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출발하지만 탐사기행으로
실크로드는 누구나 한 번은 가고 싶은 여행지다. 그 이유가 뭘까? 하나는 떠나는 것에 대한 설렘이고 다른 하나는 여행에 동경이다. 여행에 대한 동경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만, 시간과 돈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시간과 돈이란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면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다. 특히 시간은 만들어야 한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은 아내가 먼저 제안을 했다. 물론 과거 여러 번 내가 운을 뗐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실행을 하지 못했다. 이번에 문명교류연구소(소장 정수일)가 주관하는 실크로드 답사에 참가하려고 했는데 눈 깜짝할 새 신청이 끝나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았다. 아쉬워하던 차에 K여행사에서 하는 패키지여행에 괜찮은 것이 있다며 프로그램을 보여준다.
코스가 좋고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더욱이 우선 인천공항에서 우루무치까지 전세기가 뜨기 때문에 오고가는 시간이 많이 절약된다. 또 묵는 호텔이 그 지역에서는 비교적 괜찮은 곳으로 정해져 쾌적한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 정도 야간열차로 이동을 하지만 4인1실이면 괜찮은 편이다. 이번 실크로드 기행은 한마디로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둔황(敦皇)까지 천산북로를 따라가는 기행이다.
이곳은 실크로드 중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지역이다. 그것은 실크로드의 출발지인 시안(西安)에서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둔황을 거쳐 우루무치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인천공항에서도 시안이나 우루무치로 직항편이 연결되어 네댓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과거 중국과 서역을 연결하는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들이 분포하고 있어 정말 매력이 있다.
더욱이 1908년 둔황의 막고굴(莫高窟) 장경동(藏經洞: 17동)에서 혜초(704?-780)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이래 실크로드 답사는 한국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혜초 스님은 723년 광저우를 출발, 남지나해를 거쳐 말라카 반도를 통과한 다음 동천축국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불교성지를 순례하고 중, 남, 서, 북천축국을 여행한다. 이어 대식국으로 알려진 페르시아 지방과 중앙아시아를 편력한 다음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국 땅으로 넘어가게 된다.
혜초 스님은 카슈가르에서 천산남로를 따라 쿠차와 언기를 지나 둔황에 이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란저우를 거쳐 727년 창안(長安)에 도착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스님은 창안의 천복사, 대흥선사 등에서 불법(密敎)을 설하고 불경의 번역작업에 몰두하였다. 스님은 780년 4월 오대산 건원보리사에 들어갔으며, 5월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을 남기고 입적하였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 혜초 스님의 여정과 겹치는 구간은 투르판에서 둔황까지이다. 혜초 스님의 여행구간 전체로 따지면 1%나 될까 하는 짧은 구간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이곳이 이번 여행의 핵심구간이다. 그래서 사명감이 더 크다. 혜초스님의 발자취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의 글을 통해 1,300년 전 이곳의 모습을 유추해볼 수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실크로드 탐사는 현재에서 과거를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이다.
이번 탐사기행에 대한 안내
이번 여행의 출발지는 우루무치이지만, 여행의 핵심은 둔황과 투르판이다. 이들 도시는 모두 오아시스 도시다. 둔황과 투르판이 과거에 번성했다면, 우루무치는 현재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우루무치는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수도이다. 우루무치는 몽골어로 '아름다운 초원'이란 뜻이다. 중국의 서쪽 변방에서 가장 큰 도시로 인구가 268만이다.
신장위구르 지역은 1954년 2월 중국에 편입되었고, 이후 위구르족과 한족간의 갈등이 생겨났다. 2009년 8월 위구르족과 한족 사이에 충돌이 있어 200여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1949년 독립 당시 80%에 달하던 우루무치의 위구르인 비율은 현재 12% 정도이다. 우루무치는 현재 급격히 한족화되어 가고 있다.
1990년대부터 경제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서부 변방지역 교통과 금융 그리고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우루무치의 산업생산량은 신장 전체의 65%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1인당 국민소득도 7000달러에 달할 정도로 높다. 이곳 우루무치에서는 자연유산인 천산천지와 남산목장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
둔황과 투르판은 실크로드 상의 고도로 볼거리가 가장 많은 도시다. 그래서 이들 도시에서는 이틀씩 머물게 된다. 둔황에서는 명사산과 월아천, 막고굴, 양관고성, 돈황고성, 백마탑 등을 보게 된다. 그리고 투르판에서는 첫째 날 베제클릭 천불동과 화염산, 고창고성, 아스타나 고분을 본다. 두 번째 날에는 교하고성, 소공탑, 카레즈 등을 보고 포도 농가를 방문할 예정이다. 물론 저녁에는 위구르 민속춤을 관람한다고 한다.
그 외 여행지로는 하미와 선선이 있다. 이들 도시는 둔황과 투르판 사이에 있다. 하미는 메론인 하미과(哈密瓜 )가 유명한 곳이다. 볼거리로는 회왕릉과 바리쿤 초원이 있다. 선선은 누란왕국의 옛터로, 누란의 미녀가 발견된 쿠무타크 사막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의 중점은 문화유산이지만 사막과 초원 같은 자연유산도 보게 된다.
그러나 현장은 그렇게 만만치 않고
이번 여행을 통해, 실크로드는 낭만이 아니라 '체험 삶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석양에 낙타 방울소리를 들으며 사막을 여행하는 비디오에 익숙하다면, 그러한 꿈을 깨야 한다. 무더위에 냉방장치도 시원찮은 좁은 버스를 타고 대여섯 시간씩 이동을 해야 하는 고행길이기 때문이다. 중간에 생리적 요구를 해결하려면 자연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더러운 화장실을 감수해야 한다.
또 사막 한가운데 내려 보면 지옥이 따로 없구나 생각하게 된다. 찜질방이 따로 없고, (모래) 바람이 몸을 사정없이 강타한다. 차들조차 운행 중 바람에 흔들릴 정도다. 곳곳에 '주의횡풍(注意橫風)'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거기다 도로 상황은 썩 좋지를 않다. 둔황에서 유원에 이르는 길은 한마디로 끔찍하고, 유원에서 하미에 이르는 길도 만만치 않다.
볼거리도 대부분 훼손되어 원형을 유지하는 곳이 많지를 않다. 그나마 둔황의 막고굴이 나은 편인데, 보여주는 곳이 한정되어 있다. 투르판에 있는 베제클릭 천불동은 문화재 수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파괴되고 뜯기고, 뭐 하나 제대로 남아있는 것이 없다.
투르판의 고창고성과 교하고성은 역사의 무상함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광대한 옛터에 흙덩이로 변해가는 잔해들이 널려 있다. 그나마 한두 군데 절터와 궁터, 묘역 등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기록 속의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은 산과 사막 같은 자연유산이다.
그러나 이들도 아침이나 저녁에 찾아야지, 한낮에 찾았다가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개고생을 해야 한다. 우리가 시간관계상 쿠무타크 사막을 한낮에 찾았는데, 정말 전동차 아니면 관광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현장에서는 낙타와 당나귀 같은 동물과 전동차가 정말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마 그 옛날 실크로드 여행자들은 한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쉬고 밤에만 여행했을 것 같다.
우리는 일주일 또는 열흘 만에 여행을 끝내지만, 옛날 사람들은 몇 달 또는 몇 년의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여행을 했을 테니 그 고생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이동수단, 먹을거리, 잠자리 등이 지금처럼 완비되어 있지 않았을 테니 그건 어쩌면 당연할 일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건조한 날씨 때문에 배탈이 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음식도 밥과 채소 그리고 탕과 고기라는 기본 구성을 하고 있어, 우리식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양고기가 생소하고 탕이 밋밋해서 많이 먹지는 못했다. 밥도 찰기가 부족해 우리 입맛에는 잘 맞지를 않았다. 전체적으로 음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잘들 적응해가는 편이었다.
정신 좀 차리셔 해외여행사들!
그러나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여행사에 있었다. 그 중에서도 여행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여행담당자들의 책임이 컸다. 첫째 여행 코스가 문제였다. 여행사가 제시한 일정표와 진행순서가 맞지 않았다. 한 마디로 담당자들이 현지답사는 않고 현지 여행사에 모든 것을 일임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순서가 바뀐다면 여행사에 신뢰가 가겠는가?
그리고 또 일부는 제대로 안내하지를 않거나 근처에만 가기도 했다. 박물관 프로그램이 대표적인데, 그 많은 진열실 중 한두 개만 보고 끝내려는 경향이 있었다. 더욱이 초원 같은 자연체험의 경우 가장 멋진 곳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초입에서 돌아오거나 아예 엉뚱한 곳으로 안내하기도 했다. 이제는 여행이 유명한 곳을 찍는 못된 버릇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대로 좀 보여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교통의 문제다. 실크로드 지역은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버스로 이동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좌석이 좁고 냉방장치가 열악해 이동이 고통스러울 정도다. 예를 들어 둔황에서 하미까지 이동하는데 무려 8시간 동안 생고생을 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도 전신 마사지를 했다고 표현할 정도다. 한국 여행객들의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데, 아직도 이런 버스를 들이댄단 말인가?
세 번째 숙소의 문제다. 5성급에서 하루, 3성급에서 하루, 나머지는 4성급이라고 해 놓고는 한 단계씩 다운시키는 방식이다. 이건 한마디로 사기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욕조가 없는 방이 대부분이고 최악의 경우는 에어컨을 마음대로 켜고 끌 수도 없었다. 사막 지방의 호텔이니 물이 나오는 것에 만족하란 것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네 번째 숙소와 연계된 문제로 음식이다. 아침에 식당에 가면 현지식과 양식이 겸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만 선택의 여지가 있고, 변화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건 세끼 모두 거의 같은 현지식이다. 그나마 적응력이 뛰어난 나 같은 사람은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 팀 구성원 8명 중 6명은 음식 때문에 내내 불만이었다. 조금 더 돈을 받든지 등급을 올려 음식문제를 해결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여행사가 저지르고 있는 잘못은 무수히 많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을 다녀오고는 잊고 만다. 또 따지려고 해도 내용을 정확히 몰라 지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해서는 백년하청이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을 소재로 패키지여행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자 한다. 15회 정도 여행기를 연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