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혼란스러웠다. 깡 하나로 날 지킬 수밖에 없었다. 누가 나를 하류라 말해도 좋다. 한 번 사는 인생 후회는 없다.]
이 비장한 고백은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 예고편에 붙어있는 조승우의 나레이션이다. 페미니스트들이 보기에는, 마초들의 전형적인 자기고백이다. 남은건 깡 뿐이고, 한 번 사는 인생 후회는 없다는 투의 고백은, 육체적 힘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폼생폼사 마초들의 단골 메뉴다. [하류인생]은 정말 마초들의 나르시즘에서 탄생된 영화인가, 아니면 시대를 관통하며 그 아픔을 온몸으로 견디어 온 인물들을 통해 자기성찰과 집단적 상처의 흔적을 찾아내는 소중한 시간을 제공할 것인가. 혼란스러운 세상을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를 세상과 만나게 하는 가장 훌륭한 매체가 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임권택이라는 이름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의 이름 앞에 반드시 따라다니는 거장이라는 수식어에 긍정한다. 거장 임권택 감독. 칸느 영화제 경쟁부문에 한국 최초로 [츈향뎐]이 출품되었고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기도 한 그는, 1936년생, 이제 일흔이 되어 간다. 그는 충무로 밑바닥에서 출발하여 온갖 풍상을 거치며 아직도 현장에서 메가폰을 쥐고 있다. [하류인생]은 그의 99번째 영화이다.
이것 만으로 그를 거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는 성과 속의 팽팽한 갈등 속에서 형성된 어떤 것이다. 그는 홍상수나 이창동처럼 처음부터 작가주의 감독은 아니었다. 저자거리의 악취나는 쓰레기통 속에서 싸구려 날림 영화를 수없이 찍었다. 그의 99편의 영화를 우리가 반드시 다 기억할 필요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가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안성기 전무송 주연의 [만다라](1982)이후부터다. 김성동 원작소설을 영화화 한 이 작품에서 그는 불교적 세계를 통해 자기 구원의 치열한 구도자적 삶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임권택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한국적 풍광의 가장 뛰어난 영상적 접근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도되었다.
임권택 감독은 자신이 평생동안 보고 배우며 자랐던 충무로의 관습적 공식 안에 있으면서, 그 공식 밖에 있는 세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볼 때 이것이 그의 가장 뛰어난 장점이다. 제작자의 흥행 성공에 대한 상업적 압력, 배우나 스텝들의 관습적 제작방식 속에서 자기식의 치열함을 밀어붙였다. 세속적 세계의 한 복판에서 성스러운 삶을 발견하려는 그의 안목과 집념이 그를 작가로 만들었다.
1950년대 자유당 말기의 부패한 정권에서부터 1970년대 유신정권의 한복판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하류인생]은, 가령 [효자동 이발사]가 그랬던 것처럼 이름없는 소시민을 중심으로 당시의 불편한 시대를 축약해서 보여준다. 그러나 [효자동 이발사]가 정권의 핵심인 청와대 내부에서 내부자적 시각으로 권력의 핵심계층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그리고 우화적으로 보여주었다면, [하류인생]은 저자거리의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건달 최태웅을 통해, 정치권력과 결탁한 조폭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거기에는, 그들 즉 정치권력이나 조폭권력이나 결국은 똑같은 하류라는 감독의 자각이 숨어 있다.
임권택 감독은 [서편제][춘향뎐][취화선]처럼 한국적 소재를 주무르는 영화 속에서는 한국적 풍경을 가장 아름답게 카메라에 담으며 롱테이크 롱샷으로 집단의 삶을 거시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는 그 역사 속을 살아간 구체적 인물이 등장하는 [하류인생]에서는 자주 클로즈업으로 주인공의 삶에 카메라를 밀착해서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유도한다. 인물의 얼굴을 화면 가득 담는 클로즈업 쇼트는 감독이 관객들에게 가장 강력한 발언을 하는 것이다.
[하류인생]은 임권택 감독식의 리얼리즘 바탕 위에서 구축되기 때문에 세밀하게 복원된 1970년대의 명동 거리 셋트는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주병도 미술감독 팀은 [효자동 이발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당시 시대의 사실적 모습을 사실적으로 복원해냈다. 특히 당시의 시대상을 떠올리게 하는 [이유 없는 반항]같은 극장 간판, [송옥양장][파라다이스 카페]같은 260개의 구체적 간판들은 저절로 우리를 추억의 순간으로 회귀케 한다. 과거의 풍경을 보는 즐거움보다 더 큰 즐거움은, 이번 영화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엔딩씬에서 흘러나오는 신중현 작사 작곡 노래의 [하류인생]이다. 신중현의 음악은 여전히 우리를 소름끼치게 만든다.
그러나 거장에 대한 존경심과 장인의 경지에 이른 감독의 능숙한 솜씨가 농익어 표현되어 있다는 것을 잠깐 밀쳐둔다면, 우리는 몇 가지 불만을 찾을 수가 있다. 우선 주인공 최태웅의 캐릭터에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검은 모자를 비뚤어 쓴 고등학교 학생의 모습에서부터 정치깡패, 그리고 영화사 제작실장과, 미군에 납품하는 비리 군납업자라는 다양한 직업군을 섭렵하고 있는 최태웅의 일대기를 통해 20여년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를 드러내는 방법론은, 요동치는 한국 현대사만큼 최태웅의 캐릭터를 요동치게 만든다. 임권택 감독과 이태원 제작자의 실제 개인적 삶의 흔적이 혼융되어 있다고 알려진 최태웅은, 그 어느 쪽도 뚜렷하게 캐릭터화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역사와 민족이라는 대의명분보다는, 가족과 친구들의 생존을 위해 동물적 본능으로 강한 자의 편에 서는 최태웅의 모습 자체가 비극적 현대사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최태웅의 삶을 통해 불법과 비리가 요동쳤던 지나간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다양한 역사적 현실을 한 몸에 끌고 가는 최태웅의 캐릭터가 일관성 없이, 편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불만을 갖게 된다.
최태웅의 삶은 영웅적이지도 않고, 시대의 한 복판을 관통해가는 대표적 위치에 있지도 않다. 그는 범속하고, 세속적이며, 생존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 역사의식은 없고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중하는 단선적 성격을 갖고 있다. 최태웅의 건달 같은 삶을 통해 임권택 감독은 그와 비슷하게 하류의 삶을 살아온 우리 시대의 모든 정치 경제 문화를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한 줄에 꿰는 절묘한 방법론은 없고, 혹은 전체를 아우르는 특별한 시각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임권택 감독의 연출은 중후하고 농익었지만, 시대적 감각과는 많이 차이가 있으며 비판의식보다는 향수에 지나치게 절어 있다.
왜 [하류인생]의 남자들은 여자들을 하녀 다루듯 하는가. 여자들은 자기희생의 삶을 살아온 우리들 어머니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가정을 지키고 남자들의 세속적 성공을 위해 온몸을 내던진다. 예전에 그랬으니까 똑같은 모습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는 것은 얼핏 올바른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류인생]에서 또 하나 비판받아야 할 부분은, 여성들의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의 부재다. 과거의 모습이 어떠했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적어도 임권택 감독이라면, 지나온 삶을 자기성찰적 시각으로 되짚어 봐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그것은 임권택이 아니다. 70평생 살아온 삶의 흔적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면, 차라리 더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류인생]에서 남자들의 비리는 감춰져 있고 여성들의 희생은 미화되어 있다.
주연을 맡은 조승우나 김민선은 처음으로 속살을 보여주는 과감한 연기를 시도하고 있다. 임권택 영화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정일성 촬영감독의 수려한 카메라가 동반하고 있지만, 또 하나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한국 록음악의 대부 신중현이 영화음악을 맡아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건달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신중현이라는 이름과 절묘한 호흡의 일치를 보여줄 것이다. [님은 먼곳에] 등 올드팬들의 오감을 자극할만한 곡들이 신중현이 직접 연주하는 기타 음악으로 삽입되어 있으며, 우리는 다시 한 번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그의 놀라운 음악성에 전율하게 된다. 임권택 정일성 신중현, 이제 70대에 접어든 한국 대중문화의 거목들에게 한없는 존경의 시선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