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종이컵에 관한 기록
- 복효근
그 하얗고 뜨거운 몸을 두 손으로 감싸고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듯
사랑은 이렇게 달콤하다는 듯
붉은 립스틱을 찍던 사람이 있었겠지
채웠던 단물이 다 빠져나간 다음엔
이내 버려졌을,
버려져 쓰레기가 된 종이컵 하나
담장 아래 땅에 반쯤은 묻혀 있다
한때는 저도 나무였던지라
낡은 제 몸 가득 흙을 담고
한 포기 풀을 안고 있다
버려질 때 구겨진 상처가 먼저 헐거워져
그 틈으로 실뿌리들을 내밀어 젖 먹이고 있겠다
풀이 시들 때까지 종이컵의 이름으로 남아 있을지
빳빳했던 성깔도 물기에 젖은 채
간신히 제 형상을 보듬고 있어도
풀에 맺힌 코딱지만 한 꽃 몇 송이 받쳐 들고
소멸이 기꺼운 듯 표정이 부드럽다
어쩌면 저를 버린 사람에 대한
뜨거웠던 입맞춤의 기억이
스스로를 거듭 고쳐 재활용하는지도 모를 일이지
1회용이라 부르는
아주 기나긴 생이 때론 저렇게 있다
ㅡ시집『따뜻한 외면』(실천문학사, 2013)
*****************************************************************************************
어제 저녁에 문협영주지부 새해 문학아카데미강사 모임이 있었습니다
개강일시 장소 개설과목 봉사할 강사 선정 등을 의놈하기 위함이었지요
시간이 흐를 수록 수강생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폭과 넓이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데
모두의 뜻이 모였습니다^*^
일회용이 아닌 재활용이 아닌 강의로 묵힌 감정의 소용돌이를 표현하도록 하자는 다짐과 함께요
나이들어서 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표현욕구의 발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수'를 하루 앞두고 모든 문청들의 마음도 열리기를 기대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