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민예총>, 2022년
시내 버스비 정치학
맹문재
1
300원을 더 내세요
다 냈는데 뭘 더 내라고 혀
1,500원이잖아요
무슨 놈의 버스비가 요로코롬 비싸다요 이거 날강도잖아
버스에 탄 사람들이 웃는다
나는 버스 기사가 대출 이자를 받아내는
은행원 같다고 생각했다
나머지 돈을 받지 않으면 좋을 텐데
받지 않아야 할 텐데
할머니가 한평생 낸 세금이 시내 버스비가 안 될까?
변함없는 단골손님인데 우대가 없는가?
지하철처럼 무료 승차는 없는가?
2
젊은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면 편해요
지켜보던 한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를 동정하느라
나는 버스 기사의 원칙을 어겼구나
그의 교통사고 위험과 운행 시간 불안을
세대 차이로 무시했구나
노동에 대한 보상을 동정으로 덮었구나
3
원칙을 어긴 동정은 인정(人情)이 아닌가?
사랑이 안 되는가?
할머니의 불만은 여성 항변이 안 되는가?
세대 반항이 안 되는가?
4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는데
할머니는 진보당을 찍을까?
진보는 야당인가 여당인가?
버스 기사는 보수당을 찍을까?
보수는 여당인가 야당인가?
나는 왜 버스 기사의 원칙이며 할머니의 항변을
정치에 적용하는가?
시내 버스비가 이번 선거 공약에 있는가?
녹두꽃 보러 가는 길
시외버스에 내려 사람들에게 물으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골목을 돌고
녹두꽃이 피었다고 소문난 곳을 찾아가는 길
언덕길을 다 내려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뜻밖의 장면이어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는데
갑자기 경찰들이 최루탄을 쏘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놀라
나는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하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저쪽에서 선글라스 낀 한 건장한 사내가 나를 주시하더니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겁을 먹고 사진 찍기를 그만두고
뒤돌아서 걸었다
그가 나를 잡으려고 오는지 바쁘게 걷기에
나는 더 빨리 걸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여유 있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어디엔가 연락을 취했다고 순간적으로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외통길 언덕 위에
선글라스를 낀 또 다른 사내가 서 있는 게 아닌가
올라갈 수 없고
내려갈 수도 없어
찍은 사진을 지워야겠다고 생각하고
핸드폰을 만지는데
건전지가 다 되어 손을 쓸 수 없었다
언덕 위에 서 있는 사내가 나를 내려다보고
나를 따라오던 사내가 지켜보는
철조망 지대에서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언덕 너머에 노오란 녹두꽃이 등불처럼 피어 있었다
맹문재
시집으로 『사북 골목에서』『기룬 어린 양들』『책이 무거운 이유』 등 있음. 전태일문학상, 윤상원문학상 수상. 안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