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의 죽도에서 정여립을 회상하다.
세월은 흐른다. 더디 흐르는 것이 아니고 쏜 살처럼 흐른다. 1589년 10월, 조선이라는 나라에 휘몰아쳤던 기축옥사, 정여립 사건으로 천 여 명이 죽었고, 그로부터 3년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흐른 세월 430여 년, 정여립이 의문사한 죽도 바로 아래에 죽도유원지가 들어섰다가 사라진 자리 용담댐이 들어섰으니, 누가 역사를 논하고 인간의 삶을 논하랴.
“물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수동리인 이곳의 물길은 앙양하고 물빛은 푸르다. 아침엔 물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밤이면 그 맑은 물빛에 달그림자가 어른거리며 눈이 내리면 눈이 부시게 흰 눈꽃이 피는 심심산골 이곳 죽도에는 그러나 가슴 아픈 역사가 얼키고 설켜 있고 이곳에서 목이 메인 물길은 황해바다로 더디게 더디게 흐른다.(...)
덕유산에서 발원한 안성천과 장수천이 합류하면서 섬으로 변한 진안군 진안읍 가막리 죽도에 이르면 강은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용담․금산으로 흐른다. 나라 안에서 이름이 가장 아름다운 강, 채만식은 금강을 그의 소설 「탁류」의 서두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금강(錦江)…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 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둥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 가지고는 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번 비행기라도 타고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내려다보면 또한 그럼직할 것이다.
저 준험한 소백산맥(小白山脈)이 제주도를 건너보고 뜀을 뛸 듯이, 전라도의 뒷덜미를 급하게 달리다가 우뚝… 또 한번 우뚝… 높이 솟구친 노령(蘆嶺)와 지리산의 산협물을 받아 가지고 장수로 진안으로 무주로 이렇게 역류하는 게 금강의 남쪽 줄기다. 그놈이 영동 근처에서는 다시 추풍령(秋風嶺)과 속리산의 물까지 받으면서 서북으로 좌향을 돌려 충청 좌우도의 접경을 흘러간다… 부여를 한바퀴 휙 돌려 다가는 급히 남으로 꺽여 단숨에 논산(論山) 강경까지 들이 닫는다.
여기까지가 백마강이라고, 이를 테면 금강의 색동이다. 여자로 치면 흐린 새태에 찌들지 않은 처녀적이라고 하겠다. 백마강은 공주 웅진(雄鎭)에서부터 시작하여 백제 흥망의 꿈자취를 더듬어 흐른다. 풍월도 좋거니와 물도 맑다. 그러나 그것도 부여 전후가 한참이지, 강경에 다다르면 장꾼들의 흥정하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에 고요하던 수면의 꿈은 깨진다. 물은 탁하다. 예서부터가 옳게 금강이다. 이렇게 애두르고 휘몰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시가지: 市街地) 하나가 올라 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그렇다. 채만식의 빼어난 소설 《탁류》의 실마리가 금강에서 풀리듯이 금강의 역사도 죽도에서부터 시작된다. 죽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성되고 있는 용담댐이 완공되면 진실로 고립된 하나의 섬이 될 죽도를 휘감아도는 금강의 물길은 아직 맑다. 겨울에도 푸른 산죽이 많아 이름조차 대섬인 이 섬 아닌 섬 죽도 앞에는 말잔등처럼 천반산(640미터)이 우뚝 솟아 있다. (...)
이곳 죽도에 1589년 10월 정여립이 그의 일행들과 더불어 먼저 왔고, 그 뒤를 이어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그때도 조선의 산들은 단풍빛이 고왔을 것이고, 물살들은 20세기를 마감하고 있는 이 시대에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푸르고 맑았을 것이며 사람들은 제각각 제 나름의 힘겨운 삶들을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조선의 하늘은 비를 머금은 뭉게구름이 떼를 지어 모여들고 유독 이곳 죽도의 천반산을 향하여 칠흙같은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미 만개했던 단풍의 향연은 끝 난지 노래, 몇 잎 남은 단풍이 가는 가을을 전송하는 데, 산천은 그래도 아름답고도 처연하다.
그 을사년 스런 경자년 가을의 끝자락에
2020년 11월 17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