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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여여 법사 , 사회: 혜안, 인례: 자성, 헌향: 자명행 , 헌다: 정명, 자은여, 발원문: 합창단장 자명행, 현안보고 : 법회장, 음악: 마하보디 합창단, 지휘자, 반주자, 촬영 및 방송: 방송담당 대원3구 법회팀, 취재: 미디어팀 , 방역 및 안내: 대원 3구, 법회팀, 보광당 좌석 배치: 청정팀, 법회 및 법등모임 후 보광당 청소:: 송파 31, 32, 34구, 대원 4구, 법회보 제작 : 법회보팀, 법회보 배부: 송파 17구 법회, 데스크 안내: 법당 안내팀, 새법우 안내: 새법우 교육팀, 엘리베이터 안내 : 송파 27구, 재 공양물 준비(재 있을 시) : 보문부, 떡 및 생수 보시 : 광진 1, 2구, 노원구, 송파 3구 보현행자의 서원 : 주세분
손이 꽁꽁꽁, 발이 꽁꽁꽁.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어울릴 것 같은 춥고 길이 미끄러운 강추위에도 법회를 보고, 법문을 듣고, 봉사를 하시고자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히 모여드는 불광 형제들은 광덕 스님의 유지를 이어가는 거룩한 불자임을 자부합니다.
보광당 입구의 각각 봉사자 여러분들과 광진 1, 2구, 노원구, 송파 3구에서 준비한 떡과 생수를 배분하고 계신 구임원님들
일요법회 전, 천수경 독경, 타종에 이어 혜안 거사님께서 법회 시작을 알리며 헌향, 헌다로 부처님께 공양 올립니다.
불광 일요법회는 푹푹 무덥던 여름이야기가 무색하리 만큼, 별안간 한파가 몰아치고 눈까지 내려 미끄러운 날인데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법회를 이어가고자 모여든 불광 형제들의 열기로 훈훈합니다. ( 난방은 1시간 남짓(?) 넣어주는 것 같다.)
금주의 법문 :문사수법회(聞思修法會) 여여 법사
금주의 법어 : 다만, 안심(安心)입니다.
여러분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무척 춥습니다.그런데 이 이동 시간대에 우리 반대편 지구본을 이렇게 보시면 반대편에 아르헨티나 브에노스아이레스는 지금 한 밤중이죠. 지금 거기는 덥습니다. 다시 얘기하면 춥다, 덥다는 쉽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맞이하는 현실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건 이 땅에서 그 동포들과 함께 우리는 지금 이 세상을 지금 현재 살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춥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또 외면하고 또 건너뛰어서 또 다른 세상을 얘기한다는 것 그것은 허무맹랑한 얘기일 겁니다.오늘 새삼스럽게 우리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오늘 그 근본자리에 대해서 한번 돌아보자는 겁니다.
우리가 이 날씨가 덥다 춥다 이런 거 따라다니면서 또 구경 다니면서 또 내 여건 따라서 주변의 조건 따지다가 세월 보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세월이기 때문입니다.실제 왜 그렇습니까? 지금 연말입니다. 가뜩이나 오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떠오르면 저는 제 국민학생 때, 이때만 되면 괜히 어른들이 뿔피리 불고 막 돌아다니시던 기억이 납니다. 왜 뿔피리를 그분들이 불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러고 다니셨습니다.
그러다 또 학창시절엔 또 괜히 명동거리 나가서 헤맵니다. 거기 가면 친구들을 많이 만나요. 그러면서 괜히 돌아다닙니다. 방황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러한 모습 속에서 이러한 일종의 한 종교의 특정한 종교의 축제가 아니라 민족의 축제 같지마는 돌아서면 또 파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추운 시절에 흔히들 또 여기서 기대하는 게 있죠. 화이트 크리스마스라 는데, 오늘 보니까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오는 겁니다. 그럼 이 조건이 충족이 됐다고 했을 때 내가 모든 갖고 있는 내 바램이 충족되는 거 분명한 건 그런 겁니다. 나는 지금 충족된다라고 하는 조건에 의해서 과연 행복해지가 있는가라는 거죠. 대표적인 것이 재산상의 문제일 것이고, 또 정치적인 것, 또는 명예와 같은 것, 사회적 지위와 같은 것, 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이런 것이 갖춰졌으면 좋겠다 그러는데
제가 본 건데, 제 친구가 한참 전에 모 장관 자리에 갔습니다. 그때 저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자네한테 내가 충고를 듣고 싶어서 전화를 왔네". 뭐냐 그랬더니 "오늘 내가 장관 자리에 가게 되는 어떤 마음으로 갈지를 얘기해 주게." 제가 그래서 갑자기 떠오른 게 있었습니다. "딴 거 필요 없네. 박스 하나 들고 들어가게“ 했어요. 그랬더니 이 친구가 “왜 뚱딴지같은 얘기인가?“ ”자네는 취임하는 날 퇴임할 준비를 해야지, 그 마음으로 가게“ 우리들이 따져보면 그렇습니다. 어떤 자리만 가면 행복할 것 같은데 안타까운 건 그 자리가 가시방석이 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또 아주 멋진 집에 이사를 가면 행복할 것 같은데 가는 날부터 지옥이 연출되는 사람 참 많습니다.또 어떤 분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우리 아이가 좋은 학교만 가면 내가 이제 소원이 없어’ 그러는데 그런 분치고 거짓말 안 한분은 한 분도 못 봤습니다.
또 우리 아이가 이번에 시집 장가를 가는데, 이번에 그러고 나서 손주만 낳으면, 내가 소원이 없겠다고 했는데 그때부터 또 손주에 매달려서 사는 분이 또 널렸어요. 우리는요. 분명한 것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행복 속에서 과연 주인 노릇하고 있냐? 그러면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크게는 시간적으로 비교하기 바쁩니다. 과거와 비교하기가 바쁘고, 과거와 비교해서 과거에 왕년에 누가 내가 어땠다, 또는 누가 어땠다 그러면서 그것과 비교합니다.
또는 지금의 나의 행복을 누리기에 앞서서 미래 10년 후를 쳐다봅니다. 10년 후에는 나는 어떻게 될까 생각을 하니까 지금 갑갑한 거예요. 노후 자본도 없는 것 같고, 또 내 건강 상태도 아닌 것 같고, 끝없이 또 시간적으로 비교합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어느 동네에 살아‘ 장소적 비교를 합니다.
저의 사적인 얘기가 되겠습니다만 저는 사는 곳이 일산 쪽 행신동에 삽니다.우리 아이가 어느 날 그 맞선을 봤습니다. 맞선을 봤는데 상대 친구가 어디 사느냐고 물어서 행신동 산다고 그랬더니 그게 "강남구가 무슨 동이지?" 그러더랍니다. 다시 얘기하면, 어느 조건을 따지는 거예요. 다시 얘기하면, 강남구에 사는 사람하고만 맞선 보겠다 이런 의미이지요. 우리한테, 아주 세밀하면서도 거창한 것까지 끝없이 이것이 틈입해 들어옵니다. 마치 이것을 계속 구하는 데 있어서 브레이크를 떼어놓은 자동차 같습니다.
가끔 가다 보면은 막무가내로 달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지방을 많이 자주 다니기 때문에 운전을 새벽에 할 때도 있는데 이렇게 할 때 보면은 뒤에서 차가 오다가 저만 보면 갑자기 달리는 차들이 많이 봅니다. 그런데 그 차들이 보면은 '왜 그럴까요?' 자기 앞에 차가 가는 걸 용납을 못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톨게이트에 가면 그 차는 반드시 꼴찌입니다. 그럼 거기서 또 추월하게 되지요. 마치 우리들의 모습이, 생각해 보면 그러합니다. 과연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에서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나는 무엇을 근간으로 살고 있는지, 우리가 딛고 있는 그 자리가 흔들리는 우리는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며칠 전에도 중국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지 않습니까? 그 영상이 지금 돌아다닙니다. 그걸 보고 계시면 어떻습니까? 누구나 너나 할 거 없습니다. 식사하던 사람 또는 고대광실에 살던 사람, 가난하게 살던 사람, 관계없이 다 뛰쳐나옵니다. 왜? 그것들이 궁극적으로 나를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지요. 오늘 저는 생각 없이 왔습니다만 마침 또 오늘이 지장재일입니다.
제가 그래서 오늘 이런 법문 내용을 드릴 기회구나라는 생각을 또 새삼 해봤는데요.여기서 어학적인 얘기를 길게 할 건 아닙니다만 지장보살이라는 분은 알고 보면 그렇습니다. 원래 ‘크시티가르바‘라는 뜻이에요.
이 얘기는 요즘 용어로 번역을 하면 ’우주의 자궁‘, ’모든 생명의 가치가 태어나는 그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게 뭡니까?
대지(大地)이지죠. 대지(大地)의 자식들입니다. 모든 생명들이 태어납니다. 그래서 지장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땅 그 밑변에는 엄청난 지하자원부터 시작해서 여러분 아시다시피 엄청난 미생물, 알 수 없는 엄청난 보고들이 있죠.생명들이 공통되고 있습니다. 이 지금 세상은 지금 얼어붙어 동토(凍土)가 된 걸로 보이지만 그 안, 속에서는 지금 생명이 봄에 싹을 틔우기 위해서, 활동하기 위해서, 엄청난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고 그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말 그대로 무한 공동 에너지가 가득 찬 곳이 땅이고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해 보면 그래요.
그러한 지장(地藏), 그 곳에 잠재돼 있는 능력을 나는 끌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어떻게 보면 관건입니다. 내가 땅을 딛고 있는데 딛고 있는 이 땅의 주인인 나의 모습, 이 안에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내 능력을 어떻게 드러내느냐의 문제죠. 그것을 부처님께서는 간단히 해결하고 계십니다. 멀리 갈 것 없습니다. 법문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하수를 파는 분들이 이 파이프를 갖다가 꽂습니다. 계속 꽂습니다. 나올 때까지, 석유를 시추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왜 그렇습니까?
통하기 위해서, 뽑아내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그것을 법문이라고 얘기합니다. 법문을 통해서 세상을, 그 안에 갖고 있는 지장을 끌어내야 합니다. 나는 본래 무량공덕의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끌어내지 못하면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갖고 있으면 뭐 합니까? 쓰지 않으면 없는 겁니다.
그런 면에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제가 예를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나서 아까 우리가 예불 모실 때도 10대 제자가 나오시듯이 그 수많은 제자 분들에 의해서 이 전법의 역사가 전 세계로 펼쳐왔지만 훗날 심지어는 로마까지 갑니다. 아소카대왕을 비롯해서 중간에 수많은 분들이 이렇게 전법의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그 안에서 상당히 많이 안 알려진 독특한 분이 한 분 계십니다
‘우바국다‘라는 분이다. 이 ‘우바국다존자’는 불교계에서는 많이 안 알려져 있는데 상당히 재미난 일화를 갖고 있어요.그분 스토리는 다음에 시간이 되면 또 얘기하더라도 이분의 중점적인 말씀을 제가 드리려고 하는 건데, 이분은 원래 불교를 반대했던 심지어는 불교를 배척하려고 노력했던 분인데 배척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그걸 알아야죠.
적을 알아야지 이길 거 아닙니까? 그래서 불교 공부를 했습니다.
그때 당시에 선지식들을 뵙고서 불교 공부를 하다 보니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떻게 돼요? 부처님 법이 뭔지 알게 되니까 욕할 불교가 아니라, 내가 찬탄해야 될 불교가 된 거예요. 부처님의 생명 속에서 내가 살고 있구나. 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반드시 그것을 공약으로 이어지게 해서 법공양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수행자 생활을 함과 동시에 구도자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으면서 전법의 길에 나서신 ‘우바국다'. 그러다 보니 가는 곳마다에서 많은 분들이 감동을 받고 그 안에서 그 법을 생활화하는 분들이 숱하게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결국은 온 천지에서 이분을 생불(生佛)로 모셨습니다. 살아계신 부처님으로 모실 정도로 추앙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분이 어느 큰 나라에 초청을 받아서 법문을 하게 됐습니다. 그럼 어떻습니까? 많은 분들이 모여서 법문을 귀 기울게 되겠죠.그런데요. 당신은 오로지 법문할 때, 오직 부처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내 이름이 나거나, 내 세력을 넓히거나, 내가 그것에 어떤 대가를 받아서가 아니라 오직 부처님 은혜 갚자고 이제 법문 청한 곳이면 어디든 가서 법문을 하시게 됐습니다. 근데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감사의 기쁨을 갖고 은혜 갚음을 위해서 법문을 하겠다고 가신 분인데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대중성이라는 자리는, 결국은 내 계산을 가지고서 법문을 듣겠다는 분들이 많다는 겁니다. 지금 이 자리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내가 갖고 있는 이해타산의 결과를 가지고서, ‘한번 들어봐‘라고 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3천 년 전에나 지금이나 별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당신이 나를 설득해봐‘라는 거죠.
제가 아는 어떤 분이 의사인데 이분에개 어떤 환자가 오셔서 이렇게 얘기하더랍니다. "선생님이 유명한 의사이니 제가 어디 아픈지 맞춰보세요." 이 친구가 상당히 재미난 친구예요. "그럼 저에게 잘못 오셨어요. 저 옆집 수의사에개 가보세요" 라고 대답했답니다. 수의사는 환자한테 안 묻고 돈 줄 사람인 주인한테 묻잖아요.
그러니까 당사자와 당사자가 만나는 것이 법회이고, 생명과 생명이 치열하게 만나서 그 무량 공덕이 꽃 피어나는 자리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이 ‘우바국다’가 이제 법문을 하게 됐습니다. 대법회를 연다고 하는데 그것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연속적으로 하는 법회의 첫날이었습니다.
첫날 법회를 한다고 하는데 워낙 위대한 분이 법문한다니까 지상에만 알려진 게 아닙니다. 요즘 어디서 뭐 한다 그러면 인터넷이라든가 유튜브라든가 인스타그램이라든가 해서 많이들 알려지지 않습니까? 그리고 알려져서 팔로우가 있으면 그 사람 대단하다 이러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바국다‘ 그게 필요 없습니다. 한마디로 이미 천상에게까지 알려졌습니다. 천상에 누가 알게 됐느냐? 마왕 파순이 알게 된 겁니다. 마왕 파순이 설명 안 해도 아시죠? 한마디로 나라는 생명을 물질화시키는 데 능사를 하고 있으면 그걸 '마왕'이라고 합니다. 마왕은 특별한 게 아닙니다. 저 같이 잘 생긴 사람도 마왕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왕하면 갑자기 무슨 귀가 이상하고 코가 이상한 게 마왕이 아니라 ’생명을 단정‘짓는 자’를 말합니다.
근데 이 마왕파순이 하늘에서 딱 듣고 난리났어요. 이 법문 들으면 큰일 나겠네. 사람들이 마왕의 법문을 안 듣고 깨어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제 법문 회상에 마왕이 등장을 합니다. 등장을 할 때 그 마왕파순은 그랬다고 기록을 합니다.
질투의 불길 속에서 나는 인기가 이제 없어질 것이고 ‘우바국다‘의 법문을 들었다가 부처님을 따라갈 거 같으니 이건 안 되겠다 싶어 이 법당을 오자마자 마왕이 제일 먼저 하는 게 뭐냐 하면 돈을 뿌려댑니다. 법당에 우리 형제분들은 여기 돈이 뿌려져도 이쪽 안 가시겠죠? 어디 우리 우리나라 돈뿐 인가요? 그럼 달러로 가는 게 어떨까요? 유로화 이런 거 있지 않습니까?
얼마 만큼이냐 라고 하는 걸 떠나서 돈이라고 하는 것이 이건 무슨 옳고 그름이 아닌데, 내가 돈으로 살아가고, 돈으로 유지된다고 하는 것에 우리는 너무나 동의돼 있지 않습니까?
요즘 모든 가치 기준을 얘기할 때 그거 하면 돈 나와? 저 아는 분도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법사님이 거의 일생을 법회 운동을 한다고 해서 이 법사라고 불리는데 돈 많이 벌어? 그럽니다. 혹시 오늘도 법회에 참석하실 때 가족 중에 어떤 분이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거기 가면 돈 나온답니까? 이게 제가 얘기하는 건 비웃으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돼 있다는 거죠. 나라는 가치 기준의 바로미터를 이 돈에서 보고 있다. 그래갖고요. ‘우바국다’라는 그 위대한 그분이 법문한 그 자리가 어땠을까요? 법문 시작도 못 해보시고 우왕좌왕하다가 난장판이 돼버려 돈을 뿌려대니까 서로 줍겠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난리 나니 법문을 시작도 못해보고 어떻게 돼요? 그날 법회가 끝나버렸어요.
근데 이제 이것은 연속 법회라 둘째 날, 이분은 기대하고 오늘은 법문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심한 ‘우바국다’를 가만 내버려 둘 마왕 파순이 아닙니다. 마왕 파순이 또 여기서 장난을 합니다. 꽃비를 내립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여기서 꽃비가 쫙 내립니다. 그럼 어떠실까요? 신기해하다고 안 하실까요?
사람마다 조금 해석은 다를 수 있습니다만 저는 한참 전에 불교계를 휩쓸었던 우담바라 소동에 대해서 생각하면 참 너무 씁쓸한 게 많아요. 얼마나 철을 안 닦았으면 거기 균이 가서 붙은 걸 가지고 우담바라라고 그래서 너무나 창피한 일들이 많았었어요.이건 좀 생각이 다를 수 있다.라는 전제로 둡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3천 년 만에 핀다. 라고 하는 우담바라를 볼 수 있을 거다 그랬는데 3천 년 만에 핀다는 것은 목격자가 있어야 되잖아요.
다시 얘기하면 오늘 새롭게 피어나는 이 생명이라고 하는 이 생명의 위대함을 ‘우담바라’ 라고 하는 건데 그것을 형상에서 찾고 바깥에서 찾고 어떤 모습에서 찾고 여기에 이것이 마왕 파손의 장난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거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경전이 있습니다.유마경입니다. ‘유마경’에 보면 ‘사리불 존자‘ 우리 금강경 외우면 꼭 사리자가 나오지 않습니까? 천하의 사리불 존자는 지혜 제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러신 분이 유마거사와 이제 법담을 하시게 됐는데 그때 천녀가 법문 들으러 오신 이 사리불존자에게 꽃비를 내립니다. 꽃비는 뿌리면요. 여러분들 꽃비를 받으면 어떻게 해요? 꽃비를 갖다가 이렇게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시죠? 거기에 온 대중들은 다 꽃비가 내려서 꽃이 떨어졌는데 사리불존자에게만 꽃이 달라 붙어서 안 떨어집니다. 그때 긴 얘기하는 건 뭐합니다마는 이렇게 묻죠. ’왜 나는 꽃이 안 떨어집니까?‘ 그랬더니 그것은 ’네가 잡고 있는 거다‘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참 아까 보니까 우리 법회보 뒤에도 꽃비가 있어요. 이 꽃비는 여러분들이 헌공하신 거죠.그거 다시 얘기하면 내가 오늘도 법문 듣고 나니, 내가 무량한 공덕으로 오늘도 다시 태어나 감사해서 이렇게 공양을 올리는 거 아닙니까? 결과물입니다.근데 이것은 ‘원인’ 자리거든 꽃비로 상징되는 건 뭡니까? 명예 아닐까요? 직위 아닐까요? 대접받는 거죠. 가끔 북한 뉴스를 보다 보면 실소를 자아나게 하는 장면들이 있어요. 사람들은 왜 훈장을 가슴에다 다 갖다 붙이죠. 되게 무거울 텐데.
근데 그거 보면서 나는 안 그런가라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습니다.내가 어느 학교 나왔고 학교 다닐 때 반장 했고 뭐 이런 거 있죠. 누구한테 가면 그걸 자랑하라고 내가 누군 줄 알아? 알아달라고 제가 붙이고 다닌 거죠.그러니까 이 꽃비가 딱 내려갖고 영광된 자리구나 하니까 영광된 자리에 왔다고 꽃비에 묻혀서 법문은 안 듣는 거예요. 요즘 표현하면 인증 사진 찍기 하고 이겁니다.그렇게 둘째 날도 ‘우바국다’ 없다는 법문하기를 실패 합니다.그러니까 이 난장판이 됐을 거 아닙니까? 이렇게 우리들에게 있는 내밀화된 어떤 명예의 추구적 입장, 이것은 여기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것이 앞서가고 있는데 이것이 발동하면요.눈에 보이는 게 없게 되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가끔 가다 보면은 공직사회나 이런 데서 보면 무슨 자리를 줬을 때 흔히 깜도 안 되는 분들이 거기 가서 무조건 그 자리를 받아먹으려는 사람들 있잖아요. 안타깝게 능력은 없는데 안타깝지만 그랬을 때 왜 그럴까요? 가문의 영광이다 이거죠.내가 이 자리에 갔었어. 내가 누구야? 실제가 가만히 보면 우리에게 있어서 지금 아까 돈 또 명예 이것이 앞서갈 때 법문은 우리한테 수단이 됩니다.
내 돈과 명예를 가꾸기 위한, 내가 누군가를 드러내는, 하나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을 해버립니다.
세 번째 날 이 날은 분명히 내가 잘해 보리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날에도 마왕파순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코끼리를 집어넣습니다. 코끼리는 요즘으로 얘기하면 전차 군단입니다. 전차 우크라이나에서 보시지 않습니까? 전차 군단이 오면 정신이 없습니다. 소총 부대가 당할 수가 없죠.
그러니까 이런 코끼리와 같은 것이 만약에 우리가 법문하는 자리에 들어왔다. 쉽게 얘기하면 요즘 얘기하면 권력이죠. 참 희한한 걸 저도 겪어봤습니다. 분명히 법회자리인데 갑자기 그 지역에 무슨 뭐 국회의원 거기에 누구 장이라는 분이 오면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지더라고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그분이 나쁜 게 아니라 그거에 대한 어떤 걸 갖고 있습니까? 우의적 유대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앞서가고 있는 것이지요.
네 번째 법회날 '우바국다'가 끊임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문하겠다고 하니 한 명이 안 와도 나는 법문하겠다 누가 없어 어떤 조건 하에서 난 법회를 하겠다라고 하니 이때는 마왕 파손의 마지막 수단으로 합니다.
미인을 보내기로 합니다.
앞에 건강하고 엄청난 미모의 아가씨가 나타나고 그랬을 때 대중들이 온통 그 미(美}에 팔려가지고 정신을 못차리고 쫒아가지 않습니까? 사실 요즘 걱정되는 게 아니라 너무 일반화돼가지고 이제 얘기하는 것 자체가 허튼 얘기가 될 정도인데요.
'우바국다'도 이제는 여기서 이 마왕파손을 끝장낼 때가 왔다 생각이 들으셨는지, 이제 드디어 신통술이라고 나오지만 신통이 딴 게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아름다움이 허물어져가는 실제 모습.
말하자면 제가 갖고 있는 많은 다운 받은 영상들에 그런 것들이 있는데 어떤 분이 태어나서 돌아가시는 장면까지 몇 초 만에 휙 돌아가는 필름이라든가 이런 것들처럼 미모가 변해 가는 생노병사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가 어느 날 꼰대가 됐더라는 거 그거 왜 그랬을까요? 나를 고정시켰기 때문에 내가 오늘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 새로운 언어를 쓸 수 있는 기회를 남이 박탈한 게 아니라 내가 박탈했기 때문입니다 기회를 주자.기회를 주기 위해서 우리는 법회 생명의 모임을 갖는 겁니다.
오늘 제가 연말이고 그래서 사실은 그런 마음이 새삼 많이 들어서 오늘 결산도 할 겸 이런 생각이 들어서 말씀드립니다. 지금 해가 지고 있다 그럽니다. 해가지고 있게 되면 여러분들 이제 양력을 쇠시는 분들도 계시고 음력 설은 쇠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새해가 되면서 꼭 많이 먹는 떡이 있죠? 그 떡을 가래떡이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가래떡의 어원 찾아왔습니다. 참 멋져요. 오늘 본문의 귀결입니다.
갈 해 떡입니다. 갈 해를 붙잡지 마십시오. 너는 가라나는 새해를 맞이하리라. 새해를 맞이해서 새 사람이 되리라. 새해를 맞이해서 새 생각을 가꾸리라. 그래도 내가 가는 곳은 새 나라가 될 것이며, 새 법회가 될 것이며, 새 가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 새 사람이 가는 곳 얼마나 광명이 가득 차겠습니까?
우리 모든 형제분들 가정과 하시는 일과 그리고 여러분들 가슴속에, 이 해를 가득 품으셔서 또 새해에는 여러분들의 그 불심이 타오르는 것이 인연되시는 분들에게 또 전파되시기를 기원 드리면서 제 법문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찬탄곡 : 대각산사 돌아보며 ( 김효경 작사, 정부기 작곡) 마하보디 합창단 ♬
고적이 숙명인 양 그물 걸려 앓던 삶이 전 전생 사바 그곳 잊지 못할 한인 것을
이제는 옛이야기로 허리 펴고 하늘 본다 부처님은 거기 서서 미소하며 보자 하고
보살님은 나를 반겨 길을 같이 가자 하네 오늘의 장미 꽃다발 한 아름 안겨울고
마음은 연꽃잎 이슬로 맺혔다가 때로는 호수처럼 청산 더불어 머물고
내 품안 조국의 산사 구름으로 머물다가 한뜸한뜸 기운 누덕 피눈물 괸 대각 도량
사무쳐 그리운 정 당신 불러 목이 메고 아무도 모르는 이 밤 귀뚜리만 웁니다.
B---- B--- B--- B---
대각산 오르는 길 춘하추동 이십여 성상 천둥번개 백설 분분 숨죽이며 달래며
묵빈을 양식 삼아서 지금에 이르렀느니 아수라게 구비 돌아갈 길 바쁜 지금이다
정토 향한 해오름에 해탈 수 담아 싣고 한 눈을 팔 여가 없으니 오직 내길 가자 하네.
B---- B--- B--- B---
발원문 낭독 : 합창단장 자명행 보살님 (불광법회.불광사 정상화 기도 발원)
현안 보고 : 현진 법회장님
법회 공지사항 후, 혜담 스님, 연화부 거사님들의 집전으로 영단을 향하여 지장재일, 관음시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시식 첫 순서는 지장재일 설판을 하신 故 현덕 이춘식 영가님 49재 가족분들 시작으로 기제사 올리신 가족들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故 현덕 거사님의 극락왕생을 기원드립니다._()_'
법회와 지장 관음 시식이 끝나고 또 다시 각 구, 법등별로 둘러 앉으셔서 구 법회 모임을 즐겁게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법회가 끝나고 많은 분들이 동참한 대웅전에서는 여법하게 금강경 독송이 이어졌습니다.
한파로 무척이나 추웠던 토요일에도 어김없이 일요법회를 위해 보광당을 청소하시고 의자 배치하시는 청정팀 봉사 모습입니다.
지장재일, 관음시식, 49재 영단을 준비하시는 보문부 봉사하시는 보살님들의 노고에 감사와 찬탄을 드립니다.
지난주 최강의 한파에도 불광 형제들의 1인 시위 기도 정진은 조계사와 동명사, 화광사, 봉은사 에서 계속되었습니다.
불기 2567년 『송년잔치한마당』를 준비하는 송년법회 노래 리허설이 있었습니다.
우 리 는 횃 불 이 다. 스 스 로 타 오 르 며 역 사 를 밝 힌 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
첫댓글 마음님!
세밀하신 녹취와 교정으로
일요법회 감로법문을 다시 볼수있도록
수고하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고맙게 잘보고갑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_()_
마음님 인도성지순례 다녀오시고 다시 일요법회 기록을 남겨주시니 그 수승함에 찬탄합니다_()()()_
돈과 명예 권력 미인을 초탈하여 스스로 불광법회 이끌어 가시는 불광불자님 모든 분께 존경의 삼배 올립니다 _()()()_