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黃巢)의 난
안사의 난 이후 번진 세력의 발호와 환관의 발호 및 환관파와 조신파와의 싸움은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져 마침내는 당왕조를 무너뜨리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당의 희종(僖宗) 중화 원년(881) 1월 8일 이 날은 당나라 수도 장안의 역사에 대서특필할 커다란 사건이 일어난 날이었다. 이날 아침 당나라 제18대 황제 희종이 장안의 서문인 금광문을 빠져나와 허겁지겁 도망치는 것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장안의 동문 춘명문으로부터는 반란군의 수령 황소가 대군을 거느리고 금으로 장식한 수레를 타고 위풍 당당하게 입성하였다.
장안의 백성들은 조수처럼 길 양쪽에 밀려들어 반란군을 환영했고 태극궁에서 연금 생활을 보내던 궁녀 수천명도 거리에 뛰쳐나와 황소를 환영하였다.
반란군의 장병들은 가난한 백성들을 보면 의복과 금품을 나눠 주는 등 이날 하루는 장안 시민들에게는 더없이 즐거운 축제의 날이었다.
황소는 산동성 하택현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문무를 좋아하였으나 과거 시험에는 낙방하였다. 황소의 집은 소금을 밀매하고 있었는데 왕선지 또한 같은 소금 밀매업자였다.
874년 왕선지가 군사를 일으키자 이에 호응하여 황소도 또한 군사를 일으켰다. 해마다 계속되는 한발과 수해.충해로 인하여 고향을 버리고 유랑 생활을 하는 자들이 속속 그들의 휘하로 모여들어 삽시간에 수천명의 군사를 모을 수가 있었다. 왕선지와 황소는 일정한 거점을 정해두고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공격하는 작전을 폈기 때문에 토벌하는 관군측에서는 포착하기가 어려워 많은 어려움을 겼었다.
당시 천하는 크게 소연하였다. 반란을 일으킨 것은 왕선지.황소 두 사람뿐이 아니었고, 논공 행상에 불만을 품은 절서 낭산진의 장교 왕영도 반란을 일으켰고 섬주.염주.하중 지방에서도 병란이 일어나 천하는 점점 소연해졌다.
대부분이 북방 출신인 황소군의 장병들은 영남의 풍토에 익숙지 못해 병사하는 자가 잇달아 발생하여 10명 가운데 3,4명이 죽는 상태에 이르렀다. 황소는 부하들의 권유에 따라 공격 방향을 북쪽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북쪽으로 돌아가 큰일을 도모하자."
이것이 황소군의 구호였다. 큰일을 도모한다는 것은 시시하게 절도사 따위가 되겠다는 뜻이 아니고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황소군의 북벌이 시작되었다. 황소의 북벌군은 커다란 뗏목을 만들어 계림에서 상강의 흐름을 타고 형주.영주를 지나 담주를 격파하였다. 이 곳에서 정부군 10만명이 소멸되어 시산혈해를 이루었다고 [신당서]에 기록되어 있다. 황소군이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가니 지나는 곳마다 속속 황소군에 항복하였다.
황소는 장안에 남아 있던 황족 전원을 몰살하고 12월 임진일에 함원전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나라 이름을 '대제(大齊)', 연호를 '금통(金統)'이라 칭하였다.
대제 금통 4년, 즉 883년에 이르러 황소군의 전력은 눈에 띌 정도로 약화되어 장안의 남.서.북은 모두 당군에 의해 봉쇄당하게 되었다. 동쪽(낙양)으로 통하는 길은 원래 황소군의 부장 주온(朱溫)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황소군의 형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한 주온이 당군에 항복함으로써 낙양과의 교통도 차단당해 버렸다. 이렇게 해서 장안은 점점 고립 상태에 빠지고 물자마저 바닥이 날 지경이었다. 주온의 배반은 황소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었고, 당왕조에게는 천병만마나 다름없는 큰 힘이 되었다. 당왕조에서는 주온에게 요직을 내리는 한편 전충(全忠)이라는 이름까지 하사하였다. 이후부터는 주온을 주전충이라 일컫기로 한다.
이 주전충이야말로 당나라에 이어 5대 10국의 하나인 후량(後梁)의 태조가 된 인물이다.
장안에서 탈출한 황소는 추격하는 주전충.이극용과 1년 이상 싸웠으나 패배를 거듭함으로써 거의 전멸 상태에 빠졌다. 금통 5년(884) 6월 황소는 겨우 1천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태산 동남 낭호산으로 도망쳤으나 호랑곡 전투에서 패하여 자결로써 일생을 마쳤다.
황소의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으나 당왕조는 이 반란으로 인하여 큰 타격을 입어 그후 23년간 겨우 명맥을 이어갔을 뿐이었다. 이 23년 동안은 번진(절도사) 세력이 강성하여 환관들을 모조리 죽이고 살아 남은 조정 중신들도 모두 황하에 던져 죽임으로써 당왕조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907년에 이르러 선무 절도사(하남성.산동성.안휘성 일대의 장관) 주전충이 당왕조 최후의 황제 애제(哀帝)로부터 선양의 형식으로 황제의 위에 오르고 나라 이름을 양(梁)이라 하니 이 나라를 역사상 후량(後梁)이라 부른다.
이렇게 해서 당왕조는 고조로부터 20대(代) 290년 동안 이어오던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 제가 숙제를 해야 하는데, 다름이 아니고 당나라를 멸망으로 몰고 간 '황소의 난'의 주인공, 바로 '황소'에 대해 조사해 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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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학교 도서관이나 인터넷을 뒤져 봐도 '황소'에 대한 일대기나 일화 같은 건 찾아 볼 수가 없더라구요....(심지어는 브리테니커 백과 사전에도 그의 일생에 관한 것은 없었습니다...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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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황소'라는 사람의 일생에 대한 것이나 일화에 대해 아시는 분이 있으면 리플 달아 주셨으면 합니다...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