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시인방'에 김병환 시인의 '은하 열차' 시가 떴다.
송충이
나무에서
힘없이 떨어지듯
.... .... ......
별이
빛나는 밤
은하 열차 타러 가자
'송충이'란 낱말을 오랜만에 보았기에 내가 아랫처럼 어깃장 놓듯이 댓글 하나 달았다.
인터넷으로 송충이 자료를 검색하면서 곤충학 공부를 더한다.
얼라?
혹시 은하열차를 탄 것이 아니라 송충이를 올라탄 거 아녀유?
송충이라는 벌레 이름을 오랜만에 봅니다.
1970년대 초까지 송충이 애벌레가 정말로 많았지요.
일꾼아저씨가 산에서 나무를 해서 지게로 지고 와서는 뒷켠에 부리면... 송충이가 부엌 뒷벽에 잔뜩 붙어서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특히나 봄철에는...
저는 대전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학교에서는 단체로 산으로 가서 송충이를 잡았지요. 젓가락으로 집어내서...
송충이 ... 잔털이 부숭부숭하게 많았지요.
위 시 ... 은하열차 타러 가다가는 송충이 등에 올라타는 것 아녀유?
글 내용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니어 백수 되어도 걱정하지 마세유.
지갑에 든 현금이 없으면 플라스틱 카드를 내밀면 자동으로 해결되어유.
왜 현금을 낸대유? 카드로는 외상도 척척 긁는데...
송충이 나방
송충이 나방
나는 '송충이' 애벌레는 어린시절부터 많이 보았으나 애벌레 송충이가 성충이 되어 허물을 벗은 뒤에는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변신)을 하는지를 몰랐다.
송충이를 본 지가 하도 오래되었기에 송충이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 도시생활에만 길들여져 있었다.
오늘 등단 시인방에 뜬 시에서 '송충이' 명칭을 보았기에,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곤충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나한테는 많은 글감이 떠오른다.
송충이. 정말로 무서운 쐐기이다. 가늘고 날카로운 솜털가시가 엄청나게 많아서 한번 살갗에 쏘이면 피부가 금세 벌겋게 부풀어 오르며 무척이나 따갑고 가렵다. 그 잘디잘은 솜털을 빼내야 하는데도 그게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내 어린시절인 1950년대 ~ 청년시기인 1970년대 초에는 왜그리 송충이가 많았던지...
내 고향은 보령 웅천 화망마을. 사방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이었다. 우리 집에서 불과 200 ~ 300m거리 서편에는 황씨네 산이 있었다.
동서남북이라고 해도 몇백m ~ 1km 남짓하는 거리 안에 있는 좁디좁은 산골이었다.
산골짜기 앞산 뒷산 옆산에는 소나무, 참나무 등 잡목이나 무척이나 많았다.
봄철이면 송화가루가 바람에 날려서 온 산과 온 들판과 온 마을을 뿌이연하게 떡칠을 했다.
일꾼아저씨(머슴)가 산에서 나무를 해서 지게로 지고와 뒤켠 장독대 옆에 부리면 그 생솔가지에서는 송충이가 스멀스멀 기어나와서 벽이란 벽을 모두 올라타고는 기어올랐다. 정말로 지겨운 애벌레였다.
어디 송충이뿐이랴? 상수리나무 잎사귀를 갉아먹는 애벌레 등도 엄청나게 많았다.
어디 서해안 산골마을뿐이랴?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 대전으로 전학을 갔다. 중학교 시절(1960년대 초)에서는 전교생이 송충이를 잡으려고 산으로 올라갔다.
내가 소년, 학생이었던 1950년대, 60년대의 고향의 산들이 다 헐거벗었으며, 나무들은 키가 아주 작았다.
마을사람들이 인근 산에서 나무를 해서 지게로 져날랐다. 재래식 부엌 아궁이에 불을 때기에 산들은 다 벌거숭이었다.
큰 소나무는 거의 없었고 대체로 키가 무척이나 작았다. 나무가 어릴수록 송충이 해충류는 더욱 많이 달라붙었을 터.
오래 전에 내 기억들이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 헐벗고 가난했고, 불결했던 시절이었는데...
시골도 그렇고 도회지인 대전의 모습도 거기가 거기였다. 내가 기억하는 1950년대 , 60년대, 70년대 초까지의 세상은 정말로 후졌다. 모두가 찌질이도 가난했고, 국가와 사회 모두가 변혁기에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나는 1970년대 말에 서울 강남구(지금은 송파구로 지명 변경)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래서 ... 특별시의 시민으로 변해버렸다.
............. 이하 생략....
잠시 쉰다.
많은 기억과 생각이 떠오른다.
2021. 10. 9. 토요일.
첫댓글 사방공사 덕분에 산은 푸르고 홍수를 막을수 있었고 농사는 풍년 모두가 박정희 대통령 덕
댓글 고맙습니다.
위 댓글로도... 김 시인님이 어떤 길을 가시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서해안 산골짜기 제 고향에서는 그 분이 산에다가 묘목을 심지 않았지요.
마을사람들이 묘목을 하나씩 심었지요. 나는 송충이를 잡고요.
'사방공사'라는 단어도 오랜만에 봅니다. 그 당시 산들이 온통 헐벗었지요. 주로 아카시나무, 소나무 위주로 심었지요. 그 당시를 생각하면. 대한민국 이전의 일제 강점기의 그 이전 세상은 어땠을까요?
정말로 찌질이 이씨조선. 농촌 산촌 어촌은 정말로 후지고 가난하고 가진 게 없고....
21세기인 지금... 천지가 바뀐 것처럼 변하고 발전했지요.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득 찬 대한민국이기에 앞으로는 더욱 부강해져서 남북통일이 조만간 되어야겠지요.
제 시골 산... 지금은 울창해서 산사람조차도 걸어다닐 수 없게 되었지요.
가득 찬 나무.. 나무들....
송충이 저거... 겁이 나는 존재이지요.
늘 생각하게 하는 감 시인 님의 글을 또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