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무국
오늘 아침 난 소고깃국을 끓여 놓곤 감히 입에 대지도 못한 채 울고 있다.
지난날 소고깃국에 얽힌 가슴 쓰린 추억 때문에...
한 번씩 이런 상념에 빠지면 그날 하루는 온통 마음이 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된다.
아마 오늘 내 마음은 그렇게 온통 방황하며 서성거리게 될 것 같다.
찬바람이 쌩 불면 밑동이 하얀 커다란 가을 무를 사다 납작
납작하게 썰어 넣고 국을 끓인다.
그 무하고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소고기였다.
그 다음 자작자작하게 물을 붓고 국을 끊이는데 국이 완성될 즈음이면 온 집안에 소고기 무국 향기가 가득 찬다.
예전 푸줏간에선 고기를 뚝 잘라 신문지에 둘둘 말아 팔았다.
부엌 구석에 신문지가 말려 있는 걸 보면 “고기다!”하고 소리를 지르곤 했었다.
지금이야 웰빙이니 뭐니 해서 고기보다 야채로만 된 채식 식단이 오히려 각광을 받는 시절이 되었지만 내가 자란 6,70년대는 모든 먹거리가 귀한 시절이었다.
소고깃국은 그 중 정말 귀한 음식이었다.
엄만 어쩌다 소고기 무국을 끓이는 날엔 무를 가득 썰어 넣고 고기는 조금, 그리고 국물은 가득 넘치게 국을 끓였다.
늘 엄마와 내 국 속엔 국물과 무뿐이었고 아빠와 오빠 국속엔 무 말고도 소고기가 쉽사리 눈에 띌 만큼 많이 들어 있었다.
난 국 속에서 낚시를 하듯 운 좋으면 어쩌다 한두 조각의 고기만을 건져낼 뿐이었다.
아빠가 드시는 국을 멀끔히 바라보며 “아빠, 고기 맛나지!”
하고 물으면 아빤 빙긋이 웃으시며 아무 소리 없이 아빠 국속의 고길 건져다 내 국 그릇으로 옮겨 놓으셨다.
엄만 힐끌거리며 나에게 눈치를 주셨지만 일단 고기가 먹고 싶은 욕심에 엄마의 눈총 따윈 못 본 척 외면해 버리곤 했다.
세월이 흘러 서른 가까워 오던 어느 가을 날, 아빠가 급성 위암이 거리셔서 수술을 받으셨다.
위암엔 육류의 고단백질이 최고로 나쁘다고 의사는 절대 채식만을 당부했다.
아빠를 위해서 퇴원 후 한두 달을 야채로만 식단을 짜드렸다.
싱겁게 드셔야 한다고 해서 당뇨환자들이 먹는 것처럼 소금기를 없애고, 야채도 거의 밍밍하게 해야 한다는 의사의 지시를 철저히 따랐다.
아빤 별다른 반응 없이 순종하는 어린아이처럼 내 뜻에 따라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소고기 무국을 끓이던 날이었다.
옛날과는 반대로 아빠에겐 무와 멀건 국물만을 가득 드렸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목이 말라 주방에 나와 보니 아빠가 허겁지겁 국 냄비를 열어 놓으시곤 국자도 없이 손으로 다 식은 고기 건더기를 건져 드시고 계셨다.
“아빠,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고기가 아빠한테 얼마나 나쁜지 알아요?
고기 먹으면 암이 재발할 수도 있다고 했단 말이야. 어휴 속상해!”
아빤 고기를 미쳐 씹지도 못한 채 꿀꺽 삼키시며 고개를 푹 숙이고 방으로 들어 가셨다.
그게 아빠의 마지막 고기가 되었다는 걸 그 때 알았다면 그토록 모질게 국 냄비를 빼앗진 않았을 텐데...
아빤 그 후로 보름 뒤에 돌아가셨다.
얼마나 드시고 싶었으면 한밤중에 몰래 나와 씹지도 않고 꿀꺽꿀꺽 삼키셨을까.
난 그 후로 소고깃국의 고기를 먹지 못한다.
아버지에게 모질게 한 죄로 그 고길 먹으면 언칠 것만 같아서...
오늘 아침 소고깃국은 국물만 먹었는데도 자꾸만 목이 메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