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 가는 길
지난주 예전 근무지 동료로 나보다 연장인 퇴직 교장과 안부 전화를 나누었다. 이십여 년 전 주택지 신설 여고에서 같이 근무했던 분들과 한 해 두 차례 정기적으로 얼굴을 보곤 했는데 이분은 건강이 좋지 않아 한동안 나오질 않아 뵙지 못한 사이다. 통화 속에 몇 해 사이 예전처럼 건강을 되찾아 가는 듯해 마음이 놓였다. 사는 곳은 진해인데 장유에 소일거리로 텃밭을 가꾸었다.
통화 이후에 식사를 한 끼 나누자고해 정해진 날이 주중 목요일이다. 창원에서 대중교통으로 장유로 가는 버스 편은 자주 있음에도 나는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상점령 고개를 넘어갈 생각을 했다. 이른 아침 올여름 근교 산행에서 채집해 말려둔 영지버섯을 한 봉지 챙겨 배낭에 담아 101번 시내버스로 대방동 성당 부근에서 내려 성주동 아파트단지를 돌아 용제봉 가는 길로 들었다.
올여름에 영지버섯을 채집하려고 몇 차례 드나든 용제봉 기슭이다. 그 산기슭 참나무 숲에서 찾아낸 영지버섯을 베란다에서 말려가는 중이다. 말린 영지버섯이 예전 근무지 동료의 건강 회복에 도움이 될까 봐 배낭에 몇 줌 넣어 가는 길이다. 평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용제봉 숲을 찾는 산행객은 드물었다. 널따란 등산로를 깊숙하게 들어간 갈림길 이정표에서 상점령으로 향했다.
불모산 숲속 길로 드는 골짜기는 계곡물이 넉넉하게 흘러 사방댐에 쏟아지는 물줄기는 바라만 봐도 시원했다. 계곡엔 놓인 다리 건너 정자에 앉아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명상에 잠겨 시간을 보냈다. 쉼터에서 일어나 불모산 숲속 길이 아닌 상점령으로 가는 임도를 따라 걸었다. 상점령 임도는 창원터널이 뚫리기 이전 불모산동에서 김해 장유로 가는 산마루를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임도 들머리 길섶에서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마타리꽃을 만나 반가웠다. 엊그제 달천계곡으로 들어 칠원 산정마을로 가면서 벌개미취와 뚝갈이 피운 꽃은 봤으나 마타리꽃을 보지는 못했는데 상점령 가는 길섶에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상점령 고개는 장유에서 불모산 정상으로 가는 산허리로는 포장도로가 연결되었다. 방송국 중계소와 화산의 공군부대로 가는 자동찻길이다.
나는 자동찻길과 반대 방향인 용제봉으로 가는 산등선을 따라가다가 장유사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산허리로 계속 가면 장유사에 이르고 골짜기로 내려서면 대청계곡이지 싶었으나 등산로가 희미해 길을 잃어 개척 산행을 감행했다. 예전에 두세 차례 다녀본 길이라 지형지물이 낯설게 보이지는 않았는데 삭은 참나무 그루터기에 붙은 영지버섯을 두 무더기 찾아낸 성과를 거두었다.
대방동에서 상점령을 넘어 대청계곡에 이르기까지 대여섯 시간 걸렸다. 창원터널 입구와 가까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엔 몇몇 음식점과 펜션이 들어서 있었다. 깊숙한 계곡을 빠져나가 상점마을 회관에서 장유 누리길을 따라 계곡이 끝난 곳에 닿으니 지인 농장이었다. 지인은 이른 아침 텃밭에 들려 작물을 돌보고 진해 자택에 머물다 나의 연락을 받고 다시 길을 나서 오게 되었다.
지인은 퇴직 이후 우리나라 상고사 연구에 천착하다 뜻하지 않은 병마가 닥쳐왔지만 꿋꿋하게 이겨냈다.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 이후 여러 차례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먼 길을 오가야 하는데 본인의 의지로 극복했다. 다행히 유년기를 보냈던 고향이 신도시가 개발되기 이전 장유였는데 선대인이 남긴 골짝논에 터를 골라 꽃집을 분양하고 그 곁에 텃밭을 일구며 흙과 더불어 살았다.
넓은 농장에 유실수와 갖가지 작물을 키웠는데 잡초가 한 포기 들어설 틈도 주질 않고 말끔하게 잘 관리했다. 포도덩굴 덕장 아래 쉼터에서 지인과 그간 밀린 안부를 나눈 뒤 점심 식사 자리로 이동했다. 대청계곡의 천변 상가로 내려가 깔끔하게 차려 나온 조개미역국으로 점심상을 받았다. 지인은 지난날 두주불사였으나 지금은 한 모금도 못 했지만 나는 맑은 술을 몇 잔 곁들였다. 22.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