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리기사도 노동자다! ]
잠깐만 해야지 하며 시작한지 어언 12년째 밤이슬 맞으며 대리운전을 하고 있는 박구용입니다.
농사 짓다 파농하고 서울 올라와 직장생활 하던중, 영농조합 만든 시골친구들이 꼬셔서 직장 때려치고 조합의 수도권 판매책을 맡게 되었는데, 왠걸~2~3년 신나게 뛰다가, 몇몇 쌀가게/중간상인들로부터 물건대금을 못받게 되면서 부도를 맞고 말았습니다.
은행빚 안고 산 자그만 아파트도 날리고 지하단칸방 전전하며, 택배/우유배달/전단지알바/꽃배달 등 가리지 않고 2개3개씩 겸해가며 하루를 이틀같이 살아가던 중, 사고로 손가락이 부러져, 하루아침에 실업자/신용불량자가 되고 말았죠. 하늘이 그저 노랗더군요.
한달 넘게 놀고먹다 보니, 쌀도 라면도 떨어져 궁리끝에 다친손가락을 가지고도 할 수 있는 대리운전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이 대리운전이 당시 저에겐 고맙기 그지없는 일자리였습니다.
매일 현금이 생기니, 모든게 바닥나 있던 우리 집안에 이런 복덩이가 없었지요. 아마도 현재 대리운전을 하는 대부분의 기사분들이 저와 비슷한 곤경에 처하게 되어,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가뭄에 단비같던 이 대리운전도 하다보니
답답하고 한심하고 억울한 일이 부지기로 많아, 당장 때려치고 싶은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밤을 낮삼아 일하다보니 몸도 좋지않고 사회생활도 어렵고, 술드신 손님들 심기운전도 해야 하니 만만치 않은데, 콜센터들 갑질/부당행위에 농락당하기 일쑤고, 우리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 기댈언덕이 되줘야 할 정부기관들이 나몰라라 하는 현실에 분통이 터졌습니다.
우리 20만 대리기사들은 평균적으로, 하루 9시간씩 한달 25일 일해서, 한달 순수입 151만8천원 정도를 손에 쥡니다. 대한민국 노동자 평균임금 319만원에 비하면 그저 용돈 수준이지요. 심야에 일하는 걸 감안하면 1.5배, 월 478만원은 받아야 맞는데, 겨우 3/1수준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몸뚱이 굴려서 땀흘려 일하는 우리를, 대리업체 사장들과 정부는 <싸장님>이라 부르며 얼르고는, 4대보험도 퇴직금도 그 어떤 보상도 안해주고 있지요. 산재보험도 안되니 다치기라도 하면, 치료도 주머니 털어 해야 하고, 일 못하는 만큼 빚은 불어나고 한숨만 늘게 되지요.
심지어는 대리노동자 스스로 노동조합 만들어 이 말도 안되는 현실을 개선하려 하면, 필증도 안내주면서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고 법으로 걸어서 벌금이나 물리려 하고 있습니다. 완전 소가 웃을 일입니다.
어찌어찌 해서 대리업체와 노동조합이 노동조건에 합의해서 협약을 맺더라도, 법적 책임이 없다며 파기하기 일쑤입니다.
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니, 완전히 홍길동이 제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거나 다름없는 암담한 현실입니다.
대리업자들은, 고율수수료 20% 외에도 월 평균 12만원 이상의 보험료, 5만원 이상의 프로그램사용료를 걷어가면서도, 보증금/배차취소벌금/출근비 등을 또 요구합니다. 이처럼 저들은 보험료 중간횡령, 프로그램비리베이트,
벌금/출근비 등 대리기사들의 쌈지를 턴 부당수익으로 자기들 주머니를 채우고, 이에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기사들에겐, 계약해지/배차제한 등 실질적인 해고를 자행하며 탄압합니다.
야밤에라도 성심껏 노동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는 착하다착한 대리기사들은, 술취한 고객들로부터 폭언/폭행/살해위협을 당하기도 합니다.
7년전 이동국이라는 대리기사는, 말싸움끝에 취객이 고의로 모는 차량에 치어 죽었습니다. 이때 울분에 찬 대리기사들이 거리/온라인서명도 하고 법원앞에서 기자회견/데모도 하고, 각종 신문/방송에도 보도되고 해서
전국민이 대리기사의 현실을 알게 되었지요.
대구에서는 취객의 가스총에 고막이 터진 기사도 있습니다. 충청도에서는 취객이 마구잡이 휘두르는 낫을 피해 혼비백산 도망친 기사님도 있구요.
10년전부터 대리운전법은 국회에 상정만 되고,
항시 흐지부지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법 말고 대리업계 자율정화하라며 뒷짐지고 있습니다.
대리운전을 그저 실업자 뒤치다거리나 하는 걸로
취급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어언 20년이 넘은 대리운전. 음주운전을 막아, 전국민의 안전을 지켜내는 대리운전.
그럼에도, 세계 어느곳에서도 볼 수 없는,
김밥요금도, pc방이용료도, 버스비도 택시비도, 전기세도 가스비도 최소한 서너번씩은 오른
20년동안 계속 내리기만 한 대리운전요금.
대리요금이 반토막나는 동안, 대리운전노동자의 노동의 댓가인 수입도 그만큼 줄고, 자긍심 또한 곤두박질 쳤습니다.
이런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캄캄한 밤에 어디선가 홀연히 유령처럼 나타나, 취객을 귀중한 차량과 함께 집앞에 안전하게 대령한 후
연기처럼 사라지는 착한 대리기사들에게,
노동존중을 외치는 현정부/정치권은, 노동기본권/노동3권/완전한 4대보험/대리운전법 만큼은 최소한, 당연히 보장하고 마련해 줘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