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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눈부신 아침햇살에 송희는 아이처럼 얼굴을 샐룩거렸다.
재대로 지워지지 않은 화장에 시큼한 알콜냄새는 어잿밤 그녀가 꾀 긴시간을 술로 달렸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송희는 길고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 몇 번긁었다.
얇은 끈나시와 짧은 파자마 바지를 입고 있는 송희는 얼굴을 대판 찡그리며 상채를 가리고 있는 나시마저 탈의 해버렸다.
'탈칵'하는 소리와 함께 낡은 나무문이 끼이익 하며 열렸다.
20대 후반정도 되어보이는 남자는 살짝 길다싶은 머리에 보통사람들보다 까맣고 매끈 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혜주에게 다가와 송희의 어깨를 잡고 혜주의 몸을 오뚜기 마냥 흔들었다. 남자는 그녀가 옷을 재대로 입고 있지 않음에도 불과하고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늦장을 부려 짜증니 난다는 듯 그녀의 몸을 더 세게 흔들었다.
"백한송희, 회사 안가냐? 일어나."
송희는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울..."
웅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못알아듣고 그가 다시 물었다.
"뭐라고?"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썪여있었다.
그녀역시 짜증이 썩인 목소리로 그를 보지도 않은채 누워서 소리쳤다.
"물! 물달라고!!"
남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침대 바로 옆에 있는 핑그색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보아하니 화장품만 넣는 냉장고 같았지만 그 속에는 몇가지의 약과 기초 화장품, 물이 들어있었다.
남자는 작은 물병하나를 꺼내어 그녀에 손에 쥐어주었다.
그제서야 송희는 일어나서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입가 옆에 고이던 물이 턱을 타고 내려와 속옷을 적시는 것도 모르고 시원하게 물을 원샷해버린다.
"하아... 살것같다."
남자는 그런 송희를 한심하게 쳐다본다.
"술좀 작작 마시고 다녀, 잘 때는 옷도 좀 입고 자고."
"야, 강인호 너는 술처먹고 내방에와서 나 끌어앉고 자지나마. 내가 얼마나 불편한지 알아? 난 너한테 민폐는 안끼치잖아."
"백한송희 너 화장실에서 오바이트한 거 내가 다 딲아. 그게 더 민폐야. 청소도 잘 못하는게..."
송희는 그의 말에 더 짜증이나는지 한쪽발로 그의 무릎을 차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아씨... 나가 나 씻을 꺼야."
"퍽이나. 잘도 씻겠다."
인호는 그렇게 말하고 방문을 쎄게 닫고 나가버렸다.
송희는 생각했다.
'내가 저인간이랑 9년을 사귀었다니... 미친 거지.'
그녀는 그가 세게 닫고 나간 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몇번 좌우로 흔들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에 있는 작은 욕실로 향했다.
송희와 인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다.
그리고 정확히 1년후 대학생이 되었을 때 둘은 로맨틱코미디가 아니라 그냥 코믹스럽게 사귀게 되었다.
같은 대학교 같은 개론수업과 같은 동아리를 하면서 어쩌다보니 둘은 같은 집에 살게 되었다. 아니, 자연스럽게 살아졌다는 말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대학교 2학년때 군대에 갔고, 그녀는 2년동안 공부에만 몰두했다. 그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졸업반이었고 그는 학교로 복학하지 않고, 연기자에 길로 빠졌다. 군대에 갔던 2년을 뺀다고 해도 둘은 7년가까이를 그만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정말 9년동안 한남자만을 사랑했다. 또한 번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사귀었던 코흘리게 김은석이라는 남자아이만 뺀다면 그녀인생의 남자는 오직 아빠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강인호 하나뿐이다.
그녀는 대학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순진하고 순수해서 그런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직장생활을 3년 째 하다보니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서 깨달았다.
그녀는 순진하고 순수한 것이 아니라 바보같고 미련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강인호라는 남자가 9년동안 그녀 하나만 바라보는 미련한 바보였나? 그건 더더욱 아니었다.
정확히 강인호와 그녀는 3번헤어지고 4번을 다시 만났다. 2번째 헤어진 이유가 그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헤어진 것이었다.
비록 4년도 더된 일이지만 그녀는 그 때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난다.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녀는 그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곱씹으며 샤워를 했다.
아침부터 그와 투닥투닥했을 때 가끔 옛날일을 되세긴다.
처음에는 안좋은 기억을 떠올렸다 나중에는 결국 잘해결되었던 지난 날들의 시간을 생각하면 '그래도 난 결국 이남자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서 화를 식히곤 한다.
그녀는 뜨거운 물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눈을 감고 골똘히 생각했다. 그와의 추억들을
"으... 나 국안먹는거 알면서..."
송희의 말에 인호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도 먹어."
인호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북어국을 그녀의 앞에 갔다주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북어를 사러 마트까지 갔다온 인호는 그녀의 불평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송희는 그런 그의 눈치를 슬쩍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북어가 오늘아침에 들장한 걸보면 분명 마트까지 그가 사러갔다온 것이 분명하니까...
"... 고마워. 잘먹을께."
그녀의 말에 인호는 살짝 입술에 미소를 띄었다.
물론 그녀의 얼굴에는 국을 꺼려하는 표정이 서려있지만 그의 마음을 알고 먹으려고 애쓰는 그녀를 보니 인호는 기분이 좋았다.
"얼른 먹고 회사가."
"내가 사장인데... 좀 늦어도 괜찮아. 너는 연습안가?"
"우리 극장 월요일은 연습 쉬잖아."
인호는 송희의 앞에 앉아서 북어국을 한술 뜨며 말했다.
송희의 기운 없어 보이는 표정을 보니 인호는 살짝 걱정이 되었다.
"오늘은 그냥 직원들한테 마끼고 회사 안갈래?"
"후우... 나도 그러고 싶은데 오늘 점심 때 촬영이 있어서..."
인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열었다.
"촬영 끝나고 대릴러 갈께. 몇시쯤 끝나?"
송희는 순간 살짝 긴장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 무슨날인가?'
사귀고 있는 사이지만 둘은 왠만하면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궂이 데이트 신청을 하지도 않는다. 집에 오면 항상 보는 것이 서로에 얼굴인데 구태여 바깥에서 까지 볼필요일냐는 것이 그들의 연애사고였다.
"오늘... 몇일이지?"
인호는 슬쩍 그녀를 째려보더니...
"아무 날도 아니야, 그냥 오랜만에 밖에서.. 데이트나 하자고."
데이트라는 말을 오랜만에 꺼내서 인호는 왠지 쑥쓰러웠고, 송희는 오랜만에 가슴이 설랬다.
물론 첫데이트 때의 그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 한 4시쯤 끝날테니까 홍대로 데리러와. 히히"
"알았어."
인호는 옅은 미소를 띄며 생각했다.
'괜히... 미안하네.'
약속대로 인호는 4시에 홍대로 나왔다.
송희는 촬영이 끝나자 마자 홍대역으로 나갔다. 인호와 촬영장에서 만나면 정신이 없을 것같아서 그녀가 홍대역으로 나가기로 한 것이다.
송희는 잘나가는 인터넷 쇼핑몰의 대표다. 물론 동생 선희와 공동 대표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업무를 뛰는 것은 그녀였다.
어째든 쇼핑몰은 2년만에 대박이 났고, 지금은 3년 째 쇼핑몰을 운영하는 중이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그녀도 처음에 쇼핑몰을 시작할 때는 이렇게 까지 커질 줄 꿈에도 상상하지못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는 건데 이일을 3년 째 할 것이라는 것또한 절대로 꿈꾸지 않았다.
"일찍 와있었네?"
"별로..."
인호와 송희는 아주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다. 오래된 연인이라는 것이 손을 잡는 것부터 티가 났다.
"어디로 갈래?"
송희가 물었다.
인호가 그녀의 얼굴을 힐끗 보더니 기분좋은 얼굴로 무엇가 생각 난듯대답했다.
"예전에 우리 가던데로 가자."
"???"
"우와 진짜 오랜 만이다."
"그러게 아직도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
인호와 송희가 온 곳은 차만 전문 적으로 파는 까페였다.
이곳은 인호와 그녀가 처음 데이트를 나온 장소였다.
가운데 아주 큰 나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나무를 중심으로 이 까페를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까페에 들어오면 향긋한 나무 냄새가 제일 많이 난다.
"진짜 오랜만이다."
인호와 송희는 까페를 둘러보았다. 몰라볼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더욱 세련대고 심플해진 인테리어들, 더 깔끔해진 벽지...
그래... 이곳도 정말 많이 변했다. 가운대 나무만 뺀다면 말이다.
인호와 송희는 자리에 앉아 서로 차를 시키고 이야기를 나누웠다.
송희는 벽지를 보며 말했다.
"여기도 참많이 바뀐것같아."
"그래. 우리도 많이 변했지."
"...맞아... 진짜 많이 변했어."
생각했다. 둘은... 처음 그 때 그 데이트를 생각했다.
바라만 봐도 콩닥거리고 손끝만 스쳐도 부끄러워했던 그 시절.
둘다 정말 서로에 취해서 해어나오지 못했을 때를 말이다.
그 때는 서로가 이렇게 편해질지 생각도 하지못했다.
송희는 왠지 지금이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것이 생각 났다.
지금 그가 자신과의 행복했던 따뜻했던 추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가 아니면 말하지 못하는 말... 10년이 다되어가는 이 연애에서도 꺼내기 어려운 말... 한번도 그와 이야기 해본적없고 마음에만 꾹꾹 담아둔 말...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같았다. 오늘처럼 다른 환경이 아니면 하기 힘든말이니까.
오늘처럼 옛분위기로 돌아가지 않으면 하기 어려우니까.
"인호야."
"응?"
"나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
굳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인호는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정말 오늘은 좋은 날인것 같아."
"뭐?"
"오랜만이잖아. 이렇게 데이트하고 차마시고... 그리고 니가 나한테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말하려는 것도... 정말오랜만이잖아."
인호의 얼굴은 행복해보였지만...그의 입술은 살짝 슬퍼보이는 것같기도 했다.
송희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며 할말을 잃었다.
"말해봐... 할말이 뭐야?"
송희는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려야만했다.
이이야기 언젠가는 꼭 해야 했다.
"우리.......결혼하자."
>ㅇ<
재미있으셨나요?
아 오랜만에 써서 그런지 글이 좀...
어째든 좋은 댓글 좀 부탁드려요.
>ㅇ<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