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불`교`의`빛`을`찾`아`서-무비스님[월간 대중불교 1994년12월호]-03(終)

<A name="[문서의 처음]"></A> 화엄의 대의 풀기를 화두로 30년 스님이 본격적으로 이 작업을 시작한 것은 10년이지만 화엄에 푹 빠져 지낸 지는  30년이 넘는다. 해인사 강원시절부터라야 옳다. 예나 지금이나 강원의 4학년 교과목 중에는 〈화엄경〉이 들어있고, 이때 맛본 화엄의 세계는 사뭇 답답했다. 도무지 가닥이 잡혀지지 않았다. 어찌하면 이 대의를 풀 수 있을까. 도리 없이 그것으로 화두로 삼았다. ’64년 깊은 겨울 강원을 졸업하던 날. 남들은 홀가분하게 일주문을 빠져나가던 그날, 무비 스님은 졸업식장에서 한눈 한번 팔지 않고 그길로 선원으로 올라갔다. 그로부터 10여  년을  해인사  통도사 등 선원에서 수행정진, 화엄의 세계를 무리 없이 받아들일 텃밭을 경작한 셈이다. 참선 수행은 지금도 스님의 생활 전반이다. 하기에 무비 스님은 “심법 (心法)에 약한 교 (敎)는 자연 기교에 흐르고 만다"는 약점을 전혀 지니고 있지 않다. 이는 주변의 많은 분들이 인정하고 있다. 참으로 정확한 게 인연이고 보면 ’58년 범어사에서 출가한 스님이 화엄의 대가이신 탄허 스님 법맥을 이은 것은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다. 법맥은 경허-한암-탄허-무비 스님으로 이어졌다. 탄허 스님 문하에서 화엄산림에 참여하고 <화엄경〉교열을 맡아하던 70년대 초반부터의 일을 무비 스님은 매우 즐거운 회상으로 떠올린다. “화엄산림을 하는데 탄허  스님이 어찌나 빨리 읽어내려 가시던지 정신없이 옆에다가 메모를 해요. 산림이 끝나면 그거 잊어버릴까봐 빨리 돌아서서 옮겨 적습니다. 그때 참 재미가 있었어요" 허허 웃으며 바로어제 일인듯 떠올리는 스님은 분명 행복한 과거를 가졌구나 싶다.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때 묻은 책을 꺼내 보여준다. 그때 화엄산림을 하던 책이다. 빈틈없이 채워진 연필글씨들. 그때 적어놓은 것들이 이번 작업에 참고가 많이 되었다고 한다. 탄허 스님에 비하면 백분의 일도 못된다 하시지만, 책장을 넘기는 스님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후학 지도와 경전탐구로 회향  ’76년에 통도사, ’77년~’79년까지 범어사 강원에서 강사를 지낸 스님은 승가의 가풍은 교육에 기인한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한국불교는 강원에서 4년 동안 채택하는 경전이 모두 소의경전이다. 게다가 부교재와 선어록 등 특별히 애독되는 경서들이 있다. 이 모두가 한국 불교 사상을 구축해 왔다. 그런 점에서도 경전의 바른 이해와 해석을 매우 중요시 하는 스님은 화엄을 연구하고 번역하는 틈틈이 이들 경서들을 번역하는 일도 열심이었다. <범망경> <금강경> <금강경오가해> <천수경> <반야심경〉 등의 번역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80년이던가. 스님은 난생처음 총무원 교무부장을 1년 여 지낸 일이 있다. 그것도 벼슬이라고 번민이 많았다. 그 후 스님은 ‘강사’ 외엔 어떤 직책도 맡아본 일이 없다. 그러므로 마음은 더 넉넉하였다. 스님이 출가본찰 범어사로 회귀 한 것은 ’88년 봄이다. 부산 신도 모임을 위해 〈법화경〉강의를 시작 한 지는 3년째. 일주일에 한번 닫는데 어느 새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카세트테이프 70개가 나와 자기네들끼리 돌려듣고 있다. 범어사 아래 남산동에 경전연구실‘문수원’을 낸 것은 지난해 9월이다. 이 장소에서 매주 두 팀이 각각 공부하는데 ‘문수원’ 가족과 ‘부산 불교약사회’다. 7,80명씩은 나온다. 교재는 별도로 만든 〈화엄경〉 여래출현품. 강의는 누가 뭐래도 학인들 대상이 해볼 만하다. 수덕사 명심회, 해인사 강원 등에서 일주일씩 특강 을 요청받은 스님은 이를 위해 꼬박 6개월여씩 준비를 했다. 선우도량 강의는 3개월이었으니 더 말할 것 없다. 역시 재미가 있고 보람이 있다. 스님의 이같은 일상은 곧〈화엄경〉 도처에서 만나는 보살정신일터이지만 스님의 말씀은 훨씬 겸허하다. 입법계품에 나오는 선재동자가 여러층의 선지식을 만나 도를 물으며 깨쳐가는 기쁨의 여정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다시 떠나는 구도의 길 스님의 기쁜 구도는 계속된다. 번역원고를 넘기고부터 새로운 길을 시작하였다. 10권 〈화엄경〉에 일일이 해석을 달아 해석서를 펴낼 예정이다. 분량은 최소한 3배 정도는 늘어날 것이다. 그 작업이야말로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번역만 꼬박 10년이 걸렸으니. 작업 틈틈이 전화가 걸려온다. “〈화엄경〉을 구입해 보고 있는데 썩 잘 되었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하는 전화다. 그중에서도 도반들의 전화가 단연 많다. 그때마다 스님은 “속았다는 생각은 안듭디까?"하고는 투박하게 되묻지만, 한편 “그래도 내가 한 일이 괜찮은 일이었구나" 싶어 위안이 된다. 그럴수록 스님의 마음에 원(願)이 깊어간다. 이번 〈화엄경〉이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불자들에게 확실한 좌표 하나 설정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는 것이다. 선재동자의 구도정신으로 수행 정진해갈 때 화엄의 세계는 바로 본인들의 것이고, 그런 불자들이 진정 많아질 때 두두 물물은 부처의 이름으로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스님은 말씀 끝마다 추켜세우지 말라고 다짐하곤 하였다. “나 같은 바보가 없는기라. 민망해서 그래요” 하는 모습은 겸허 그대로다. ‘아직 입문상태지만 〈화엄경〉은 참 매력이 넘칩니다" 하는 말씀을 뒤로 하며 염화실을 나섰다. 범어사 일주문 밖에는 벌써 어둠이 깔려 있었고 그 사이로 법고의 화음이 진통한다.                                                                                                         글`김희균/사진`김종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