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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 2010년 11월 13일
장 소 : 창녕 화왕산
산행코스 : 화왕산 옥천주차장-화왕산(화왕산성)-허준세트장-관룡산정상-용선대-관룡사-옥천버스정류장(원점회귀)
동 행 : 전국건축사등산동호회원
산행시간 : 약 4시간
화왕산 산행기
추월산을 다녀 온 뒤로 산을 찾지 못한 사이 계절 빛깔도 바래가고 있다, 일매헌 옥상의 곱디곱던 산국까지 다 시들어 버렸다. 그래서 찬란한 가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채 가을을 다 잃어버린 느낌이다. 어느덧 가을 끝이 가까이 다가와 한 해가 저물날도 얼마 남지 않은 때가 되었다. 갈수록 세월이 빠르게 느껴지는 터라 가급적 계절의 변화를 바로 보려 하지 않으려 하지만 소용이 없다.
가을 산을 찾아 간다. 산을 마음에 품고 있어도, 혹은 산을 자주 찾는다 해도 내 삶의 바탕과 산은 여전히 딴 세계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간극에서 여전히 메마른 나의 일상을 깨닫는다. 그래서 산에 간다는 것이 매번 새롭게 느껴진다. 세상에서 바듯하게 졸이며 시간을 보낼수록 산이 더 그리워진다. 사람사이의 부딧침, 이런저런 일을 하며 복잡한 생각 등이 쌓일 때, 자연은 그런 세속적 인식으로부터 훌훌 벗어나게 한다.
늦가을 풍경은 시리게 푸른 창공위로 말간 단풍이 곧 떠나갈 듯 아쉬운 표정을 짓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생명의 작용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섭리의 준엄함, 결코 인간의 힘으로 되돌릴 수없는 현상, 그러한 사계절의 순환은 결코 어긋나지 않는 신비로운 우주의 운행 질서속에 거역할 수 없는 생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밤차로 대구로 행했다. 현풍의 도동서원과 창녕 시내를 답사하고 전국 건축사 등산동호회 행사로 진행할 화왕산 산행에 합류할 생각이었다. 내려 가면서 낙동정맥을 혼자 오갈 때가 그립게 느껴졌다. 밤차로 내려가 잠시 쉬고 먼 거리의 정맥을 찾아 들어가 길도 잘 모르는 산길을 제대로 찾아가기 위해 신경을 곧두세우며 걸었던 힘겨운 과정이었다.
아침 일찍 대구 서부터미널에 나가 현풍행 버스를 탓다. 현풍에 도착하니 도동서원 쪽으로 가는 시내 버스를 놓쳐 한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상황이 되었다. 그 버스를 이용해 다녀오게 되면 산행 시작 시간에 도착하기 어려울 것 같아 택시로 오갔다.
도동서원은 서원 형식의 규범이 형성된 곳이다. 뒷 산을 배경으로 루와 강당 사당 등이 전후 일직선 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고 앞의 루는 낙동강을 굽어보게 되어 있다. 앞에 유유히 흐르는 강 물이 산세와 어우러져 유생들의 심신을 맑게 했던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 그런데 앞에 4대강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옛 체취가 변할까 걱정이 되었다.
수리공사 중이라 제대로 보기 어려운 아쉬움에 한원당의 묘를 들러가려고 뒤쪽 산으로 올라갔다. 맨 뒤쪽에 자리 잡은 한원당의 묘는 병풍석이 둘러쳐 있고 문인석, 양석등이 설치되어 특별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다시 현풍 터미널로 가서 다시 8시 55분 창녕행 버스를 탔다. 낙동강 물줄기가 따라 내려가는 곳이다. 경상도 지역은 너른 산세에 바탕해 있는데 지금처럼 도로가 연결되지 않았을 때는 주변 고을과 연계성이 크지 않았을 것 같지만 현대 들어 이 지역에 산업 개발이 일찍 이루어져 대구 구미 창원 포항 등 대도시로 급성장한 곳이 많다. 그런데 고령, 창녕 등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고을들은 큰 변화 없이 지나온 상황이라서 오랜 연륜의 체취가 간직되는 측면이 있다.
창녕 지역은 낙동강의 본류가 지나는 지역이다. 대간과 낙동정맥 사이에 비슬산 화왕산 등 남북으로 형성된 산세가 더 뻗쳐 있다. 그런데 낙동 정맥과 그 산세 사이에 밀양 청도 등의 고을이 위아래로 발달되어 있고 대간과 그 산세 사이에 창녕 등이 깊숙히 위치한다.
9시 25분 창녕에 도착했다. 시내 삼거리에 내리니 주변에 장이 서서 농민들이 마늘, 마른고추 등을 갖고 나와 팔고 있었다. 손이 많이 가는 고추 몇 포대를 팔아도 돈은 몇 푼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창녕 시내에 있는 향교, 석빙고 등을 보고 화왕산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창녕은 한반도 우리 역사의 숨결이 담겨 있다. 많은 고대 유적이 있어 제2의 경주라고도 한다. 선사시대 대자연 위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몸부림 치던 모습과 삶의 준엄함 등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 지역을 들어설 때 느껴지는 애잔한 감정은 그 뿌리로부터 발달했던 가야가 역사적 뒤안 길로 사라진데 대한 허전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화왕산은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창녕의 진산인 샘이다.
10시 50분 화왕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잇는 많은 대형 버스들 가운데 전국에서 모인 우리 회원들이 타고 온 버스가 많을 것 같았다. 날이 맑아 밝은 햇살아래 늦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되었다. 낙동 정맥을 마칠때 몰운대까지 와서 축하해주었던 김진수 김해 건축사 등산 동호회장과 이철식 건축사 등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이 행사를 주관한 오긍균 전국 건축사 등산 동호회장및 임원들이 명찰을 찾아주며 반가워했다.
이 곳에서 만나기로 한 서울 회원들과 단체 사진 촬영을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 모인 인원은 270명 정도인데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타 지역 회원들은 산행을 시작해 보이지 않았다.
관룡사로 향하는 포장길을 걸어갔다. 전에 화왕산 품에 있는 관룡사와 용선대 등을 다녀간 일이 있어 낯설지 않은 곳이다. 입구 가로변에 터널을 이루며 서 있는 벗나무 단풍이 영롱했다.
늙은 단풍이 마치 떨어지지 않으려 앙칼지게 매달리다 젓꼭지를 떠나 듯 잎새를 떨어뜨렸다. 햇살이 고루 빛깔을 물들이기 위해 뒤척이듯 잎새 사이로 파고 들어 보석이 빛나듯 투명한 빛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다 보니 좌측으로 관룡사 가는 길이 나타났다. 신종복 건축사가 오르면서 우측 개울 건너 뒤풀이 장소를 가리켰다. 다시 한동안 올라가다 좌측 산길로 들어서는 갈림길에서 부산 회원 몇 분을 만났다. 점차 오르막길을 걸었다. 지나는 길에 각 지역에서 온 회원들을 드문드문 만나 인사를 나눴다.
숲길을 한동안 오르다 울산 회원들과 만났다. 낙동정맥 울산 인근을 지날 때 전화로 석남 터널 들머리를 물어보았던 이경태 건축사가 목에 건 명찰 이름을 보고 내 이름을 불렀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행사 때 만나보려고 한 분을 만나 반가웠다. 처음 걷는 길이고 길을 헤메기도 해서 더욱 조심스러웠는데 통화로 길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낙동정맥을 걸을 때 경남 지역을 지나가면서 그 지역 회원님들과 교감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전국 회원들과 더 가까워지는 느낌도 들었었다. 이 지역 회원님들이 평소 산행에 열성적인 분위기를 느꼈었는데 이경태 건축사는 1대간 9정맥을 모두 마친 분이다. 이 건축사가 좌우 울산 회원들을 소개해 인사를 나누고 막걸리 잔을 주고받았다.
다시 길을 올르다 보니 김진수 회장등 김해 회원 일행이 앞이 훤히 트인 너럭바위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회원 가족등도 함께 동반하여 즐겁게 주말 나들이를 하는 분위기였다. 앞쪽으로 멀리 겹겹이 산세가 펼쳐지고 마지막 존재의 기운을 불태우듯 햇살에 빛나는 단풍이 물든 정취속에 모두 행복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다시 올라 우측으로 꺽어 돌아가는 완만한 길을 걸었다. 옆에 걷던 신종복 건축사가 이제 산성에 거의 다 왔다고 했다. 그리고 좌측으로 꺽이는 지점에 뒤의 일행이 제대로 길을 찾아 올 수 있게 안내 표식을 몇 번 바로 놓으며 잘 보이느냐고 했다.
좌측으로 완만한 길을 가니 돌로 쌓아 놓은 성벽이 보였다. 기대하던 풍경이 펼쳐 보여 다가가는 동안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산 정상부인데도 길에는 축축히 물기가 베여 질척거렸다. 사진에서 백록담처럼 산성 내에 연못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연못에서 흘러나오는 물 같았다.
흙길의 질척거림과 맑게 바란 관목의 줄기의 빛깔에서 이른봄 얼은 가지에 햇살이 산란 할 때 같은 분위기도 느껴졌다. 그처럼 왕성한 생명력을 발하며 피워나던 초목이 이제 추적추적 해지고 있었다. 갖가지 빛깔을 그 생명이 사그러지며 발하는 마지막 불사름의 모습 같았다.
산 위에서 보니 입구를 올라오며 보았던 가로수 단풍의 마지막 찬란함마저 다 바래버린 숲의 느낌에 쓸쓸함이 베어 있었다. 이제 되돌릴 수 없이 한 해가 저물어가는 때인 것이다. 그 게절의 감각이 마음에 시리게 와 닿았다.
사적64호의 화왕산성에 도착했다. 좌우로 경사지에 둘러친 성벽이 보였다. 안쪽에 억새가 그득해 보였다. 화왕산성은 산 정상부에 분화구가 패인 것처럼 움푹 내려간 모습으로 선성 안에는 몇 그루 나무를 제위하고 억새로 덮혀 있었다. 오른 동문에서 자연 지형에 따라 자연스런 형상을 띠며 쌓여진 두터운 성벽이 좌우로 펼쳐 보였다. 돌의 표면이나 말끔한 상태로 보아 근래 보수해 놓은 것 같았다.
말로만 듣던 유명한 곳에 당도하여 그 느낌을 파악하려고 이 곳 저곳을 분주히 오가게 되었다. 동문을 들어 우측 경사지에 울타리 안에 비석 같은 입석에 글씨가 새겨진 것은 창녕조(曺)씨의 독성비이다. 그리고 산성 가운데에 잇는 사각형 연못은 득성 설화가 담긴 곳인데 그 옆에 그에 관해 설명한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신라 진평왕 때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이 병을 고치기 위해 화왕산 정상의 못에서 목욕을 하였는데 그 후 태기가 있었다. 꿈에 “그 아이는 용의 아들로 겨드랑이 밑에 조(曺) 자가 잇을 것” 이라 하기에 태어난 아이를 살펴보니 과연 그대로였다. 왕이 이 소문을 듣고 직접 불러 확인해보니 조(曺) 자가 선명하므로 성을 조(曺)라 하고 이름을 계룡(繼龍)이라 하도록 하니 이가 창녕조씨의 시조이다.“
이곳은 특히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억새밭 풍경으로 매년10월에 화왕산 갈대제가 개최된다. 이 행사는 야간에 산상에서 펼쳐지며 국내 최대 규모로 많은 산악인이 찾고 있다. 하지만 몇 년전 억새를 태우는 행사를 진행하던 중 불길에 참화를 당한 사고 이후 억새 태우기 행사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연못을 보고 동문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성벽을 올라 뒤돌아보니 성벽과 관룡산 등이 어우러진 모습이 눈에 들어서 스케치를 했다. 스케치를 하는 사이 식사를 마친 회원들이 옆을 지나며 식사 안하느냐고 물었다.
성벽을 한바퀴 돌려고 좌측 성벽을 따라 걸었다. 경사가 급한 순로길 주변의 억새 밭 사이로 키큰 억새가 바람에 나부끼었다. 좌측 봉우리 정상부인 배바위로 갔다. 지난번 화재가 났을 때 희생자가 많이 난 곳이다. 바람이 이쪽으로 불어 화염을 피해 물러나려다 뒤가 절벽이어서 더 물러설 곳을 찾지 못하고 화를 당했던 것 같다.
다시 성벽 외곽을 따라 내리막 길을 걷는 동안 창녕 시내가 보였다. 그리고 인근에서 유명한 우포늪과 주변의 논밭이 보였다. 창녕의 입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잠시 후 닿은 안부에는 기존 성곽의 발굴 작업을 하면서 테이프로 울타리를 쳐 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우측 너른 공터에는 소풍 나온 학생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모두 올해의 마지막 정취를 놓치지 않으려는 생각을 하고 찾아든 것 같았다.
다시 성벽을 따라 오름길을 걸어 화왕산 정상(956.6m)에 도착했다. 배바위 쪽을 바라보니 성벽 밖 자연 지형과 성안의 가지런한 억새 밭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였다. 다시 성벽을 따라 서문을 향해 걸었다. 맞은 편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키 높은 억새에 묻혀 가려 보이기도 했다. 소슬바람에 희게 익은 억새 숫이 흔들거렸다.
서문 가까이에 이르니 다시 가지런하게 정비된 성벽 윤곽이 산세와 어우러져 보였다. 우리 나라에는 예부터 성벽의 나라로 불릴 만큼 많은 산성이 있다. 유사시를 대비해 그렇게 공력을 들여 건조했지만 실제 쓰임은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자연 지형을 이용해 만든 산성은 가지런한 돌쌓기의 물성과 산세가 어우러진 특유의 조형미가 느껴진다. 호젓한 자연의 기운과 아름다운 조형미가 어우러진 자연의 품에서 이 곳을 찾은 사람들 모두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서문을 통해 나오다 허준 세트장을 둘러보고 나왔다. 이 곳에서 촬영한 대장금, 허준 등의 드라마 장면 사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장금이 연모한 종사관 민정호가 귀양가는 장면과 장금이 뒤에서 멀어져가는 연인을 애태우며 안타깝게 바라보는 정경이 인근의 산세를 배경으로 깊숙하고 쓸쓸한 분위기로 그려지고 있고 드라마 허준에서는 깊고 깊은 산골 마을의 분위기였다.
허준 세트장을 뒤로 하고 관룡산(754m)을 올랐다. 관룡산은 원효대사가 100일간의 기도를 마친 날 화왕산 정상의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는데서 유래한다. 오늘 산행지는 용선대를 거쳐 관룡사를 들러 내려가는 코스이다. 경북 지역에서 오신 두 회원 부부와 일행이 단란하게 산행을 하고 있었다. 관룡사 정상부에서 능선으로 용선대로 이어질 것으로 짐작했으나 급 내림길을 내려서게 되어 길이 엇갈릴까 조심스러웠다.
다시 능선으로 올랐다. 능선 지점의 바위에 오르니 주변이 시원하게 펼쳐 보였다. 하지만 오후 들어 날이 점차 흐려져 영롱한 사물의 표정을 대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 곳에서 들러 갈 용선대를 찾아려고 두리번거렸으나 눈에 띠지 않아 주변에 지나는 분에게 물어보니 이 길로 가면 용선대가 있다고 했다.
가다 용선대가 건너보이는 바위에 도착해 주변 풍광을 바라보았다. 용선대에 앉은 석조여래좌상이 온 세상을 구원하려고 자비롭게 둘러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진을 찍고 용선대에 올랐다. 전에 한번 와본 적이 있다. 불상은 하엽 상엽이 새겨진 좌대 위에 놓여 있다. 경주 남산 등 산에 모신 불상등이 더러 있지만 용선대 불상은 그 입지가 매우 인상적이다. 화엄의 세계를 펼쳐 놓은 듯한 주변의 산세는 너르고 장엄한 공간감을 준다. 주변 봉우리가 그리 높지 않으면서도 온 천지를 아우르며 교감하는 느낌이 든다.
용선대를 내려와 관룡사에 닿았다. 관룡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산을 오르며 진입할 때 경내에 들어서 우측으로 꺽여 대웅전에 도달하게 되어 있다. 전에 왔을 때보다 여러 전각들과 경내가 반듯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중창 불사를 하면서 자칫 과도한 모습을 띠게 될 염려가 잇는데 이 곳은 차분한 모습으로 되어 가고 있어서 다행스레 여겨졌다.
내림길을 걸어 식당에 도착했다. 어느새 회원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서울의 남상길 건축사가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모두 식사를 마치고 차를 타러 내려갔다고 했다. 산에서 잠심도 먹지 않아 배가 고팠던 터라 안으로 들어가 비빔밥을 반공기쯤 비벼먹고 서둘러 나왔다. 식사를 하는 도중 임기를 마친 오긍균 회장, 최동철 충북 회장이 옆자리에 앉아 술잔을 권했다.
서둘러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일행 몇 분이 타고 온 버스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옆에 잇던 김해 김회장과 이철식 건축사에게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타 서울로 출발했다. 산을 좋아하는 전국의 건축사들이 함께 명산을 오르고 정을 나눈 좋은 날이었다.
(201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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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석환건축사님이 화왕산과 창녕을 제대로 공부와 답사하신것 같습니다 ! 하루 전날 미리와서 그곳의 유적지, 건물등을 둘러보고 다음날 산행하는 것 일석이조 인것 같습니다 !!!화왕산성과 산성 스켓치 그림을 보니 그날의 느낌이 새록새록 느껴지네요 !!!
바삐 이것저것 돌아본다는 것이 식사를 함께 하는 즐거운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해 아쉽고 졸작 너그럽게 보아 주시니 갑사합니다. 늘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