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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정월 초하루 날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 하자 고향집 창호지 창문에 붉은 물이 들었습니다.
허겁지겁 잠바 하나를 걸쳐 입고 밖을 나와보니 |
차례음식 장만에 바쁜 아랫집 굴뚝에선 힌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 오르고 있습니다.
서리태 콩을 거둔 밭고랑은 돌덩이 처럼 얼어 있고
마른 감나무 가지에 내려 앉은 하얀 서리가 임진년 새아침 계룡산 줄기에서 떠 오른 햇살에 반짝입니다.
부지런한 친구가 임진년 새아침 해가 떠오른 |
시각에 맞춰 메시지를 보내 왔습니다. |
조선 중기 이곳 산골마을에 처음 이주해와 자손을 번창시킨 8 대조 할아버지 내외분이 마을앞 안산 명당에서
정월 초하룻 날 아침 자손들의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지식들을 따라 도시로 떠나 이제
돌보는이 없는 고향마을 옛집들이 하나 둘씩 허물어져 갑니다.
붉은선 안의 농지는 울 아버지가 농사를 지어 지식들을 먹여 살리고 서울로학교를 보냈던 옥토 13 마지기...
지금은 남의 토지로 변해
이곳을 지날때 마다 내 마음을 애잔하게 합니다.
고향마을 농지들은 저주지를 앞에 안고 있으니 가믐에도 아무런 혜택을 보지 못하는 천수답입니다.
우리에겐 저수지는 새우나 잡고 어린시절 멱감는 용도로 썻을 뿐입니다.
고향마을 어귀를 벗어나니 김덕수 사물놀이 팀이 폐교한 옛초등학교를 인수해서
개설한 사물놀이 교육원이 있습니다.
이곳 교육원은 이제 사물놀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로 북적 댄다고 합니다.
저수지에서 바라본 고향마을 입니다.
멀리 보이는 뒷산 가장 높은 봉우리가 옥녀봉입니다.
옥녀봉 밑이 울 고향마을 입니다
국민학교 교가에도 나옵니다.
금년에는 아직 얼음이 얼지 않은 저수지엔 청둥오리떼들이
유영을 즐기고 있습니다.
옛날 어렸을적에는
이 저수지 얼음위를 가로 질러 3 킬로 정도를 걸어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첫댓글 세웅이가 그렇게 일찍 문자보내서 나또한 엄청 기뻣다 .!억환이 마을이 아름답구나 내고향은 그런그림이 안나와요...
나도 기뻣다. 해맞이 사진을 찍는데 문자가 오더라 ㅎㅎㅎ
나는 불효자 설 명절에 조상님에게 성묘도 못갇는데 자네는 조상님의 산소 고향 풍경까지 복많이 받겠어....
조상님 성묘 한다고 효자라면 효자 넘쳐 못살아..
"고향마을 돌아오기" 에 귀가 번쩍! 내고향 충청도 어릴적 그시절이 그리워서...! 고향 산천은 의구 하더이까 인걸은 평안들 하시더이까?
cf: 사진밑에 오타가 있음.ㅎ 잘 살펴보세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