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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93년 4월 5일 월초기도법회 ○
4월 영상뉴스 상영
안암교당의 소식들을 맛깔스런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
김제원 교무님 설법
반갑습니다.
오늘 단법회는 전망품으로 함께 이야기하실 것입니다.
오늘이 4월 첫 주이다.
4월달은 대각 개교의 달이다.
대종사님께서 4월 28일에 26세의 나이로 우주의 진리, 일원의 진리를 깨치시고
비로소 원불교가 그로부터 시작된 날이다.
원불교는 대종사님이 구도과정을 거쳐서 4월 28일 비로소 원전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대종사님은 특별하시면서도 특별하지 않은 분이다.
특별하신 것은 과거 수생동안 수행하신 것이고,
특별하지 않은 것은 우리와 똑같다는 것이다.
성품이 본래 같고, 그 분도 수행과 적공을 통해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을 얻으셨다.
그래서 우리도 따로 존경만 할게 아니라 스승으로 모시고 받드는 것 외에
‘나도 저 자리를 깨쳐야 겠다’ 라는 자세를 동시에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우리는 신앙종교만이 아니라 수행을 함께하는 종교이다.
반드시 원불교라고 한다면 원의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원의 진리를 깨닫는 종교가 바로 원불교인데
그 깨달음은 먼저 스승과 진리, 법과 회상을 믿는 믿음으로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삼학 수행으로 가고, 그것이 사은 보은 실천으로 갔을 때
서로서로 도움이 되어 비로소 깨달음이라는 선물이 있게 되는 것이다.
대종사님께서는 26세에 대각을 이루시고 영산 뒷산을 종횡무진 뛰어다니셨다고 한다.
왜 그러셨을까?
그동안 25년간 구도과정을 거치며 때로는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스승을 찾아 헤매기도 하시고 때로는 강변에서 입정하시고
때로는 몸에 온갖 종기가 나서 병의 치유까지 받아가면서도 깨달음에 대한 열정.
구도심을 놓지 않아 우주의 모든 이치를 깨달으셨으니 얼마나 기쁘지 않은가.
만약에 대종사님께서
나는 매우 고생해 깨달았으니 너희는 나를 받들기만 해라 하신다면 그것은 대종사님 자격이 없는 것이다.
나는 어렵게 깨달았으니 너희는 쉽게 깨달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니
바로 일원상의 진리를 바탕으로 한 삼학팔조와 사은사요의 실행이다.
그것을 통하면 내 수고를 겪지 않고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누워서 코풀기보다 쉽다 그렇게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우리는 원불교를 만나서 진리의 세계를 가늠 잡지 못하고
때로는 사심을 놓지 못하고, 진실을 잊어버리고
때로는 스승의 진리의 세계를 믿지 못하고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속은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종종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종사님 당대에는 불법연구회라는 단체를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서도
대종사님 하나를 믿고, 많은 고생을 하였다.
초창기의 고생이라는 것은 고생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고생하는 것은 그분들의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원기 4년즈음에
변산에 가시기 전 대종사님께서는 법의대전이라는 것을 엮어 읽고 외우게 하셨다.
전망품 2장에 보면 나온다.
앞으로 역수가 지나고 순수가 온다.
어떤 종교와 같이 종말론이 오는 것이 아니라,
순수가 와서 앞으로 밝은 미래와 용화회상이 펼쳐지는 것을 예시한 것이다.
원래 법의대전 책자를 만들었다가
이것이 정식 교서가 되기 어렵다 생각하셔서 싹 태우게 하였다.
팔산님과 팔산님 아들인 형산님 김형철 교도님께서
그때 당시 외웠던 것을 기억해서 적어놓은 것이 전망품 2장의 내용이다.
좀 아깝기도 하다.
팔산님은 훌륭하신 분이다.
대종사님보다 나이도 많으시고 재산도 많으시며 학식도 많으신데
당신보다 훨씬 어린 대종사님을 대각 후 형님으로 받들어 모신 것이다.
한시를 보면
조금만 맛을 보면 여러분들은 “어메, 아깝다”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한번 보도록 하자.
만학천봉답래후(萬壑千峰踏來後)
산에 보면 만갈래의 골짜기가 있다. 봉우리가 천 개이다.
이 봉우리를 ‘다 경험해 보았다, 답사해 보았다’ 하는 뜻이다.
여러분더러 만학천봉을 답사해 보라고 하면 며칠이 걸리겠는가.
이것은 대종사님의 고된 수행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대산종사님께서는 이것을 보고
“만학천봉은 일대겁만에 한다.” 라고 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오백생을 만학천봉답래를 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만학천봉답래를 하셨다.
이차돈은 목을 쳤을 때, 흰 우유 같은 피가 되어 나왔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만학천봉을 비유한 것이다.
대종사님께서 부촉품 10장에 보면 이런 법문이 있다.
“내가 다생겁래로 많은 회상을 열어왔으나 이 회상이(원불교라는 회상이) 가장 판이 크다.
그러므로 창립 당초의 9인을 비롯하여 이 회상과 생명을 같이할 만한 천지 인물이
앞으로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라 하셨다.
대종사님께서는 ‘원기 100년 안에 들어온 사람은 나와 특별한 인연이다’ 말을 하셨다 한다.
향산법사님께서 나에게 해 주신 말이 있다.
한번은 대종사님께서는 향산님을 부르셔서
“너는 나 말고 누구를 제일 스승으로 모시느냐”라고 묻더라고 한다.
“정산종사님과 원산종사입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그려. 대거가 공부길 잡았느니라” 하셨다고 한다.
대거. 그 분이 누구냐, 대산 종사님이시다.
한번은 대산종사님께서 이리교당에 성리법문을 하고 왔더니
대종사님께서
“너 앞으로는 밖에 나가서 성리법문 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 후, 대산종사님 어머니께서 ‘무음향지곡(無音響之谷)’ 이라는 의두가 너무나 궁금해서
당신 돌아가시기 3일 전에 대산종사님께 알려 달라고 했다.
하지만 대산종사님께서는 일전에 대종사님께서 성리를 알려주지 말라는 말 때문에 알려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성리는 꼬셔서라도 배우라 했지만
한편으로 성리는 결국 자기가 의심의 열쇠를 통해서 자기 것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대종사님께서 수많은 회상을 열어놓으시고
이 회상과 생명을 같이할 인물이 한이 없으리라고 하셨다고 했다.
여러분은 어디에 목숨을 바치는가?
회사에서는 돈과 명예를 준다고 하면 목숨 바친다.
원불교에서는 주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일만 많이 주고 명예도 없다.
개도 자리를 보아서 눕거나 짖는다고 한다.
여러분들은 빨리 그것을 알아야 한다.
원기 100년도에 나온 사람은 고생은 맡아놨다.
하지만 그만큼 또, 보람이 있을 것이다 라고 하셨다.
그리고 후진은 선진을 반드시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 법문으로 해놓으셨다.
여러분들의 역사를 여러분들이 쓰셔야 한다.
원기 100년 이전에 만난 사람들은
앞으로 원불교가 1000년, 2000년, 3000년을 넘어갈 때여러분들은 정말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무속무적주인봉(無俗無跡主人逢)
사람은 지나가면 흔적이 남고, 자동차도 눈길을 지나가면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그런데 속되지도 않고, 흔적도 없는 그 주인을 만나라.
그것이 무엇인가!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든지 나와 흔적을 드러낼 것이 아니라,
흔적 없는 나와 속되지 않은 나가 있으니 그 주인을 만나야 한다.
만학천봉의 수행과정을 통하여 무속무적의 주인을 만나야 한다.
내가 조금만 설명해 주어도 좋지 않은가?
야초점장우로은(野草漸長雨露恩)
들의 풀은 우로의 은혜 속에서 점점 자라난다.
그런 것처럼 중생은 부처의 은혜 속에서 자라난다는 법문이다.
신성품에 11장에 보면
“봄바람은 사가 없이 불어주지만, 산나무라야 그 기운을 받아 자란다”라고 하셨다.
바람이 불어야 나무가 산다. 그러면서 물과 땅의 기운을 쭉쭉 빨아들이는 것이다.
성현들은 부처님은, 스승은 사가 없이 평등하게 법을 설하여 준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야 그 법을 오롯이 받아갈 수 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죽고 썩어버린 나무와 같다.
그와 같이 사가 없이 성현은 법을 설하지만 본인들의 주착심, 신앙심, 공심, 진심, 신심에 의해
이 회상의 주인이 되어 가느냐, 정말 역사적인 인물이 되느냐
한 때의 자취를 남기고 가는 사람으로 남느냐는 거기에 달린 것이다.
천지회운정심대(天地回運正心待)
천지는 운 때를 기다리는데, 바른 마음 가진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최후 승자는 실력 있는 사람인데 그 실력은 바로 진실한 사람이다.
진실하고 공심 있고, 믿음 있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환영받는다.
반대로 말하면
거짓과 속임이 있고 사심이 있고, 불신의 마음이 있는 사람은 결국은 떠나는 것이다.
마음을 공부하고 마음을 가치로 잡는 집단이 바로 원불교이다.
우리의 명예는 명예 없는 명예, 돈은 돈 없는 돈이다.
그래서 바로 천지의 운도는 누구를 기다리느냐
바로 정심(正心).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거짓이 있으면 아무리 한때 이름을 날린 사람이라도 사라져버린다.
단회를 위하여 여기까지만 합니다.
질문과 답변
Q. 서도안 : 기독교에는 요한계시록에서 최후의 날을 계속 예언하는 것도 어떤 연고가 있어서 인 듯 하다.
그 종말을 예고하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인지.
A. 교무님 : 깨달음도 천각만각이라고 합니다.
생사가 있는 것도 있고, 생사가 없는 것도 있습니다.
우주는 성주괴공으로 원시반본 돌아갑니다. 그런데 한 부분을 보면 분명히 생과 사가 있습니다.
나무뿌리가 썩지 않았을 때는 그 나무뿌리가 봄에 새싹이 나고 겨울에 다시 진다.
그러면 분명히 나무가 있었다 없어진다. 그러나 뿌리가 살아 있어서 다시 봄에 올라온다.
봄부터 겨울까지만 보면 나무가 났다가 죽어버린 것이다.
대종사님께서는 원시반본으로 돌고 돈다는 것을 이야기하신다.
우주 성주괴공으로 볼 때 지금이 성법계라 하셨다. 앞으로는 밝은 양(陽)시대이다.
1919년 갑자년을 기점으로 잡아주셨다.
기독교의 종말론은 내가 볼 때는 돌고 도는 가운데 한 순간의 생과 사를 말씀하신 것 같다.
누구나 생로병사하는 것은 끝이 없지만 한 타임만을 보면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다.
이 한 부분을 말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원불교의 미래관은 전망품에 나와 있고,
원불교의 미래는 밝음. 대명천지의 용화회상이요, 문명세계요, 양(陽)시대다.
그래서 과거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마치 낮도깨비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Q. 강도인 : 원불교에서는 미래를 밝게 보는데, 요즘 일어나는 사건을 보면 세상이 살기 좋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멀리 보면 그럴지 모르겠지만, 가까이 보면 더 나빠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그것도 한순간인지 궁금합니다.
A. 교무님 : 과거의 문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약하지 않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보면 전쟁의 역사요, 계급사회요, 먹고살기 급급한 것도 많았다.
과거는 고급문화는 많이 발달했지만, 저층은 그렇지 못했다.
지금은 대종사님 말씀 인양 개벽시대다. 개벽시대는 선천시대에서 후천시대로 넘어간다.
그래서 밝아지는 것이 수직사회에서 수평사회로, 계급사회에서 평등사회로 바꾸어져 간다고 말씀하셨다.
시대가 개벽시대로 바꿔지고, 인지가 열리면서 많은 생령들이 사람 몸을 받는 것이다.
허무주의나 궤변에 떨어진 책들을 보면 헷갈릴 수 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도 가장 눈 밝은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큰 깨달음은 부처님이시고, 대종사님 같은 분은 말씀에 호리도 틀림이 없다.
“저 양반이 밝게 보았는데 맞을라나 모르겠네”
라는 것은 천년을 살아봐서 증거를 하든 아니면 믿는 것이다.
첫댓글 은전 교우님 감샤해요~ ^^
착허고 착하네 우리 은전교우님!~^^*
은전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은전교우님!!!
너무 잘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마음에 쏙 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