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용접 인생
항만 도시 가오슝 노동자들의 일과 삶
셰쟈신 지음 | 곽규한, 한철민 옮김
쪽수: 328쪽
판형: 148*210
ISBN: 979-11-6861-237-2 03330
가격: 22,000원
발행일: 2024년 2월 28일
책 소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린 건 아버지의 노동과 기술인데,
왜 아버지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하는 걸까?”
추레라 제작 숙련공의 삶이 반영하는
타이완 산업의 변천과 사회의 가치
*2022년 대만문학금전상 최종 후보작
*과학기술과 사회연구학회 석사논문 우수상
*타이완사회학회 석사논문 걸작상, 석사논문 현지조사상
타이완의 부산, 항만 도시 가오슝 읽기
『아버지의 용접 인생』의 주무대는 가오슝이다. 항만 도시 가오슝은 타이완의 부산 같은 도시로, 타이완을 방문하는 많은 한국인이 들르는 도시이다. 생경한 도시는 아니지만 한국에 전파된 가오슝에 대한 정보는 아직까지 관광에 치중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가오슝은 단순한 관광지 그 이상이다. 타이완 최대 국제항이 있고 거대한 공단이 조성되어 있는 가오슝은 대만 산업의 변천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 책은 가오슝에서 태어난 저자가 자신의 아버지가 일하던 곳을 현장 연구하며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가오슝은 물론 타이완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게 한다. 노동, 항구, 가족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주제 속에서 독자들은 타이완을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한국 독자들은 타이완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의 경험과 기억도 떠올릴 것이다. 한국과 타이완이 유사한 서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 모두 1960~1990년대에 걸쳐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했고, 경공업 수출에서 출발해 여러 방면으로 고속 성장했고 이후 제3차 산업사회에 빠르게 진입했다. 닮은 듯 다른 타이완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걸어온 길과 그 길을 닦은 사람들을 돌아보게 한다.
눈부신 경제성장의 반석, 용접공들의 과거와 현재
타이완은 경공업 수출에서 시작해 여러 방면에서 고속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고속 발전은 노동자들, 특히 조선, 해양, 석유화학, 건축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필수 인력인 용접 기술자들이 이루어낸 성과였다. 그러나 현재, 용접공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산업을 지속할 신규 인력 유입이 줄어들고, 공장들도 폐업하고 있다. 기존의 숙련공들의 은퇴에 따라 전체 인력 또한 크게 줄었다.
저자는 어느 한 추레라 공장의 마지막 영업 날을 기록하며 용접공과 가오슝의 추레라 산업이 직면한 고비를 드러낸다. 원가 상승과 후계자 문제로 점차 사라지는 소형 공장들, 몇몇 대형공장으로 집중되는 주문, 변화하는 법 등등. 용접공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은 시대와 주류산업이 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학력과 기술에 대한 타이완 사회의 가치, 노동에 대한 인식도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저자는 폐업을 앞둔 추레라 공장 곳곳과 용접 작업 장면을 촬영했고 화보로 실어 현장감을 전한다. 그럼으로써 타이완 경제성장을 이루어냈고, 자기 기술을 믿고 여전히 일하고 있는 숙련공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공부 안 하면 나처럼 까만 손이나 될 거야.”
용접공 아버지는 자신의 기술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어린 딸에게는 “공부 안 하면 나처럼 까만 손이나 될 거야.”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작업복은 가족의 옷과 별도로 세탁해 다른 공간에서 건조시켰고, 식탁에서도 아버지의 일이 대화 주제로 오른 적은 없었다. 일터에서 돌아와 딸을 학원에 데려다줄 때면 반드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나섰다. 이 모든 것은 당신 삶의 형태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부모님의 결심 때문이었다.
이러한 성장과정 속에서 자란 저자에게 아버지를 표현하는 단어인 ‘노동자’, ‘기름때 묻은 까만 손’ 등은 어느새 우수한 학업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저자는 아버지의 노동으로 삶을 영위하면서도 노동하는 아버지를 동경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학업의 길에 성공적으로 들어선 저자는 오랫동안 품어온 의문을 떠올린다. ‘우리 가족을 먹여살린 것은 아버지의 노동과 기술인데, 왜 아버지는 자신의 일과 삶을 반면교사로 삼으라고 하시는 걸까?’ ‘우리 사회는 왜 노동과 기술의 가치를 학력보다 낮게 생각할까?’ ‘좋은 직업이란 무엇인가?’ ‘기술노동자라는 게 부끄러운 일인가?’ 그리고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추레라 제작 숙련공들의 삶으로 빠져든다.
중공업 전성시대의 부모, 졸업장 시대의 자녀
농촌에서 태어난 저자의 아버지는 도시로 이주하여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기술을 배웠고, 중공업 전성시대를 살며 기술을 추구했다. 졸업장을 장려하는 교육 시스템 속에서 성장한 저자는 표준적인 진학 과정을 밟은 후 학력 부분을 제외하면 텅 비어 있는 이력서를 손에 쥐고 사회로 나왔다. 이렇듯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두 세대는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다. 졸업장의 시대에 태어난 자식 세대는 부모 세대의 직업을 진지하게 이해하기 어렵고, 중공업 전성시대에 기술 하나로 정진하며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 온 부모 세대 역시 텅 빈 두 손으로 학교 밖으로 나서는 자식들의 막막함에 공감하기 힘들다.
저자는 추레라 제작 숙련공의 삶과 일을 연구하며 아버지의 일을 대면한다. 숙련공들을 접하고 노동현장을 직접 체험하면서 세대를 넘은 대화와 성찰을 경험한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의 성장배경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숙련공의 생애를 담은 이 책이 부모 세대의 삶과 직업을 반추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부모와 자식 세대가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연관 키워드
#노동자 #용접공 #가오슝 #중공업 #졸업장 #직업 #기술 #아버지와딸 #대만
책 속으로
p34
일반적 사회 관념에서 기술의 가치는 왜 항상 학력의 가치보다 낮게 평가될까? 좋은 직장에 취업하려고 얻은 준수한 학력이 과연 그 일에 실제로 도움이 될까? 공부가 정말 유일한 길일까? 기술자는 경시해도 되는 일일까?
p52
적혈구가 신체 곳곳을 순회하는 것처럼 온갖 형태의 추레라는 전국으로 물자를 옮겼다. 그리고 항만의 추레라 노동자들은 그들의 두 손으로 직접 타이완 경제 발전을 이끌어낸 운송 도구를 만들었다. 추레라를 만들어내는 두 손 뒤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우리에게 익숙한 노동자들이 있다.
p103
아버지는 더 많은 일을 수주하기 위해 애써 각 방면의 기술을 흡수하면서 제작할 수 있는 차종을 확장해나갔다. 업계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비장의 무기고’를 만든 것이다.
p153
기술은 배우기 힘들고 배운 후에도 오랜 기간 누적된 경험이 필요하다. 그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솜씨'는 그들이 가진 기술에 자부심을 부여한다. 숙련공에게 있어 이 자부심은 학력이나 자격증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p205
'까만 손 숙련공', 이 호칭은 업계 내에서는 우수한 기술 보유 혹은 오랜 노력과 경험 여부를 드러낸다. 하지만 이 호칭에 대한 타이완 사회 일반의 인식은 두 손에 기름을 묻히고 온몸이 땀에 젖어 까만 기름과 여러 기계 사이를 오가는 '노동자'일 뿐이다.
p250
여가 활동에 대한 나와 아버지의 정의는 서로 너무 다르다. 나에게 여가 활동은 업무와 상반되는 개념으로, 평소 집중하던 모든 일을 잊게 해주는 휴식에 가까운 개념이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직업은, 그리고 이 직업을 지탱한 기술은 그의 생활과 분리될 수 없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여가 활동은 일이 아닌 곳에 시간과 마음을 투자하는데 소득과는 상관이 없는 것 정도로 정의될 것이다.
저자 소개
지은이
셰쟈신(謝嘉心)
밀레니얼 세대. 가오슝시(高雄市) 샤오강구(小港區) 사람, 칭화(清華) 대학교 사회학 대학원 석사 졸업. 공단에서 성장한 까닭에 강철 같은 폐와 기관지를 보유했다. 추위를 두려워해 일찍 자려는 남국(南國)의 아이였으나, 온몸으로 바람을 맞아야 하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밤을 지새우며 겨울을 훈련한 후 방한의 능력을 획득한다. 석사 논문 『"숙련공 하면 돼” : 항만 검은 손 숙련공의 생명, 일 그리고 사회 변화』로 타이완 사회학회 석사논문 걸작상, 석사논문 현지조사상, 과학기술 및 사회연구학회 석사논문 우수상을 받았다.
현재 비영리기구(NPO) 활동. 마음이 향하는 이상과 현실이 가하는 압력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 노력 중이다
옮긴이
곽규환(郭奎煥)
사람과 사회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하고 옮기려 한다. 저마다의 누항(陋巷)에 관심이 많다.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공역), 『현대 타이베이의 탄생』(공역), 『오사카 도시의 기억을 발굴하다』(공역) 등을 옮겼다.
한철민(韓哲旻)
국립대만사범대학 역사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과 대만의 문화콘텐츠를 연결하는 ‘窓 Project’를 기획하고 마이리얼트립 대만 여행 ‘징검다리’ 가이드로 활동하며 대만의 속살을 헤집었다. 옮긴 책으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공역), 『현대 타이베이의 탄생』(공역) 등이 있다.
차례
한국어판 서문
들어가며_공부 안 하면 나처럼 돼
프롤로그_온실에서 자란 노동자의 딸
1장 활기찬 타이완 경제의 적혈구
나의 가오슝시 샤오강구
추레라 이모저모
타이완 추레라 산업의 흥망성쇠
2장 고향을 떠나 도제의 길로
불법 운행 버스를 타고 타이둥으로
견습생의 일과 일상
견습공이 받아야 했던 두 가지 수업
3장 숙련공, 생존의 여정
반숙련공은 어떻게 기술을 연마할까
인맥 관리가 중요해
이직, 전업과 누스페어
4장 기술이 왕도다
추레라 공장의 형태와 숙련공 취업 방식
숙련공, 기술을 믿는다
숙련공의 ‘철밥통’
5장 숙련공이면 충분해
숙련공과 사장
까만 손은 사장이 되고 싶지 않아
6장 나처럼 되지 마
아부지 뭐 하시노?
자녀의 출세를 바라는 숙련공
에필로그_‘좋은 직업’은 무엇일까?
번외: 두 명의 숙련공이 지탱한 나의 집
아버지의 식탁
가훈-근검절약
철공 전문가, 스스로 가구를 만들다
농촌 가정의 장녀로 살았던 어머니
가족을 지켰던, 가정의 숙련공
후기: 평판 트레일러 제작업자 중 씨의 어떤 하루
사진: 추레라 숙련공의 작업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