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데믹의 시대
- 2020년 3월 15일
주일
지나 주간에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의 확산이 대유행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선언했다. 대유행을 판데믹(pandemic, 영어로는 팬데믹)이라고 한다. 오늘은 판데믹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리스의 원래 이름은 헬라스(Hellas)라고
한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고린도 등이 중심이 되어 사람들이
흩어져 살았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마을들이 생겼는데 그 마을을 데모스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작은 행정단위가 되었다. 특히 클라이스테네스
시절에 아테네 지역의 행정구역은 10개의 부족(phylai)과
30개의 트리티스(trittyes), 그리고 150개의 데모스(demos)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므로 데모스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하였으니, 민주주의(democracy)는 지방자치 제도였음을 알 수 있다. 온 마을에
전염병이 돌면 유행병(epidemic)이라 하며, 마을을
넘어서 온 나라에 전염병이 돌면 대대적으로 유행한다 하여 판데믹(pandemic)이라 부른다.
오늘날은 지구촌 시대이므로 판데믹은 한 나라를 넘어 다른 나라로 병이 퍼져 지구촌 전체에서
병이 돌 때 일컫는 말이다. 문자적으로 보면 판데믹은 온 세상 또는 온 세상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판데믹의 시대는 지구촌 시대의 다른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전 세계가 마치 한 마을처럼 작동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사람은 더 넓은 세상을 만날 때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기존에 전해 들은 이야기가 새로운 환경을 만나 새로운 이야기로 발전 성장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이 바벨론과 페르시아라는 거대한 제국에 포로로 끌려갔다. 거기서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났는데, 그 충격은 사뭇 컸을 것이다. 거기서 유대인들은 조상들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새롭게 정리한다. 그것은
기존의 생각을 반성하고 그 본질을 더 깊고 새롭게 한 것이다. 그 때 유대인들이 깨달은 바를 기록한
것이 구약성경이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바리새인으로 훈련을 받은 사도 바울은 청년 시절에 모든 유대인들이 율법에
충실하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 속에 살고 있었다. 그것은 바리새인이라면 누구나 갖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배우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거기서
바울은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전통과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 새로운 생각들은 바울의 설교와 편지들로 분출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 활짝 열렸다. 그것은 유대교로부터 나온 기독교의 출발이었다.
바울이 유대교의 울타리를 넘어설 때 그는 무엇을 깨달았던가! 성전은 더 이상 유대인의 전유물이 아니며, 하나님의 백성도 더 이상
아브라함의 혈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모두 한
가족이며, 함께 미래를 열어가는 동료요 공동상속자였다. 바울이
깨달은 그 복음은 마침내 온 세상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모여 한 아버지를 따르는 가족이 되게 했다.
오늘 판데믹의 시대, 지구촌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나고 있는가? 아직 한번도 이런 세상은 일찍이 없었다.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의 정상들은 마치 한 마을의 지도자들처럼 같은 일로 분주하다. 판데믹의
시대에는 국경선이나 종교적 차이도 사라진다. 지역 갈등이나 이념 대결도 무의미하다. 더 시급하고 치명적인 과제가 우리 모두 앞에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새로운 깨달음,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바벨론 강가에서 구슬픈 노래를 부르던 유대인들이 새로운 깨우침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했다면, 그리고 바울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변방으로 축출되었을 때 새로운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말로 전함으로 세계인에게 희망이 될 복음을 전해주었다면, 오늘 판데믹의 시대를
맞이한 우리들은 세계인을 하나로 묶어줄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야 한다. 그 이야기는 우리가 함께 아파하는
가운데 산고의 고통 끝에 탄생할 것이다. 그 깨우침은 하나의 데모스(마을이나
지역)에 갇힌 생각이 아니라 모든 지역(판데믹 = 판+데모스)을 아우르는
생각과 품고자 하는 마음에서 태어날 것이다.
오늘 주일 아침에 고통을 겪는 이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주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계시의 정신을 부어 주시기를 소망해 본다. 사랑의 마음으로 고통에 동참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새로운 깨우침이 부어져 판데믹의 시대에 미래로 가는 새로운 이야기를 말하고 함께 노래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
새로운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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