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이 형주의 융중 지역에서 은거할 때 자기 자신을 항상 관중과 악의에 비유하곤 했었습니다. 관중은 제환공을 춘추시대 때의 첫 패자로 만든 뛰어난 정치가였고, 악의는 전국시대 때 전국 칠웅 중에 가장 약한 나라였던 연나라의 장군으로 진나라에 버금가는 강국이었던 제나라를 정벌하여 제나라의 70개성을 함락시키고 제나라를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사람이었습니다. 관중은 뛰어난 경세가였고, 악의는 백기에 못지 않은 뛰어난 명장이었습니다.
제갈량은 이 두 가지 역활을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후에 촉나라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또 촉나라의 승상으로 나라를 다스릴 때, 제갈량은 자신이 정치인과 장군의 재능을 모두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평가할 때, 정치인으로의 업적과 자질에는 관중만 못했고, 장군으로의 업적에서는 악의만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제갈량이 관중과 악의보다 더 뛰어난 점은 읍참마속(泣斬馬謖)으로 보여준 법집행의 공정성과 '몸이 상할 정도로 온 힘을 다해 일하고, 죽은 후에야 일을 그만둔다'는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라는 말을 남길 정도의 성실함과 진정성이었습니다. 제갈량은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악의는 전국시대 초기의 명군이었던 위나라 문후때 장군으로 활약했던 악양의 후손입니다. 악의는 조나라에서 살다가 조나라의 무령왕이 사구에서 죽는 난리가 일어나자 위나라로 망명합니다.
왕위를 친자식이 아닌 현명한 사람에게 선양하여 성인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요임금이나 순임금처럼 자신도 성인이 되겠다는 생각에 연나라 왕 쾌가 재상인 자지라는 사람에게 왕위를 선양하게 됩니다. 그러자 연왕 쾌의 아들인 태자가 반발해서 자지를 공격하면서 태자의 무리와 자지의 무리가 서로 내전을 벌이게 됩니다. 연나라 남쪽에 있던 제나라의 선왕은 연나라가 내전으로 혼란한 틈을 타 연나라를 침략하여 점령하게 됩니다. 그러나 연나라 백성이 반발해서 반란이 일어나고, 이웃 제후들도 제나라가 커지는 것을 꺼려 연나라를 구하기 위한 병력을 보내게 되자, 제나라는 연나라를 포기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이 후에 연나라의 왕위를 이은 사람이 소왕이었습니다. 연 소왕은 제나라가 연나라를 침략한 것에 대해 치욕을 느끼고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소왕은 연나라는 약한 나라이므로 우선 후한 사례로 인재들을 초빙하려고 했습니다. 악의가 위나라에서 사신으로 연나라에 가게 되었을 때, 연 소왕이 악의의 현명함을 알아보고 악의를 정성을 다해 대우하니 악의가 감동해서 연 소왕의 신하가 되겠다고 하였고, 연소왕은 악의를 아경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제나라는 선왕이 죽은 후에 그 아들인 민왕이 즉위하게 됩니다. 민왕은 선왕보다 왕으로서의 자질은 뒤떨어지지만 그 야망은 아버지 보다 커서 제나라 남쪽에 있는 송나라를 병합할 욕심이 있었습니다. 제나라 민왕은 여러차례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나 삼진의 군대를 패퇴시켰습니다. 이를 민왕은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나 백성들은 잦은 군사동원에 힘들어 했습니다. 그렇지만 민왕은 드디어 송나라를 병합하고 초나라의 북쪽 영토인 회북지역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또 민왕은 맹상군을 재상에서 해임하고 봉지를 몰수하여 맹상군을 위나라로 망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제후들이 민왕의 교만함과 포악스러움을 골치아프게 생각할 때, 연나라 소왕이 제나라를 칠 대책을 묻자 악의는 "제나라는 땅이 넓고 백성도 많아서 홀로 공격하기 어렵습니다. 여러 제후들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악의가 조나라에 가서 조나라 혜문왕과 맹약하고 다른 제후국에도 사자를 보내 연나라와 연합하도록 하니 모두 수락합니다. 그리하여 악의는 연나라의 군대와 조, 초, 한, 위나라의 군대까지 통솔하여 제나라에 쳐들어 가게됩니다. 심지에 진나라의 군대까지 힘을 합쳐다고 합니다. 연합군이 제수 서쪽에서 제나라의 군대를 격파하자 제후국의 군대는 모두 자기들 나라로 돌아갔지만, 악의가 지휘하는 연나라의 군대는 계속 제나라로 진격하여 5년만에 제나라의 70개 성을 점령하게 됩니다. 제나라는 즉묵과 거라는 두개의 성만 항복하지 않고 남아있었고 민왕도 죽임을 당해 멸망이 눈앞에 있던 실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즉묵과 거에 남아있던 제나라 군대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 두 성을 아직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악의는 오랜 시간이 걸려도 제나라 백성의 인심을 얻은 후에 두 성의 항복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악의를 전적으로 후원했었던 연나라 소왕이 죽고 그 아들 혜왕이 즉위했습니다. 혜왕은 태자로 있을 때 부터 악의를 못마땅해 했었습니다. 즉묵 성을 지키고 있던 제나라 전단이 새왕이 악의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연나라에 간첩을 뿌려 "제나라 성 들 중에 항복하지 않은 것은 두 성밖에 안되지만 악의가 제나라에서 왕이 되려고 두 성을 함락시키지 않고 질질 끌고 있다."라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혜왕은 벌써부터 악의를 의심하고 있었는데, 간첩의 말에 넘어가 악의를 장군에서 해임하고 기겁이라는 사람을 장군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악의는 연나라에 돌아가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서 조나라에 투항하였습니다. 연나라의 기겁은 악의를 대신한 후에 제나라 백성을 폭력적으로 탄압하여 제나라 백성들 사이에서 연나라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게 됩니다. 이에 전단이 이끄는 제나라의 군대가 기겁의 군대를 격퇴하고, 연나라 군대를 추격하면서 연나라에 점령당했던 70개 성을 모두 되찾게 되었고, 제나라 민왕의 아들을 양왕으로 맞이하여 제나라 수도인 임치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조나라는 망명한 악의를 우대하여 관진 땅에 봉하고 망제군이라는 봉호를 내렸습니다. 연나라 혜왕은 악의를 해임하고 기겁을 제나라에 보냈다가, 군사는 패하고 장군은 죽었고 거의 점령했던 제나라 땅을 잃게되자 악의를 해임했던 일을 후회하게 됩니다. 그리고 악의가 조나라에 망명한 것을 원망하고, 또 악의가 조나라 군대를 이끌고 연나라에 쳐들어올까 봐 걱정이 돼서 악의에게 사람을 보내 꾸짖으면서도 사과하게 됩니다. "선왕이 돌아가신 후에 좌우에 있는 이들이 나를 잘못 인도해서 기겁을 보내 장군을 대신하게 했소. 그러나 그일은 장군이 오랫동안 밖에서 고생해서 장군을 불러들여 쉬게하면서 나랏일을 의논하려고 한 일이었는데, 장군이 잘못 받아들여 과인과 장군 사이에 틈이 벌어져서 생긴 것으로 오해해서 조나라에 귀의하고 말았소. 장군을 위해서는 좋을 지는 모르지만, 선왕이 장군을 잘 대우해준 마음 씀씀이에 대해 무엇으로 보답할 셈이오?"
연나라 혜왕의 이 질책에 대해 악의로서는 어이없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악의는 소왕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을 변명하는 글을 올리게 됩니다. 이 편지 글을 보연혜왕서(報燕惠王書)라고 하는데 시대를 초월하여 명문이라고 칭송받아 왔습니다. 제갈량의 출사표도 이 글에 영향받았다고 합니다.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충신이 아니다.'라는 말이 전해지는 것처럼, 악의의 <보연혜왕서>는 사마천 당대의 많은 선비들에게 감동을 주어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아래는 악의의 보연혜왕서의 내용입니다.
첫번째로 악의는 자신을 채용한 소왕의 현명함을 칭송합니다. 소왕이 자신을 알아주었기 때문에 소왕에게 충성한 것이라고 밝혀서 혜왕의 처사를 간접적으로 비난합니다.
둘째, 자신이 조나라에 망명한 것은 자신이 죽으면 소왕의 명성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한 것이라고 변명하면서 연나라에 돌아갈 수 없는 슬픈 마음을 밝힙니다.
셋째, "군자는 절교하더라도 상대에 대한 나쁜 말은 하지 않았고, 충신은 나라를 떠나도 임금에게 허물을 돌려 자신의 이름을 깨끗이 하지 않았다.(君子交絶, 不出惡聲; 忠臣去國, 不潔其名.)"라고 하면서 군주에게 버림받은 선비의 의연한 태도를 말하면서 자신은 연나라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밝힙니다
결국 악의는 연나라에 돌아가지 않고 조나라에서 남은 생을 마쳤고, 연나라에 쳐들어 가지도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