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추감사주일설교. 감사함으로 찬송함으로 (시편 100편 1~5절)
---------------------------------------------------------------------------------------
“감사함으로, 찬송함으로”, 오늘 설교의 제목입니다. 고단한 인생길 걸어가면서 감사하고, 찬송 부르면서 한 평생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지난 6개월을 돌이켜 보세요. 감사할 거리가 얼마나 있었습니까? 코로나19로 인해 전 국민이 거의 4개월 이상 최소한의 공간에서 감금되다시피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신경이 예민해져서 짜증나고 답답한 시간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이제 날씨까지 더워져서 누가 조금만 말을 길게 걸어와도 도망가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은 맥추 감사 주일입니다. 감사 절기가 되어서 의무적으로 감사의 조건이 뭐가 있었나? 억지로 짜내기 해서 감사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까? 지금 내가 건강한 몸으로 숨 잘~ 쉬고 살아 있다는 것, 매일 같이 살려 주시는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예배 하고 있다는 것, 구원 영생의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도 살려 주시고, 내일도 살려 주시고, 앞으로도 사나 죽으나 영원히 살려 주시는 것, 너무나 감사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서로 농담하면서 “있을 때 잘해!” 라고 하죠. 우리 신앙인들은 “살려 주실 때 잘해!”라는 말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살려 주시는 은혜, 이것 하나만 제대로 감사하면서 살아가시면 그리스도인으로 불리기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나를 살려주시고 새 사람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하시며, 7월 한 달 동안 감사가 넘치는 기쁨의 시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100편은 시의 표제어 자체가 “감사의 시”입니다. 나이 들수록 자꾸 기억력이 떨어져 가는데 자꾸 외우라고 해서 죄송하지만, 시편 150편중에서, 시편 1편, 23편, 그리고 이 100편은 통째로 암송해 놓으시면 참 좋습니다. 한 편당 5~6절이기 때문에 외우려고 하면 어렵지 않습니다. 외워 놓으시면 시시 때때로 위로도 받고, 평안도 얻고, 감사를 누릴 수 있는 좋은 시편입니다. 특히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시편 23편, 한 편 정도는 영어 성경으로 암송해 놓으면, 그 말씀이 인생의 나침반과 같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시편 100편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모르나(미상), 예배자들이 감사제의 예물을 가지고 성전 문과 뜰을 통과할 때 부르는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감사의 시’ 답게 1~5절 모두에서 어떠한 원망이나 불평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시종일관 즐겁고, 찬양하고, 노래하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송축하는 내용으로 꽉 차 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다가, 최종적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영광 돌리는 것으로 끝납니다. 감사라고 하는 것의 주인공은 사람도, 예물도, 성전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만 주인공이여야 하며,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높여져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감사가 이루어집니다.
먼저 3절 말씀을 읽어 드립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아멘. 많이 들어보셔서 익숙한 구절이죠. 이 3절에서, 우리가 어떤 이유를 들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려야 하는지 너무나도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 이유가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1. 첫째,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일생일대의 자랑 중의 자랑은 바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도 되십니다. 소위, “빽(back ground, 뒤 배경) 없는 사람이 어딨어?, 대통령 빽이면 다 돼” 라는 말 많이들 합니다. 그런데 무려 온 세상의 창조주요, 섭리주(攝理, 다스리고 관장하심)요, 심판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나의 빽이 되십니다. 이 정도면 어디를 가든지 “다 나오라고 그래!” 큰 소리 칠만 하지 않습니까?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이 찬양 부르면 새 힘이 솟아납니다. 놀이터에서 힘센 아이들에게 밀려 기를 못 피던 아이도, 아빠가 오면 용기 백배 해서 큰소리칩니다. 그리고 제가 나 때렸다고 아빠한테 다 일러바칩니다. 그 아이의 마음에는 아빠가 곧 슈퍼맨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딜 가나 천하무적이신 전지전능하신 “아버지”가 계십니다. 큰 소리 빵빵 치셔도 됩니다. 나의 영원한 빽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만 믿으시고, 주눅 들지 마시고, 자존감 잃지 마시고,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항상 감사함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2. 둘째,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만드셨습니다. 한 번은 간난 아기로 태어나도록 생명을 주셔서 만들었고, 한 번은 예수님을 믿게 해서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모든 소유권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것, 그 분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아멘. 사도 바울은 말로만 이런 고백을 한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가 철저하게 자기 개인의 소유권을 포기한 인생이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의지대로 가고 싶은 곳으로 이동하지 않았고, 오직 주인의 음성을 따라서만 움직였습니다.
가지 말라는 곳에는 절대로 가지 않았고, 가라고 하는 곳은 가기 싫어도 무조건 나아갔습니다. 하지 말라는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하라는 일은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 반드시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말하지 말라고 했을 때는 입이 근질거려도 침묵 했고, 말하라고 명령 한 것은 돌로 맞고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할 말은 기어코 다 토해 냈습니다. 이런 바울의 모습이 나를 지으시고, 나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신 주인에게 드려야 할 합당한 모습입니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우리가 이 찬양을 부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셨던 기억들이 있으실 겁니다. 나는 내 몸과 내 움직임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내 안에는 나의 주인이신 우리 주님이 좌정하고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 그 분이 나의 주인이요 소유자로 일하 실 때, 나의 모든 삶에 기쁨과 평안이 넘치게 됩니다. 내 의지대로, 내 자아대로 움직이려는 나쁨 습관에서 벗어나셔서, 나를 두 번이나 지으시고(태어나게 하시고), 나의 모든 소유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시며 감사가 넘치는 인생길을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3. 셋째,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지만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영생의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먼 훗날에 다 들어가게 될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잘 적응 할 수 있도록, 하나님 나라의 예비 된 백성으로 교육시키시고 훈련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이 백성들과 양들을 성장하게 해 주시는 양분은 “말씀”입니다. 마치 새끼 양이 신선한 풀을 먹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듯이, 우리에게는 말씀의 공급이 충분해야 육신과 영혼이 강건해 질 수 있습니다.
말씀 없는 믿음의 성장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씀 없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음성에 인도함을 받는 양의 무리들 이라면, 그가 기르시기 위해 충분히 제공해 주시는 말씀, 곧 영의 양식 먹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먹고 자라날 때 거룩과 사랑의 백성으로, 예배와 찬송의 백성으로, 섬김과 나눔의 백성으로, 믿음과 순종의 백성으로 성장하여, 하나님 나라에 언제라도 들어가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말씀이 곧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신데, 말씀을 가까이 하기를 싫어한다, 거부한다, 멀리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거나, 하나님이 사랑으로 다가오셔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기를 정말 즐겨하는 사람, 말씀과 함께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습관이 된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한 번 암송했던 잠언 8장 17절을 기억 하십니까?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아멘.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신다면, 사랑한다는 감정에만 빠져 계시지 말고, 그 사랑하는 대상을 간절히 찾으십시오. 그리고 직접 만나는 은혜를 경험하십시오. 그리하셔서 욥과 같이,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감격과 감사의 고백을 드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내 삶의 중심에 두고, 말씀으로 날마다 성장하시기를 바랍니다.
3절을 통해 감사해야 하는 이유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1.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에 감사,
2. 하나님이 나를 두 번이나 지으시고 나를 하나님의 것(소유)으로 삼아주셔서 감사,
3. 하나님의 나를 백성으로, 양으로 먹이시고 길러 주셔서 감사,
이 세 가지 감사는 우리가 눈 감고 기도 할 때마다, 예배하고 찬송 할 때마다, 시시 때때로, 일평생 고백해야 할 평생 감사 제목입니다. 이 세 가지 감사가 넘치는 사람은 비로소 4절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다같이 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아멘.
“감사함으로, 찬송함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신 궁전에도 거침없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감사 없이는, 찬송 없이는, 하나님이 계신 근처에 다다를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에게 감사절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메말랐던 감사를 회복하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왜 예배를 드리기를 멈추지 않는 것입니까? 예배를 통하여 찬양이 회복되기 위함입니다. 감사와 찬양이 온전히 회복되고 유지되어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거뜬하게 들어가게 인도하시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신실한신 일하심의 역사입니다.
감사와 찬양 없이 그냥 저냥 인생 허비하며 살다가 하나님 나라 문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궁전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들도 분명히 있다고 했습니다. 오른손에는 감사, 왼손에는 찬양 꽉 움켜지고 묵묵히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서게 될 것이고, 그 분 앞에서 영~원히 감사하고, 영~원히 찬양하는 그날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한 사람 이야기를 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유명함 말로 잘 알려진 파스칼(Pascal, Blaise, 1623-1662)은 위대한 수학자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때부터 너무나 뚜렷한 족적을 남겼기 때문에, 파스칼로 인해 세계는 새로은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찬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전도유망하던 그가 30대 초반에 하나님을 만나는 환상 체험을 한 후 그는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아갑니다. 기독교 명상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 진리를 수호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러한 파스칼은 이러한 말을 남겼습니다. “어둠이 전혀 없다면 사람은 타락이 무엇인지 조금도 알지 못할 것이다. 또 광명이 전혀 없다면 사람은 구원을 전혀 희망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신의 그림자가 어느 정도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것은 정당할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유익하다.” 이해가 되시나요?
우리가 삶 속에서 감사와 찬양이 사라지고 원망과 불평이 계속 늘어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파스칼이 두 가지 경우를 말한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너무 뚜렷하게 나와 함께 계시다는 지나친 확신(사실은 맹신)으로 인해 타락과 유혹이 점점 스며드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어둠속으로 소리 없이 빨려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너무 흐릿하게 계시는 것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간절함 소망이 불타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고뇌 하는 가운데 이 두 가지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이 흐릿하게 보일 때는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데 열심을 냈고, 하나님이 뚜렷하게 보일 때는 그 좋은 상태를 무너트리려는 어둠의 유혹을 경계하며 더욱 감사와 찬송으로 영적 무장을 했습니다. 그는 수학자로 더 큰 명성을 얻을 수 있었지만, 하나님 나라의 문에 들어가고, 그의 궁전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가치라는 것을 깨닫고 실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맥추 감사절에 시편 100편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하여 주시고, 인생길을 동행하여 주시고, 천국 문으로 양 무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목자 되심을 확인했습니다. 00교회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은 “감사함으로, 찬송함으로”, 이 두 가지의 고백을 인생 끝나는 그날까지 잊지 마시고, 하반기에 더욱 “감사함으로, 더욱 찬송함으로” 크고 풍성한 감사를 드리시면서, 천국 문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맥추감사절에 00의 모든 성도가, “감사함으로, 찬송함으로” 하나님 곁에 가까이 나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고단한 인생길이 감사와 찬송으로 인해, 위로 받고 평안과 소망이 넘치는, 믿음의 길, 승리의 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고 찬송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ㅎㅎ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