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노래하는 북한산 둘레길
우리의 목적은 만남에 있다
번개와 천둥이 요란한가운데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진다.
대학친구들과 산에 가는 날인데 이렇게 쏟아지는구나 싶어 걱정되면서도
빗소리와 천둥번개가 너무 좋아 들뜬 마음으로 새벽을 보냈다.
여섯시가 되니 천둥과 비가 잦아졌다.
대장이 오늘 산행을 어떻게 하려나 싶어 핸드폰을 열어보았더니 “우리의 목적은 만남에 있는 것이지 올라가는 것에만 있지
않다. 우천불구 구파발역 2번 출구로 집합하라”는 내용의 지령이 하달되어 있었다.
시간에 맞추어 구파발역에 도착하니 석희태, 김신기, 오삼환, 황의중, 정진우가 미리와 있었고 최기영, 최예만은 벌초 가느라 못 왔다고 한다. 홍인기, 이용화는 직장 때문에 못나올 것이며 김중회, 김재훈은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것이고 최종순은
가게에 발이 묶여 있을거라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출발신호가 떨어졌다.
대기하고 있던 봉고차에 올라타니 운전석에는 80이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기사가 우리를 맞았다. 거침없이 달리는 차안에는
이름 모를 가수의 금속성 뽕짝이 계속 되었다. 기사할아버지와 대장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산성입구 어느 곳에
차를 멈추었다. 대장에게 명함을 건네며 그 차로 계룡산까지도 간다고 묻는 말에 친절하게 안내를 했다.
시골정취가 풍기는 코스모스길
우리가 출발하는 지점이 북한산둘레길 산성입구다. 표시판을 보며 머리를 맞대고 방향을 의논하더니 오던 길을 되돌아 어느
산길로 접어들었다. 한참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니 한동안 망설이다가 한 길을 택해 앞장선다. 길이 점점 좁아지더니 사람 다니는 길이 없어지고 물이 흐르고 질퍽질퍽한 이상한 길이 나왔다.
대장이 뺑뺑이 돌리기로 작정하고 이곳으로 끌고 온 모양이다 라고 주고받으며 옹색하고 질퍽한 길을 따라다니는데 저쪽에서 아줌마들이 거기는 사람 다니는 길이 아닌데 왜 그리 들어가 설치느냐면서 야단을 친다.
인왕산길과 백사 숲, 스카이웨이의 쾌적한 길을 편안하게 인도했던 최윤수 대장이 그립다.
그분이라면 둘레길을 쫙 꿰고 있을 텐데...
논길을 빠져나와 제대로된 둘레길에 접어들었다. 시골길 정취가 물씬 풍기는 평화로움 속에서 숲과 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조금 전까지의 혼란은 다 잊어버리고 이 좋은 코스를 택해준 오삼환 대장을 칭송하기에 여념이 없다.
느닷없이 김신기 사장의 오른쪽 등산화 및창이 떨어져 걸을 때마다 덜렁거린다.
같이 가는 모두가 신경을 쓰며 걱정을 한다.
대장이 배낭을 뒤지더니 끈을 찾아내어 정성스레 묶어준다. 이런일은 역시 육군장교의 솜씨가 돋보인다. 공군장교(홍인기)는
말솜씨만큼 손재주는 따르지 못하는 것 같다는 말에 모두들 웃는다. 궂은 일을 마다않고 앞장서는 오삼환 대장의 봉사정신이
늘 빛난다. 걱정을 하던 석교수가 한마디 한다. "사업에는 그렇게 밝으면서 제 신발관리는 그렇게 밖에 못하느냐?"하고.
은평구 진관외동에 기자촌이라는 곳이 있다. 1969년 대통령이 기자들의 '내집 마련'을 위해서 이 지역에 땅을 내어주고 집단거주지를 조성케 했는데 그것이 기자촌이다. 당시 정부에서 강남지역에 택지를 준비하여 기자단체에 제시하자 기자들을 뭘로 보고 그런 곳으로 가서 살라고 하느냐며 거세게 반발을 해서 결국 그들이 선호하는 은평구에 땅을 마련해주었다고 한다. 당시에 은평구 갈현동 일대가 서울에서 제일 인기 있는 지역이었다니 기자들의 요구가 크게 무리는 아니었겠다. 하지만 1.21사태발발, 교육환경 변화등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생활판도가 많이 바뀌었다. 기자들은 세상일은 다 챙기면서도 눈앞에 자기집안일은 잘 못보는 모양이다. 석교수의 말에 갑자기 세상사에 밝은 기자들 이야기가 생각난다.
디비져 잠이나 자라고 했건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다니다보니 정오를 지나 두시가 넘었다. 점심식사를 위해 어느 골목으로 들어갔더니 여기저기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일행이 어느 음식점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는데 곱상스런 아줌마가 생글거리며 들어오라고 한다.
오삼환 대장이 길에서부터 열심히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더니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문자에 열중이다. 무슨 일로 그렇게
열중하느냐 물으니 영빈이에게 식당위치 가르쳐주는 중이라 한다. ‘집이 멀리 영등포인데 이시간에 오라는 것이 부담을
주는 것 아니냐’며 ‘힘들면 디비져자라 해라’ 고 옆에서 누가 말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빈이가 식당을 찾아들어왔다.
참으로 대단하다며 모두들 박수로 환영했다.
산행일정 조정
지금까지 매월 첫째주 토요일로 모이던 산행을 둘째주 토요일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김중회 사장등 몇몇
동기들이 첫째주에 일정이 있어 함께하지 못함을 알게 된 일행들이 제시한 안이었는데 만장일치로 찬성해서 앞으로는 둘째주
토요일로 모이게 될 것 같다.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 오대장이 사정이 있어 대장을 누가 맡아주었으면 하는 안을 제시했다.
‘영빈이가 해라, 진우가좋겠다, 의중이가 좋겠다, 1년씩 돌아가면서 하자’ 별별 의견으로 시끌벅적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우리의 산행은 2008년부터였으리라 생각된다. 인사동 식사모임에서 의견을 모아 수락산부터 시작하여 도봉산, 관악산, 북한산, 불암산, 남산, 청계산, 대모산, 구룡산, 우면산, 광교산, 검단산, 예봉산등 그동안 서울근교와 경기도 일대의 많은 산을 다니며
참으로 즐거운 가운데 건강과 우정을 다져온 좋은 만남이었다. 처음 결의할 때 단 두사람이 나와도 중단하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그동안 10여명이 꾸준히 나와 벌써 5년여를 계속 모이고 있다. 삼환이가 건강 때문에 후임 대장이야기가 나오자 이렇게
시끌벅적하다. 5년여 기간을 소리 없이 봉사해주었던 김신기 사장의 수고를 돌아본다. 참으로 소중하게 생각되는 그 큰 수고에
모두들 다시한번 감사를 드리며 우리의 산행이 소중한 휴식처로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빌어본다.
2013. 9. 14. 북한산 둘레길을 다녀와서
濟巖 김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