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로 몸이 반응하는 혹은 몸을 반응케 하는 음식 (2)
1.
분기에 한 번 청주 미평에 있는 예수고난 관상 수녀회 수녀님들께 성사를 주러간다. 수녀원에 갈 때마다 인상적인 것이 있다. 미사 때 보게 되는 수녀님들의 초롱초롱 맑은 눈, 성체를 모실 때 내미시는 (노동으로 인해) 거칠한 손, 그리고 하루 일곱 차례 올리는 시간전례 때 성당에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성가와 기도소리 등. 그 모두가 인상적이고 아름답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 하나를 꼽으라면, 그것은 수녀원의 ‘식사’다. 수녀님들의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긴 식탁이다. 하기야 먹는 것만큼 ‘직접적’인 일이 또 있을까! 그 때문에 한동안은 여기서 한 달간 머물며 수녀님들이 해주는 밥을 먹으면 수십 년 동안 제 자리 걸음인 내 체중이 부쩍 늘리라는 확신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렇게 장기간 수녀원에 머물 일도 또 그럴 시간도 없었다.
특히 이 달 방문 때는 정말 ‘감동’을 먹었다. 어린 호박잎을 쪄내고 밤죽을 쑤고 묵은 김치를 씻어 낸 단순한 음식들이었는데, 그 음식을 먹으며 나는 내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든든해지며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이럴 때, ‘음식이 약’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이제껏 수많은 음식들을 먹어봤지만, 그리고 그 중에는 지금도 기억 날 만큼 맛있었던 음식들이 있었지만, 음식을 통해 감사를 넘어 감동을 받은 일은 아마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날 음식을 먹으며 나는 깊은 사랑과 배려를 느꼈다.
이렇게 (특별한 메뉴여서가 아니라)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히 준비하여 감동을 주는 음식들도 있지만, 일상적인 음식이 주는 뜻밖의 감동도 있다.
2.
지난 여름, 누군가 선물한 김장김치를 한동안 맛있게 먹었다. 어느 날 점심을 먹다가 형제들이 이구동성으로 김치가 맛있다고 하자, 주방 자매님이 그러신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김치를 가져다준 자매님이 떨어지면 전화하라 하셨단다. 그래서 다들 얼른 전화하라고 하자, 전화번호를 받아놓지 않았단다! 이 말을 듣고 다들 웃으며, 주방장의 가장 중요한 직무를 소홀히 했다고 난리가 났다. 그러면서 김치 가져온 자매의 생김새가 어떻더냐, 어디 산다더냐, 물었다. 주방 자매 말이, 동반자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단다. 마침 지난 달 중계동에 사시는 둘 째 누님이 김치를 가져다주겠다고 한 적이 있어, “혹시 우리 누님이 가져온 김치 아냐?” 하자, 최신부가 아니란다. 우리 집 김치 말고 저기 잠실 어딘가에 사는 동반자가 또 가져왔단다. 내가 없을 때 동반자 중에 누가 다녀간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다.
그 뒤로도 한동안 김치를 맛있게 먹었다. 주방 자매님이 쉬는 날 이따금, 또는 외부 저녁미사 때문에 공동체 식사 시간을 넘겨 혼자 식사를 하게 되는 날엔 주방 자매님이 애써 준비해놓은 반찬은 다 놔두고, 김치 하나로 밥을 맛있게 먹었다. 곧 후라이팬에 기름 두르고 김치를 얹어 익히다가 그 위에 밥 한 술 올려 볶아 한동안 맛있게 먹었다. 입맛이 없다가도 입맛이 돌아오고, 후다닥 그렇게 김치 볶음밥을 한 그릇 비우고 나면 포만감에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는 말이 있는데, “세상은 아름답고 인생은 또 행복한 것이여!”
아마 주방 자매님이 내 그런 식성을 탐지하셨는가 보다. 하기야 당신이 준비해놓은 반찬이 하나도 줄지를 않고 오직 김치그릇 하나만 비어있으니, 모를 리 있겠는가! 주방 자매님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올 여름 지친 내 몸이 자꾸 이 음식을 요구하고 그래야 입맛이 돌아오니 어찌하겠는가. 어느 날 주방 자매님이 그러신다. “신부님 잘 드시는 김치가 이제 마지막입니다.” 그 날도 외부 저녁미사를 다녀와서 혼자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젠 내 몸이 저절로 알아서 반응을 한다. 마지막 남은 김치를 조금 엄숙한 마음으로 볶아서 이 날도 맛있게 먹었다. 마지막 입가심으로 썰어놓은 김장 무를 한 조각 배어 물으니, 그게 또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마지막 만찬을 한 다음 날, 누님들과 여동생을 오랜 만에 만나 점심을 함께 하게 되었다. 세 자매는 매달 수시로 만나면서도 만날 때마다 그렇게 할 이야기들이 많다. 점심 먹고 차 마시고 영화도 함께 보고 오랜만에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는데, 이 날 혹시나 하고 둘째 누님에게 물어봤다.
“누나, 혹시 김치 떨어지면 전화하라고 한 적 있어?”
“응, 주방 자매님한테!”
“근데, 왜 전화번호는 안줬어?”
“그야 당연히 네가 아니까 줄 필요 없었지!”
그렇게 해서 한 여름 입맛을 돌아오게 하던 김치의 비밀이 풀렸다. 그리고 한여름 오랜 감기의 후유증으로 쇠약해졌던 내 몸이 왜 자꾸 그 김치에 저절로 이끌리고 그 김치를 먹고 나면 몸과 마음이 어째서 행복해지게 되었는지!
2012. 9. 25. 화요일
첫댓글
침 꼴 ~ 깍 !
맛있겠당 !
정성과 사랑이 담긴 김치라 더 맛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