자)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이혼후, 웨일스 공작부인으로 불리며
왕족때는 차마 하지 못했던 넓은 활동범위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아프리카 빈민촌 구호활동,
적십자 활동,
대인지뢰 제거운동, 에이즈 환자를 위한 봉사 등
사회적으로 많은 봉사활동을 하며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들과의 면담 등등 앞서나가는 봉사활동과 사교계의
잇걸로 활동범위를 넓혀왔다.
(지뢰 제거 봉사활동 중인 다이애나)
(빈민 구호 할동중인 다이애나)
다이애나는 이집트 출신의 도디 알파예드를 만났고,
다이애나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비례하게 도디 알파예드에게도 관심이 쏟아졌다.
(마더 테레사 수녀와 웨일스 공작부인 다이애나)
다이애나는 이혼후 1년을 '천국'에 비교할 정도로 자유로워했고,
우울하고 암울한 사랑이었던 '찰스와의 결혼생활속 맞대응 하기위한 맞바람' 의 남녀 관계가 아닌
건전하고, 떳떳한 미혼 남녀의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이애나와 도디 알파예드의 사랑은 아주 꿈같았다.
그는 그녀를 위해 모든걸 내걸었고, 다이애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디 알파예드는 다이애나에게 곧 청혼을 할 '예정' 이었고 다이애나 역시 그 청혼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파리에서 저녁을 먹고 드라이브를 하기위해 호텔에서 제공한 벤츠 차량을 타고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던중
파파라치들의 습격을 받았다.
다이애나와 도디 알파예드는 이들을 피하기 위해 과속으로 달렸고,
지하차도로 들어가던 순간 중심을 잃고 기둥을 들이받고 차는 한바퀴를 돈다음 멈춰섰다.
다이애나는 치명적 중상을, 차를 몰던 앙리 폴과 다이애나의 연인 도디 알파예드는 그자리에서 즉사 했다.
다이애나가 죽어가는 와중에도 파파라치들은 죽어가는 다이애나를 향해 셔터만 눌러댈뿐,
그녀를 구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결국 다이애나는 그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웨일스의 공작부인 다이애나가 탑승하던 벤츠 차량)
물론, 다이애나가 유명인사였기에, 그녀의 죽음에 많은 의문점이 흘러 나왔는데...
1. 왕실이 죽였다.
2. 다이애나가 타국인의 아이를 임신해서 다이애나의 열정적인 팬들이 죽였다.
3. 다이애나의 행보를 눈여겨본 각층의 지도자들이 죽였다
등등, 많은 썰들은 흘러 나왔고, 결국 프랑스 경찰에 의해 수사되어
최근에는 앙리폴의 음주운전으로 인한 자동차 사고로 확정지어졌다.
(?)
당시 저 교통사고는 단순한 교통 사고가 아니라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죽음을 당한 교통사고로 대서특필 되었고,
세상은 영국 왕실로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영화속 '더 퀸' 에서는
처음에 다이애나가 중상으로 병원에 실려 왔다는 보고를 받은 영국 왕실에서는
다이애나의 행실을 운운하며 그녀의 행실로 인해 교통사고를 당한거라는 등,
여튼 그녀가 영국 왕실에게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이 대목에서 간략적으로 알수 있었다.
다이애나가 결국 사망했다고 하자, 가장 고통을 받은건 두 아들도 아닌 찰스 왕세자였다.
대중들은 그녀의 죽음을 교통사고가 아닌 찰스 왕세자의 바람으로 비롯된 죽음으로 빗대며 자신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결국 왕실이 위기를 받으며 자신이 결국 버려질것이다 이런 추측까지 낼정도로 불안에 떨었던것 같다.
거기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동생 마가렛 공주는 이태리에서 휴가를 보내다 다이애나의 교통사고 소식에
여왕에게 전화를 해 "그애는 죽어서도 남의 속을 긁는다" 라며 비아냥 거렸다.
진실이야 어찌 되었든,
영화속에서 이정도였으면, 평소에 영국 왕실에서 다이애나에게 어떤 대우를 해줬는지를 알수가 있다.
다이애나의 죽음속에, 영국민들은 슬픔에 잠겨있었고, 왕실에대한 분노는 극에 다달해져 있었다.
다이애나의 가족들은
"다이애나는 사생활이 현상금에 내걸릴 정도로 사생활 침해를 당했고,
그것을 보도하기위해 혈안이된 잡지사때문에 결국 죽었다."
라며 연설을 했고,
그 비난은 잡지사가 아니라 영국 왕실에게로 또다시 돌아갔다.
(다이애나의 추모 물결)
다이애나의 사망은, 영국 왕실의 존폐위기를 흔들정도로 커져만 갔다.
당시 영국 왕실 일원은 휴가차 버킹엄을 떠나 있던 상태였는데,
버킹엄에는 추모의 행열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버킹엄은 여왕이 있으면 조기를 달았는데,
국민들은 어떻게 다이애나가 죽었는데 조기도 달지 않았냐며 분노했다고 한다.
당시 블레어 총리는 여왕에게 조기를 달자고 요청했으나, 달지 않겠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웃기게도 찰스왕세자의 궁에는 조기가 계양되어있었다고 한다.
(영국 왕실에게 속아서 다이애나가 희생되었다는 글.. "다이애나는 왕실에 속아서 결혼했다")
왕실과는 다르게, 영국 의회에서는
영국민이 원하기에, 다이애나의 장례식은 "가족장" 이 아닌 "국장"
국장의 형식은 "테이 브릿지" 로 진행 하기로 한다.
당시 테이 브릿지 라는 장례절차는 여왕의 어머니 퀸 마더를 위한 절차였다고 함..
여튼 결국엔 영국 왕실 일행은 휴가를 접고, 궁으로 돌아와야 했고,
궁으로 돌아와서는 충격적인 상황을 접하게 되었다.
(그들은 당신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라는 내용의 편지)
(그들[왕실]의 손에는 당신을 죽인 피가...)
영국 왕실은 국민들의 분노속에 고개를 숙이고,
다이애나의 모든 장례절차에 참석해야 했고,
다이애나를 위해 추모의 형식을 취해야 했습니다.
안그러면 왕실이 폐지될지도 모르는 위기에 또다시 쳐해질지 모르니까요..
결국, 다이애나는 죽어서 왕실에 승리하게 된것입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 웨일스의 공작부인 다이애나)
(다이애나의 무덤은 웨스터민스터사원이 아니라 스코틀랜드 알솝하우스에 있습니다.
장례식이 웨스터민스터사원에서 치루어 졌다면, 무덤또한 그곳에 있어야 하는데,
스코틀랜드 알솝하우스에 있는건 좀 의외인데..
아마 영국민들에게 하루빨리 지워졌으면 하는 왕실의 바램이
그녀를 웨스터민스터사원이 아닌 알솝하우스로 가게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아직까지도 다이애나를 위한 추모는 끝이 없으며, 다이애나의 생일,
장례식 때만 되면 그녀를 위한 추모 행렬은 아직도
영국내에 파다하게 늘어져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영국민의 가슴속에는 다이애나가 잠들어져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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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면 그 불륜 커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2005년 결혼을 한 찰스 왕세자와 콘월 공작부인 카밀라)
30년을 기다려온 끝에 카밀라와 찰스 왕세자는 정식적으로 합법적인 부부가 되었는데,
당시 영국왕실에서는 카밀라에게 공식적인 HRH(전하) 라는 호칭을 내리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영국민들이 눈을 치켜뜨며 둘을 차갑게 내려다 보고 있기 때문이죠..
카밀라가 HRH(전하)라는 호칭을 받은지는 결혼후 한참 있다가 였는데,
그것 뿐만 아니라 원래 왕세자와 혼인을 하면 왕세자비로 불려야 하지만,
국가적 정서상
아직도 카밀라를 불륜의 내연녀로 보는 영국민이 많은 관계로 그저 왕세자의 많은 직함중 하나인
콘월공작 찰스의 부인 콘월 공작부인으로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훗날 찰스가 왕위에 올라도 카밀라는 "왕의 배우자" 일뿐 왕비의 직함은 받을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전 일이죠,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아들인 윌리엄 왕자가 2011년 4월 29일
어머니의 약혼 반지로 청혼을 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
지금 케이트 미들턴은 다이애나의 며느리이자,
제2의 다이애나로 불리우며 영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고 합니다.
"다이애나는 사랑과 연민이 깃든 위대한 친구" - 마더 테레사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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