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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1) 원문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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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谷) : 골. 골짜기. 계곡. 좁은 길.
신(神) : 신. 귀신. 신령(神靈), 불가사의한 것. 정신. 혼.
사(死) : 죽다. 죽음. 죽은 이. 생기(生氣)가 없다.
시(是) : 이. 이것. 이곳. 옳을. 옳다. 바름. 진실. 바로잡다.
위(謂) : 이르다. 일컫다. 알리다. 까닭. 이유.
빈(牝) : 암컷. 음(陰). 골짜기.
근(根) : 뿌리. 뿌리박다. 뿌리 채 뽑아 없애다.
면(綿) ; 이어지다. 잇다. 연속하다. 두르다.
약(若) : 같다. 너. 만일.
근(勤) : 부지런하다. 일. 일에 지치다. 수고(受苦). 수고롭다. 근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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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으니, 이것을 일컬어 깊은 음(陰)이라 한다. 깊은 음(陰)의 문, 이것을 일컬어 하늘과 땅의 뿌리라 한다. (그 뿌리는) 이어지고 이어지니 (계속) 존재하는 것 같다. 아무리 (만물을 생산하는데) 힘써도 지치지 않는다.
(3) 해설
6장에 대해 하상공(河上公)은 호흡법의 양생술(養生術)과 관련해서 풀이하고 있다. 신(神), 죽지 않음(不死), 지치지 않음(不勤)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앞의 4장과 5장에 이어서 비어 있는 자연(自然)의 생산능력과 관련하여 풀이하고자 한다. 5장에서는 풀무와 피리를 예로 들어 바람과 소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었지만, 6장에서는 골짜기와 음(陰, 암컷)을 예로 들고 있다.
28장에 의하면 골짜기는 인위적인 문화가 닿지 않아서 소박한 자연의 상태가 잘 보존된 곳으로 표현되어 있다. “영화로움을 알고 욕됨을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항상의 덕이 비로소 충족되어 소박한 상태로 돌아간다.(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그리고 39장에서 골짜기는 물과 관련됨을 알 수 있다. “골짜기가 하나를 얻으면 (물이) 차게 되고, 골짜기가 (물을) 채우고자 함이 없다면 장차 고갈될까 두렵다.(谷得一以盈, 谷無以盈將恐竭)” 그래서 골짜기에는 물이 잘 마르지 않는다. 골짜기에 물이 마르지 않아야 만물을 낳고 기를 수 있다.
노자는 골짜기가 만물을 지속적으로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신령스럽고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谷神不死) 그리고 이것을 깊은 음(陰)이라고 표현했다.(是謂玄牝) 음은 동물에 있어 암컷이며 암컷은 새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깊다고 표현한 것은 새끼를 낳을 수 있는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이나 골짜기 같은 무생물에게도 해당되기 때문에 붙인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에 노자는 깊은 음의 문(玄牝之門)은 천지의 뿌리라고 말했다.(是謂天地根) 식물의 줄기는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낙엽이 되어 떨어지지만 뿌리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다음해에 새싹을 돋게 한다. 33장에 “죽어도 망하지 않는 자는 오래간다.(死而不亡者壽)”라는 말이 있다. 개체는 죽는다고 해도 그 시스템이 망가지지 않는 한 천지가 만물을 지속적으로 낳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다음 문장이 “(그 뿌리는) 이어지고 이어지니 (계속) 존재하는 것 같다. 아무리 (만물을 생산하는데) 힘써도 지치지 않는다(綿綿若存, 用之不勤)”로 마무리 된다. 이것은 자연이 만물을 계속적으로 낳으면서도 지치지 않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동물의 암컷에 적용하면 깊은 음의 문(玄牝之門)은 암컷의 성기(性器)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것은 노자가 능동적인 남성보다 수동적인 여성을, 타올랐다가 사라지는 불보다 지속성을 더 유지하는 물, 밝게 자신을 드러내는 낮(앞에 서는 것)보다 보이지 않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밤(뒤에 서는 것)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음양이론에서 보았을 때 여성성의 음(陰)과 남성성의 양(陽)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세상은 남성성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 문제가 있다고 보고 여성성의 중요성을 노자는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골짜기는 음의 기운이 가득찬 것이고 평지는 양의 기운이 넘치는 곳이다. 골짜기는 수분을 충분히 흡수해서 강과 바다로 흘러 보내기 시작하는 원천(源泉)이다. 그래서 땅(陰) 기운의 시작이 된다. 노자는 이것을 깊은 음의 문(玄牝之門)이라고 하였다. 이 깊은 음의 문은 하늘과 땅이 맞닿은 기운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천지의 뿌리가 된다. 천지의 기운이 작은 강을 거쳐 큰 강으로 흘러가면서 평지가 넓어지게 된다. 골짜기에는 천지의 기운이 가장 잘 머물기 때문에 신령한 기운이 유지되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강과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신령스러운 기운은 약화된다. 골짜기에 신령스러운 기운이 가득하면 죽지 않는다(谷神不死)는 사상은 뒤에 신선(神仙)사상을 낳고 도교(道敎)로 전개된다.
작은 강 주변에는 작은 마을과 작은 도시가 들어서고 큰 강 주변에는 큰 마을과 큰 도시가 들어서게 된다. 사람들은 강과 바다 주변이 평지가 넓고 쓰기에 편리함이 많기 때문에 모여서 문화를 이루며 경쟁적으로 살아간다. 문화와 경쟁은 천지가 맞닿은 신령스러운 기운을 더욱 약화시키고 정신(精神)을 황폐화시킨다. 그리고 황폐화된 정신은 인위적인 도구를 경쟁적으로 만들면서 더욱 천지의 조화에 따른 신령스러운 기운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하게 된다. 쓰기에 편리함이 거의 없지만 신령스러움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골짜기는 도(道)에 가깝고, 자연(自然)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도인(道人)들은 골짜기에 들어가서 도를 닦는다.
왕은 넓은 평지(平地)를 차지하려고 한다. 평지가 넓을수록 군대를 주둔시키고 궁궐도 크게 지을 수 있으며 많은 사람을 부릴 수 있어 세력을 떨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권력, 지위, 명예, 재산 등을 가지려는 사람들은 왕이 사는 넓은 평지로 몰리게 된다. 왕은 이런 사람들을 규합하여 더욱 큰 세력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목표로 한다. 왕이 부국강병을 목표로 하면 결국 그 나라는 전쟁으로 망하게 되고 그곳에 소속되어 있던 사람들도 목숨을 쉽게 잃게 된다.
노자는 넓은 평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골짜기에 사는 것이 좋다고 한다. 골짜기는 왕이나 출세를 꿈꾸는 자에게 쓸모가 없는 땅이다. 한 사람이 다니기에도 불편할 정도로 가늘고 길게 이어지고 있다. 이런 곳에 살면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일이 없이 자기 명(命)대로 살 것이다. 노자는 골짜기에 모여 오순도순 살아가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을 목표로 한다. 왕이 소국과민을 목표로 하면 나라도 오랫동안 유지되며, 그곳에 소속되어 있던 사람들도 행복하게 잘살 수 있다.
골짜기와 넓은 땅의 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